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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특집 | ‘한국경제 쌍두마차’ 삼성·현대차 위기론 - 정점 찍고 내려가나, 새로운 돌파구 뚫나 

삼성, 스마트폰 사업 부진에도 성장 잠재력은 여전… 현대차 내수 침체 심각, 친환경 차 등 ‘미래 먹거리’ 사업에 사활 걸 듯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1.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에 따라 2014년 3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대로 떨어졌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5조원 아래로 내려온 건 2011년 4분기 이후 3년 만의 일이다. 2. 현대자동차가 최근 판매를 시작한 신형 세단 ‘아슬란’. 프리미엄 세단의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시장 반응은 예상보다 미지근하다.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것 같다. 예전 GE나 IBM과 비슷하다. 2~3년 내 새 먹거리 확보 못하면 1등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다.” “어떻게 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삼성전자)이나 되는 회사에게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이런 회사가 또 있나?” 요즘 재계에서 삼성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두 가지 지적 모두 틀린 얘기는 아니다.

먼저 위기론부터 꼼꼼히 따져보자. 바이에르 뮌헨(독일)과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라는 프로축구팀이 있다. 마드리드는 지난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뮌헨은 2012~2013년 우승팀이다. 두 팀 모두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11명이 1명처럼 움직이는 강한 조직력이 뮌헨의 강점이라면 마드리드는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호날두 한 명이 사실상 경기를 지배한다. 평소에는 어느 팀이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그런데 가장 잘하는 선수 1명씩을 빼놓고 경기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뮌헨이 압도적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팀과 비교하자면 삼성은 레알 마드리드와 스타일이 비슷하다.

삼성그룹엔 총 74개(상장사 18개 포함)의 계열사(공정거래위원회 기준)가 있다. 삼성그룹 매출액 중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7.4%다. 절반에 가깝다. 영업이익은 편중이 훨씬 심각하다.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74.2%를 삼성전자 혼자서 벌었다. 호날두가 아무리 잘해도 팀 전력의 70%는 아니다. 그룹에서 가장 독보적인 수익의 원천이자, 핵심 전력인 삼성전자가 흔들리고 있다면 그룹 전체가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게 맞다.

삼성은 호날두 혼자 뛰는 레알 마드리드

한동안 잘나가던 삼성전자가 최근 주춤한 건 사실이다. 2012년~2013년 삼성전자는 최고의 2년을 보냈다. 2012년 한국기업 최초로 매출액 200조원 고지에 올라섰던 삼성전자는 2013년에는 전년보다 13.7% 늘어난 229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가뿐히 기록을 깼다. 2012년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선 것과 2013년 3분기 사상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0조원 시대를 연 것도 국내 기업사에 오래 남을 대단한 성과였다. 이제 수성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됐다.

2014년 1분기까지 비교적 선방했던 삼성전자는 2분기부터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특히 3분기 성적은 심각했다. 매출이 2012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50조원 밑으로 떨어졌고, 영업이익도 3년 만에 4조원대로 추락했다. 1년 전과 비교해 약 60%의 영업이익이 증발한 셈이다. 스마트폰 등 IT모바일(IM) 부문의 부진이 가장 컸다. 전반적으로 프리미엄 모델에선 애플에, 중저가 모델에선 샤오미·화웨이 등 중국 제조사에 밀리는 분위기다. 판매량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가격 경쟁이 치열해져 이익률이 떨어졌고, 공격적으로 집행한 마케팅 비용 역시 큰 부담을 안겼다.

2013년 35%까지 치솟았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25% 수준으로 떨어져 최근 애플(32.3%)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시장규모가 큰 중국과 인도의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는 게 더 걱정이다. 삼성전자 중국판매법인(SCIC)의 2014년 매출은 전년도 같은 기간 7조4152억원과 비교해 4조원 이상 줄었고, 순이익은 2분기 연속 적자다. 2013년 3분기 각각 6.4%, 21.6%였던 샤오미와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년 뒤 16.2%, 13.3%로 역전됐다. 인도시장 점유율도 급감하고 있다. 3분기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4%로 2분기 29% 대비 5%포인트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인도 스마트폰 제조사인 마이크로맥스와 라바는 시장점유율을 각각 20%, 8%로 끌어올렸다. 1년 새 말레이시아에서는 35%에서 18%로, 필리핀에서는 22%에서 15%로, 태국에서는 41%에서 20%로 점유율이 감소했다.

삼성의 편중 문제는 그룹 전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 내에서도 IM 부문의 비중이 매우 크다.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55.7%에 달한다. 영업이익은 63.8%가 IM 부문에서 나온다. 스마트폰 판매가 흔들리면 회사 전체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3분기까지 소비자가전(CE) 부문과 반도체·디스플레이(DS)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반도체 부문은 오히려 영업이익이 1조원 이상 늘었다. 딱 IM 부문에서 줄어든 영업이익만큼 회사 전체의 이익도 감소했다.

