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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특집 | 한국경제 위기다! 비관론자들의 고언(苦言) - 각 경제주체 기득권 버리고 노사 대타협 구조개혁 나서야 

대증요법보다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한 시점… 골든타임 놓치면 수십 년 장기 불황에 빠진다 


▎2014년 11월 17일 열린 새누리당-공무원단체 대표들 간 공무원연금개혁 토론회. 공무원연금 개혁은 박근혜정부 경제 구조개혁의 첫 번째 시험이다.
서울 남대문시장 안에는 시장 상인이나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꽤 유명한 노점 분식집이 있다. 이 집이 유명한 이유는 저렴한 잔치국수 가격 때문인데, 최근 한 그릇에 1500원 하던 국숫값을 1천원으로 내렸다. 대신 일하는 아주머니를 한 사람 줄였다. 주인은 “박리다매로 팔고 인건비를 줄여 현금을 확보해야 일수 채무를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남대문시장의 국숫값 인하 장면에는 우리 경제의 많은 문제가 응축돼 나타난다. 부채와 소비, 물가, 고용의 문제다. 가계부채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다. 소비를 급격히 위축시켜 물가를 내리게 하고 내려간 물가는 임금을 떨어뜨리거나 고용을 막는다. 이는 다시 소비를 위축시킨다. 남대문시장을 넘어 한국사회 전체에 만연한 경제의 악순환이다.

국내 경제에서 가계부채는 양과 질 모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비슷한 징후를 경고하는 비관론자도 있다. 이들의 우려에는 일리가 있다. 2008년 당시 집값 붕괴로 피해를 본 미국인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글로벌 경제에 파국을 불렀다는 것이 그들이 우려하는 근거다. 부채와 결합된 집값 폭락이다.

2014년 7월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8월, 10월 두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와 8월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 완화가 그것이다.

가계부채는 이미 1060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향후 소비의 발목을 잡고 경제 전반에 심각한 충격을 가져올 소재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도 증가 속도를 적절히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2금융권에 이어 은행권의 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추가 대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가계빚은 2013년 말 사상 처음 1천조원을 돌파했다. 2014년 1분기(1∼3월)에 3조5400억원, 2분기(4∼6월)에 13조 4400억원이 각각 불어났다. 정부의 경기부양 기조가 더욱 두드러진 3분기(7∼9월)에는 무려 22조원이 늘었다. 이런 흐름은 2014년 4분기(10∼12월)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10월 가계대출 증가액은 7조8천억원으로 월별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부채, 금융권보다 개인에게 치명적

부채의 양보다 질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우선 생계형 대출이 늘고 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저신용자 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의 20%를 넘어섰다.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다중채무자도 63%에 이른다.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은 2014년 3월 현재 68.7%로 1년 만에 26.5%포인트 늘었다. 통상 이 비율이 40%를 넘으면 빚을 갚을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한계가구’로 분류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채 증가의 원인을 주목한다. 성장이 정체하고 소득 재분배도 잘 이뤄지지 않는 징후로 본다. 그는 “금융기관보다 저소득층의 입장에서 부채 문제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성장의 온기가 주로 윗목으로만 가고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가계부채 조정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금융 시스템의 위기보다 가계 파산 가능성을 경계한다. 주택 구입과 연동된 가계부채는 금융시스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부동산 가격이 현 수준에서 2∼3년 안에 크게 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자본 대비 차입비율을 낮추는 ‘디레버리징’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은 가계 대출을 줄이고, 더 이상 대출을 받지 않는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궁극적으로는 소득이 늘어야 가계부채 문제가 해소된다. 빚을 정부가 갚아주거나 탕감해줄 수는 없다. 국민행복기금 처럼 한두 번 정도는 혹시 모른다. 상시적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저성장 국면에서 소득 증대를 통해 가계부채를 상환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임진 위원은 “연착륙 시도를 먼저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급하게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개인 파산이 늘어나고 경제 위축도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추가로 풀린 자금이 주택시장에 유입돼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약발이 두어 달도 가지 않았다. 부동산시장은 곧 매기가 사라졌고 미분양 물량도 다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대출규제를 푼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일명 ‘최경환노믹스’)을 실책으로 본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낮추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대출규제를 푼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부동산 대출규제는 부동산 규제가 아니라 금융 규제다.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장치다. 설혹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다 해도 그 리스크가 너무 크다.

