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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30)] 야구 이론서 낸 ‘국보 투수’ 선동열 

“기본기가 필살기 끊임없이 배우고 다듬어야” 

양키스 연수 가려다 코로나에 막혀, 지인들과 야구이론 ‘열공’
짧은 손가락 약점 넘으려, 악력 키워 ‘선동열표 슬라이더’ 개발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포토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선동열 감독. 그는 짧은 손가락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하고 국보 투수의 반열에 올랐다. / 사진:정시종 기자
'국보 투수’ 선동열(58)이 책을 냈다. 야구전문기자인 김식 중앙일보 스포츠팀장과 함께 쓴 책의 제목은 [선동열 야구학](생각의힘)이다. 코로나19 덕분(?)에 이 책은 세상에 나오게 됐다.

2018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선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로 연수를 가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양키스 소속 마이너리그 선수 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미국행이 취소됐다.

그는 언택트로 연수를 하면서 지인 20여 명과 ‘팀 선(Team Sun)’이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한 달에 두세 번 모여 야구 공부를 했다. 교수·사업가·기자 등 다양한 직종의 야구광들이 최신 야구 이론을 학습하고 빅데이터에 기반한 현대 야구의 트렌드에 대해 토론을 했다. 선 감독은 프로야구 2개 구단의 동계 캠프에 가서 그동안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보름 정도씩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을 김식 기자가 정리한 게 ’선동열 야구학‘이다.

유튜브 방송국 중앙UCN 개국을 맞아 선 감독을 서울 순화동 UCN 스튜디오에 모셨다. 그는 혈색이 좋고 얼굴이 무척 밝아 보였다. 말도 솔직하고 조리 있게 했다. 4년 전 대표팀 감독으로 있을 때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표정이 어둡고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똑 부러지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때처럼 인터뷰가 재미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기우(杞憂)였다. 선 감독은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얼굴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류현진은 ‘피치 터널’ 길어 통타 안 당해


▎해태 타이거즈 시절 선동열의 역투 모습. 익스텐션이 길어 타자에게 더욱 위협적이었다.
책의 서문에 ‘20세기 야구를 했던 선동열이 21세기 야구를 하는 여정을 담았다’고 썼는데, 무슨 뜻인가요?

“요즘 사람들이 ‘라떼(나 때)’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저희들은 직관, 즉 직접 보면서 선수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데이터를 가지고 선수들을 가르칩니다. 제가 전에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는 직관으로 모든 걸 가르쳤죠. 지금은 데이터 없이 직관으로 가르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공부라는 게 한도 끝도 없겠지만 배우면서 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프로야구단 순회 교육을 할 때 “아직도 투수가 스프링 캠프 때 공 3000개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면서요?

“저희 선수 때는 지도자에게 뭘 물어보는 게 무서웠는데 요즘은 서슴없이 할 얘기를 하더라고요. KT 위즈의 베테랑 선수였는데 ‘감독님 삼성 계실 때 3000개 던지라는 얘기 하셨는데 지금도 그대로 적용하십니까’ 물어보더라고요. 그건 젊은 투수들, 제구력 안 갖춰진 투수들 제구력 키우기 위해 나온 3000개론이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투수한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일부 언론에 잘못 나온 것도 있죠. 한 시즌에 선발 투수가 3000개 던지기 쉽지 않습니다. 젊은 투수들은 볼넷이 많은데 스프링캠프 두세 달 동안에 집중적으로 던져서 제구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었죠.”

일본은 시속 160㎞, 메이저리그는 170㎞ 던지는 선수도 나오는데 우리는 160㎞ 넘는 선수가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를 뭐라고 보는지요.

“제도 쪽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소년 쪽에서는 진학을 시키기 위한 훈련만 하고, 기술력만 가르칩니다. 운동선수는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는데 기본기는 체력적인 기본기가 첫째입니다. 젊은 선수들 체격은 좋아졌지만 체력적인 기본기가 떨어져요. 스포츠 선수의 기본인 러닝, 야구의 기본인 캐치볼 같은 걸 등한시하면서 기술력만 갖고 진학만 시키려고 하니까 강속구 투수가 나오지 않는 겁니다.”

