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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화제] 전 세계 강타한 국가대표 걸그룹 

블랙핑크 글로벌 신드롬, BTS 뛰어넘는다 

블랙핑크, 온갖 음원 기록 갱신하는 신기원… 싸이·BTS 이어 ‘K팝 인베이전’ 이끌어
명품 앰배서더 등 셀럽화 전략 통해 대중적 이미지로 다가가… ‘비틀스 현상’과 비슷해


▎블랙핑크는 특유의 YG스러운 음악 기반에 더해 패션과 메이크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이미지를 형성해 대중성을 확보했다. 이는 공고한 팬덤 중심인 BTS와는 또 다른 성공 사례로 꼽힌다. / 사진:YG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BTS)의 글로벌 정복으로 보이그룹에 대한 요구는 충족됐기 때문인 걸까? 아이돌 문화를 사실상 지배했던 보이그룹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판세는 그동안 늘 그들에 가려 있던 ‘걸그룹’에 기울었다. 올해 음원차트를 지배하는 가수는 중견이 된 트와이스, 소녀시대는 물론 신진 세력인 (여자)아이들, 뉴진스, 아이브(IVE), 있지(ITZY), 르세라핌, 엔믹스 등 모조리 걸그룹이다.

음악 시장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한 여전사 군단에서 세계적 선두는 2016년 데뷔한 ‘블랙핑크’다. 이들의 근래 성과는 괄목할 만큼 최고 지표를 그리고 있다. 블랙핑크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올해 10월 기준 8220만 명이다. 이 숫자는 유튜브 사상 최고이며 머지않아 1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이들이 이 채널에 공개한 영상(뮤직비디오와 안무 영상)의 누적 조회 수는 260억 회를 넘어섰다. 세계적 스타덤의 길을 열어준 곡 ‘뚜두뚜두’의 경우만 무려 19억5000회에 달한다. 억대 뷰를 기록한 영상만 자그마치 33편이나 된다. 한마디로 ‘기록의 그룹’으로 K팝의 신기원이다. 이 수치는 K팝 국가대표 ‘양대산맥’이라는 표현이 나올만하다. 그간 BTS에 가려진 측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들의 활동 중단과 입대 논란의 공백기를 타고 이제는 블랙핑크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해외 팬들이 더 열광하는 기현상


▎2020년 레이디 가가와 컬래버한 ‘사워 캔디’. / 사진:인터스코프 레코드
사실상 단일 그룹에 의존했던 K팝이 진정한 복수체제를 이루면서 과거 1960년대 비틀스 이후 영국 밴드들이 속속 미국을 강타한 현상을 가리킨 어휘,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공)’을 응용한 ‘K팝 인베이전’이 펼쳐지고 있다. 솔로 싸이, 보이그룹 BTS에 이어 걸그룹 블랙핑크가 가세함으로써 팀 구성의 다양성이 실현된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블랙핑크가 단순한 화제와 센세이션에 그치지 않고 강력한 음원 판매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다. 지난 9월 16일 내놓은 두 번째 정규 앨범 [본 핑크]는 발매 첫날 101만 장 판매를 기록했고 200만 장 판매(더블 밀리언셀러)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선주문 200만 장을 기록한 것만으로도 최고지만,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누가 앨범을 구매했느냐는 것이다.

