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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28)] ‘잃어버린 30년’간 일본인 최대 관심사는 ‘생활 안전망’ 

다이소·유니클로·니토리… 일본 특유 노파심의 산물 

80년대 말 버블 붕괴 뒤 ‘생활 대국’ 일본의 원동력이 된 기업들
인구절벽 대안으로는 자동화·에너지 절약·노동시장 유연화 모색


▎유니클로는 버블 붕괴 이후 경제난을 이겨낸 의류계의 ‘혁명아’다. 일본에서 성공한 뒤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 사진:유민호
3년 만의 도쿄(東京) 방문이다. 나리타(成田) 공항에 내리는 순간 일본이 느껴진다. 꽉 찬 느낌이 드는, 어디 하나 빈틈을 찾기 어려운 땅이다. 더불어 너무도 조용하다. 공항 안에는 사람도 많다. 팬데믹 전과 비교해 외국 관광객이 90%대로 회복됐다고 한다. 한 달 방문객 180만 명으로, 한국의 3배다. 지하철을 타고 도쿄 호텔로 향했다. 모두 모바일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유독 크게 울려 퍼지는 이유지만, 열차 안에서 통화하는 일본인은 단 한명도 없다.

항상 느끼지만, 일본에 내리는 순간 맥박수가 30% 정도는 떨어지는 듯하다. 나쁘게 말하면 우울하고 활기가 사라진 나라고, 좋게 말하면 침착하고 안정된 공간이다. 도쿄 한복판 긴자(銀座)에 가도 침묵이 흐른다. 사람 사는 곳에서 느끼는, 뭔가 왁자지껄하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와 무관하다. 심지어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지르는 어린이도 만나기 어렵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미래를 대하는 세계관은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자세 두 개다. 물론 딱 부러지게 100% 낙관이나 비관은 없다. 서로 엉켜 있겠지만, 대세가 어느 쪽인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낙관적 미래관은 세계 공통분모다. 미국과 유럽, 심지어 아프리카도 낙관적 자세가 대세다. 내일은 항상 희망적이다. 아시아에서 한국은 특히 낙관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듯하다. 미국에서 보는 한국은 북핵 위협에 놓인 휴전 국가다.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둔 군사 충돌 뉴스도 가끔씩 터져 나오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인 대부분은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이 없다. 대륙간 탄도탄 실험을 하든 말든, 주식 시장과 아파트 가격은 끄떡없다.

전 세계를 풍미하는 낙관적 자세와 달리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비관적 미래관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이 대하는 미래는 어둠 자체다. 밝고 힘찬 내일보다, 차갑고 힘든 미래가 일본 사회 전체에 넘실댄다. 당장 서점에 가보자. ‘일본, 미래’를 키워드로 한 책이 넘친다. 일본은 오늘도 어둡지만, 내일은 한층 더 깜깜하다. 미래학과 무관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나 일본은 1년, 10년, 아니 30년, 50년이란 수치를 앞세운 미래학 책이 넘친다. 이들 책 가운데 ‘미래 일본=행복 천국’이란 식의 내용은 극히 드물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대략 90%의 책이 어두운 미래로 집약된다. 만화나 영화로도 소개된 ‘일본 침몰(日本沈没)’에 준하는 책들이 대세다. 자국이 바닷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아예 지구상에서 지워질 것이라고 말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양적으로 많다 보니 어두운 미래에 관한 베스트셀러도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올해 들어 100만 부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미래의 연표(未来の年表)] 시리즈물을 보자. 인구 감소에 따른 일본의 미래를 조목조목 설명한, 통계 사회학 서적이다.

“운전사 부족으로 10억t 화물이 정체된다. 수도 요금이 월 1400엔 인상된다. 30대 인구 감소로 인해 신축 건물이 안 팔리게 된다. 60대 자위대가 80대 국민을 돌본다. IT 전문가 80만 명 부족으로 은행 업무가 중단된다…”

‘올빼미를 키우기 전에 알아두지 않으면 후회할 15가지 문제’, 최근 흥미롭게 본 일본발 유튜브 비디오다. 올빼미는 매력적 동물이다.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뭔가 신비로우면서도 귀여운 조류다. 집에서 24시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사람이 드물 듯하다. 그러나 일본발 비디오는 같은 환상과 희망사항의 이면에 주목한다. 기억에 남는, 8가지 주의사항을 소개한다.

