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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여의도 2시 청년 집단’의 현주소 

“율동만 하다가 떠나는 신세… 청년 비례대표는 하늘의 별따기”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더 어려진 정치 낭인들, 국회 주변 맴돌며 휴대전화 붙잡고 일자리 찾아
핵심 라인 진입해도 당내 청년 대표 주자들 계파 갈등 동원되기 일쑤


▎청년 정치인은 선거 때면 무수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유세장에서 율동만 하다가 떠나는 신세”라던 한 청년 정치인의 자조적인 표현은 지금도 정확하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대학생위원장이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점심 때면 국회의원 보좌진과 국회 출입기자들로 문전성시인 한 설렁탕집에서 만난 강모(28)씨. 그는 현재 집권당인 국민의힘 책임당원이다. 2021년 이준석 전 대표가 만 36세 나이로 전당대회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고 당에 가입했다. 2022년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홍준표 캠프에 참여하며 자원봉사자로 일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로 확정된 뒤에는 캠프를 옮겨 무보수로 선거운동을 도왔다. 하지만 그는 지금 확실한 직장이 없는 정치 낭인 신세다. 그래서일까. 그는 기자의 취재요청을 수락하면서도 익명 보도를 요청했다.

강씨는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후보의 발언으로 이제는 젊은 정치 낭인의 대명사가 돼버린 ‘여의도 2시 청년집단’에 속한다. 통상적으로 정치 낭인은 불혹의 나이가 돼서도 생업을 포기한 채 국회 진입을 노리는 부류를 일컫는다. 평일 오후 2시에도 일정한 직업 없이 국회를 어슬렁거리는 ‘청년 정치 낭인’이 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정치권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대한민국 선거권은 만 18세 이상으로 확대됐다. 과거보다 청년의 정치참여 연령이 낮아진 만큼 정치 낭인의 저연령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강씨는 기자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안면이 있는 국회의원 보좌진들에게 수차례 전화를 돌렸다. 저녁 약속을 잡는 눈치였다. “대선 캠프 때 알게 된 보좌진들과는 아직도 소통한다.” 강씨는 대학 졸업 직후 국민의힘 대선주자 조직에서 캠프 활동을 시작했다. 대선이 끝나고 3개월 뒤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서울 지역 구의원으로 출마하는 게 정치적 목표였지만 지명도가 낮아 경선에 뛰어들기도 전에 컷오프됐다.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당 내에서 실세로 군림하는 유력 정치인과 악수 한 번이라도 더 하려고 전국을 발로 뛰고 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생계는 어떻게 유지할까? 강씨는 강남의 대형 영어학원에서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주 3일, 하루에 3시간씩 일하며 수강생의 단어시험 등을 채점하고 듣기시험 준비를 도와준다. 그 외에 일정이 없는 날에는 여의도 인근 카페로 매일 출근해 현역 의원 보좌진들과 잠시나마 티타임을 가지려고 전화를 돌린다. 강씨는 주요 정치 이슈에 대해 댓글을 달고 사담을 늘어놓는 페이스북 활동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캠프활동 때 받은 온라인 임명장이 단연 눈에 띈다. 그는 “부지런히 인맥을 유지하다 보면 어느 의원실이든 인턴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국회의원실 인턴 자리 얻기도 쉽지 않아


