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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정밀분석] ‘미래 가치주’ 김동연 경쟁력 있나 

‘비호감’ 가장 낮은 정치인, 확장 가능성도 높아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투자유치 성과로 ‘경제 능력’ 입증… 중도·보수 유권자에 눈도장
정부·여당과 대립각 세우며 진보진영 미래주자로 자리매김 도모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북도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중앙정치 무대에서 스킨십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 사진:경기도
9월 15일 한국갤럽의 주요 정치인 호감-비호감도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가장 호감이 가는 정치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꼽혔다. 35%를 얻었다. 이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3%, 홍준표 대구시장이 30%를 얻었다. 4위는 29%를 받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였다. 김 지사는 이번에 처음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호감도보다 눈에 띈 건 비호감도다. 오세훈 시장의 비호감도는 48%였다. 한동훈 장관과 홍준표 시장은 각각 50%, 55%로 높게 나타났다. 뒷순위에 있는 다른 정치인들도 60% 안팎의 비호감도를 보였다. 비호감도가 가장 낮은 인물은 김 지사였다. 41%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조사 결과 중 주목할 부분은 김 지사의 호감도와 비호감도 괴리다. 조사 대상 다른 인물들의 경우 대개 비호감도가 높아지면 호감도가 낮아지고, 비호감도가 낮아지면 호감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띤다. 그런데 유독 김 지사의 양쪽 사이 간극이 크다. 한 정치 평론가는 “호감은 아니지만, 비호감도 아니어서 좀 더 지켜보겠다고 판단을 유보한 사람이 많아서 나타난 결과”라며 “앞으로 확장 가능성이 가장 큰 정치인이란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지사가 정치무대에 등장한 건 불과 3년여밖에 안 됐다. 2018년 말 문재인 정부의 경제부총리로 오랜 경제 관료 생활을 마쳤다. 1년 뒤 ‘사단법인 유쾌한반란’과 정당 ‘새로운물결’을 만들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양보했지만, 경기도지사에 당선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확보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는 김 지사가 이른 시간에 그 나름의 포지셔닝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이렇다 할 지지기반 없이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그의 성공을 뒷받침한 건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정통 경제 관료로서 얻은 정책 노하우와 네트워크로 경기도의 경제 영토를 세계무대로 확장한 성과를 꼽을 수 있다.

김 지사는 취임하면서 ‘임기 내 투자 유치 100조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100조원은 경기도의 3년 치 예산(2023년 기준 약 34조원)과 맞먹는 규모다. 코로나19 경기침체 속에서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았는데도 1년 만에 34조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도지사 취임 1년 만에 투자유치 34조 달성


▎6월 23일 경기 화성시의 YBM 연수원에서 열린 ‘2023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 참여자들과 대화’에서 김동연 지사는 “수저 색깔 상관없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어 주겠다”고 강조했다. / 사진:경기도
투자 유치 분야는 주로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에 집중됐다. 지난해 7월 취임하자마자 세계 1위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기업인 미국 AMAT사의 연구개발센터와 세계 1위 전력반도체 기업 온세미의 신소재 연구 및 제조시설을 연이어 유치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인 네덜란드 ASML을 화성 반도체 클러스터에 유치했고, 용인에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삼성전자는 이곳에 앞으로 300조원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밖에 2차전지, 탄소저감 친환경 복합 물류센터(ESR켄달스퀘어), 현대모비스 첨단 자동차 생산시설 등 경기도 곳곳에 미래 성장동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적 추세인 기후변화 대응에도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지난 5월 17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첫 삽을 떴다. 공공기관 RE100 실행계획을 확정해 경기도 공공기관 전체가 RE100 실천을 주도하기로 했다. 이는 중앙·지방정부를 통틀어 최초 시도다. ‘경기 RE100’을 통해 전력소비량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까지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40%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원전 6기 규모(9GWh)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2026년까지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산업단지에는 지붕형 태양광 발전시설을 보급하고, 영농형 태양광 발전시설을 도입해 온실가스 감축 활동 참여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우선 공공기관부터 옥상과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해 임기 안에 공공기관 전력 소비량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김 지사는 “산단 RE100 투자협약으로 4조원을 유치했다. 세금 한 푼 안 들이고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참여 기업은 이익을 얻는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지사의 글로벌 경제 인맥이 비즈니스 확장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취임 후 미국, 중국, 영국, 독일 등 20개국 이상의 대사를 만나 경제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는 세 번이나 만났다. 수원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을 함께 관람하며 스킨십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해 골드버그 대사와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등을 만나 한·미 동맹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투자 개념 ‘기회소득’으로 이재명 ‘기본소득’과 차별화


▎지난 1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평택시 고덕면에 있는 린데(Linde) 평택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경기도
그뿐만 아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그레첸휘트머 미시간 주지사와 제이 인즐리 워싱턴 주지사 등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두 번째 성공 동력은 사회적 담론인 ‘기회’를 정책 전반에 녹였다는 점이다. 앞서 이재명 전 지사가 내건 ‘기본’ 정책 시리즈가 복지에 방점을 찍었다면, 김 지사가 내건 ‘기회’ 정책 시리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투자’의 개념에 가깝다. 복지 확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보수진영과의 논쟁을 피하는 묘수다.

