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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5)]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놀이와 문화 공존하는 세계인의 박물관 만들고 싶어” 

취임 뒤 국보급 문화재 선보인 ‘이건희 기증품전’으로 호평
문턱 낮춘 온·오프라인 프로그램 만들어 박물관 대중화 힘 쏟아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5년간 국립박물관 학예연구에 매진해온 전문가다. 그는 오랜 연구·실무 경험과 아이디어로 중앙박물관이 누구나 와서 노는 공간이 되길 꿈꾼다. / 사진:조정화
"공짜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 윤성용(56) 신임 중앙박물관장의 말이다. 문턱이 높고, 엄숙한 박물관이 아닌 모두의 박물관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소신이 담겼다. 경북 영천 출신인 윤 관장은 1997년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를 시작으로 국립청주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박물관 전문가다. 더구나 외부 인사가 아닌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출신인 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앙박물관을 어떻게 이끌지 더욱 궁금했다. ‘핫피플&아트’의 다섯 번째 초대 인물로 그를 택한 이유다.

윤 관장은 평생 박물관에서 학예 연구를 해왔다. 박물관 오기 전, 대학원에서 사학 공부가 좋아 대학교수를 꿈꿨을 만큼 신라, 고구려 역사에 밝다. 2015년 국립청주박물관에 있을 때 단양 신라 적성비 비편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당시만 해도 비편에 새겨진 글자에 대해 정확한 조사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윤 관장은 박물관에 보관된 비편 실물을 보고 연구에 착수해 학계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25년 학예연구 풍부한 경험, 번득이는 아이디어 뱅크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대한민국 대표 박물관이다. 1층 홀에 우뚝 서 조명을 받아 환히 빛나는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오른쪽)과 삼국시대 말기에 제작된 반가사유상. /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최근 윤 관장은 대한민국 박물관 애호가들을 설레게 한 전시회를 성황리에 열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작품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한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이 그것이다. 7월 21일부터 9월 26일까지 두 달여에 걸친 대장정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금속, 도토기, 전적, 서화, 목가구 등 다양했다.

이 회장 유족이 기증한 작품은 9797건 2만1613점에 달한다. 지금껏 유례없는 규모다. 기증품 중에는 도자기와 목가구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도 상당하다고 한다. 내년 1월부터 e뮤지엄 등 온라인을 통해 기증품 전체를 공개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5000여 년의 유구한 역사와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윤 관장은 일찌감치 연구기획부장 시절 그 지역만의 문화적 특성에 맞게 브랜드화할 수 있도록 박물관의 특화 계획을 짜기도 했다. 전국에 있는 13개 소속 박물관이 지역특성에 맞게 차별화한 데에는 윤 관장의 공이 크다.

최근에는 가상공간으로 박물관의 무대를 넓혔다. 메타버스 플랫폼에 구축한 가상박물관에서 월드맵 ‘힐링동산(feat.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을 공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인 상감청자를 세계에 알릴 ‘청자실’도 구축이 끝나면 온라인상에서 공개된다. 가을바람이 제법 선선한 날,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윤 관장을 만났다. 취임 후 첫 인터뷰라는 윤 관장은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릴 번득이는 아이디어 보따리를 풀어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에 취임한 소감은.

“걱정이 많이 된다. 지금까지 가까이에서 뵈었던 관장님들은 인품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훌륭한 분들이셨다. 연구사로 들어와 20여 년 있으면서 감히 내가 관장이 될 거라곤 전혀 생각 못 해봤다. 분에 넘치고, 영광된 자리다. 선배들이 쌓은 명성에 먹칠하지 않고, 더 발전된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잘 넘겨주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그간의 연구 활동과 주요한 업적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대학은 연구 논문이 성과라면, 박물관은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특별전을 꽤 많이 했다. 두 개만 들자면, 경북 경산에 있는 ‘임당유적’은 초기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생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적지다. 긴 시간 대규모 유적을 발굴하고, 유적의 성격을 종합 정리하는 특별전을 했다. 이 전시 내용 그대로 경산시에서 박물관을 만들었다. ‘경산시립박물관’을 설립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또 경북 의성의 옛 이름을 ‘소문’이라고 해야 하는데 발음상의 어감 때문에 ‘조문’이라고 불렀다. ‘소문’이 맞다는 연구 내용과 함께 전시를 했다. 이 특별전 역시 지자체에서 박물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관장으로서 추구해나갈 방향성과 운영철학, 포부가 궁금하다.

