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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13)] 사진가 김용호의 ‘파인더 속 세상’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상업광고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며 각계에서 러브콜
형식 구애받지 않는 실험 정신으로 독보적 작품세계 구축


▎국내 유수 기업들과 협업해 명성을 얻은 사진가 김용호는 상업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대가로 꼽힌다. / 사진:조정화
"형식은 본질의 표면이나, 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순수 예술사진과 상업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김용호의 말이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숨겨진 것을 찾고, 그 가치를 성찰과 관조를 통해 표출하려는 강한 집념이 담겼다.

국내 대표적인 상업 사진가 중 한 명인 김용호는 사진, 영상,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도전적인 아티스트다. [VOGUE],[HARPER’S BAZAAR], [GQ] 등의 매거진을 통해 패션사진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카드(우아한 인생), 현대자동차 광고 사진 및 미디어아트전(절차탁마, 브릴리언트, 마스터피스), 삼성전자(설중송백), KT(아름다운 신세계), LG전자(MADE IN CHANGWON) 등을 통해 국내 유수 기업 광고를 예술로 승화시켜 주목받아왔다. 그의 상업사진들은 갤러리에 초대되어 전시될 뿐 아니라, 전시 중에 곧장 판매로 이어질 정도로 각광 받는다. 통념에서 벗어난 대담한 방식의 예술 콘텐트로 감흥을 불러일으킨 까닭일까. 최근 상업사진가의 작품이 굵직한 미술관에 초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김용호 작가의 선구자적 역할도 한몫했을 것이다.

국내 유수 기업과 협업, 갤러리 초대되기도


▎김용호 사진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한국문화예술명인] 시리즈 중 백남준과 이어령. 단순하면서 파격적인 시도로 순수예술 사진 분야에서 그의 독자성을 더욱 빛나게 했다. / 사진:김용호
순수 예술사진 분야에서 김용호의 독자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대표작 중 하나인 [한국문화예술명인] 시리즈는 백남준 사진을 필두로 박서보, 박정자, 정명훈 등 20여 년 전부터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문화예술계 명인의 초상을 담고 있다. 최근에 작고한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이어령 선생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담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극히 절제된 몸짓과 손짓, 흑백의 미니멀한 시각은 초현실적인 경험을 유발하고, 포토몽타주로 재구성한 실험적인 사진까지 확장된다.

대림미술관에서 140여 점을 선보인 [mom] 시리즈는 무용가,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등 다양한 인물군의 벗은 알몸을 통해 상품화되고, 사물화된 몸에 대한 여러 단상을 환기하며 또다시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실 밖 깨달음의 세계를 펼쳐 보인 독특한 앵글의 [피안(彼岸)] 시리즈 역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외에도 1900년대 초 선각자를 주제로 한 [신여성] 작품 등 순수예술 사진을 지속해서 발표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입체 조각 [모던보이] 시리즈는 로봇처럼 각진 몸에 머리 대신 불 켜진 전구를 얹었다. 마치 기계 부품처럼 인간이 소비되는 사회에서도, 정신만큼은 환하게 불을 밝히며 스스로 빛난 20세기 초 모더니스트를 상징한다. 고 이어령 선생도 이 ‘모던 보이’가 바로 자신을 대변한다고 했듯이, 이 시대를 밝힌 선각자나 현대인을 아우르며 표상한 작품이다.

이처럼 여러 시각 매체를 능동적 주체로서 다채롭게 변주할 수 있는 역량의 소유자가 바로 김용호 사진가다. 이는 패션, 자동차, 인물 등 그간의 아카이브를 모아 놓은 그의 첫 작품집 [포토 랭귀지(Photo Language)]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평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해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그의 순수한 열정이 상업사진과 순수예술사진의 경계를 허물어버림으로써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발견하게 된 것이리라. 다양한 프로젝트로 40여 년간 끊임없이 새로움을 시도하는 김용호 작가를 서초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 창원 컨벤션센터에서 LG전자와 협업한 [메이드 인 창원]. / 사진:김용호
사진을 본업으로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취미로 하던 게 직업이 됐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을 찍곤 했는데, 패션광고 사진과 [공간] 잡지의 사진부장을 하면서 광고사진 일을 하게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커머셜과 파인아트 사진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10년 전에 ‘현대차’ 작업을 했던 게 반응이 좋아 계속 다른 기업들의 요청이 와서 기업 일을 많이 하고 있다. 그냥 누가 하자면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작업량이 많고 다양하다.”

김용호 사진 본 이어령, “내가 보이네”


▎화려하고 강렬한 오브제가 많이 등장하는 현대카드 [우아한 인생]. / 사진:김용호
얼마 전 창원 컨벤션센터에서 [메이드 인 창원(Made in CHANGWON)]이란 제목으로 대규모 전시가 있었다. 반응이 엄청났다고 들었다.