“1. 맹금류 올빼미를 기를 사료비가 엄청나다. 2. 새장이 아니라, 자유롭게 기르는 것이 기본이다. 집안 사방팔방 넘칠 배설물을 하루 10번 이상 닦아야만 한다. 올빼미 특유의 냄새도 집안 전체에 배게 된다. 3. 올빼미가 아플 때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의사가 극히 드물다. 4. 하루라도 먹이를 안 줄 경우 눈에 띄게 쇠약해진다. 24시간 누군가가 돌봐야만 한다. 5. 올빼미는 안정된 환경이 아닐 경우 깊은 스트레스에 빠진다. 항상 집안을 깨끗이 정리 정돈해야만 한다. 6. 수명이 최고 40년까지 가는 장수 동물이다. 구입자는 자신의 결혼, 육아, 건강, 정년과 같은 인생 변화를 고려해 길러야 한다. 7. 별 문제 없다가 하루 만에 급사하는 경우가 많다. 돌발사 이후 닥칠 공허감에 준비해야만 한다. 8. 평소 조용하지만, 갑자기 큰 소리로 운다. 밤에 큰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음시설을 갖춰야 한다.”

변수를 상정한 사고에 익숙한 나라 일본


▎다이소 100엔숍 매장에는 무려 7만 종의 물건이 진열돼 있다. 팬데믹 이후 급격한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상품 90%는 아직 100엔 가격을 유지 중이다. / 사진:유민호
올빼미 비디오를 보면서 떠올린 것은 필자가 30여 년 전 경험한 지진 대피 훈련이다. 매달 한 번씩 건물 내 거주민 모두가 참가하는 훈련이었다. 지진 훈련이라고 하면 머리에 떨어지는 돌이나 유리창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전 훈련으로 해석하기 쉽다. 지진 당시보다 ‘전후’에 집중하는 훈련이란 점이 핵심이다. 불이 날 경우에 대비한 소방 시설과 진화수 준비와 사용법, 다친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는 훈련과 병원 통신망 구축, 콘크리트로 다져진 두꺼운 대피소 내 식수와 화장실 점검, 지진 이후 필요한 식량과 의복과 통신망 확보. 대략 훈련의 30%만 지진 당시 안전 문제에 주목할 뿐, 나머지 70%는 지진 전후 대처 방안에 집중한다. 귀여운 올빼미를 보는 즉시 덥석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차원에서의 애완동물 공생법과 비슷하다.

앞서, 인구 절벽과 관련된 일본의 우울한 미래를 살펴봤다. 사실 미래 인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한국의 선진 모델이다. 지난해 일본의 합계 출산율이 1.33, 한국은 0.78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의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에 속한다. 그러나 미래를 대하는 한·일 간 자세는 정반대다. 한국에도 인구 절벽을 둘러싼 논의가 있긴 하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 전문가 차원에서 그칠 뿐 국민 전체가 염려할 문제는 아니다. 당장 눈앞의 문제가 아니면 관심이 없다. 출산율 0.3정도 되면 그때서야 한국에서도 인구 관련 베스트셀러가 탄생할 듯하다.

경제 추락 이겨낸 새로운 생활 방식 정착


▎3코인즈는 ‘100엔숍 2.0’으로, 300엔 가격대 상품을 다루는 곳이다. 자연 소재를 사용한 환경에 유익한 상품이란 점을 내세워 인기를 끌고 있다. / 사진:유민호
올빼미 비디오와 지진 대피 훈련에서 보듯 일본은 여러 가지 변수를 상정한 사고에 익숙하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쓸데없고, 상황에 직면해 대응해도 될 문제다. 일단 올빼미가 마음에 드는 순간 구입해 기르면서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한국식이다. 낙관적·비관적 세계관은 바로 이 같은 한·일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낙관적이기 어렵다. 문제를 단순화하고, 좋은 면만 봐야 미래에 대한 기대도 증폭시킬 수 있다. 여기저기 따질 경우 아예 돌다리만 두드리다가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 하루 종일 올빼미 배설물을 10번 이상 치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사육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일본이 비관적인 이유는 변수가 너무도 많은, 각론 중심 사회라는 점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노파심이 일본 전체의 공기라고나 할까?

