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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부 | 박 대통령과 ‘비서실 3인방’의 숙명 - “청와대에 VIP 우군이 없다” 

대통령이 비서진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청와대 엘리트들 정서적 반감 고개… 장관·수석·비서관 겉도는 가운데 정윤회 같은 허상이 실세로 둔갑한 것 

집권 2년 차에 불과한 박근혜 정부에서 때아닌 궁중암투가 국정을 뒤흔든다. 대통령이 두 번에 걸쳐 입장 표명을 하는가 하면 정권의 비선 실세로 불리는 이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 나갔다. 현 정부의 권력 투쟁이 역대 정부보다 유난히 시끄럽고 황당한 이유는 뭘까?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을 일러 “15년 전부터 임무를 충실히 해왔다”고 말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정국이 요동을 치던 12월 7일. 청와대 오찬 회동을 마치고 국회로 돌아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굳게 닫은 입을 좀처럼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오는 동안 청와대 오찬과 관련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라며 빗발치는 기자들의 전화에 일절 응대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김 대표는 몇몇 지인과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문건 파동이나 청와대 오찬 관련 언급을 극도로 삼갔다.

일요일인 이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지도부와 당 소속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 처리한 당 지도부와 예결위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였지만 세상의 시선은 온통 박 대통령의 입에 쏠렸다. 아니나다를까 박 대통령은 “정윤회 씨는 이미 오래전에 내 옆을 떠났고 연락도 끊긴 사람”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정씨와 함께 파워게임의 한 축으로 거론된 친동생 박지만 EG 회장도 “박지만 부부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고 못박았다. 결과적으로 “오래전에 곁을 떠난 사람과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는 사람이 갈등을 빚고 권력 암투를 벌였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일부에서 제기돼온 친인척과 측근들 간의 갈등설을 일축했다.

대통령 발언의 방점은 뒤에 찍혔는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이재만 총무·정호성 제1부속·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 대해서도 “3명은 15년 전부터 내곁에 있었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왔다. 그간 물의를 일으키거나 잘못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권력 암투를 벌였다면 내가 옆에 뒀겠나? 여태껏 (청와대에)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3인방을 비롯한 여권 ‘십상시(十常侍)’ 회동을 정씨가 주도 했다는 ‘정윤회 문건’도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확인하는 자리였다.

김무성 대표도 2007년 대선 당시부터 박근혜 캠프의 핵심으로 활동했기에 박 대통령과 ‘3인방’에게 정통한 편이다. 현안에 대해 말을 아끼던 김 대표도 3인방 관련 대목에서는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세 명과 굉장히 잘 아는 사이”라고 소개했다. 또 “세상에 떠도는 소문은 사실보다 훨씬 왜곡돼서 전달된다”고 말했다. 특히 “떠도는 얘기만으로 판단하면 절대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건에 나도는 주장들이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과장돼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여성 대통령과 청와대의 특수성

지금 여권 내부는 강호의 고수들이 총출동해 벌이는 무림활극을 떠올리게 한다. 비선 실세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 씨, 대통령 동생 박지만 회장에서부터 청와대 실세 그룹으로 불리는 3인방, 해외 출장 중 면직 조치 당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윤회 문건’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문건을 직접 작성한 박관천 경정, 이를 수사하는 검찰과 보도하는 언론까지 뛰어들었다. 문건의 진실과 유출 경위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럼에도 청와대 3인방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한다.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은 12월 11일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박 대통령을 수행했다. 정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 간 양자회담에서 배석했고, 안 비서관도 박 대통령 수행 업무를 계속했다.

<월간중앙>은 2014년 9월호에서 ‘대통령과 일체화된 침묵의 메신저들’이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3인방 파워의 실체를 분석한 적이 있다. ‘정윤회 문건’이 불러온 엄청난 파장도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3인방이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이들을 각별히 중용하면서 정윤회 씨의 비선 실세 의혹이 부풀려졌다. 문건 파동의 핵심인물인 조응천 전 비서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만·안봉근 비서관이 부당한 인사 개입을 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하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인사 개입 등 국정에 깊숙이 간여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3인방의 활동 반경과 권능이 청와대 다른 참모들의 영역과 마찰을 일으켰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언론이 3인방의 퇴진을 요구하는데도 이들은 굳건하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대 정부의 탄생과 몰락 과정을 줄곧 지켜보았던 정치권의 한 분석가는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로 여성 대통령의 존재를 꼽았다. 여기에다 3인방이 더해짐으로써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아주 독특한 권력 매커니즘이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이 분석가는 “국민이나 정치권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을 갖게 된 청와대의 특수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구중궁궐에 꼭꼭 숨은 거나 다르지 않고, 3인방은 박 대통령을 대신하는 분신이다.” 이 분석가는 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에 견줘 가용한 대외활동 시간이 현저히 줄어 들었다는 점을 먼저 꼽았다.