▎신보라(좌) 전 자유한국당 의원과 전용기 민주당 의원(우). 두 사람은 양당의 대표적인 청년 비례대표 의원으로 대학 시절부터 정치 경험을 쌓아온 공통점이 있다. / 사진:연합뉴스, 페이스북
강씨가 당면 목표로 삼고 있는 국회의원실 인턴 활동은 수많은 정치 예비생이 선망하는 길이다. 정식 보좌진 활동은 이제 생업 개념으로 바뀌면서 과거처럼 출마의 뜻을 품고 보좌진을 시작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국민의힘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17·18대 총선 때 들어와 지금까지 남아 있는 보좌관들까지가 국회의원 배지를 노리는 마지막 세대라고 보면 된다. 이제 보좌진이라고 하면 완전히 직업이 됐다. 정치하겠다며 의원실에 들어와봐야 일 못하면 쫓겨나는 건 한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보좌진들에게는 정무적 능력보다 정책 능력이 우선시된다고 설명했다. 설익은 정치 감각을 믿고 발을 디뎠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고 했다. 여의도 보좌진 사정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국회의원 보좌관 아래 직급인 비서관들은 나이대별로 소위 ‘83·84라인’ 등으로 불리는 에이스급 인력의 친목 네트워크가 거미줄처럼 형성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실무는 뒷전이고 잿밥에만 관심 가지는 티를 냈다가는 정치인으로서 시작하기도 전에 보좌진 평판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정치인이 되는 모든 길이 막혀 있는 건 아니다. 인턴으로 국회의원 밑에 들어간 뒤 의원실과 이른바 딜(Deal)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과 사전에 소통해서 지역구 내 구의원으로 시작할테니 8~12년쯤 자리를 물려달라는 식이다. 한 비서관은 “영감(국회의원을 지칭)으로서는 지역구에 자기 사람 심어둬서 나쁠 게 없고,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영감 편이기에 배신할 가능성도 작다. 동시에 지역구에서 본선 때 다른 도전자를 견제하는 장치도 돼 준다”면서 “그런 부류는 인턴으로 들어와 국회의원이 어떻게 지역구를 관리하고 상임위 활동을 하는지 지근거리에서 관찰하며 공부한다. 이런 사람들은 굳이 특징을 따진다면 거액의 후원금을 내놓을 만큼 부잣집 자제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런 방식을 시도한다고 해서 자리를 100%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최태희(31)씨는 2020년 8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입법보좌관으로 일했다. 2022년 1월부터는 태 의원의 지역구인 강남갑 사무실에서 미래세대위원회를 만들고 청년 51명과 함께 국민의힘 대선 선거 운동을 도왔다. 이후 2022년 6월 지방선거 때 강남갑 지역구 구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다. 최씨는 “나를 포함해 2명이 경선후보로 나왔다. 나름 당을 위해 2년 정도 헌신한 만큼 투표권을 가진 당원들이 나를 뽑아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자세한 설명이나 과정 없이 내 경쟁자가 경선에서 뽑혀 단독 출마 후 무투표로 당선됐다”고 말했다. 현재 최씨는 서울 송파구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의 정치 플랫폼인 ‘청년의 꿈’을 운영하고 있다. 최씨는 “나를 정치 낭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목표를 갖고 여의도 외곽에서 정치 경험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 사례는 선거에서 낙선한 기성 정치인이 정치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훗날을 도모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선거철에만 청년들 이용하고 홀대 여전