부동산 규제가 완화된 지 4∼5개월이 지났지만 부동산시장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가계부채 급증과 전셋값 급등이라는 부작용만 낳았다. “애당초 번짓수를 잘못 찾았다”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부동산 침체는 곧 건설업계의 침체를 부른다. 금융사, 건설자재업체, 인테리어업체 등 수많은 관련업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국민의 경제 심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현 단계에서 서민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전셋값이다. 지칠 줄 모르고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은행이 발표한 ‘2014년 11월 전국 아파트 매매시장 동향’이 이를 웅변한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69.6%로 거의 70%에 육박했다. 전월 대비 0.2%포인트 상승하며 매달 기록을 경신한다. 서울은 전세가율 65.2%로 전월보다 0.3%포인트 올랐다. 12월 첫째 주에도 0.12% 상승해 25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향후 전망도 비관적이다. 2015년 서울의 신규 전세 수요는 5만 가구가 넘는다. 그러나 입주물량은 4만 가구를 조금 넘을 뿐이다. 새해에도 살인적인 전셋값 상승세는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소비자들이 주택 구매를 꺼려하고,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사람도 집을 사려 하지 않는다. 이들이 모두 전세 수요로 몰린다. 전셋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리 내리자 전세대출만 폭증


▎1. 2014년 12월 10일 관훈언론상 시상식에 참석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당과 정부의 책임자로 경제 정책의 큰 그림을 조율해야 하는 사이다. 2. 2014년 12월 2일 열린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는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왼쪽에서 둘째)
주택금융 완화로 대출된 돈은 다 어디로 갔나?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었지만, 대부분 생활비로 쓰였다”고 말한다. 아니면 신용대출이 주택담보대출로 전환됐을 뿐이다. 얼음이 물이 되었을 뿐이다. 금리가 내려가자 전세대출 수요만 폭증했다.

결국 ‘최경환노믹스’는 새로운 주택 구매 수요를 창출해내지 못했다. 의도와는 달리 전셋값만 올랐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소비만 더 위축시켰을 뿐이다. “처음부터 원인을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부동산리서치 전문기관 리얼투데이의 양지영 팀장은 “부동산시장이 과거처럼 투자자보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정책이 시장 분위기를 확 바꾸는데 성공하지 못한 이유다. 정부는 ‘에코세대’(1979~1992년 사이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의 특징도 간파하지 못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센터장은 “에코세대는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임대차를 원한다”고 분석한다. 그는 “전세가율이 70%에 육박해 보증금 반환의 안전성도 담보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정부가 나서서 에코세대의 월세시장 진입을 도와야 한다고도 했다. 인식의 차이가 커도 한참 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상식’을 말한다. “소득이 부족한 상황에서 돈을 계속 빌려줘봤자 ‘모르핀 효과’ 이상을 기대할 수없다”는 것이다. ‘모르핀 효과’가 떨어지면 원리금 상환이란 부담이 나타난다. 가계의 소비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의 경제 불황은 ‘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지금을 참고 견디면 곧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대증요법보다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한 시점인데, 정부 정책은 단기 처방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능가하는 장기 불황이 올 것이란 비관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가 당면한 위기는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존 발전모델이 해체 됐지만 새로운 모델이 정립되지 못해 구조적 위기가 초래됐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저성장, 저생산성, 실질임금 정체, 디플레이션 양상 등 한국경제 상황은 이미 일본형 장기불황과 닮았다”고 진단했다.