책에는 ‘피치 터널(Pitch Tunnel)’이라는 전문 개념이 나오는데요.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은 피치 터널이 길어서 상대로부터 통타를 잘 안 당한다는 설명도 있고요.

“투수가 던졌을 때 릴리스 포인트에서부터 타자가 직구인지 변화구인지 판단할 때까지의 구간을 피치 터널이라고 합니다. 이게 길면 길수록 타자가 구종을 판단할 시간이 줄어들죠. 류현진은 같은 폼에서 같은 릴리스 포인트가 형성되니까 터널이 더 길어집니다. 일정한 투구 폼과 일정한 릴리스 포인트를 갖는 게 좋다는 거죠. 그리고 익스텐션(투구 직전 동작부터 공을 뿌릴 때 착지하는 발까지의 길이)이 길수록 좋아요.”

요즘은 시프트(수비 위치변경)를 많이 쓰는데 이것도 빅데이터 야구의 영향인가요?

“그렇죠. 김현수(LG 트윈스)처럼 당겨서 치는 타자다 하면 우측 수비를 좌측으로 옮기고 투수도 그쪽으로 치도록 유도하면 안타 맞을 확률이 줄어드는 거죠. 예전에는 이게 좀 무모한 작전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보편적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투수 중에는 열 번 중에 아홉 번 성공하고 한번 실패해도 ‘왜 제자리에 있었으면 아웃인데 시프트 해서 실패했냐’고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있어요. 지도자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확률 높은 작전을 쓰는 거라고 선수들을 이해시켜야 하겠죠.”

시프트가 많이 나오면서 잘 맞은 땅볼 타구가 걸리는 경우가 많아졌죠. 그래서 땅볼 치지 말고 띄워서 치자 하는 게 ‘플라이볼 혁명’인 거죠?

“맞습니다. 즉 어퍼컷 스윙이죠. 땅볼이 많다 보면 수비 시프트에 걸려 안타 될 확률이 떨어집니다. 메이저리그에는 시속 100마일(160km) 이상 던지는 투수가 1500명이라고 해요. 그런 강속구 투수를 상대로 연속 3안타를 쳐야만 점수가 난단 말이죠. 확률이 떨어지니 홈런 하나로 점수를 내자, 그래서 어퍼컷 스윙이 늘어난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퍼컷 스윙을 해도 힘이 실리지 않으면 평범한 뜬공 타구가 될 수밖에 없으니 선수 체형이나 스타일에 따라 스윙이 달라져야 하겠죠.”

선동열의 타격 실력은 어땠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고교야구에서는 에이스 투수가 클린업 트리오 타순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독님의 타격 실력은 어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선 감독은 멋쩍게 웃으면서 “썩 좋지는 못했지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3,4,5번 타자 중에 들었고 타격상도 한번 받았지만 대형 타자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홈런도 몇 개 정도 친 것 같아요”라고 회고했다.

감독 시절 ‘썩소’ 비웃음으로 비쳤다면 죄송


▎1987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함께한 고(故) 최동원 선수(오른쪽). 그는 선동열의 롤 모델이었다.
감독 시절에 “타자는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을 종종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투수와 타자의 차이가 뭘까요. 타자는 열 번 나가서 일곱 번 실패해도 세 번 성공하면 3할 타자라면서 최고로 쳐 줍니다. 투수는 8할 이상 승률이 있어야 합니다. 8할과 3할이 싸웠을 때 과연 어느 쪽이 이길 수 있겠느냐, 즉 투수가 타자한테만 의존하지 말고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잘못 전달된 겁니다. 결국은 소통의 문제지요. 내가 표현하려는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때 ‘감독님이 왜 저런 말을 하시지’ 하는 오해가 생길 수 있겠지요.”

같은 맥락에서 선수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할 때 ‘썩소’를 짓는 장면이 자주 TV 화면에 비쳤는데요.

