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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6)] 예술가에서 예술 경영인으로,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 

“세계인 사로잡을 한류 예술은 지금부터!” 

국제적 감각 갖춘 피아니스트 경험 살려 예술의전당 변화에 전력투구
창작 오페라와 영상화 사업 주력해 한국 클래식의 세계 진출 구상


▎지난 6월 취임한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은 한국 클래식 예술의 세계화를 이끌 교두보가 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 사진:조정화
"예술을 마음으로 알기에 열정을 갖고 일하고 있다.” 장형준(60) 신임 예술의전당 사장의 말이다. 평생 음악과 함께 살아온 아티스트답게 예술의전당 운영이 단순히 매뉴얼 차원이 아니라 전문인의 열정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장형준 사장은 인터뷰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탁월하고 편안한 리더십을 물씬 풍겼다. 27년간 서울대 음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많은 연주 활동과 클리블랜드(미국), 본 베토벤(독일), 더블린(아일랜드) 등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했을 정도로 국제적인 안목을 갖고 있다.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40여 년간 쌓은 그의 관록은 예술의전당이 이름 그대로 ‘예술’의 ‘전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장 사장의 핵심 사업은 순수예술 장르별 전문성 강화와 K클래식, 예술 문화의 세계화, 그리고 미래 예술 세대 성장 지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오페라, 발레 등 순수예술 장르의 기획공연 확대다. 변화의 첫 단추로 얼마 전 [SAC 오페라 갈라] 공연을 선보였다. ‘오페라극장’을 순수예술 전용 극장으로 이끌겠다는 선포식 같은 이 공연은 화려한 라인업과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내년엔 개관 35주년 기념으로 오페라 [노르마]를 비롯한 대규모 공연이, 2024년에는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의 한국오페라 데뷔 무대 [오텔로]가 준비돼 있다. 예정된 프로그램 중 특히 기대되는 것은 2025년 세계 초연 창작 오페라다. 한국적 이야기를 배경으로 예술의전당이 자체 기획·제작한다. 한국형 오페라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돼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공연이다.

장 사장은 한국 예술문화의 세계화에 관심이 많다. 마침 영상화 스튜디오 완공으로 영상 제작과 더불어 극장 공연도 실시간 중계 송출이 가능해졌다. 먼저 전국의 문화예술회관 실황 중계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한국 공연을 중계 송출할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다. 그렇기에 예술의전당의 영상 콘텐트가 양질의 K예술문화(음악·전시·공연 등)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의전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공공기관이다. 세계인의 이목이 K문화에 집중되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 국제 감각을 갖춘 장 사장이 취임한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취임 후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순풍에 돛을 단 듯 기분 좋게 순항 중이다. 그중 하나가 K클래식 세계화의 주역이 될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한 음악영재아카데미 커리큘럼 재편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음악영재아카데미는 1999년 개관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약 7000명을 배출했다. 교육자 출신답게 강좌 개설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공연과 연계되는 프로그램 등 아이디어가 많다. 가을 색이 곱게 물든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신임 장형준 사장을 만났다. 예술의전당의 새로운 비전과 운영 방침 등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항들을 들어봤다.

27년 교단 생활 마치고 예술 경영인으로


▎예술의전당이 야심 차게 기획한 드라마 발레 [오네긴]과 콘서트 오페라 [운명의 힘] 포스터. / 사진: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 사장에 취임한 소감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에 기여할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고 영광스럽다. 서울대에 1995년 부임해서 지금까지 27년간 학교에 있었다. 직장이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지 생각이 많았다. 젊은 시절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교수로 임용된 이후 학교에서 보낸 시간만큼 예술의전당을 많이 방문했다. 집, 학교, 예술의전당을 오갔을 정도로 연주가 많아 ‘세컨드 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낯설지 않고, 대학 경영보다 예술의전당 경영이 방대한 면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점도 많아 잘 적응하고 있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세계화’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됐을 때는 세계화를 위해 변화를 추구하는 초기였다. 해외에 유학하며 아티스트와 교류도 많았고 해외 음악 교육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대 음대의 세계화를 위해 여러 임무를 수행했다. 지금 우리 문화도 그런 세계화를 가속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해외 아티스트가 대한민국을 방문했다면, 앞으로는 역으로 세계의 어느 극장에 나가도 손색이 없는 콘텐트를 개발해 K클래식 문화를 수출하고, 우리 아티스트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데 예술의전당이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취임 후 가장 주력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설명해달라.