일부에서는 “장기불황이 40년을 지속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내놓은 이도 있다. 최근 경제 이슈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이다. 안 의원 역시 최경환노믹스의 가장 큰 문제점을 부채 증가로 본다. 가계부채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결국 장기불황으로 빠져들 것이란 입장이다. ‘급속한 노령화 추세’가 “40년 장기불황의 초입에 와 있다”는 안 의원 주장의 근거다.

삼성 누른 기업은 화웨이가 아닌 샤오미

안 의원의 진단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20년 장기불황을 경험한 일본과의 비교다. 그는 “장기불황에 빠져들면 일본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일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일본의경우 ▷저축률이 높고 ▷중소기업이 강하며 ▷불황 직전 50년 동안의 장기호황 시기에 대외자산을 많이 쌓아놓은 점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은 불황에 대한 내성이 우리보다 훨씬 충분하게 축적됐다는 분석이다. 그는 중국이 3년 후면 전 산업 분야에서 한국을 따라잡거나 추월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쌍두마차 체제’라는 새로운 경제 개념도 제시했다. “수출 및 대기업 지향 경제 패러다임으로 성장과 분배에 문제가 생겼다”는 문제의식이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체제, 중소기업 중심의 내수체제가 쌍두마차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불황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기업의 패러다임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교수)은 “한국 제조업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면 패러다임 전환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패러다임으로 승부한 사례로 애플과 중국 샤오미를 들었다. 이 교수는 “한국 기업인 아이리버가 MP3를 세계 최초로 발명했지만 최종 승자는 아이튠즈를 활용한 애플의 아이팟”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품 판매보다 서비스 판매로 경영 전략의 중심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최근 중국 시장에서 삼성을 압도한 샤오미가 스마트폰 기기 분야를 싼값에 넘겼다는 점에 주목했다. “샤오미가 소프트웨어나 응용 애플리케이션 등 부가서비스에서 매출을 올리는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샤오미보다 오래된 중국 업체 화웨이는 삼성처럼 기술력에 기초한 제품 성능을 중시했다. 결국 삼성을 누른 기업은 화웨이가 아닌 샤오미였다. 진짜 위협은 같은 방법으로 경쟁하려는 후발 기업이 아니라 샤오미처럼 다른 패러다임을 들고 나오는 후발주자라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기업 차원에서는 ‘패러다임 변화’가, 인구·노동·산업 측면에선 구조개혁이 필요한 단계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고령화 측면에서 한국 경제가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본의 경우 1994년 65세 인구 비중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진행되며 경제성장의 둔화가 시작됐다. 1960~70년대 9% 가까운 성장을 했지만 1990년대 초 0%대로 성장률이 급강하했다.

우리나라 노령인구 비중은 2011년 11.4%를 기록해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1960~8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9%가 넘었지만 현재 3%대에 머물고 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노후에 대한 우려로 소비·투자가 줄어 만성적 내수 부족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바로 이 대목이 한국경제가 장기적으로 직면한 ‘가장 구조적이고 치명적인 고민’이라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노동·교육·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고비용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기업, 노조, 의료·법률 등 서비스업계, ‘철밥통’ 정규직 등 유무형의 진입 장벽을 구축한 집단이 있다. 편하게 이득을 취하는 기득권자의 아성을 이제는 깨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지키려 노력할수록, 그 기득권이 근거하는 기반이 일거에 무너질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구조개혁 첫 단추