“사실 그것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선수가 실수했을 때 인상 쓰고 있는 것보다는 웃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선수 입장에서는 선동열이라는 사람이 웃고 있으니 나를 비웃는구나 생각했을 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닌데 오해가 있었으면 죄송합니다.(웃음) 선수나 제자들에게 자신의 의도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그리고 선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겠습니다.”

투수의 볼끝이 좋다, 종속(終速)이 좋다, 라이징 패스트볼이다 이런 표현들을 전부 ‘수직 무브먼트’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셨는데요.

“그동안 익숙하게 써 왔던 용어가 사실은 잘못 표현된 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 보니까 ‘무브먼트가 좋다’고 표현하는 게 맞더라고요. 투수가 볼을 던진 순간의 속도를 초속, 타자 앞에서의 속도를 종속이라고 하고, 종속이 좋으면 볼끝이 좋다고 했거든요. 빅데이터를 공부해 보니 그건 볼의 무브먼트가 좋다는 뜻이었어요. 볼끝이 좋다, 안 좋다고 쓴 논문이나 자료는 하나도 없더라고요.”

대표적으로 무브먼트가 좋은 선수로 구창모(NC 다이노스)를 꼽으셨는데요. 그 선수의 특징은 뭔가요?

“투구 시 백스윙이 간결합니다. 그렇게 되면 릴리스 포인트에서 빠르게 던질 수 있어요. 우리는 백스윙을 크게 가져가라고 배웠는데 백스윙이 클수록 릴리스 포인트에서 볼을 빨리 때릴 수가 없습니다. 구창모 같은 투수는 백스윙이 짧으면서 앞에서 볼을 놓는 임팩트가 강렬합니다. 그래서 수직 무브먼트가 좋은 거죠.”

볼을 던지는 팔을 투구 직전까지 숨기는 디셉션 동작도 중요하죠?

“배트도 둥글고 공도 둥근데 그걸 중심에 맞히기 위해서 타자들은 항상 반복된 훈련을 합니다. 반사신경을 키우는 거죠. 타자들은 투수가 릴리스 포인트에서 이런 공을 던지겠구나 해서 몸이 그쪽으로 움직이는데, 디셉션이 좋은 투수들은 갑자기 공이 나오다 보니 타이밍 맞히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초고교급 투수로 이름을 떨쳤는데요. 타고난 재능과 체력도 있지만 남다른 노력이나 훈련법이 있었겠지요?

“글쎄요. 남다른 게 있지는 않은 거 같고, 러닝을 많이 한 거 같아요. 단체훈련 마치고 집에 가서 하루에 6km 정도 뛰었던 거 같습니다. 기본기에 충실한 거죠. 선수 시절에는 야구공을 항상 손에 가지고 놀았습니다. 투수라는 게 볼을 가지고 있으면 친근감이 생기고, 투수도 내야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볼을 컨트롤하는 데 좋고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누워서도 볼을 던져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선 감독에게 오른손을 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왼손잡이인 내 왼손과 크기를 재 봤다. 확실히 나보다 작았다. 그는 “제가 키에 비해 손발이 많이 작습니다. 제 키가 184㎝니까 신발도 285㎜ 정도가 맞는데 저는 270㎜ 신거든요. 손이 작은 건 투수로서 큰 단점인데 그걸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게 선동열표 슬라이더죠”라고 말했다.


▎일본 주니치 드래건즈 시절 한솥밥을 먹은 후배 투수 이상훈(왼쪽)과 야수 이종범(오른쪽).
그는 야구공을 집어 직접 그립을 잡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흔히 직구라고 말하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때 투수들은 손가락으로 공을 집으면 공과 손바닥 사이가 떨어지는데 그는 공이 손바닥에 거의 붙을 정도로 공을 잡았다고 한다. 손가락이 짧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슬라이더를 던질 때는 중지에 힘을 꽉 주고 검지는 중지에 갖다 대기만 할 정도로 독특한 그립을 잡았다. 제자들이 “슬라이더 던지는 비법 좀 가르쳐 주세요”하면 “이렇게 던질 수 있겠어?” 하면서 안 가르쳐 줬다고 한다.