여성은 외출 준비에 남성보다 많은 시간을 들인다. 자연히 오전 일과의 시작이 남성보다 더디다. 대통령이라고 다를 바 없다. 남성 대통령에 비해 여성 대통령은 화장을 하거나 머리를 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일과가 시작되는 시점이 남성 대통령보다는 늦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일과 후도 마찬가지.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화장을 지우는 순간 외부인들과의 접촉 범위가 극도로 제한된다. 예기치 않는 상황이 와도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여성 대통령도 일과 후의 활동량이 남성 대통령에 뒤진다는 비교가 가능하다.

역사상 가장 만나기 어려운 대통령?


▎1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의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이 12월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미얀마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2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12월 14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가운데). 검찰은 이 비서관을 상대로 정윤회 씨와의 비밀회동 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
앞서 언급된 이 분석가는 이런 기조 위에서 박 대통령이 여성이라서 갖는 접근성의 한계에 주목한다. 박 대통령의 경우 일과를 마치고 관저에 한번 들어가면 외부인의 접근이 어렵게 된다. 역대 남성 대통령의 경우 한밤중에도 자기 계보 인사들과 만남을 갖는다든가, 심지어 일과 중에는 절대 접근할 수 없는 ‘보양식’ 같은 걸 즐기러 야행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비공식 모임은 오히려 일과 후에 더 많은 편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낮보다 밤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던 게 과거 정부의 경우다.

박 대통령은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과 후의 생활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보고서를 보는 시간이 제일 많다. 제 개인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했다. “보고서를 보면서 장관, 수석 비서관과 수시로 통화도 하면서 이것저것 결정하고 나면 어떤 때는 밤 늦은 시각이 된다.” 관저에서도 업무를 보기에 따로 취미 활동을 하거나 누구를 만날 여유가 없다는 말로 들렸다.


▎12월 3일 광주 공군비행장에서 박 대통령을 수행 중인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문건 파동 이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대통령을 수행한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태가 온갖 억측과 의혹을 불러온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분석가는 “여성 대통령과 남성 대통령의 차이점을 알면 지금의 사태를 이해하기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활동량이 줄어들수록 3인방의 일은 늘어난다. 대통령의 활동반경과 3인방의 파워는 반비례한다.”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아침형 인간’이었다. 군 출신은 군 출신대로 아침 6시면 기상하는 게 습관화됐고, 정치인 출신은 또 그들대로 조찬 문화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실질적인 일과는 7시 이전에 시작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또 일과후 늦은 시간까지 약속을 잡는 일도 허다하다. 밤 10시에 모든 활동이 종료된다고 가정하면 남성 대통령의 일과는 줄잡아 열댓 시간까지 늘어진다. 여성인 박 대통령이 8시간 정도 공식활동을 한다고 가정하면 남성 대통령이 외부 활동에 쓸 시간이 더 많아진다.

이런 여건에서 박 대통령을 만나기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다. 외부 인사를 만날 시간이 역대 대통령에 비해 줄어든 만큼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경쟁은 치열해진다. 3인방이 막강 파워를 행사하는 한 요인이다. 대통령을 거의 매일 만나게 될 뿐 아니라 대통령 면담 시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의 전형이다. 3인방뿐만 아니라 장관이든, 정치인이든, 수석비서관이든 권력의 핵심 인사들의 파워는 대통령과의 거리, 접촉빈도가 결정한다.

문민정부의 한 고위급 인사에 따르면 당시 소통령이라 불렸던 YS 차남 김현철 씨 파워의 근원은 오직 하나라고 단언했다. “주말마다 아버지 김영삼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는것 외에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는 “대통령을 만나는 것 자체가 힘이요 권력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기준이라면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는 박지만 EG회장의 경우 실세 반열에 들지 못하게 된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안 만난다고 한 이상 박 회장에게 어떤 파워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게 이 인사의 진단이다.