▎국민의힘 청년 계파는 이준석 전 대표(좌)와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후보(우) 세력으로 분류되고 있다.
최씨는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기대하고 있다. 비단 최씨뿐만 아니라 정치에 뜻이 깊은 20·30세대 청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인재로 발탁돼 당의 청년 몫으로 영입되기를 꿈꾼다. 여의도 주요 정당들은 비례대표에 일명 ‘스토리’가 되는 청년 인재를 위한 티오(T·O)를 남겨두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20대 총선 때는 신보라 전 의원이 비례 순번 7번을 받았다. 지난 총선 때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청년보다는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 의원을 발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년 할당제라고 해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사람을 깜짝 발탁하지는 않는다. 정치권 인사들에 따르면, 신보라 전 의원의 경우 대학 재학 시절인 2011년부터 ‘청년이 미래를 여는 포럼’ 단체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국회 앞에서 복지포퓰리즘 입법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면서 얼굴을 알렸고, 통합진보당 해산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펼치는 등 야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면서 보수 진영에서 주목을 받았다.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여타의 청년 정치인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던 셈이다.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의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 16번으로 당선된 전용기 의원이 대표적이다. 전 의원은 2016년 한양대 안산캠퍼스 총학생회장, 경기도 대학생협의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일찍부터 수도권 진보 진영에서 활동했다. 이후 2017년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캠프의 대학생공동본부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입문하게 된다. 정당 활동이 발목을 잡아 대학가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등 정치 낭인 신세를 겪기도 했지만 2020년 민주당 비례대표 일반 공모에 지원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실의 이경수 보좌관은 “민주당은 청년위원장 출신인 장경태 의원에게 공천을 주는 등 외부 수혈보다는 내부에서 당직 활동을 토대로 인물을 평가하는 기류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청년 정치인은 선거 때면 무수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유세장에서 율동만 하다가 떠나는 신세”라던 한 청년 정치인의 자조적인 표현은 지금도 정확하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에서 청년 당원들에 뿌린 온라인 임명장은 약 80만 개, 민주당은 약 50만 개로 알려진다. 임명장에 쓰여진 실체도 불분명한 당직을 갖고서 별다른 역할도 없이 기성 정치인의 뒤를 따라다니는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이 선거철에만 청년들을 이용하고 그 후엔 홀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경선 당시 홍준표 후보 캠프의 자원봉사자로 일한 최종인(29)씨는 “정치는 전쟁이고 세력싸움이기에 최대한 세를 불리고자 기성 정치인들이 청년 당원을 그런 식으로 활용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언젠가 비례대표 발탁을 꿈꾸는 그는 현재 대학원에 진학해 숨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청년 계파 간 내전은 피 튀기는 수준

이처럼 청년세대가 정치권에 진입하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뚫고 들어가듯 어렵지만, 일단 코어 집단에 들어간 뒤에도 주도권을 쥐기 위한 청년 계파 간의 피 튀기는 내전(內戰)에 동원되기 일쑤다. 계파 싸움에서 패배하면 국회 밖으로 밀려나 기약을 도모하는 낭인 신세를 다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이준석 전 대표와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후보 간의 진영으로 양분돼 있는 청년 계파 갈등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이준석 전 대표의 시각에서는 기존에 당내에 자리하던 청년들은 기성 정치인의 들러리나 서는 정도로 비쳐졌던 것 같다. 그래서 에이스급으로 키운 이들이 ‘나는 국대다(나국대)’로 선발한 신인규·임승호 등이다. 이 외에도 바른정당 때부터 함께한 김용태 최고위원 후보를 포함해 천하람 당 대표자 후보, 이기인 청년최고위원 후보 등과 소통하면서 자기 세력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참모 역할을 하면서 존재감을 발휘하자 이 전 대표로부터 사실상 축출된 청년세대 일부가 장 후보 측으로 몰렸다고 한다. 이들은 대선 시기 윤석열 대통령 캠프의 청년본부, 청년보좌역에 기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는 선거 후에도 주요 정부 부처에 별정직으로 기용됐다고 한다. 이 당직자는 “그때를 기점으로 장 후보의 세력이 강화됐다.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과 척을 진 데다가 성비위 논란으로 당원권 정지라는 징계까지 받으면서 장 후보 측으로 완전히 힘이 기울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이 전 대표 측 인사 대부분이 전당대회 컷오프를 통과하면서 판세는 오리무중이다. “어느 분야든 정점에 오르지 않으면 세력화의 일부가 될 뿐이다. 이 전 대표를 따르는 사람 중에는 정치 낭인을 자처한 30대도 있다. 이 전 대표의 성공이 훗날 더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민의힘 모 의원실 보좌진의 설명이다.

여의도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계파 싸움에 질려 정치권에서 빠져나간 청년들도 있다. 대통령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김모(31)씨는 기성 정치인으로 세력화된 당내 분위기와 청년 정치인 간의 반목에 여의도를 떠난 사례다. 김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정치 얘기는 더는 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

자신이 버려진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대선 때 국민의힘 경선 후보 캠프에서 일한 조영범(27)씨는 “청년 정치인이 자신만의 강점이 없으니 경쟁력이 떨어지고 쉽게 버려지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능력과 내공을 갖추는 게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 이상우 인턴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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