“크게 두 가지만 꼽는다면 한국형 오페라의 해외진출과 영상사업이다.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오페라 극장의 오페라, 발레 활성화’다. 와서 보니 오페라, 발레 공연 횟수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제작 작품 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오페라는 기악, 성악,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협업으로 완성되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오페라 프로그램 활성화는 궁극적으로 여러 분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핵심 사업은 영상화 사업이다. 예술의전당은 이미 2013년부터 영상화 브랜드 ‘SAC on Screen’을 만들어 공연, 전시 영상화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문화예술기관 최초로 영상화 스튜디오 ‘실감’을 오픈하면서 예술의전당 내 극장에서의 공연을 별도의 중계 설비 없이 실시간 중계·송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제 실시간으로 예술의전당 공연을 지방문예회관에서 실황 중계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를 토대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 대한민국의 연주자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세계적인 미디어 채널에서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절대 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마침 세계화에 관심 많은 제가 경영자로 왔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실시간 공연을 세계로 송출할 시스템 구축


▎예술의전당 안에 있는 ‘청년미술상점’은 신진 작가들이 작품을 알릴 기회를 주기 위해 판매 수익금 전액을 작가에게 지급한다. / 사진:예술의전당
자체 제작 오페라 등 순수예술 위주의 기획 프로그램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

“문화예술에서 순수예술 분야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오페라는 종합 예술로서 문화예술의 꽃이자 그나라 문화 수준의 척도가 된다. 예술가인 제가 사장으로 왔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콘텐트가 강력해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순수예술을 갈망하는 애호가층이 두터워 좋은 기획공연을 만들면 청중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기획공연에도 관심이 많다. 기획공연은 어린이와 젊은 청중도 많이 와서 클래식 문화가 전반적으로 확대됐으면 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주고, 바쁜 일상에서 여유를 갖게 하는 것, 이것이 순수예술이 가진 가장 파워풀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전까지의 예술의전당 운영방식과는 달라질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예술을 그야말로 목숨같이 사랑했고,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왔다. 음악 전문인이자 교육자였기 때문에 좀 더 디테일하게 순수예술에 대한 발전을 극대화하고자 노력 중이다. 공연과 연계된 교육 프로그램을 좀 더 만들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좋은 전시와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드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순수예술 분야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저희 전문인들의 의무이지만 대중과 같이 호응하면서 발전했으면 좋겠다.”

1999년 개관한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는 세계적인 연주자를 많이 배출했다. 재편되는 커리큘럼의 방향은?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닐 수 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음악을 제대로 접하고 즐겁게 연주하는 기초를 쌓을 수 있는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 경쟁에 너무 노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일찍 영재로 규정하면 스트레스를 받아 재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학 영재는 어려도 뭔가를 보여줄 수 있지만, 피아노 영재의 경우 6~7세는 손이 너무 작아서 한계가 있다. 기술은 육체와 함께 성장하기에 음악 영재는 그만큼 자신의 재능을 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어려도 뛰어난 연주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서 수업의 진행 방식이나 큰 틀에서 창의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좋은 연주자와 연주단체가 많이 찾는 곳이다. 훌륭한 연주자와 단체의 공통점은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예술의전당은 이러한 환경적 이점을 활용해 영재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연주자들의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해 학생들이 더 좋은 학습 환경을 갖도록 할 것이다.”

