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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공직사회 오랜 관행, 공무원 울리는 ‘과잉 의전’ 백태 

관용차 몰고 기차역 플랫폼 진입… 무릎 꿇은 채 우산 받쳐 들기도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의전 수행 조직·개인 간 비교가 성과 평가와 직결되는 현실
“가족 의전·특별 대우 없애는 게 시대적 요구인 공정에 부합”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2월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근 불거진 ‘과잉 의전’ 등 논란에 대해 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과잉 의전’ 의혹으로 국민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김씨는 관용차 사적 사용부터 음식 배달 등 개인적 심부름에 공무원을 동원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관련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과잉 의전은 경직된 공무원 사회를 비롯해 정치권, 특수 조직 등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의전 대상자의 개인적 요구나 암묵적 분위기, 의전 수행자의 자발적 행동, 왜곡된 조직 문화 등 여러 이유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태가 계속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공무원 사회에서 발생하는 과잉 의전은 자동차와 관련이 깊다. 2019년 12월 A지방자치단체장은 관용 차량을 바꾸며 내부에 1400여만원을 들여 안마기 시트를 장착했다. 시트 장착 비용이 웬만한 소형차 가격이기도 했지만 불법 개조에 해당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담당 공무원이 “차량 구입 관련 구체적 사안을 사전에 시장 비서실과 소통하지 못한 점과 안마기 시트 구조 변경(불법 개조) 사항을 제가 직접 결정한 것을 사과한다”며 “차량 구입과 관련해 시장에게 한번 ‘구입하겠다’는 사전 보고를 했고 시장은 법에 저촉되지 않게 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문제가 불거져도 모든 책임을 상급자인 단체장이 아니라 실무 공무원이 떠안는 듯한 모습에 A시장을 향한 주민의 분노만 더욱 거세졌다.

과잉 의전, 재난 참사 현장에서까지 논란


▎강성국(왼쪽) 법무부 차관이 2021년 8월 27일 충북혁신도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초기 정착 지원을 발표하는 브리핑을 하는 동안 한 직원이 뒤쪽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민원인의 차량을 후진시키고 구청장의 차량이 역주행한 사례도 있다. 2021년 10월 28일 부산의 한 구청에서 벌어진 당시 상황은 이렇다. 구청 주차장이 만차 상태로 입구부터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구청의 정문 출구로 차량 1대가 진입했다. 입구가 아닌 출구로 차량이 진입하니 구청을 나서려고 차단기 앞으로 이동하던 민원인은 위태롭게 차량을 후진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공간이 생기자 출구로 들어온 그 차량은 길을 역주행하며 청사로 향했다. 해당 차량은 알고 봤더니 B구청장의 관용차였다. 입구와 청사까지는 겨우 50m 남짓 거리였다. 충분히 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 가능한데도, 민원인의 차량을 위험하게 후진까지 시키고 역주행한 것이다. 해당 구청은 “종교단체 면담 일정이 있었는데 참석자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어서 급하게 청사에 들어가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며 “평소에는 출구로 진입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차량 과잉 의전의 ‘대명사’는 기차 승강장 안까지 들어섰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경우다. 황 전 총리는 2016년 3월 20일 일부 시민의 이동을 제한하고 서울역 열차 플랫폼까지 관용차를 타고 들어와 KTX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져 구설에 올랐다.

근본적 원인은 공무원 조직의 오래된 권위주의와 의전 수행 조직·개인 간 비교가 곧 평가에 반영되는 현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한 공무원은 월간중앙과의 전화 통화에서 “관료사회에서 의전은 성과 평가와 직결된다”며 “성격이 다른 행사임에도 진행하는 팀에 따라 의전 대상자의 반응이 다른 탓에 조직 간에 비교가 되고, 이는 곧 팀과 개인의 성과에 반영되는 기류가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의전을 제대로 못하면 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특수한 조직문화도 과잉 의전에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인 곳이 계급 구조가 뚜렷하고 상명하복이 철저한 군대다. 2017년 불거진 육군 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장의 공관은 이층집으로 1층 식당 내 식탁과 2층에 각각 1개씩 호출벨이 붙어 있었으며 공관 근무 병사 중 1명이 상시 팔찌를 차고 다니며 호출에 응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아울러 공관 조리병이 밤에 대기하고 있다가 대장의 첫째 아들이 귀가하면 간식을 준비하는 등의 업무 지시가 있었다는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이후 법정에서 대장 부부의 혐의는 모두 무죄로 확정됐다. 다만 해당 사건을 두고 상명하복과 폐쇄적인 특수한 군 문화가 빚어낸 어두운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월간중앙에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와 일제 치하를 거쳐 권위주의 성향의 정부,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며 “왜곡된 계급의식과 권력욕이 관료 사회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아직 퍼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로 진단했다.