‘잃어버린 30년’이란 단어가 최근 일본에서 등장하고 있다. 원래 ‘잃어버린 20년’으로 통했지만, 언제부턴가 10년이 늘어 30년으로 변해있다. 1980년대 말 버블 경제가 터지면서 경기 침체에 들어간 일본 경제를 상징하는 말이 ‘잃어버린(失った)’이란 수식어다. 일본식 비관주의 세계관이 밴 말이다. 그러나 올해 6월 초 언저리에 들리는 잃어버린 30년은 과거에 통하던 ‘어두운 어제’로서의 비관이나 탄식이 아니다. 잃어버린 30년이란 말 뒤에 ‘종언’이란 새 단어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5월 중순 이후 일본 주식 시장 현황이지만, 닛케이(日経) 평균 주가의 3만 엔 이상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주식 시장에 비해 거의 배 이상 뛰고 있다. 일본 언론은 ‘버블 경제 이후 주가 최고 기록 경신’이란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 종언’은 주가 급등 기사와 함께 등장한 말이다.

버블 경제가 최고점에 달했던 날은 1989년 12월 29일이다. 당시 닛케이 평균 주가는 3만8915엔을 기록했다. 주가는 1990년 신년 들어 즉각 급락했다. 반등을 거듭하다가 1990년 7월 19일 3만1352엔까지 올랐지만, 이후 33년간 끝없는 추락 국면에 들어선다. 올해 5월 중순 이후 등장한 버블 경제 이후 주가 최고 기록 경신이란 말 가운데 ’이후‘라는 단어에 주목하기 바란다. 1989년 12월이 아닌, 1990년 7월 주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글을 쓰는 순간 일본의 주가는 3만1374엔을 기록하고 있다(5월 29일). 1990년 기록은 넘어섰지만, 아직 1989년 버블 최고 정점까지는 7541엔 부족하다. ‘잃어버린 30년 완전 종언’이 아닌, ‘부분 종식’이란 용어가 어울릴 듯하다.

‘안전망 구축’은 잃어버린 20년, 30년 동안 행해진 일본 최대 관심사다. 버블 경제 책임이 누구냐고 묻기 전, 경제 추락을 이겨낼 새로운 생활 방식이 1990년대부터 나타난다. 안전망 구축은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석·제시할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하루 삶에 직결되는 ‘의식주’ 생활 안전망이다. 크게 세 가지가 눈에 띈다. 100엔숍(百円ショップ), 유니클로(ユニクロ), 니토리(ニトリ)다. 일본은 자국을 ‘생활 대국’이라 표현한다. 매일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건이 저렴한 것은 물론 양적으로 풍부하고 질적으로도 우수하다는 것이 일본인의 자랑이다. 필자는 120% 동의한다. 세계 125개국을 돌아다닌 결과지만, 일본에 필적할 생활 대국은 단 한 곳도 없다.

‘민낯 경제’ 과정서 더 견고해진 실용주의

일본이 생각하는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는 미나 예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필자의 생각이지만, 현실 생활과 동떨어진 미나 예술은 아무리 아름답고 품격이 높아도 무의미하고 가치도 낮다. 아무리 대단한 작품이라도 보통 사람 주머니를 고려한 가격에 팔린다.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의 ‘후지산(富士山)을 삼키는 파도’ 그림도 18세기 당시 소바 두 그릇 정도 가격에 팔렸다. 서민 생활을 보충하는 청량제 정도가 예술의 목적이자 가치다. 따라서 생활 대국과 관련된 물품이나 도구는 일본판 미와 예술의 또 다른 얼굴로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잃어버린 20년, 30년’은 일본을 명실상부한 세계 최상 생활 대국으로 만든 시기이기도 하다. 버블을 걷어낸 ‘민낯 경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100엔숍, 유니클로, 니토리가 탄생·발전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 일본 전역 100엔숍은 9480개다. 한국의 1400여 개에 비해 7배 이상이다. 인구 10만 명 당 가게 수가 7.5개인 셈이다. 점포 수도 매년 늘면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최초로 1조 엔 규모의 경제주체로 성장할 전망이다. 일본에서 ‘햑킨(100均)‘으로 불리는 가게 내 상품은 일본인 의식주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총 10여 개 회사가 난립하고 있지만, 한국에도 잘 알려진 다이소(大倉)가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햑킨 상품의 종류는 무려 7만 종에 달한다. 가게에 들를 때마다 놀라지만,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이 깔려 있다. 편리하고 튼튼하며 디자인도 탁월하다. 3년 전 서울에 들렀을 때 느낌이지만, 한국의 1000원숍은 이름만 그럴듯할 뿐 실제는 2000원, 3000원 숍으로 비쳐졌다. 절반 정도가 1000원일 뿐, 쓸 만하고 오래갈 만한 물건은 2000원, 3000원에서 더 나아가 5000원에 달한다. 일본의 햑킨은 말 그대로 100엔이다. 대략 점포 내 물건의 90%가 100엔이다. 올해 물가가 급등했다고 하지만, 아직 90%가 햑킨이다. 3년 전과 비교해서도 한국 1000원숍은 일본 햑킨보다 비싸다. 가격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열세다. 굳이 장점으로 내세운다면 ‘상품 크기’ 측면에서는 한국이 우세하다. 햑킨에 비해 한국 제품 대부분이 크다.

