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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국산 프라모델 반세기 이끌어온 아카데미과학 

40년 금형 장인의 손끝으로 지켜온 프라모델의 추억과 꿈 

최기웅 기자
1980년대 프라모델 호황에 한때 100여개 기업 난립했지만
설계·금형 자체 기술과 생산시설 가진 아카데미과학만 남아


▎경기도 의정부 아카데미과학 본사에는 1969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제작했던 5000여 개 제품의 금형판이 보관돼 있다. 50여 년 동안 축적한 기술과 경험의 결정체다.
"사고 싶다. 전투기, 장갑차, 전함, 로봇도….” 한원재(25) 씨는 어릴 적 문방구 앞을 지날 때면 한참을 서성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다. 정교하게 만든 전투기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이 어린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처음으로 프라모델을 사서 조립까지 마쳤을 때 그 순간의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고 그는 추억했다. 어린이날 부모님과 함께 조립했던 아카데미과학 프라모델 상품을 시작으로 그는 프라모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프라모델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지금은 비록 컴퓨터와 스마트폰 게임 등의 인기로 프라모델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지만, 몇십 년 전 아이들에게 프라모델은 어린이날 받고 싶은 선물 1순위였다. 국내에서 프라모델이 처음 등장한 건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초반이다. 이후 프라모델 산업은 1980년대 전국에 100여 개의 회사가 경쟁할 만큼 전성기를 누렸지만, 대부분 기술력이 없어 주로 일본 제품을 카피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미과학은 금형을 직접 제작해 프라모델을 생산했고, 지금까지 축적한 그 기술력 덕분에 현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한국산 프라모델의 명맥을 잇고 있다. 아카데미과학의 프라모델을 보면 실제 전투기나 장갑차 등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것 같다.

‘정밀함과 기술력’을 추구하는 아카데미과학의 디테일은 금형 판 제작 과정부터 시작된다.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아카데미과학의 제조 공장. 출입에 필요한 보안 절차를 거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1969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제작했던 5000여 개 제품의 금형 판이 보관돼 있었다. 제품별로 모두 다르고 복제품이 있을 수도 없는 금형 판을 덮개를 덮어 한 곳에 보관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아카데미과학이 50여 년 동안 축적한 기술과 경험의 결정체인 것이다. 아카데미과학 김생근 차장은 “우리의 진짜 보물은 금형 파트 기술자들”이라며 “오랜 경험을 가진 아카데미과학 금형 장인의 축적된 기술 덕분에 지금까지 수많은 프라모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창고 옆 공장에는 10여 명의 금형 장인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다듬으면 좋을 것 같은데?” 특수 크레인을 이용해 500㎏에 이르는 금형을 작업 판에 올려두고 이리저리 살피며 사출될 플라스틱 키트를 저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30여 분간 진행된 회의가 끝나자 장인들은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다시 설계도를 보고, 확대경을 통해 꼼꼼하게 살펴보며 작은 볼트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40여 년 동안 아카데미과학에서 금형 판을 제작한 권용덕(61) 과장은 “손끝의 촉각에 집중하며 하나하나 틀을 만져보는 최종 점검 중”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장인의 손길로 창공을 주름잡는 전투기의 섬세한 패널과 전장의 흙탕길을 헤치고 나가는 전차의 복잡한 캐터필러의 디테일이 완성된다. 최종 점검까지 마친 금형 판은 사출기와 만나 플라스틱 키트를 찍어내며 프라모델 상품으로 태어난다.


▎모두의 밀리터리 프라모델 동호회 회원들이 아카데미과학 프라모델 애장품을 보여주고 있다.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광휘(29), 김도홍(26), 한원재(25).



▎프라모델 동호회 회원들이 3개월간 공들여 완성시킨 (왼쪽부터) 아카데미 1/48 A-10C 썬더볼트 II, 아카데미 1/35 판터 G형 프라모델이다.



▎1981년도에 입사해 40년이상 금형을 제작한 아카데미과학 금형부 권용덕(61) 과장이 작업에 몰두 하고 있다.



▎탱크 차체 하부의 플라스틱 키트. 같은 모델로 가격대도 비슷하지만. 아카데미과학 키트는 보이지 않는 부분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살구색 키트 아카데미는 4호 전차 H, 회색 키트 일본 타미야 4호 전차 D)



▎시범 사출된 플라스틱 키트를 금형과 비교하며 최종점검 하고 있다.
- 사진·글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307호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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