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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지구 규모로 열린 ‘연대의식’ 확립을… 

팬데믹 이겨내기 위한 회복 탄력성의 힘 기르고 단련해야 

국민의 40%가 코로나19 접종 마친 나라, WHO 회원국 절반 그쳐
연대 정신에 바탕 둔 지구사회 건설이 미래 세대 위한 최고의 유산


▎1993년 3월, 이케다 SGI 회장은 유엔헌장에 서명하는 자리인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 공연예술센터’을 방문했다. 이 센터에서 열린 ‘유엔공헌·국제문화 교류추진상’ 수여식에서 유엔 지원에 힘쓴 SGI의신념에 관해 연설했다. / 사진:SGI
오랜 역사에서 보면 인류는 여러 위협과 시련이 있었지만, 현재 신종 코로나19 감염증에 따른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처럼 세계적인 규모로 각국이 일치해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위기는 전례가 없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우인을 잃은 슬픔과 일자리나 삶의 보람을 잃은 상처로 의지할 곳 없이 망연자실해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각국에서 끊임없이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 협력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백신 추가접종을 추진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지난해 말까지 국민의 40%가 접종을 마친 나라는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194개국)의 절반에 그쳐 백신의 세계적인 공급 격차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앞에 두고 일찍이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가 분별력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것 같은 말씀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표면화돼 긴장이 고조되던 때인 1947년, 세계가 분단이 아닌 연대의 길을 가도록 호소한 말씀입니다. 박사는 중세 유럽에서 다수의 인명을 빼앗고 ‘흑사병’이라는 이름으로 맹위를 떨친 급성 전염병을 언급하고 ‘예를 들어 흑사병의 유행이 전 세계를 위협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며 이렇게 역설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양심적인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일치해 흑사병과 싸우기 위한 현명한 계획을 만들 것입니다.” “각국 정부는 이에 관해 중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채택해야 할 수단에 관해 신속하게 의견의 일치를 볼 것입니다. 설마 각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경우에 자기 나라만 흑사병의 해를 면하고, 다른 나라는 흑사병으로 다수의 국민이 목숨을 잃는 그런 수단을 쓰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현재, 박사가 상정한 감염병과 싸우기 위한 ‘현명한 계획’과 ‘채택해야 할 수단’에 관해서는 WHO의 팬데믹 선언 다음 달인 2020년 4월에 ‘ACT 액셀러레이터’라고 불리는 코로나19 대책의 국제적인 협력 체제가 발족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의 시스템을 통해 도상국에 대한 백신의 공평한 분배를 목표로 하는 활동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G20의 고위급 독립패널이 보고서에서 강조한 대로 세계 전체로 보면 팬데믹의 위험을 경감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나 자원이 부족한 것도,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과학적인 노하우나 자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감염병의 경우를 상정해 예를 들었듯이 ‘현명한 계획’과 ‘채택해야 할 수단’이 COVAX의 활동 등으로 명확해진 지금,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열쇠는 자기 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협에서 보호한다는 지구 규모로 열린 ‘연대의식’의 확립이 아닐까요.

역사를 돌이켜보면 WHO가 창설되는 계기는 유엔헌장의 제정을 위해 1945년 4월부터 6월까지 개최된 샌프란시스코 회의의 논의였습니다. 당초 보건위생 문제는 의제에 오를 예정이 없었지만 그 중요성을 지적하는 소리가 높았습니다.

그 결과 유엔헌장 제55조에서 국제 협력을 촉진해야 할 분야 중 하나로 ‘보건’이 명기되는 외에 제57조가 규정하는 전문기구 안에 ‘보건분야’가 포함됐습니다. 새로운 전문기구의 명칭에 관해서도 유엔 회원국만을 상정하는 듯한 ‘유엔’이라는 말이 아닌 ‘세계’라는 말을 넣기로 결정해 1948년에 정식으로 발족한 것이 WHO였습니다.

‘팬데믹 조약’ 같은 국제조약 조기 제정 필요

생각해보면 제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창가학회 제2대 회장은 이렇게 전쟁의 교훈을 바탕으로 한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전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 세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전환해야 한다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에 저항하다 2년간 투옥됐지만 굴하지 않은 도다 제2대 회장의 신념은 전쟁에 따른 참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창설한 유엔의 정신과도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을 응축해 70년 전에 ‘지구 민족주의’ 사상을 제안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 등으로 국제사회의 긴장감이 급격히 높아진 가운데 인류가 반복되는 비극적인 역사에서 벗어나기 위한 요체로 ‘지구 민족주의’를 내걸고, 이 단어에 ‘어느 나라의 민중도 절대로 희생돼서는 안 된다. 세계 민중이 다 함께 기뻐하고 번영해야 한다’는 신념을 의탁했습니다.

팬데믹이 이어지는 지금 다시 한번 WHO가 창설된 경위를 돌이켜보니 그 명칭에 붙인 ‘세계’라는 말에 담긴 의의가 도다 회장의 ‘지구 민족주의’ 사상과 오버랩돼 가슴 깊이 밀려옵니다. 본디 팬데믹에 대응하려면 국가 단위의 위기 탈출이 아닌 다 함께 위협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자국의 감염자 수 증가라는 ‘부정적인 측면’에만 착안하면 다른 나라와의 제휴보다 자국의 상황에만 관심이 기울기 쉽습니다. 그것이 아닌 세계를 동시에 덮친 위협에 ‘얼마만큼의 생명을 함께 구할 것이냐’ 하는 ‘긍정적인 측면’에 관심을 돌려 어느 나라든 그 일점에 목표를 맞춘다면 난국을 타개하는 돌파구가 될 것입니다.

불법(佛法)에서도 “남을 위해 밤에 불을 밝히면 그 사람 앞도 밝아질 뿐 아니라 내 앞도 밝아진다”고 설합니다. 이처럼 자타 함께 넓혀지는 ‘긍정적인 연관성’을 토대로 협력과 지원의 등불을 밝히는 나라가 늘어나면 위협의 어둠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저는 여기에 지구 규모로 열린 ‘연대의식’을 확립하는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연일 의료관계자들의 헌신적인 행동에 한없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야말로 세상의 보배인 의료종사자를 전면적으로 지원하면서 ‘국적이나 장소를 불문하고 어떠한 차별도 없이 평등하게 생명을 지킨다’는 정신을 기반으로 한 국제적인 보건 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2021년 12월 WHO의 세계보건총회 특별회기에서 앞으로 팬데믹 대응을 위한 국제 조약 체결을 위해 모든 회원국에 열린 정부 간 협상 기구를 설치하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습니다.

많은 전문가가 다음 팬데믹이 ‘일어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한 점을 근거로 ‘팬데믹 조약’과 같은 국제조약을 조기에 제정해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방안을 궤도에 올려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하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가 보여주듯이 어딘가에서 심각해진 위협이 지체 없이 지구상 모든 곳의 위협으로 이어지는 것이 현대 세계의 실상입니다. 인류 공통의 위기에 대해 리스크 관리라는 발상에서 임하는 것이 아닌 지금이야말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회복 탄력성(리질리언스)’의 힘을 함께 기르고 단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이 되는 ‘연대’ 정신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많은 과제를 타개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이 ‘연대’ 정신에 기인해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지구사회 건설을 추진하는 일이 바로 미래 세대에 남기는 최고의 유산이라고 확신해 마지않습니다.

※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소카대학교·소카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등 24개국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398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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