한국 배경 창작 오페라로 세계 진출 구상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이 꼽는 기억에 남는 사진은 1993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5회 교향악 축제 무대에 처음으로 섰던 때다. 예술의전당 아카이브에 보관돼 있다. / 사진:예술의전당
그 어느 때보다도 한류문화가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열풍에 힘입어 ‘한류 예술 시대’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에 있다.

“한류 예술 시대에 예술의전당이 갖는 위치와 중요성을 새삼 느끼기 때문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나 [나비부인]과 같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K클래식 열풍의 도화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페라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절대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매우 희망적인 것은 오페라는 싱어 캐스팅을 잘하는 게 핵심인데 우리나라는 훌륭한 오페라 성악가들이 많다. 여기서 세계 초연이 일어나면 그 캐스팅으로 예술의전당의 기획공연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한류 예술을 위해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저렴하면서도 수준 높은 콘텐트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운영상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참 중요한 이야기다. 예술의전당은 관객이 믿고 볼 수 있는 완성도 높은 공연과 연주자를 선보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동시에 부담되지 않는 합리적인 티켓 가격 또한 고려해 관객의 부담을 낮추고자 한다. 무엇보다 경영자이기 때문에 경영에 부담을 주지 않고 운영의 어려움은 최소화하게끔 밸런스를 잘 맞춰갈 생각이다.”

2023년에 진행되는 전시와 프로그램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미 많이 계획되어 있다. 내년은 개관 35주년을 맞는 해여서 오페라 [노르마] 외에도 방대한 기념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오페라극장의 경우 ‘순수예술 전용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기획 프로그램을 통한 프리미엄 오페라 공연 제작을 확대해나갈 생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도 기획 프로그램이 많은데, 발레 [오네긴] 공연이 11월 6일까지 진행되고, 11월 17일에는 [운명의 힘] 콘서트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을 준비했다. 많이 관람해주셨으면 한다.”

“재능 있는 젊은 예술인들의 디딤돌 될 것”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아티스트에게 힘이 나는 응원 한마디 전한다면?

“많은 제자와 젊은 예술가들을 가까이 접해왔기에 연주자가 되는 과정과 연주자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특히 젊은 연주자들에게는 무대가 절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젊은 연주자를 위한 공연을 파격적으로, 연간 60~70명 규모로 개최할 생각이다. 이 외에도 한가람미술관에서 [청년미술상점]을 통해 일주일간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 수익금은 100% 작가에게 돌아가는 청년 신진작가를 위한 전시도 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누군가를 지목해서 키우는 단체는 아니다. ‘예술가’란 스스로 힘든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티스트를 위해 작은 디딤돌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도울 생각이다.”

예술의전당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술의전당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저 또한 예술의전당에서 좋은 기획으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은 외국보다 후원이 많지 않다. 월간중앙을 애독하는 애호가들과 기업이 관심을 보여준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 대한민국의 예술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좀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 한 장이 있다면?

“예술의전당 개관이 1988년이다. 교향악 축제도 그 해부터 시작했는데 내년이면 35회를 맞는다. 교향악 축제 협연자로 5회 차에 처음 출연했고, 2011년에도 협연자로 무대에 섰다. 첫 무대에 섰던 1993년 찍은 사진을 이번에 취임하고 30여 년 만에 처음 봤다. 사진으로 남아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 당시에는 사진 촬영이 공연에 지장을 줄 수 있어 리허설 사진밖에 없었다. 이런 자료를 가지고 있는 예술의전당 아카이브가 놀랍고, 사장이 돼서 젊은 날 연주하는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진을 보자 그날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긴장해서 면역력이 떨어질까 옷을 두껍게 입었던 것도 생각나고, 단원들과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던 기억도 났다. 생각해보면 선배와 교수님들의 열정이 정말 대단했다. 그래서 저희가 있고 또 조성진, 임윤찬 같은 다음 세대 연주자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는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잘 성장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오랜 전통을 끊기지 않고 이어온 것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 교향악 축제 협연자로 섰던 예술의전당의 첫 무대 사진이 내겐 그 어떤 것 보다도 감동적이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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