“박물관의 다양한 구성원들은 각자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텐데 구성원들이 바라는 방향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어쩔 수 없이 따라는 오겠지만, 추동력은 크게 발휘될 수 없다. 구성원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모아서 공통분모를 만들고, 기관이 나아가는 방향을 설정할 생각이다. 구성원들이 즐거울 때 일의 성과는 격조가 높을 것이고, 결국 그 혜택은 온전히 관람객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건희 기증품’ 내년에 온라인으로도 공개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7월 21일부터 9월 26일까지 진행하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기증한 국보급 유물과 문화재가 포함된 주요 작품을 전시회(‘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서 일반에 공개했다. /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은 1945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 규모다. 기증품의 예술적, 역사적 의의와 가치는 어떻게 평가하나?

“중앙박물관 소장품 중에서 특히 부족했던 부분이 회화였다. 회화는 길어야 1년에 넉 달밖에 전시를 못하고 계속 교체해야 하는데 수량이 적어 아쉬움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께서 기증하신 인왕제색도, 고려 불화, 김홍도 그림 등은 워낙 안목이 높아 이번 기증으로 국립 박물관으로서 운영의 폭이 확실히 넓어졌다. 기증품들을 보면서 혼자 가만히 생각해 봤다. ‘삼성에서도 충분히 운영이나 보관 관리 능력이 있는데 왜 국가에 기증했을까.’ 우리의 위대한 문화재를 국민, 나아가서는 세계인과 ‘공유’하자는 회장님의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기증품 하나, 하나의 가치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회장님의 이러한 ‘공유’의 뜻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故 이건희 기증품’의 해외 전시를 추진 중이다. 문화재를 비롯한 기증품들에 관한 연구와 활용 계획은 있나?

“기증품 중에는 지정 문화재,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게 60건이 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국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추성부도’, 현존하는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 등은 우리 문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기증품이 2만1000여 점에 달해 아직 깊이 조사를 못 했다. 올 11월쯤 기초 조사 보고서가 나온다. 워낙 수량이 많아 아무리 빨리 잡아도 연구자들이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데만 5년 이상 걸린다. 올해 공개 준비는 모두 끝낼 생각이다. 내년부터는 온라인상에서도 볼 수 있도록 이미지와 간단한 설명 정도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전산화한다. 기증품은 내년까지 국내에서 전시하고, 해외 전시는 미국 시카고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논의하고 있다. 그동안 외국 박물관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께서 기증한 도자기, 그림 등 좋은 것들이 워낙 많아 우리 문화 위상을 높이고 알리는 ‘한국실’도 지원하면서 전시할 생각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힘이 있어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10월에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빈 미술사박물관 특별전]을 여는 것으로 안다. 수교 130주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특별전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합스부르크가(家)’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가문인데, 관념상 로마 제국 황제를 오랫동안 배출한 명문가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관련된 사람들이 유럽 전역의 왕실과 관련돼 있거나 왕을 지냈다. 저들이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수집한 것이 오스트리아 빈 미술관에 수장돼 있다. 그중에서 당시 상황을 대표하는 작품 100여 점이 들어온다. 특히 130년 만에 돌아오는 고종 황제가 선물로 준 갑옷을 눈여겨 볼만하다. 1892년 새로운 체제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던 조선은 오스트리아와 수교를 했다. 올해가 수교 130주년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130년 전이나 지금이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당시 상황을 살펴보고, 과연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지 한번 돌아보자는 의미도 있다.”

한국 대표 유산 ‘청자’ 우수성 알릴 전시 재정비

반가사유상을 브랜드화한 ‘사유의 방’처럼, 앞으로 ‘청자’ 상설 전시실을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혀 기대가 크다.

