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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스페셜] DJP 이후 사반세기 만의 ‘공동정부’ 윤석열·안철수의 운명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 대선 일주일 전 전격 단일화 합의… 내각 인선 과정에서 파열음
■ 입각 유력했던 최진석·신용현·이태규 불발되자 安 14일 ‘보이콧’
■ “DJ가 지지율 3~5% JP에 절반 내준 이유 생각해볼 필요” 조언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월 15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주재하는 간사단 회의에 참석, 대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인선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두 사람은 전날 만찬 회동을 통해 갈등을 풀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JP)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가 손을 잡은 건 대선 45일 전인 1997년 11월 3일. 이날 두 사람은 직접 만나 대선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의 골자는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국무총리는 김종필 ▷내각제 개헌 ▷총리가 경제부처 장관 임명 등이었다. “지지율 3~5%에 불과한 김종필에 너무 많은 걸 내주는 것 아니냐”는 내부 반발을 잠재우고 김대중은 DJP 연합을 성사시켰다.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김대중은 충청에 기반을 둔 보수 색채의 김종필과 손잡음으로써 지역·이념 스펙트럼의 확대를 꾀했다.

DJP 연합은 적중했다. 김대중은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을 맞아 총 39만 표차로 신승했다. 김종필의 텃밭인 충청에서 43만 표차로 이긴 게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지속된 DJP 연합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사상 첫 여아 간 수평적 정권 교체에는 성공했지만, 양당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김대중 총재의 대통령 당선과 내각제 개헌, 김종필 총재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당초 약속이 깨진 탓이다.


▎1997년 11월 3일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대통령 후보가 후보 단일화 서명식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DJP 연합 내각제 포기 선언 이후 결별 수순

DJP는 1999년 7월 DJ 측의 내각제 개헌 포기 선언 이후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 그러자 김종필은 제16대 총선 두 달 전이자 김대중 정부 출범 2주년 무렵에 사실상 연정 파기를 선언했다. 총선에서 17석에 그친 자민련에 의원 3명을 꿔주며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지원하는 등 민주당의 노력으로 DJP는 복원되는 듯했다. 하지만 대북 햇볕정책을 두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더니, 2001년 자민련이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에 가담하면서 ‘동거’에 종지부가 찍혔다.

말 많고 탈도 많았지만, DJP 연합은 정권 교체라는 가장 큰 목표를 이뤘고, 그 이후 정치권에서는 주요 선거 때마다 후보 단일화 내지 연합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했다. 지난 3·9 대선에서는 후보 단일화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나 다름없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모두에게 ‘러브콜’을 받았다.


▎2002년 11월 25일 후보 단일화를 이룬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가 손을 맞잡고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선 전날 깨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그리고 2022년에는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있었다. 2002년에는 대선 전날 정몽준의 파기 선언이 있었던 만큼, 단일화 효과를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2012년에는 단일화 효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이 패배하고 말았다. 2022년에는 대선 불과 일주일 전에 단일화가 성사됐고, 윤석열이 역대 대선 최저 표차(24만 표, 0.73%p)로 승리했다.

윤-안 단일화는 드라마틱했다. DJP 연합이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준비되고, 마지막에 서면으로 합의문까지 작성했을 만큼 치밀했던 반면 윤-안 단일화는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뒤 사전투표 전날 성사됐을 만큼 전격적이었다.

마지막 TV토론을 마친 3월 2일 밤 양측은 급히 회동을 추진했고, 이튿날인 3일 새벽 단일화에 합의했다. 윤·안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인 장제원 국민의힘 매형 집에서 만났다. 양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회동 전 윤 후보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을 직접 적어온 안 후보가 “어떻게 신뢰를 주실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윤 후보에게 “그동안 단일화 과정에서 만든 각서·약속들은 지켜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윤 후보는 “종이쪼가리 뭐가 필요하겠냐”면서 “저를 믿으시라, 저도 안 후보를 믿겠다”고 말했다.


▎3월 3일 국회에서 대통령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함께 인사하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중앙포토
합의문 대신 캔맥주 건배한 윤석열·안철수

또 윤 후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한 대통령이 없지 않으냐. 나를 대통령을 만들어서 성공시켜라. 성공한 정권을 함께 만드는 게 당신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 아니냐”고도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안 후보는 “성공한 정부는 어떻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돕더라도 윤 후보가 주체 아니냐”고 물었다. 윤 후보 측이 공동정부를 약속했음에도, 집권 후 안 후보의 구상이 배제될 수 있다는 취지의 지적이었다.

윤 후보는 “나의 장점은 결정이 빠른 것이다. 그 결정은 혼자 하지 않는다. 의논해서 빨리 결정한다”며 “사람을 널리 쓰겠다”고 약속했다. 두 후보는 편의점에서 사 온 캔맥주 건배로 합의문 작성을 대신했다.

그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앞에서 공동정부를 약속한 두 사람은 일주일 뒤 대선에서 윤 후보가 승리하자 기쁨을 함께 나눴다. 예상했던 대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았고, 인수위원에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사가 대거 중용되면서 공동정부는 순항하는 듯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4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코로나비상대응특별위원회 회의에 불참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두 차례 내각 인선 발표 뒤 安 인내심에 한계

그러나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 인선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균열 조짐이 비치기 시작했다. “윤핵관(윤석열 당선인 핵심 관계자)들의 견제로 안 위원장이 총리에 발탁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안 위원장도 “입각, 지방선거 출마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4월 10일과 13일 두 차례 내각 인선 발표 뒤 안 위원장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온 듯했다. 14일을 더해 총 세 차례 18명의 장관 인선에 안 위원장 측 인사는 단 한 명도 발탁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최소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신용현 인수위 대변인,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을 비롯해 서너 명 정도는 입각할 것으로 내다봤다.

안 위원장은 13일 저녁 윤 당선인과의 도시락 만찬에 불참함으로써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어 14일에는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측근들과 숙의(熟議)에 들어갔다. 인선 발표 뒤 기자들과 만났을 때만 해도 “본인(안 위원장)이 불쾌해하는 건 전혀 없으신 걸로 알고 있다”며 고개를 갸웃하던 윤 당선인은 얼마 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이날 오후 안 위원장과 만났다. 반주를 겸한 만찬은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오후 7시부터 2시간가량 이어졌으며, 이 자리에는 장제원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3월 18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개최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현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 국회사진기자단
윤·안 전격 회동으로 갈등 봉합됐지만…

회동 후 윤 당선인 측은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하나가 되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다”면서 “공동정부 기조를 이어가며 계속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14일 하루 동안 사실상 보이콧했던 안 위원장도 15일 다시 출근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갈등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각(組閣) 과정에서 생긴 감정의 앙금 등을 감안하면 문제가 언제 어떻게 다시 불거질지 예단하기 어렵다.

김민준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DJ가 지지율 3~5%에 불과했던 JP에게 정부 지분의 절반을 내준 이유를 윤 당선인 측과 국민의힘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0.74%p 차의 신승, 민주당의 의회·지방 권력 장악 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했을 때 공동정부는 필수”라고 조언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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