과잉 의전은 재난 참사 현장에서까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수해 복구 현장을 찾은 국회의원들이 인증샷을 찍어 물의를 빚은 것은 약과다. 2019년 서울 제일평화시장 화재 현장에서는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앞에서 소방대원들이 도열하는 장면이 부각돼 과잉 의전 논란이 불거졌다. 2021년 6월 9일 광주에서 발생한 철거 건물 붕괴 사고로 9명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했다. 최종 사망자 수습은 오후 8시경에 완료됐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후 11시에 현장에 도착, 소방안전본부장 이하 관할서장이 브리핑을 진행했다. 추가 붕괴의 우려가 있는 상황이었으며 추가 매몰자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현장 수색은 이틀날인 10일까지 이어졌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을 찾은 서남수 당시 교육부 장관은 의전용 의자에 앉아 유족 사이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재난 참사 현장의 유가족과 피해자 가족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정부 인사와 정치인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박 교수는 “민주주의가 성숙되면서 국민의 민주 시민 의식은 높아졌고 국민이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사안 또한 지극히 상식적이고 구체적”이라며 “국민 의식과 사회적 제도 수준보다 위로부터의 변화 속도가 늦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아래를 모두 아우르는 일상생활 속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경 논란’, 과도한 충성심 탓도 있지만 김씨 책임 커


▎미셸 오바마 여사는 연일 소수민족 문제 등 인권 문제를 거론해 주목을 받았다. 2014년 3월 26일에는 쓰촨성 청두의 티베트 음식점을 방문, 티베트인들에 대한 지지를 시사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논란이 커진 김혜경씨 사례는 의전 수행자 배씨의 ‘과도한 충성심’이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5급 공무원인 배씨는 7급 공무원 C씨에게 음식 배달을 시키는 등 김씨의 사적 심부름 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원한 한 심리학 교수는 월간중앙과의 전화 통화에서 “의전 대상자의 직접적 지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의전 수행자인 배씨가 이재명 후보와 김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한 행동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를 위한 음식 주문과 사적 일정에 따른 관용차 배차 등 김씨의 일상생활에 깊이 관여한 배씨의 공무원 채용 과정과 실제 업무를 두고 여러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그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인 2010년 9월 성남시 비서실(7급 별정직)에 들어왔다. 그가 담당했던 ‘시정 해외홍보와 내방 외국인 의전’ 업무는 이 후보 취임 이후 성남시 비서실에 처음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2월 제183회 성남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이분(배씨)이 외국인 의전을 1년에 몇 회나 담당했는지 등 자료를 제출하라”(박완정 전 시의원), “외국어 실력을 평가하는 자격증이나 점수가 나온 게 있으면 제출해달라”(이덕수 전 시의원) 등과 같은 질문이 나왔다. 하지만 해당 의원들은 관련 자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배씨는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면서 2018년 8월 경기도로 적을 옮겼다. 도청 총무과 5급 사무관이 된 그의 담당 업무는 ‘국회 소통 및 국외 의전’이었다.

하지만 의전 수행자의 자발적이고 과도한 충성심에 따른 행동이라 하더라도 수혜자인 의전 대상자는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 후보와 김씨는 배씨의 의전을 단순한 호의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배씨의 행동이 주변 공무원에게 미치는 여파를 인지하지 못했다”며 “보편적 수준의 ‘인권 감수성’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앞서 기자회견에서 “배씨는 성남시장 선거 때 만나서 오랜 시간 알고 있는 사이”라고 설명했으며, 이 후보는 TV토론에서 “워낙 가까운 사적 관계에 있던 사람(배씨)이 별정직으로 들어오다 보니 주로 공무에 관련된 일을 도와주다가 경계를 넘어서서 사적 관계에 도움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를 둘러싼 과잉 의전 논란의 또 다른 축은 ‘가족 의전’이다. 공직자의 가족 의전에 대한 구체적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우에 관한 법률이 존재하나 5·18 민주유공자,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등이 대상이며 법률의 성격이나 목적상 의전 상황에 준용할 수 없다. 이렇듯 뚜렷한 기준과 지침이 없는 까닭에 가족 의전의 범위를 확대 해석하거나 공직자의 지위를 남용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본 원칙 훼손 말아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3년 5월 16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터키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도중 한 해병대원이 받쳐 든 우산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비가 그쳤는지 확인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
여권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은 김씨의 과잉 의전 논란과 관련해 2월 10일 한 라디오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김혜경씨가) 조금 억울한 대목은 있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물어보니 ‘지사 부인이 시장에 장보러 가는 것 봤느냐’(고 하더라). 대부분이 그렇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회를 계기로 정비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공직사회에 만연했던 잘못된 관행에 대해 개선 의지를 밝히긴 했으나 결국 김씨를 두둔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를 두고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재임 시절에도 자신의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며 “공직자 가족의 의전, 특별 대우는 없애는 것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인 미셸 오바마처럼 기아·교육 문제 등 특별정책이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의 지원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전 자체를 두고 ‘과잉이다’,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2021년 8월 27일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달궜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초기 정착 지원과 관련해 브리핑하는 도중 법무부 관계자가 차관의 뒤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현장 취재진의 요청에 따라 직원이 중계 화면에 잡히지 않게 몸을 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었지만 여론은 ‘황제 의전’이라며 들끓었다. 강 차관은 이후 “엄숙하고 효율적인 브리핑이 이뤄지도록 저희 직원이 몸을 사리지 않고 전력을 다하는 숨은 노력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국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유사한 사례가 미국에서도 발생한 바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야외 기자회견 도중 비가 내리자 해병대원이 대통령 옆에서 우산을 들었다. 당시 야당인 공화당은 ‘우산 게이트(Umbrella Gate)’라 부르며 해병 복무수칙에 우산을 드는 규정이 없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여러 복합적 요소로 논란이 생기는 의전 현장이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공무원 조직은 상급자·고위공직자에 대한 과잉 의전보다 국민을 향한 과잉 의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cho.kyuhee@joongang.co.kr

202203호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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