선 감독이 중지로만 야구공을 쥔 뒤 공을 빼 보라고 했다. 아무리 힘을 줘도 공은 꿈쩍도 안 했다. 손가락 악력 키우는 훈련을 따로 했는지 물었더니 “그걸 했을까요? 허허허. 자꾸 하다 보면 힘이 더 생깁니다”고 했다. 선동열은 카운트 잡을 때는 좌우로 변하는 슬라이더를 던졌고, 카운트가 유리할 때는 위아래로 변하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아내곤 했다고 한다. 강력한 무기인 슬라이더도 두 종류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직구와 슬라이더, 투 피치만으로도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선동열 하면 유연성을 빼놓을 수 없죠.

“제 익스텐션이 2m 정도로 다른 투수보다 길었어요. 투수판에서 포수까지 거리가 18.44m인데 익스텐션이 2m니까 16m 반 정도에서 던지는 느낌이죠. 그러니 타자 입장에서 더 공략하기 힘든 거고요. 또 하나가 허리를 이용한 피칭, 즉 아칭을 했다는 점입니다. 허리를 이용하니까 무리한 근육을 안써서 큰 부상 없이 선수생활을 했어요. 야구 원로나 기자 중에서 제 폼이 그리 좋은 건 아니라고 했던 분도 있었습니다. 그걸 유연성과 러닝으로 커버하지 않았나 싶네요.”

일본 진출 초기 유니폼 입는 게 겁났던 적도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뒤 삼성 선수들로부터 샴페인 세례를 받는 선동열 감독.
천하의 선동열도 야구가 싫고 마운드가 무서운 적이 있었나요?

“물론이죠. 특히 일본(주니치 드래건즈) 진출 첫해 국내에서보다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개막전부터 실패를 보고, 무리하게 힘으로 던지다 보니 밸런스가 무너졌어요. 나갈 때마다 지고 지고 하니까 자신감이 떨어져 2군 내려갔다가 한 달 만에 돌아온 적도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유니폼 입는 게 겁이 날 정도였고, ‘마운드에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서니 제대로 던질 수가 없었죠. ‘내가 이러려고 일본에 왔나’ 싶은 생각으로 부끄러웠지요. 당시 2군 투수코치 한 분이 ‘내가 어드바이스할 테니까 따라 해 볼래요?’ 하면서 기본 중의 기본인 스텝 앤 스로(야수가 땅볼을 잡아서 던지는 동작)를 반복하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황당했는데 그걸 하고 난 후로부터 국내에서 던지는 폼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어요. 당시 2군 경험이 나중에 지도자로서 2군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이 어떻게 운동하도록 유도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야구 인생의 멘토이자 롤 모델로 고(故) 최동원 선배님을 꼽으셨는데요. 프로야구에서 세 차례 맞대결을 펼쳐 1승1무1패를 기록했고, 연장 15회까지 혈투를 벌인 경기는 ‘퍼펙트 게임’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죠.

“고등학교 시절부터 저 선배님처럼 던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노력했어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앞두고 두 달간 합숙하면서 가까이서 볼 던지는 걸 지켜봤는데 감탄밖에 안 나오고 정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오더라고요. ‘형님은 어떻게 그런 볼을 던질 수 있어요?’ 하고 물었더니 러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어요. 단체훈련이 끝나고 나면 혼자 외야 레프트 폴과 라이트 폴 사이를 왕복하며 2시간은 뛰더라고요.”

최동원과의 프로 첫 맞대결에서는 1-0으로 이겼는데요.

