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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메가서울이 일으킨 지역균형발전 ‘나비효과’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김포의 서울 편입 논란, 지방 어젠다에 대한 여론 환기
수도권, 지방 공히 내부 재편 통한 경쟁력 제고 시대로


▎경기도 김포시 한 거리에 내걸린 서울 편입 관련 현수막. / 사진:연합뉴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엉뚱한 차를 탔는데 가서 보니 목적지였다는 인생의 또 다른 섭리를 가리키는 인도의 속담이다. 지역균형발전의 관점에서 보자면 김포를 서울에 편입하자는 ‘메가서울’ 논란이 여기에 해당할 수도 있다. 잘못 탄 기차(메가서울)가 목적지(지역균형발전 여론 환기)에 데려다주리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마강래 중앙대 교수 같은 경우다. 그는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문제가 이렇게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될 줄 몰랐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다분히 정치적 계산에서 출발한 메가서울 논의가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바로 ‘균형발전’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관심’이다.

마 교수는 “국민이 메가시티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균형발전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가는 것 같다”면서 “지역균형발전 어젠다가 대중에게 더 가까이 가게 됐다는 측면에서는 (메가서울 논란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관전 소감을 밝혔다.

정략적 공약인 메가서울 어젠다가 어떻게 지역균형발전 여론을 환기하게 되는 걸까? 이슈를 추적하면 그 맥락이 드러난다.

“메가시티가 균형발전 일깨워”


▎10월 30일 김포한강 차량기지에서 열린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마련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김기현(뒷줄 오른쪽에서 셋째) 국민의힘 대표. / 사진:연합뉴스
내년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유권자 표심(票心)을 겨냥한 개발 공약이 봇물 터지듯 한다. 그것도 최대 승부처로 불리는 수도권을 정조준한다. 최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불을 지핀,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는 이른바 ‘메가서울’론과 민주당이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는 경기도 1기 신도시 개발론이 대표적이다. 수도권 집중, 수도권 과밀을 부추기는 정책이 남발될 조짐마저 보인다.

“수도권 집중을 더 심화시키는 김포시 서울 편입은 지방화 시대에 역행하는 반시대적 발상”(홍준표 대구광역시장)과 같은 비수도권의 반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나아가 홍 시장은 “서울 위성도시 일부 표를 노리고 추진하는 김포시의 서울 편입은 반짝 특수나 노리는 떴다방을 연상시킨다”고 당 지도부를 통타했다.

메가서울은 수도권에서도 반발을 샀다.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은 11월 6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포의 서울 편입 주장은 제대로 검토도 안 됐고, 국민적 공감대도 없는 정치공학적 포퓰리즘”이라고 직격했다. 행정구역 개편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하거나 지방의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관련 지자체인 서울, 경기도의 주민과 의회가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 김포의 서울 편입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유 시장의 논리였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여권 내에서도 속출했고, 그걸 국민의힘은 반박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메가서울 구상과 관련해 “편입되는 지역 주민들은 자산 가치 증식을 기대하게 된다”면서 “이는 고도의 선거 전략”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사실 메가서울은 당사자들의 일상 동기에서 촉발됐다. 김동연 경기지사의 공약대로 경기도가 남북으로 분할되면 지리적 고립으로 오갈 데가 애매한 김포시의 김병수 시장이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요청했다. 이에 총선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호응해 전국적 이슈로 발전한 게 바로 메가 서울이다. 어떤 선구적 직감이나 정책적 안목보다는 지자체장과 정치인으로서의 직업적 고려가 우선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하남·과천·구리 등 서울과 접한 기초지자체의 서울 편입 요구가 가세했다. 주요 일간지 정치면에 국내외 메가시티 사례가 소개되고 광역지자체장들의 찬반 주장이 지면을 후끈 달궜다. 인구 1000만 명 규모의 메가시티, 초거대 도시 연결권을 뜻하는 ‘메가 리전(region)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 생활권을 만드는 방안이 세인의 눈과 귀를 자극하기에 이르렀다.