지난해 11월 전국 광역지자체 중 처음으로 직업훈련 장애인을 대상으로 ‘기회수당’을 도입했다. 또 ‘장애인 누림통장’ 사업을 도입했다. 만 19세 청년 중증장애인 가입자가 매월 적립한 금액만큼 경기도가 적금해 2년 후 돌려받는 사업이다. 우선 1200명을 대상으로 시작해 올해에는 만 19~21세 3600명으로 확대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기회소득’ 도입을 가시화했다. 기회소득은 민선 8기 핵심 공약이다. 시장에서 소외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들이 사회적 가치 창출인 예술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게끔 일정한 소득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7월에 첫 지원 대상자를 선정해 238명에게 75만원씩 지급했다. 지원 대상에게는 연간 150만원을 지급한다.

장애인도 기회소득을 받았다. 중증장애인에게 월 5만원씩 6개월간 총 3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신청자들이 운동 목표를 세워 건강을 챙기는 활동을 하면 현금을 지급해 이들의 가치 활동을 돕는 방식이다.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마을공동체에는 ‘햇빛 기회소득’을 매월 15만원씩 20년간 지원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기회소득은 사회적 기여에 대해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가치 투자”라는 게 김 지사의 설명이다.

김 지사가 특히 정책적 관심을 크게 두는 것은 청년 관련 사업이다. 아주대학교 총장을 지낼 때 청년의 고충을 곁에서 봤던 것과, 그 자신이 ‘흙수저’를 바꾸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젊은 시절의 경험이 정책의 토대가 됐다. 그렇게 탄생한 게 이른바 ‘청년 기회패키지’다.

지난 4~5월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사다리’ 사업을 통해 미국 미시간대, 뉴욕주립대, 워싱턴대, 호주 시드니대, 중국 푸단대에 각각 30명에서 50명씩 총 200명의 연수생을 선발했다. 150명을 선정한 첫 모집에선 4682명이 신청해 31대 1의 열띤 경쟁률을 보였다.

보수에는 ‘능력’, 진보에는 ‘선명성’ 띄우기 행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란 슬로건을 내건 ‘경기청년 갭이어 프로그램’도 기회 사다리를 복원할 핵심 사업으로 꼽을 수 있다. 만 19~34세 청년들이 기획한 프로젝트에 1인 300만~50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2기에 걸쳐 600명이 사업에 참여했다. 1기에 참여한 청년들은 디자인, 교육, 영화·드라마,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 환경·생태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진로를 탐색했다.

경기청년 역량강화 기회 지원 사업과 ‘기회사다리 금융 사업’도 관심을 끈다. 역량강화 기회 지원 사업은 미취업 청년이 취업에 필요한 자격을 획득하는 데 드는 비용을 연간 30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또 만 25~34세 청년을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과 우대금리 저축을 이용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올해 안에 출시할 예정이다. 앞서 경기도는 하나은행과 1조원 규모의 대출을 공급하는 협약을 맺었다.

김 지사가 지난 1년간 보여준 행보는 지방선거에서 그에게 표를 준 이들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방선거 당시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는 김 지사를 지지하는 유권자 성향을 ‘보수우파’와 ‘민주당 지지자’로 나눴다. 보수우파에서 초선 의원인 김은혜 당시 국민의힘 후보보다 경제부총리 출신의 경제정책 전문가를 경기도지사 적임으로 판단했다는 거다. 지난 1년간 거둔 괄목할 투자 유치와 경기도를 미래 성장동력 주력 기지화한 것은 그 기대에 꼭 맞는 성과다. “향후 중도를 넘어 보수 일부까지 흡인할 수 있는 상당한 경쟁력”(평론가 A씨)이란 것이다.

최근 김 지사가 적극적으로 정치 현안에 의견을 내놓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9월 초 여름휴가에서 복귀한 김 지사는 “민생 재정·적극 재정·확장 재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긴축 재정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기조와 반대의 길을 걷겠다는 거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에 대한 김 지사의 비판은 직설적이다. “정부·여당에 ‘윤심’만 있고 ‘민심’은 없다”라거나 “태극기부대, 극우 유투버를 보는 기분”, “이념 논쟁이 아니라 ‘가치의 빈곤’”과 같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변화를 진보 성향 지지자들을 겨냥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으로 읽는다. 민주당의 기획통으로 꼽히는 원외 인사는 “무색무취, 경제관료 이력은 김 지사의 정치적 걸림돌이었다. 정부와 각을 세우고 현안에 목소리를 냄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한다면 미래 주자로서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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