동일한 잣대로 보면 국가정보원장의 파워도 기대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7월 18일 취임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은 취임 후 100일이 되도록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게 고작 ‘몇 차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28일 국가정보원에 대한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그 윤곽이 드러났다. “요즘도 가끔 박 대통령을 만나서 보고하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이 원장은 “몇 번 만났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회의에 참석한 한 정보위원은 “이 원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만난다고 말했다”면서 “그 횟수는 서너 번 정도로 느껴졌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정권의 실세라 하기에는 대통령과의 대면 기회가 적은 게 사실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이병기 국정원장의 파워

3인방은 어떨까? “대통령과의 거리와 접촉 빈도로 따지면 이들이 부통령”이라는 비유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서울 삼성동 사저에 출입한 이들은 정치권에서는 국회 비서진 등 극소수로 제한됐다. 특히 3인방은 일이 있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드나들었다. 박 대통령도 이런 관계에 익숙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거처를 청와대로 옮겼다 해서 본질적인 변화가 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이들 3인방을 오랜 기간 믿고 의지해왔다. 국회에서도 큰 잡음 없이 임무를 잘 수행해왔고 이제 청와대에서 최고권력자의 심부름을 한다.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는 박 대통령이 이들을 물러나게 하면 그 빈자리를 메울 사람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왔다.

상대적으로 국무위원,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가까이 하기에 조금 먼’ 존재다. 박근혜 정부의 장관들이 국무회의를 제외하곤 대통령을 잘 만나지 못한다는 건 언론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는 장관은 존재감이 떨어진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모르면 소신껏 처신하기 어렵고, 대통령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쉽사리 움직이지도 못한다.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 서류로 대신 보고를 받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예 난상토론이나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은 언감생심이다. 어떤 입장 표명도 사전에 준비된 원고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장관이든 청와대 수석이든 대통령과 지적인 교감을 하거나 사적인 자리에서 흉금을 터놓고 소통한다는 이들은 그리 흔치 않다.

대통령의 발언(‘청와대 진짜 실세는 진돗개’)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여권에 실세라고 할 만한 이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3인방이 실세라는 거나, 3인방과 과거에 함께 일한 정윤회 씨가 정권 최대 실세라는 소문이 횡행했던 것이다. 역대 정부의 경험에 견줘 누군가는 실세 노릇을 하리라는 관념에서 정윤회 씨와 같은 인물이 설정되고 문건 내용이 그럴싸하게 일반에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의원이 취합해서 비서에게 전달하세요”


▎1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2014년 1월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 최근 <세계일보>에 보도되면서 정치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2 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자 비선 실세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가운데) 씨가 12월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3 박 대통령의 친동생 박지만 EG회장(가운데)도 12월 15일 ‘정윤회 문건’ 유출 파동과 관련한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했다.
박 대통령은 실세는 용납하지 않지만 심부름꾼은 뒀다. 12월 7일 청와대 오찬에서 3인방을 일러 “권력자라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15년간 열심히 일해온 일개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이라고 언급했다. 친박계는 오래전부터 주요 현안을 3인방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방식에 길들여져(?) 왔다. 이는 박 대통령이 오래전 만들어놓은 프레임이기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박근혜 후보는 2006년 9월 경선 캠프를 발족했다. 얼마 뒤 캠프의 핵심인사 수십 명이 한자리에 모여 업무분장 방안을 논의했다. 이때 박 후보는 업무 공정에 대한 지침을 전달했다. 이때는 3인방에다 대선 직전에 작고한 이춘상 보좌관까지 총 4명의 비서진이 박 후보를 보좌할 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친박계 관계자의 회고담이다.

“당시 박 후보가 정책은 A의원이 취합해서 B비서를 통해 내게 보고하고, 조직과 민원은 C의원이 취합해서 D비서를 통해 내게 보고하라고 교통정리를 했다. 의원이 직접 후보에게 보고하는 게 아니라, 비서를 통해 보고하라는 주문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에 한 참석자는 망치로 머리를 한 방 맞은 듯했다고 하더라. 중진 의원들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후보의 결정에 이렇다 할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비서진에게 주어진 독특한 기능은 지금의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캠프의 핵심 인사들조차 현안을 후보에게 직보(直報)하지 못하고 중간다리(비서진)를 거쳐야 했다. 박 대통령이 3인방을 통해 주요 현안을 챙기는 구조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는게 앞서의 친박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내로라하는 친박계 실세 의원들도 비서를 통해 후보와 소통해야 하는 현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당시의 상황을 묘사했다. 친박계 내부에서 웬만한 국회의원보다 비서진의 파워가 더 세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유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보안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은 15년간 사고 없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3인방을 신뢰하고 편하게 생각한다. 박 대통령과 3인방과의 ‘운명적 관계’는 이렇듯 오랜 세월을 거쳐 다져졌다. 지금의 청와대도 유사한 구조로 돌아간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의중에 가장 정통한 이들이 바로 3인방이다.