유니클로도 버블 경제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안전망이다. 흔히 오해하지만, 일본의 최고 부자는 첨단 IT 산업이나 부동산, 제조업과 무관하다. ‘옷 장사꾼’이 일본 최고 재력가다. 유니클로 회장인 74세 야나이 다다시(柳井正)가 주인공이다. 지난해 기준 추정 자산 3조 엔으로 일본 1위, 세계 54위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한물간 의류 비즈니스를 통해 일본 최고 부자로 떠올랐다. 이미 20여 년 전 기억이지만, 유니클로는 일본 국민복으로 정착했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일본인 치고 유니클로 제품을 안 입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그냥 옷 한 벌이 아니라 내복, 셔츠, 외투에서부터 양말, 장갑, 모자까지 일본 남녀노소 모두 착용하는 브랜드다. 저가에다 다양한 디자인이 유니클로가 국민복에 오른 가장 큰 이유다. 언제부턴가 ‘고급 브랜드’로 변해가는 듯하지만, 원래 1000엔이 유니클로의 대명사다. 1000엔만 주면 상의든 하의든 내복이든 전부 구입할 수 있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지만, 유니클로는 다르다. 서구의 갭(Gap)이나 바나나 리퍼블릭(Banana Republic) 같은 브랜드와 비교해도 한층 더 싸고 튼튼하며 디자인도 탁월하다. 21세기 들어 중국, 미국, 유럽으로 진출하면서 ‘글로벌 유니폼’으로 변신한 것이 바로 유니클로다.

닥쳐올 위기에 미리 대비하는 국민성


▎터치 패드는 주문·계산·배달 등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서비스 업계 신무기다. 대중적 일본 식당들은 터치 패드를 통한 주문과 지불이 일상화돼 있다. / 사진:유민호
가구 브랜드 니토리 또한 햑킨과 유니클로 연장선에 있는 버블 경제의 유산이자 업적이다. 일본 693개, 대만, 중국,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 100여 개 점포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다. 노르웨이 이케아에 필적될 곳으로, 가구뿐만 아니라 주거에 관련된 생활용품 전반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이케아 수준이다. 일본 신혼부부는 일단 니트로 가구에서부터 출발한다. 침대, 소파, 식탁, 책꽂이 전부 갖춘다고 해도 20만 엔 이하로 해결할 수 있다. 니토리 가구의 크기는 이케아에 비해 작다. 그러나 품질은 높다. 햑킨이 그러하듯 작지만 튼튼하고 디자인도 풍부하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니토리가 이케아를 넘어서는 글로벌 브랜드가 될 것이다. 아직 한국에는 진출하지 않았지만, 상륙 즉시 화제가 될 것이다.