여권 내부에서부터 빈축을 사는 메가서울 정책이 국민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이런 환경은 마강래 교수같이 지역균형발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기회를 엿보게 한다. 메가서울 이슈는 지역균형발전 어젠다와 패키지로 다뤄질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대한민국은 지난 15년간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144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는 통계가 있다. 그 사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역대 정부가 하나같이 지역 살리기를 강조했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는 드물었다. 오히려 SK하이닉스가 경북 구미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방향을 틀면서 지방은 뒤통수를 맞은 듯한 큰 충격파에 휩싸였다. 어느샌가 ‘지방’ 관련 어젠다는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책의 블랙홀이 돼버렸다. 한국은행은 11월 2일 발표한 ‘지역 간 인구 이동과 지역 경제’ 보고서에서 지방이 처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오랜 기간 추진해왔고, 낙후지역의 삶의 질 개선 및 자생적 성장기반 확충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하는 양상을 보여 정책적 노력이 한계를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의 마음을 메가시티로 인도한 국민의힘


▎서울 등 수도권 인구가 2020년 전체 인구의 50%를 돌파했다. / 사진:연합뉴스
지방, 지역, 균형발전 키워드는 한국 사회에서 수용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키맨인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 즈음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어젠다가 형해(形骸)화한다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고 말한 바 있다. 지역균형발전 의제라는 게 마치 투명인간처럼 눈앞에 있어도 의미를 갖지 못하는 존재와 같다는 심경이 깔린 발언이다.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가 수도권 중심으로 고착돼 있어 지방의 정책은 일회성 효과에 그치곤 했다. 더구나 능률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 ‘선택과 집중’의 원리 앞에서 지역균형 이슈는 맥을 못 추었다. 사람에게는 시야(視野)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이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거기에 그 사물이 있다고 사람이 인식해야 비로소 ‘보인다’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국민의 안중에 없었고, 늘 여론의 심리적 저점(低點)에 머물렀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메가서울을 이슈화하는 통에 국민의 마음이 메가시티에 쏠렸다. 그 메가시티 범주에 비수도권 ‘4+3 초광역권’ 계획도 포함돼 국민에게 각인될 좋은 타이밍을 얻었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도 메가서울 이슈를 지역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집중하는 기회로 삼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마강래 교수 말대로 그렇게 띄우려고 해도 뜨지 않던 지역 회생 어젠다가 마치 초전도체처럼 단번에 공중에 부양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제안자들의 취지와 무관하게 메가서울은 지역균형발전 중요성을 부각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행정이나 법리로는 절대 안 풀리는 난제가 표 계산으로 움직이는 정치에 의해 활로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강래 교수는 “행정구역 개편 문제도 지방을 대상으로 할 때는 전혀 먹히지 않더니 김포시 편입 문제로 가니 갑자기 불이 붙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마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지금과 같은 기회를 놓치면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이참에 상향식(Bottom up)의 행정구역 개편 문제도 본격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금까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크게 보면 ‘수도권 과밀 억제’, ‘지방 보강’이라는 축으로 짜였다. 수도권을 눌러 지방을 키우는 풍선효과를 기대하는 구조이다. 수도권도 지방 살리기 명분에 대놓고 토를 달지 못했다. 그 침묵의 시간 동안 수도권은 규제 완화를 통해 지속해서 몸집을 불려왔을 뿐이다.

과거에도 수도권 광역지자체장들이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처럼 수도권을 광역화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주장을 편 적은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의 대(大)수도론, 남경필 경기지사의 광역서울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책에 뿌리를 둔 관료라기보다는 정치에 기반한 행정가들이었다. 정책 실무자들은 설령 그렇게 믿더라도 여론을 의식해 공론화에는 신중을 기했다.

확장적 발전 전략이 안 통하는 시대


▎1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 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김현동
김포를 서울에 편입하는 이른바 ‘메가서울’ 제안은 기존의 흐름과는 판이하다. 수도권과 지방이 각기 다른 경로로 살길을 찾자는 도발에 가까운 선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도권과 지방이 경쟁하라는 말로도 들린다. 서울 또는 수도권과 지방을 연계해 균형 발전의 모멘텀을 모색하던 종래의 접근법과 확연히 다른 것이다. 수도권은 수도권 나름대로 경쟁력을 강화하고픈 ‘욕망’을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변화하는 시대에 조응하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성장기를 지나 수축기에 접어든 대한민국이 과거와 같은 확장형 발전 전략을 쓰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조만간 수도권에도 인구 감소라는 파도가 밀려올 가능성이 높은 만큼 공간 구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공간을 확장하기보다는 공간 내부를 체계적으로 재편해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동일한 과제를 안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이제 지방도 모든 지역을 동일한 강도(强度)로 유지하고, 개발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메가서울에 대한 비수도권 반발이 격화되자, 국민의힘은 비수도권 거점 도시도 주변 지역과 묶어 개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국민의힘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위원장 조경태 의원)’는 서울, 부산, 광주라는 3개 축의 메가시티와 대전, 대구를 잇는 메가시티도 필요하다고 군불을 땠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 생활권을 재편하는 방안이 골자다.