여기서 그쳤다면 3인방은 고만고만한 역대 정부 문고리 권력의 하나로만 기억됐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3인방 역할은 대통령에게 오는 사람과 정보를 교통정리하는 ‘게이트키퍼(gatekeeper)’ 기능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정책과 발언을 외부로 전파하는 메신저(messenger) 기능도 한다. 그들이 직접 나서서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한다. 역대 문고리 권력이 가져보지 못한 권한이다.

이에 비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는 장관, 수석은 틀에 박힌 노멀(normal)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데 그친다. 그것도 3인방을 경유해 대통령에게 보고 한다. 피드백을 해주지 않으면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대통령과의 접근성이 현저히 제한된 수석이나 비서관일수록 소신을 갖고 일하기 어려워지는 게 현재의 청와대 구조다. 가끔씩 3인방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대통령의 뜻으로 간주된다. 어떤 지시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환경인지라 일부 수석 비서관도 슬금슬금 3인방의 눈치를 보게 되며, 심지어 부속실의 행정관에게도 기를 못편다는 목격담도 들린다. 이 과정에서 많은 청와대 엘리트들이 좌절에 빠진다고 여권의 소식통은 귀띔했다.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자면 3인방에서 잘 보여야 한다. 밖에서는 보는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은 대단한 직책 같지만 실상은 아무런 존재감도 없고, 때론 자괴감마저 들게 하는 자리다.”

과연 100% VIP의 뜻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위 위원 초청 오찬에서 “정윤회 씨는 오래전에 내 옆을 떠났고 연락도 끊긴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치권의 친박계 의원들이 이미 경험한 바다. 친박계 의원들 중에는 박근혜 의원 시절의 3인방에게 ‘보고 아닌 보고’를 하게 되고 주군 의중을 살피는 게 일상화됐었다. 박근혜 의원과 친박계 의원 사이에는 언제가 3인방이 자리했고 그걸 박 대통령은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여의도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3인방을 통해 박근혜 의원과 교감했듯이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또한 3인방을 거쳐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청와대든 어디든 자리가 주어지면 걸맞은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자리에 합당한 권한을 행사하기보다는 ‘나 죽었소’ 하고 일만 하는 조직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목에 힘을 주리라고 기대한 직원일수록 더 깊은 무력감을 빠지는 곳이 지금의 청와대다. 청와대 고위직 중에서도 수동적인 업무 패턴에 의욕을 상실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한다.

이런 판국에 청와대에 비상이 걸렸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경감 등 전직 청와대 근무자들이 ‘정윤회+3인방’ 관련 문건을 작성했고, 이게 시중에 유포되면서 사단이 커졌다. 청와대에서 일하던 비서관, 행정관이 ‘친정’ 격인 청와대를 향해 ‘총질’을 하는 모양새다.

문제는 은근히 조 전 비서관 쪽에 동조하는 경향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청와대와 친박계 내부 동향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지금 청와대 안에서는 문건 작성에 격분하기보다는 내심 동조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고 기류를 전했다. 특히 3인방으로의 힘 쏠림 현상에 반감을 가진 이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는 것. “비록 ‘정윤회 문건’이 사실관계에 어긋나고 심지어 신뢰도가 떨어지는 ‘정보보고’ 수준으로 전락했지만 청와대 직원들의 공통된 정서를 일정부분 반영하고 있다.”

그 정서란 게 별것 아니다. 청와대 근무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엘리트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상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3인방의 지시나 요청에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현실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조 전 비서관, 박 경정이 역시 그런 코스를 밟아 청와대에 입성했다. 3인방에 의해 청와대에서 내침을 당했다고 믿는 엘리트일수록 반감이 커지게 마련이다.

청와대 내 긴장감, 위화감도 증폭된다. 이를 테면 3인방이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특히 친박계 인사들에게는 3인방의 말은 곧 ‘VIP(박 대통령)의 뜻’이다. 하지만 3인방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과연 100% 대통령의 뜻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한다. 대통령의 의중을 빙자해 3인방이 자신들의 요구를 적당히 끼워넣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물론 대통령이 차마 직접 내리지 못하는 지시를 3인방이 알아서 대신 전하는 경우는 있을 것이다. 확인할 길이 없기에 일단은 수행한다. 지시에 따르면서도 업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묘한 반감이 축적될 수 있다고 황태순 평론가가 말했다. “청와대 3인방과 수석, 비서관, 장관간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긴장감이랄까, 거북함의 근원도 바로 이런 업무 프로세스에서 비롯된다.”