“박물관에서 제일 중요한 게 전시고, 그중에서도 상설 전시가 특히 중요하다. 상설전시실은 한번 개편하면 특별전시에 비해 오랜 시간 운영되는데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면이 있었다. 앞으로는 내용이나 전시 환경에서도 더 노력을 기울이려고 한다. 이번에 ‘청자실’을 사유의 방에 버금갈 만큼 대규모로 꾸미는 기획을 추진 중이다.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청자는 걸작들이 꽤 많은데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다. 이번에 제대로 대접하자는 취지다. 청자를 처음 사용한 나라는 중국과 우리나라뿐이다. 물론 중국에서 먼저 하고, 우리나라는 시기가 좀 늦긴 했지만 획기적이다.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우리 청자가 좋다고 한다. 중국 송나라 사람들이 고려에 와서 비색의 청자가 천하제일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우리의 청자 옥색이 그만큼 아름답다. 특히 중국을 비롯해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상감 청자다. 이 점을 부각해 세계적인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도록 ‘청자실’ 개편에 집중하고 있다. 작년에 백자와 분청은 개편을 마쳤고, 올해 ‘청자실’ 개편을 끝으로 대한민국의 도자 문화, 도자공예가 한 세트로 완성된다. 이번 ‘청자실’은 140평에 230여 점이 채워질 예정이다.”

중앙박물관뿐 아니라 지방의 13개 소속 국립박물관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각 지역에 국립박물관을 세운 이유는 해당 지역 전체를 아울러 국가가 일을 하겠다는 의미다. 지자체장이 선거를 통해 바뀌면 그 지역과 전혀 상관없는 문화 행사나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지역의 정체성과 관련 있게, 각 박물관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과 주제를 정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경주는 신라, 부여는 백제, 대구는 섬유와 복식, 그리고 광주는 신안에서 발견된 도자기 관련 박물관 등으로 특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13개 박물관마다 고유한 브랜드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고, 외부에서 어떤 일을 해도 중심을 잡을 수 있다. 한 마디로 각 박물관마다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하는 숙제를 준 것이다. 소속 국립박물관들이 그 지역의 다른 박물관들과 차별화되고 그 지역의 정체성을 살려주고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요즘에는 휴가를 호텔에서 즐기는 것을 의미하는 ‘호캉스’가 유행이다. 박물관에서 휴가를 즐기는 ‘박캉스’도 가능하지 않을까?

“박물관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편안하게 쉬고 노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박물관의 전시, 교육 등 국내외 다양한 문화를 마음껏 접하고 즐기면서 직접 체험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일 생각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박물관이 추구하는 공감과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박캉스’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수요자의 마음에 와 닿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일단 프로그램을 잘 만들려고 한다. 우리 문화를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쉬면서 스스로 박물관을 오고 싶도록, 누구나 언제든지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생각이다.”

메타버스 활용해 대중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

이 시대에 박물관의 역할과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중앙박물관은 시설로는 세계 여섯 번째 안에 들고, 직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기본은 갖춰있다. 단군 이래 대한민국의 위상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세계 박물관들과 거점을 설정하려고 한다. 지속 가능한 우리의 전통과 정체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 코리아의 오래된 역사, 문화를 바탕으로 한류와 케이팝이 나왔음을 알리고 싶다. 앞으로 온라인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한 문화를 누구나 쉽게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작년에 메타버스 ‘사유의 방’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방문자의 90%가 외국인이었다. ‘청자실’ 역시 온라인에서 볼 수 있게 구축하는데 앞으로 온라인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우리 문화 콘텐츠의 부가가치를 높일 방법을 계속 모색할 것이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꼽은 ‘기억에 남는 한 장의 사진’은 세 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경주 석굴암 수광전 석등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박물관과 역사 유적들을 찾았던 경험과 학예연구자의 길을 걷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 사진:윤성용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 한 장이 있다면?

“1970년쯤 경주 석굴암 수광전(壽光殿)의 석등 앞에서 어머니와 찍은 흑백사진이다. 세살 즈음에 찍은 사진이어서 기억은 없다. 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있을 때 이 사진을 보면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던 게 생각난다. 지금은 석굴암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당시는 걸어가야 했다. 불국사에서 어머니께서 나를 업고 가다가 너무 힘들면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업고 석굴암까지 올라가셨다고 했다. 고향이 경북 영천인데 어릴 적 경주 박물관을 자주 갔던 기억이 난다. 이런 경험들이 문화재 관련 일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단순히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 박물관에서 찍은 오래된 사진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한번은 어머님이 많이 아프셨는데 놀러 가고 싶다고 해서 경주를 모시고 갔다. 문무대왕릉이 내려다보이는 ‘이견대(利見臺)’ 정자에 앉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게 마지막 여행이었다. ‘기억에 남은 사진 한장’의 질문을 받았을 때 그래서 이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210호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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