“LG전자 공장이 창원에 있다. 국내외 대부분의 가전이 창원에서 만들어진다. 창원이라는 도시의 아름다움과 세계 최고 제품을 생산하는 지금의 LG전자가 있기까지 함께한 구성원들의 숭고한 열정을 가로 60m, 세로 40m에 달하는 전시장에 다양한 방법으로 담아냈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가로 50m, 높이 9m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고, 천장에는 지름 7m가 되는 엄청난 금속 구를 달았다. 사실 ‘LG전자 김용호 사진·영상전’이었지만 그 전시를 보면 그냥 ‘김용호 전시’다. 사진, 영상, 조형과 설치가 다 있는 전시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의 확장성을 가진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현대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작품을 보고 그냥 ‘데미안 허스트’ 하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걸 말하는 것처럼, 나도 어떤 면에서는 그래야 된다고 본다. 그게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니멀한 초상사진의 표본을 보여준, 2003년에 개최된 [한국문화예술명인전]은 ‘김용호답다’라는 말과 함께 회자된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스타타워 갤러리에서 했는데 엄청난 규모의 전시였다. 당시 뉴욕에 계신 백남준 선생님이 휠체어를 타고, 인터뷰를 안 하실 때였는 데 전시 기획이 마음에 든다며 수락하셨다. 이때 인터뷰하고 사진 찍었던 게 특종이 되어 여러 매체에 실렸다. 얼마 전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님께 처음 사진을 의뢰했을 때 ‘사진 있습니다’라고 거절하시다가 촬영해 보여 드렸더니, ‘이거 내가 보이네, 내가 있다’며 돌아가실 때까지 기록하라고 했다. 찍은 사진을 매번 프린트해 갖다 드렸는데 병문안 오신 분들께 내 사진을 자랑할 정도로 좋아하셨다. 이어령 선생님의 포토몽타주 사진은 단순히 ‘인물을 찍는다’에서 벗어나 그 인물을 분석하고 해석해 재창조하고, 새로운 걸 시도했다.”

대림미술관에서 전시한 누드, [mom] 시리즈는 어떤 점을 중요하게 접근했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피안]은 수면 위가 아니라 수중에서 연을 찍어 기존의 통념을 깼다. / 사진:김용호
“벗은 몸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을 통해서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개인적 철학 같은 것들을 표현했다. 주로 사람의 등 뒤만 찍었다. 내 상상력과 철학이 집결된 중요한 작품이다. 대림미술관 개관 이래로 유료 입장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미술계의 많은 분들이 주목했고, 그 작업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바빠서 아직 못했는데 계속할 생각이다.”

[피안] 시리즈는 물 속에 들어가 연을 촬영해 무엇보다 앵글이 돋보이는 작업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해마다 연꽃 군락지를 찾아다니며 촬영했다. 대부분 물 위에서 연을 찍는데 나는 물 속에 들어가서 물 위를 보면서 새로운 피안의 세계를 찾았다. 늘 좌우명처럼 하는 말인데 ‘형식은 본질이 표면이나, 진실은 보이는 거 너머에 있다’는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피안은 세속(世俗)으로부터 초월한다는 뜻이다.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를 [피안]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아바타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여기고 컴퓨터 그래픽 조작 아니냐고 오해도 한다. 작품 사이즈가 3~5m 대형 작업도 있는데, 파인아트 작업을 할 때 남들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모던보이] 시리즈는 사람 형태의 도자기에 전구 불이 들어와 의미심장해 보인다.

“20세기 초기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모더니스트의 애칭으로서 ‘모던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머리에 전구가 있는 건 스스로 빛나는 존재를 상징한다. 100년 전, 당대의 모더니스트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됐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마치 큰 바위 얼굴 이야기처럼 말이다. 어릴 적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며 열심히 노력했던 사람이 큰 바위 얼굴이 된 것처럼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런 내용을 ‘태양광 모던보이’를 만들어 낙후지역 어린이들에게 보급하는 캠페인을 통해 전달하고 싶어 여러 업체를 만나기도 했는데, 아직 진행은 안 됐다. 이런 메시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는 게 많이 안타깝다.”

“사진 속 오브제는 상징과 은유, 이유 없는 것은 없어”


▎김용호가 시도한 입체 조각[모던보이](위)와 무용가·음악가·화가 등 다양한 인물군의 웅크린 뒷모습을 모은 누드 작품 [mom(몸)]. / 사진:김용호
[우아한 인생]의 현대카드 사진은 화려하고 강렬한 오브제가 많이 등장한다.

“오브제 중 몇 가지만 설명하자면, 작품 속 은빛 오브제로 등장한 물고기 화병은 현대인이 표출하려는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이를테면 생존 본능, 다산, 생산성, 활동적인 것들을 의미하고, 아름다운 꽃을 꽂아 대상을 유혹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그리고 현대인의 획일화된 생활 방식과 키덜트(kid+adult)의 유아적 욕구를 상징하기 위해 로봇 장난감을 사용했다. 조명기로 제작된 로봇은 수호의 빛을 비추는 물건으로, 동시대적 감성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현실을 벗어난 어두운 아웃사이더로 방치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다. 대부분 스스로 자제해야 할 욕망과 자신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도록 구상했다. 사진 속 오브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유 없이 사용되지 않는다. 상징과 은유를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준비해 구성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이 있다면.

“집 냉장고에 붙어 있는데, 20대의 대학 입시 원서 사진이랄까. 예전에는 수험표에 사진을 붙였다. 고3이었으면 교복을 입었을 텐데 그때 재수생이어서 평상복을 입고 머리는 장발에 약간 두꺼운 안경을 끼고 찍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표정으로 순수하기도 하고…. 그 사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엄청나게 머리가 비상한 목표 지향적인 사람도 아니고,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고 못 할 것도 없는, 여러가지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표정이 있기 때문이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 글·사진 조정화 photoschooljoa@naver.com

202306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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