“최동원 선배와 1986년 4월에 처음 맞대결을 했죠. 부산 3연 전의 1차전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에 김응용 감독님이 첫째 줄, 유남호 코치님이 둘째 줄, 제가 셋째 줄에 앉았어요. 내가 거기 앉은 줄 모르고 감독님이 ‘내일 선발이 누구지?’ 물으시니까 유 코치님이 ‘아직 내정이 안 돼 있는데요. 동열이가 3일 쉬고 4일째라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고 대답했죠. 감독님이 ‘내일 저쪽은 최동원이라는데 동열이 붙일 수 있겠어?’ 하셨고 그제야 내가 뒤에서 듣고 있는 줄 알고는 ‘야, 내일 최동원인데 한번 던져볼래?’ 하시는 겁니다. 저야 져도 부담이 없고 부담은 선배님이 훨씬 더할 거니까 ‘그럼 한번 던지겠습니다’ 해서 맞대결이 성사됐죠. 우리는 송일섭 형님이 홈런 하나 쳤고, 저는 잘 맞은 타구가 제법 많았는데 야수 정면으로 가는 등 운이 따랐어요. 어쨌든 내가 동원이형 이겼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크게 붙었고, 그해 24승이라는 최고 성적을 거뒀죠.”

드라이버 거리 줄어 230m, 정교한 아이언으로 승부


▎선동열 감독은 골프 삼매경에 빠져 있다. 270m까지 나가던 드라이버는 요즘 230m 정도라고 한다.
선동열은 해태 타이거즈 시절 ‘말술’로 유명했다. 고려대 동기 정삼흠(MBC 청룡)과의 선발 맞대결 전날 술 대결 일화는 지금도 전설로 내려온다. 1987년 9월 1일, 다음날 광주 경기 양팀 선발이었던 선동열과 정삼흠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대작을 했다. 경기 결과는 선동열의 5-0 완봉승. 정삼흠은 5실점 하고 7회 강판됐다.

선 감독이 들려주는 당시 상황. “광주 호텔의 사우나에서 만났는데 저는 정삼흠이 다음날 선발인 줄 몰랐어요.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광주 근교 식당에서 둘이서 소주 10병 정도 마셨죠. 저는 들어가려고 하는데 한잔 더 먹자고 해서 카페 가서 양주를 다섯 병 마셨어요. 다음날 낮 경기라서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죠. 지금이라면 절대 그렇게 못 마십니다. 허허허.”

‘농구 대통령’ 허재와의 술 대결도 유명하다. 농구대잔치 시절 광주에 경기를 온 허재가 선동열과 술 대결 도중 견디다 못해 도망갔다는 설이 있고, 선동열이 지인을 동원해 인해전술을 썼다는 설도 있다. 선 감독의 증언이다. “허재가 도망가지는 않았고요. 아마 술은 허 감독이 더 셀 걸요. 그날 저녁에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형 소주나 한잔하자’고 해서 밤새 마셨죠. 다음날 낮 경기에서 허재가 펄펄 날더라고요. 혼자서 60점 가까이 넣어서 신기록을 세웠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술 대신 골프를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는 jtbc골프매거진 표지모델로도 깜짝 등장하셨죠. 드라이버 거리가 엄청날 것 같은데요.

“거리가 많이 줄었어요. 처음 배웠을 때는 거리 많이 내려고 했고 270m까지 보냈거든요. 지금은 정확도에 더 신경을 씁니다. 230m 정도 보내 놓고 아이언 잘 쳐서 투온 하면 버디 아니면 파 아닙니까. 하하. 확실히 투수 출신이 컨트롤이 좋아서 그런지 숏 게임에 강한 것 같더라고요. 멀리 치는 건 야수들을 못 따라가지만 어프로치나 퍼트는 투수 출신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따고도 병역 면제시켜 주기 위해 특정 선수를 뽑았다며 국회 청문회에 불려가기도 했는데요.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으로 가면 안 될 자리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떳떳합니다. 아시안게임 경기는 7월인데 엔트리를 확정하는 건 4월이라 3개월 정도 기간이 벌어졌어요. 그 기간에 말썽이 있었던 선수는 성적이 안 좋았죠. 그래서 말들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선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우리 선수 때와 비교하면 경기 수가 많아져 피곤하고 힘든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기본기에 충실하라’입니다. 팬들에게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건 선수로서 의무입니다. 그라운드에 있을 때 좀 더 집중해 주길 바랍니다.”

‘국보 투수’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건 ‘기본’ ‘기본기’였다.

- 사진 정시종 기자 jung.sichong@joongang.co.kr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튜브 방송국인 중앙UCN의 부사장을 겸하고 있다.

202108호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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