100엔숍, 유니클로, 니토리 등 3대 브랜드는 버블경제 이후 일본을 도운 구원투수로 볼 수 있다. 싸고 튼튼하며 질적으로 우수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2023년 6월, 팬데믹 2년을 거쳤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사태를 눈앞에 둔 일본에는 과연 어떤 구원투수가 나타났을까? 도대체 어떤 진화가 진행되고 있을까? 일본에 도착하는 즉시 주목한 필자의 주된 관심사다. 도쿄 곳곳을 오가면서 확인한 것이지만, 크게 세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서비스 자동화다. 1인 라멘집과 주점, 3인 야키니쿠(焼肉) 불고기 식당 같은 것이 대표적 본보기다. 극소수 인원으로 운영하는 식의 업무 구도가 이미 일본 전역에 정착된 듯하다. 한국에도 일부 있지만, 태블릿을 통한 메뉴 주문과 계산이 상식화했다. 일본 대중식당의 대명사인 고기덮밥집 요시노야(吉野家)를 보자. 들어가는 즉시 식탁 위 태블릿으로 주문을 한다. 터치 패널의 메뉴를 보면서 순서대로 주문하면 된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심지어 스페인어도 패널 속에 있다. 주문 후 대략 2분 내로 음식이 도착한다. 물은 셀프다. 음식을 배달할 때와 식사 뒤 계산 시에만 직원과 대면할 수 있다. 대략 50개 좌석 규모의 요시노야 점포라도 직원 두 명이면 운영이 가능하다. 요시노야의 모토이기도 하지만, ‘싸다. 빠르다. 맛있다’를 전면에 내세운다. 요시노야 간판 상품인 ‘426엔 고기덮밥’을 주문하고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모두 15분이면 충분하다. 현재의 요시노야 스타일 서비스는 식당, 슈퍼마켓, 호텔, 100엔숍 어디에 가서도 만날 수 있다. 고급 서비스 점포는 여전히 비교적 많은 직원을 채용한 상황이다. 반면 대중적 성격의 서비스업계는 ‘자동화 95%’로 무장하고 있다. 다만 ‘100% 자동화’는 아니다. 비상 상황에 대응하고, 점포 안전과 위생을 담당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낙관론 유통기한’ 끝… 한국의 미래는?

둘째, 에너지 절약이다. 일본에서 편의점은 ‘마을의 냉장고’이자 동네를 환하게 지키는 ‘밤의 파수꾼’이다. 일본 내 편의점 수는 지난 1월 기준 5만7000여 개에 달한다. 한국 1만3000개에 비해 4배 정도 많다. 일본 편의점들의 연매출은 7조6000억 엔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점포 대부분은 원래 24시간 운영체제였다. 다만 올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18시간 체제를 도입하고 운영 인력도 줄이는 추세다. 놀라운 것은 밤의 파수꾼이던 편의점의 변신이다. 한여름 불꽃 같던 찬란한 불빛의 점포가 사라지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기존 불빛을 반으로 줄이거나 형광등 조도를 낮추는 점포가 급증하면서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호텔도 실내조명과 옥외 광고판 불빛을 아예 없애거나 줄이고 있다. 일본은 6월 1일을 기해 전기료를 29% 올렸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전기료를 30% 이상 인상하는 조치가 한 차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시의 어두움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일본의 상시 풍경으로 정착될 듯하다.

셋째로 주목할 부분은 외국인 노동력이다. 음식점, 편의점,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엄청 늘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외국인 입국이 중단됐던 것과 달리 지난해 10월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시에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중저가 식당 종업원은 중국인이 거의 대부분일 정도로 느껴진다. 도로 포장 등의 건설 현장은 방글라데시와 네팔 출신자들로 채워져 있다. 필자가 머무는 호텔의 청소 담당 절반도 베트남 출신 여성들이다. 놀라운 것은 외국인 노동력의 일본화다. 페루 출신 편의점 점장과 얘기를 나누면서 내린 결론이지만, 일본어는 물론 일 능력이나 속도, 나아가 서비스 정도가 거의 ‘일본인 아바타’ 수준이다.

비관적 세계관과 함께 걱정과 불안에 떨면서 살아가는 나라가 일본이다. 역설적이지만, 100엔숍, 유니클로, 니토리에 이어 서비스 자동화, 에너지 절약, 외국인 노동력 흡수도 불안과 걱정의 산물로 볼 수 있다. ‘1억2000만 일본인의 노파심’ 때문에 생활 대국으로의 변신이 가능했고, 어려움이 닥친 지금 순간도 순조롭게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낙관적 세계관에 반하는 생각이겠지만, 한국의 내일은 결코 밝지 않다. 어둡지는 않지만, 과거와 같은 밝은 세상도 앞으론 어렵다. 국내 경제와 북핵도 문제지만, 국제 경제와 외교 안보 관련 글로벌 쓰나미가 한꺼번에 밀려들 태세다. ‘설마’로 버티면서 그럭저럭 무사히 넘겨온 것이 해방 이후 78년간 한국의 모습이다. 올해는 다르다. 올빼미 하나 기르면서도 세상사 모든 것을 고려해야만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나 할까? 일본처럼 하루 종일 비관적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과거와 같은 낙관론의 유통기한은 이미 끝났다. 과연 한국은 위기를 맞아 100엔 숍, 유니클로, 니토리 같은 구원투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현장과 당장에 강한 한국이 과연 어떤 식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행동에 나설 시간이 이미 시작됐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07호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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