▎시중은행에서 주택 구입 관련 대출 상담을 하고 있는 고객. 정부의 완화 정책으로 대출은 크게 늘었지만 기대했던 부동산 경기 활성화 효과는 미미했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소가 주최한 경제관련 세미나에서도 같은 맥락의 전문가 진단이 제시됐다.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기득권에 안주해 이익을 취하는 경제적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activity)를 타파하는 게 경제 구조개혁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일본경제 전문가인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일본 장기 불황 초기처럼 자산 거품이 심하지 않다는 면에서 아직 기회가 있다”면서 “노동시장과 서비스산업 등의 개혁을 통해 장기 불황의 엄습을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규제 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으로 미래의 먹거리를 마련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장은 “규제는 곱하기에서 0과 같아서 9개를 풀어줘도 한 개가 남아 있으면 모든 일을 그르친다”고 지적했다. 하 원장은 “공무원이 규제를 풀었을 때 급여 인상이나 진급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기업 간의 빅딜을 통한 구조조정도 동원할 수 있는 해법 중의 하나라는 의견도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최근 삼성·한화 간 빅딜이 있었는데 삼성에 있으면 ‘삼성후자(後者)’였을 계열사가 한화에선 ‘한화전자(前者)’가 될 수 있다는 전망 아래 추진된것”이라고 봤다. 배 부원장은 “좀비기업 구조조정뿐 아니라 잘되는 기업들도 적절한 자리를 찾아가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 불황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점쳐지면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구조개혁’ 발언도 잦아지고 있다. 2015년에는 실물경기 회복과 구조개혁을 동시 추진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최 부총리의 구조개혁론의 첫째 방점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둘째는 노동시장 개혁에 찍혀 있다. 그는 “인력이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데,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비정규직에 대한 비보호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기업이 정규직을 겁이 나서 못 뽑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노동시장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노동시장 개혁은 원래 격렬한 저항이 예상되는 분야다. 정윤회 문건파동 등으로 리더십에 손상을 입은 현 정부가 과연 그 같은 개혁 동력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네덜란드, 독일의 노사 대타협 참고해야


▎2014년 11월 27일 20년 만에 부분파업을 실시한 현대중공업 노조원들. 노사는 향후 양보와 대타협을 통한 구조개혁에 함께 참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형기 교수는 새로운 발전모델 정립을 강조했다. “새로운 발전모델을 실현해야 장기불황의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발전모델을 정립하려면 노·사·정, 보수와 진보 간 대화와 소통이 필수적”이란 지적도 했다. 극단적 진보와 극단적 보수가 배격되고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최대공약수를 찾아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대타협의 주요 의제로는 ▷재벌체제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결합 ▷노동시장의 유연성·안정성 실현 ▷증세와 보편적 복지 실현 ▷신제조업 육성과 금융규제 ▷중소기업의 집단거래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 등을 꼽았다.

최근 특위 구성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이야말로 현 정부가 시작할 수 있는 가장 급선무의 구조개혁 과제인지 모른다. 공무원연금 적자에 대한 정부 보전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자못 심각하다. 최근 10년 새 재직 공무원은 8.5% 증가한 반면 공무원연금 수급자는 110%나 늘었다. 경제 성장과 세수 증가가 함께 이뤄진다면 지금의 공무원연금 운영에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이 발목을 잡는다. 세금납부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연금개혁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데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연금 적자에 대한 정부 보전액은 2014년에만 2조 4854억원이다. 현 정부에서 15조원, 차기 정부에선 32조원이나 부담해야 한다. 만일 개혁하지 않는다면 2024년엔 한해 9조 7210억원의 정부 보전액이 필요하다.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마다 스펙트럼이 조금씩 다르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금융보험학)는 현재의 새누리당 방안을 가장 적절한 것으로 본다. 김 교수는 “공무원들을 너무 힘들게 몰아가서도 안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오래 끌면 끌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개혁인 만큼 2015년 초에는 반드시 개혁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수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공무원 연금을 먼저 깎으려고 하지 말고 제도 자체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 말하는 “기득권 보호를 위해 공무원들이 위헌소지 논란을 제기한다는 것은 맞지 않은 얘기”라고 반박한다.