이처럼 메가서울 등 ‘서울 확장론’은 지방 이슈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이 비(非)가역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기능을 한다.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11월 1일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통합 계획인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했다. 지자체들이 자율적으로 제안한 비수도권 ‘4+3 초광역권’ 발전계획도 함께 선보였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권, 충청권, 광주·전남권 등 4대 초광역권과 강원권, 전북권, 제주권 등 3대 특별자치권 등 7개 초광역권을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담았다.

비수도권 초광역 행정통합도 지역균형발전의 한 축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인구소멸 시대에 초광역 행정통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입장을 밝혔다. “인구가 500만 이상 되면 지방에서도 수도권에서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릴 수 있다”는 우 위원장의 발언에서 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전략의 윤곽이 드러난다.

초광역권이 완전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영남권 등 ‘4대 초광역 경제권’ 논의가 뜨거웠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7대 광역 경제권’을 띄웠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위원회가 추진하는 비수도권 ‘4+3 초광역권’ 건설 계획이든, 국민의힘이 말하는 서울, 부산, 광주 3개 축 메가시티든 정교한 액션 플랜으로 차별화하지 않는다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회의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행정통합은 바람직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 “지방자치시대에 각종 저항으로 인한 난제 중의 난제”라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 행정통합에는 법률적·행정적 절차가 복잡하게 적용된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자체장은 주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정구역 개편안을 주민투표에 부치거나 지방의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지방자치법, 주민투표법,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 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등에서 정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공무원, 교통, 학군 등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해 잡음만 양산한 채 좌초되곤 했던 게 행정통합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김경수는 왜 행정통합을 우회했나

막히면 돌아가라고 했다. 이런 행정통합의 함정을 우회해 행정을 연계 운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사례가 바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추진했던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플랜이다. 3개 광역지자체를 아우르는 ‘메가시티’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목표로 한 건 행정통합이 아닌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설립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광역지자체가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특별지방자치단체’를 설립하게끔 지방자치법을 개정했다. 이전까지 광역지자체 간 협의에 의존했던 광역 단위의 행정 사무를 새로 만들어지는 ‘특별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해 처리하는 방법론이다. 우선 ‘특별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부산·울산·창원·진주 등 4대 거점 도시를 잇는 광역대중교통망을 확충, 거점 도시를 1시간 생활권으로 연결하자는 게 부·울·경 메가시티의 당면 목표였다. 당시 경남연구원장으로 부·울·경 메가시티 작업에 참여했던 홍재우 인제대 교수는 “부·울·경 메가시티를 행정통합이 아닌, 행정체계로서의 특별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반발과 변수가 많은 행정통합보다는 상위기구를 통한 행정 협력을 추진하는 단계론적 접근이 눈길을 끈다(관련 기사 72쪽).

메가시티 이후의 농촌, 지방에 대한 해법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수도권에 비견되는 지방 거점 도시를 육성하는 과정에서 농촌과 자연이 소외될 경우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메가시티에 속하지 않는 외곽의 시골, 전원의 존재 이유에 대해 성 전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곡물 생산량이 줄어드는 요즘 농업과 농촌을 보존하면서 함께 가는 미래지향적 전략을 짜야 한다. 농촌 소멸, 기후변화 문제에 답하지 않고 제시하는 메가시티 정책은 선동에 다름 아니다.”

지방 회생을 위한 메가시티, 초광역권을 건설하자면 행정구역 개편을 해야 한다. 행정구역 개편은 장거리 경주와도 같다. 완주가 쉽지도 않고, 이른 시간에 결론을 보기도 어렵다. 그 전에 지자체 간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행정통합 이후의 부작용을 미리 대비하는 게 더 지혜로운 선택일 수 있다.

-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202312호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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