놀랍게도 당일 해외 판매점유율이 84.3%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보다도 해외 팬들이 더 ‘블랙핑크의 새 노래를 듣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진부해지기까지 한 ‘세계 속의 K팝’이란 호언은 이제 ‘세계 속의 블랙핑크’로 특정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본 핑크]가 미국의 빌보드 앨범차트 1위와 영국 앨범차트 1위에 오르면서 팝의 본고장인 양국 앨범차트 정상을 거머쥔 ‘최초의 한국 걸그룹’이 됐다. 걸그룹으로는 2001년 비욘세가 멤버였던 데스티니 차일드의 앨범 이래 21년 만의 쾌거다. 이 기록을 수립한 K팝의 또 다른 가수는 BTS다. 블랙핑크의 인기 행진이 결코 BTS에 못지않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어떻게 세계 무대에서 이런 폭발적 인기를 거두고 있는 것인가. 관심사는 그 인기 요인과 원동력과 관련한 대목이다. 당연히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블랙핑크는 힙합을 기반으로 흑인음악을 추구하는 소속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의 음악 지향성에 충실하다. 그 힙합에 강력하고 일체화된 댄스를 병치하면서 힙합이 갖는 마니아 성향을 극복하고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대중성’ 획득에 성공했다. 청춘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들썩일 댄스 리듬을 선호한다. 데뷔곡 ‘휘파람’과 ‘붐바야’를 비롯해 ‘마지막처럼’, ‘아이스크림’, ‘러브시크걸스’ 그리고 톤이 강해진 최신작 ‘핑크 베놈’, ‘셧 다운’을 어려운 노래라고 여길 팬은 많지 않다. 멤버의 빼어난 보컬 하모니가 압축된 코러스를 들으면 모두가 엄지를 치켜세운다. 한마디로 ‘실력파’ 그룹이다.

블랙핑크는 언젠가는 소속사 선배 빅뱅(BIG BANG)과 투애니원(2NE1)처럼 미국에 진출할 것이라는 태생적 환경을 가졌다. 이들 노래의 베이스가 힙합과 흑인음악이라는 점에서 그 음악이 엄연히 미국산(産)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떤 선배보다도 더 큰 성공 기록을 써냈다. 2021년 영국의 [더타임스]는 블랙핑크를 ‘세계를 정복한 K한류 문화’라고 칭했으며, 유서 깊은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블랙핑크의 글로벌 지배 구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찬사를 보냈다.

퍼포먼스 또한 YG스럽다. 빅뱅이 보여줬듯 블랙핑크는 춤의 막연한 통일과 일치가 아니라 자유분방함 속에서 끝내 전체적 일체감을 구사하는 방식을 구현한다. 멤버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표현하면서도 하나의 그루핑(grouping), 즉 K팝과 동의어가 된 ‘일체화된 댄스’를 선사한다고 할까. 이 것이 동시대에 활약 중인 다른 걸그룹과 차별화를 이룬 성공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비주얼적 요소는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인정하는 요인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퍼포먼스, 가창력 그리고 외모는 흔히 K팝의 3대 특장(特長)점으로 일컬어지지만 이것만으로 블랙핑크가 떨치고 있는 글로벌 파워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팬덤’ 중심 BTS와 달리 ‘대중성’에 기반


▎2020년 셀레나 고메즈와 컬래버한 ‘아이스크림’. / 사진:셀레나 고메즈 SNS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하이브(HIVE)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의장이 과거 입만 열면 얘기한 “방탄소년단 성공의 반은 SNS”라는 말처럼 K팝을 세계적 장르로 만들었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 ‘인스타그램(instagram)’ 팔로워 순위를 보면 그들의 글로벌 펀치력을 알 수 있다. 부동의 1위 리사를 비롯해 멤버 넷과 블랙핑크 팀 자체가 모두 6위 안에 랭크돼 있다. 리사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올 9월 기준 8200만 명을 넘어섰다. 제니 7000만, 지수 6400만, 로제 6300만, 블랙핑크 4900만 명이다. 멤버 각자의 위상이 블랙핑크라는 집합에 비교우위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상이 과거 비틀스와 유사하다. 비틀스뿐만 아니라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멤버 각자도 유명했던 것처럼 블랙핑크와 별개로 멤버 모두가 돋보이는 존재가 됐다. 이들 넷은 현재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럭셔리(명품) 브랜드의 공식 홍보대사이자 뮤즈로 활약 중이다.