권력의 총량은 제한돼 있다. 누군가가 더 가져가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내놓아야 한다. 축소되는 권력에 좌절하는 사람도 생긴다. 지금 청와대가 그런 상황이라고 말들이 많다. 3인방은 이번 문건 파동을 거치면서 대통령의 확고한 신임을 재확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서실장과 3인방이 각기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지금 비서실장은 각 수석실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여운을 남겼다. “3인방은 옛날부터 그들의 역할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3인방을 통해서 일을 해결하려 든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수석들을 꽉 잡고는 있는데 사람이나 민원이나 다들 3인방에게 몰린다는 말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소수의 측근에게 폐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대통령을 접할 통로가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권력은 3인방에게 몰릴 수밖에 없고 소외된 세력이 불만을 갖고 분란을 일으킨다는 게 강 교수의 진단이다.

권력 내부의 속성을 잘 아는 이들은 묻는다. “청와대 안에서 박 대통령의 ‘진정한’ 우군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미 친박계는 인재풀에 바닥을 드러냈다. 친박계 중진 인사들은 지방선거(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나 내각(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 등으로 차출됐다. 지금 친박계 국회의원 중에서 당장 투입 가능한 인물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게 친박계 내부의 시각이다.

설상가상으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청와대 인적 쇄신을 요구한다. 그 핵심이 바로 3인방의 교체다. 국정 농단이란 뒷말이 끊이지 않았던 3인방과 내부 기강 확립에 실패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퇴진을 압박한다. 박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만 간다.

박 대통령은 원칙주의자다. 두 번의 공개석상 입장 표명이 말해주듯이 이번 문건 유출 파동은 국기문란 행위이고, 문건에 나온 내용은 찌리시 수준의 근거 없는 풍문에 불과하다. 그는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일방적인 주장에 흔들리지 말고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이 결국 검찰의 사실 규명으로 매듭지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이런 류의 음해와 유언비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3인방 중의 한 명이 재벌 2세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박근혜 대표가 들러 격려했다’, ‘정윤회 씨와 정호성 비서관이 인척 관계다’ 등 터무니없는 소문이 찌라시 등을 통해 나돌았다. 심지어 남녀의 부적절한 관계에 관한 억측도 가세했다. 몇몇 언론인이 3인방에게 확인 요청을 했을 정도이니 풍문이 그럴싸하게 유통된 듯하다. 친박계 한 소식통은 “박 대통령과 3인방은 10여 년에 걸친 의정활동 과정에서 그런 류의 황당한 음해성 소문에 자주 노출됐지만 하나같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지금의 청와대 문건 파동 또한 그런 유형의 하나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사가 할 일을 내시부에 맡기다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소외된 그룹에서 불만을 품고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이 청와대다.
박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밝혔듯이 문건에 나온 각종 주장을 실체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실체가 없는 데 어떻게 진실이 되느냐고 항변하고픈 심정일 것이다. 3인방을 내칠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에 따르면) ‘죄 없는’ 3인방을 여론에 밀려 단죄할 수 없는 사람이 박 대통령”이라고 앞서의 친박계 소식통이 규정했다. “버티다 버티다 빼앗길지언정 대통령 스스로 3인방의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과 10년 이상 정당 활동으로 호흡을 맞춰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박 대통령을 일러 “정치인보다는 지사형에 가깝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가는 유형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마냥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박 대통령 스스로가 “오직 국민의 삶이 편해지도록하는 생각밖에 없다”(12월 7일 청와대 오찬)고 말했다. 이 문제가 장기화해서 국정운영에 지장을 주면 국민의 삶을 생각해서 단안을 내리는 사람이 박 대통령이라는 말이다. 다만 지금 단계는 그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상황이라고 간주할 뿐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3인방은 15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3인방은 권력을 휘두르거나 왜곡할 의향이 없다고 못을 박는다. 문제는 ‘대통령의 심부름꾼’이라는 직책이 권력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행하는 모든 일은 일종의 어명(御命)이다. 어사(御史)가 할 일을 내시부(內侍府)에서 행하는 격이다. 불행한 운명은 여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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