김 교수는 연금개혁 이전, 기존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1960년에 제정된 이후 거의 손보지 않은 제도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퇴직 이후 산하기관이나 관련 금융기관, 로펌으로 갔는데도 공무원연금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33년 이상 재직자에게 보험료를 물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그들이 만일 보험료를 낸다면 연간 7천억원 정도의 보험료가 더 걷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오래 근무한 사람들이 보험료를 내줘야 신규 또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노후 보장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연금제도 자체를 개선하고 건전하게 해서 거기서 일부를 조정하고, 그 다음에 같이 합의해서 삭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은 2015년 한국경제의 핫 이슈가 될것으로 전망된다. 더 이상 피해선 안 되는 긴급한 과제 라는데에 별 이견이 없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잠재성장률이 매년 0.1~0.2%포인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는 전제를 내세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금리인상 가능성, 중국경제 둔화, 일본의 공격적 거시경제정책 등 외부 경제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현 노동시장의 시스템 조정은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다”고 진단한다. 윤 위원은 노동시장의 구조개선 방향으로 탄력적 임금체계로의 전환, 평생교육과 직업훈련 기회의 확대, 복지-노동정책의 결합, 서비스업 선진화 등을 제시한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할 때 노사 대타협으로 고용률을 크게 올린 네덜란드, 독일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네덜란드는 1982년 바세나르협약(임금안정과 근로시간 단축)을 시작으로, 1993년 신노선 협약, 1995년 유연안정성 노사합의, 1999년 유연안정성 관련법 제정 등 연속적인 노사를 일구어냈다. 2013년에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협약’을 타결했다. 정규직 근로자의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공유, 기업의 일자리 확대 등이 그 핵심이었다. 사회적 위기 때마다 노사가 한 발짝씩 양보해 대타협이라는 산물을 내놓았다.

최 부총리가 언급했던 독일의 ‘하르츠(Hartz) 개혁’도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독일은 2003년 개혁 추진 당시 성장 정체, 실업률 상승, 공공재정 지출과 조세 부담 증가 등의 복합적 문제로 ‘환자’ 취급을 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독일의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정부가 폭스바겐 이사 출신인 페터 하르츠를 노동시장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기용했다. 그가 과감한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하면서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일괄 지급되던 실업급여지급액을 근로 능력 유무에 따라 차등화하고, 시간제· 한시적 일자리를 대거 도입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한 일련의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하르츠 개혁 후 8년 동안 100만 명을 추가로 고용했고, 60% 중반이던 고용률은 개혁 후 5년 만에 70% 이상으로 높아졌다.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한국경제


▎로봇을 이용해 완성차 조립작업을 하는 현대차 베이징 제2공장. 한국 제조업은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경쟁국에 맞서야 생존할 수 있다.
경제 환경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난국을 강조한다고 해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권 일각에서는 “최 장관 대신 야권에서 경제수장이 나온들 속 시원한 해법이 당장 나올 수있겠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시장에 악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신(新)3저’ 현상도 쓰기에 따라 ‘필살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기름값이 폭락했고 금리는 사상 최저다. 달러화 강세로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하락세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유가 하락과 초저금리는 기업의 생산원가와 금융비용을 떨어뜨린다. 달러화 강세가 엔저현상의 역풍을 막아낼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일부 전문가는 “기업가정신과 정부의 유인책이 잘만 결합하면 투자심리를 살려낼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경기의 부침은 우선 2015년 경제운용에 달렸다.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가처럼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최고의 정책이 될 것인가. 그렇게 본다면 낙관론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저주처럼 최경환노믹스는 아베노믹스의 이복형제로 전락할 것인가. 여기에 동의하면 그건 비관론이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진짜 회생은 이런 낙관과 비관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경제 주체가 한발씩 양보해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는가? 정치 리더십이 인기 없는 정책을 국민에게 설득해가며 경제의 장기 전략을 실천할 수 있는가? 허리띠를 졸라맬 국민에게는 납득할 수 있는 경제 처방전이 필요하다. 더 이상 늦추다간 골든타임을 놓친다. 한국경제는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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