넷 모두가 가수를 넘어선 ‘패셔니스타’임을 입증하는 사례로, 지난 8월 미국의 패션지 [WWD]는 ‘블랙핑크 효과’라는 타이틀 아래 “K팝의 가장 큰 걸그룹은 어떻게 명품 패션을 휩쓸었나” 하는 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이들에게 탑재된 패션과 메이크업의 명품 이미지는 ‘고급’, ‘화사’, ‘세련’으로 엔터테이너에게 본질적으로 요구되는 재능 외의 이미지 면에서 압도적 위상을 점하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글로벌 ‘셀럽’으로 거듭난 것이다.

음악계 일각에서는 이 대목을 BTS와 블랙핑크의 차별화 지점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BTS가 아미(army)라는 이름의 ‘팬덤’을 중심으로 인기 확산을 꾀했다면 블랙핑크는 확고한 팬덤이 아니라 셀럽 이미지를 통한 일반 대중과의 친화 작용으로 폭을 넓혀왔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팬들은 그들의 노래에 공감하면서도 다채로운 디자인과 색상의 패션과 헤어 메이크업을 따라가는 이른바 ‘블핑 코스프레’를 자연스레 취하게 됐다.

문화 역사에서 선망과 동경의 요소는 때로 예술성을 압도하면서 대중의 내면에 스며드는 강력한 동인(動因)으로 작동한다. 우리도 미국과 영국 문화에 대한 동경과 선망으로 그것을 수입해 부지런히 가공한 끝에 우리만의 대중문화를 꾸려냈고 이제 그 결과물인 K팝을 가지고 역으로 선진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 모든 한국 대중문화의 성장 역사를 축약하는 이름이 블랙핑크인 셈이다.

레이디 가가·셀레나 고메즈와도 환상 케미


▎블랙핑크는 각 멤버가 명품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 사진:블로그 캡처
세계 음악 인구와 소통하려면 다국어 구사는 필수다. 블랙핑크가 구미와 아시아 상당수 나라에서 통역 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멤버들이 영어, 태국어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에서 YG의 유명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테디는 블랙핑크의 성공 원인으로 ‘다국적 문화의 화학적 결합’을 꼽았다.

삼 형제 그룹 ‘산울림’과 대학 캠퍼스 그룹 ‘송골매’ 등 혈연·학연·지연으로 묶였던 과거의 그룹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그럼에도 블랙핑크가 발군의 그룹 결속력을 보이는 것은 네 구성원 모두 ‘마음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포용의 자세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빼어난 케미가 발휘한 장점은 외국 톱 가수들과의 협업에서 나타났다.

슈퍼스타 레이디 가가는 전혀 스스럼이 없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함께 작업하자고 청했고 한국어를 이해하기 위해 노래의 한국어 부분을 영어로 써달라고 할 정도의 성의를 보였다. 그 결과로 탄생한 곡 ‘사워 캔디’는 빌보드 싱글차트 33위에 올랐다. 이전에도 그들은 세계적 스타인 두아리파와 셀레나 고메즈와도 협업한 바 있다. 블랙핑크 특유의 ‘융화’ 덕분에 세계 어디를 가도 그들은 낯설지 않다.

또 하나, 이들은 다른 아이돌처럼 팀 내 공식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넷 모두가 ‘으뜸 팀플레이어’이기에 굳이 지휘하고 끌어가는 그런 존재가 필요 없다. 이 또한 멤버들 스스로 확립한 개방과 포용의 키워드와 맞닿아 있다. 연습생 시절 하루 14시간씩의 고된 훈련이 말해주는 열정과 더불어 이러한 합(合)에 따른 탄탄한 멤버십은 블랙핑크의 자산이자 나아가 K팝의 숨은 힘이다. 이 때문에 ‘아이돌은 단명한다’는 가요계의 오랜 속설도 깨졌다. 블랙핑크도 어느새 7년 차 그룹이다. 2집 앨범 출시와 함께 그들은 10월 15일 서울을 시작으로 북미·유럽·아시아·호주를 관통하는 월드투어에 나섰다. 그들이 세계 관객에게 퍼뜨리고 있는 것은 K팝의 거대한 흡인력과 동시에 그 바탕인 개방과 포용의 정신이다.

-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jjinmoo@hanmail.net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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