‘파티는 끝났다’ 임원 승진규모 축소

미래도 밝지 않다. 시장이 사실상 포화상태에 접어들어서다. IT 리서치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15년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은 17%로 2014년 36%보다 크게 둔화될 전망이다. 김록호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의 성장 속도는 더뎌지고 중저가 스마트폰의 경쟁은 격화될 것”이라며 “중국 제조사들의 글로벌 점유율 확대가 두드러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2013년 세계에서 팔린 스마트폰 중 고가 스마트폰(400달러 이상)은 40.8%, 중저가는 59.2%(일본 야노경제연구소)였다. 2011년 이후 중저가 스마트폰 점유율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여서 올해는 60%를 훨씬 넘었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프리미엄 제품군에서 아이폰6의 성공을 발판 삼은 애플의 독주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아 삼성의 입지가 좁아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삼성이 좋은 브랜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갤럭시S6(모델명 미정) 등 후속 제품이 성과를 내면 얼마든지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삼성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10% 초반으로 떨어진 뒤 그 수준에서 자리 잡게 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점유율 방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시장점유율이 낮아져 매출이 줄더라도 고정비용은 당장 줄이기 어렵다. 최근 4~5년 동안 삼성전자는 연구개발(R&D) 인력을 크게 늘렸다. 이로 인해 ‘출시 모델 수가 증가하는 등 비효율이 쌓여왔다’는 게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규모 R&D 인력은 짧은 시간에 수준 높은 스마트폰을 생산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 벌어질 스마트폰 전쟁의 승패는 ‘스펙(Spec)’보단 ‘가격(Cost)’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짚었듯 스마트폰을 대체할 품목이 보이지 않는 게 더 걱정이다. 반도체와 가전이 버텨주는 게 고무적이긴 하지만 시장의 성장 속도나 매출 규모를 감안했을 때 스마트폰 부진의 무게를 떠안을 정도는 아니다.

장남의 사업이 잘 안 될 땐 둘째, 셋째가 좀 떠받쳐줘야 하는데 마땅한 후보가 안 보인다. 일단 삼성SDI·삼성전기·삼성디스플레이 등 IT계열사들은 삼성전자 실적 악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SDI는 3분기 1조8918억원의 매출과 262억원의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제일모직과 합병 이후 첫 실적 발표라 관심이 쏠렸지만 시장의 기대치(영업이익 600억원)를 한참 밑돌았다. 삼성전기는 더 심했다. 3분기 매출이 전 분기보다 7.5% 줄어든 1조7200억원에 그쳤는데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18.7%나 줄어든 수치다. 삼성중공업·삼성물산 등 나머지 제조계열사도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나마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의 사정은 조금 나은 편이지만 보험업계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 선방하는 수준이다.

어두운 분위기는 지난 연말 인사에 바로 반영됐다. 12월 초 발표한 삼성그룹의 2015년 정기 인사에서 사장 승진자는 단 3명에 그쳤다. 삼성그룹이 비자금 의혹으로 특검을 받던 2008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다. 11명이 퇴임하는 대신 4명 (대표 부사장 포함)만 승진해 삼성 사장단의 규모는 60명에서 53명으로 줄었다. 이틀 뒤 임원 인사에서도 찬바람이 확실히 느껴졌다. 그룹 전체 임원 승진자는 353명으로 최근 5년 새 가장 적은 수였다. 대대적인 승진으로 축포를 쏘아 올렸던 지난해와 사뭇 다르다. 최근 송년 모임에서 만난 한 지인(삼성전자 과장)은 이렇게 토로했다.

“3~4년 잘 해오다 조금 흔들리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위(임원)에서부터 흔들리니 우리 같은 직원들은 불안하죠. 이 회사에 미래가 없나 싶기도 하고. 1등이라는 자부심은 여전한데 갤럭시 판매가 주춤하고, 최근 소프트웨어 등 몇몇 사업이 성과를 못 내면서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글로벌 경기 침체, 나빠진 실적과 밝지 않은 전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재에 따른 리더십 변동, 조직의 동요 등 최근 삼성에는 기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할 만한 여러 요인이 관측된다. 그러나 “이 정도로 흔들릴 회사가 아니다”라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주력인 삼성전자의 실적이 3년전 수준으로 떨어진 것일 뿐 절대액 자체가 작은 게 아니기 때문에 ‘삼성 위기론’은 너무 지나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액(47조4500억원)과 영업이익(4조600억원)은 2011년 4분기(매출액 47조3천억원, 영업이익 4조6700억원)와 거의 흡사하다. 당분간 어려움을 겪더라도 지금의 사업규모를 감안했을 때 실적이 3분기보다 크게 떨어질 가능성은 적다. 스마트폰 매출이 당장 ‘0’으로 떨어질 만큼 급박한 것도 아니고, 반도체·가전 부문에서 꾸준한 수익을 내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3분기 거둔 4조원이란 영업이익은 2위인 현대자동차보다 두 배 이상많다. 8%대인 영업이익률도 4%대인 국내 기업 평균보다 두 배가량 높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위기관리 능력 보유


▎신종균 삼성전자 IM담당 사장이 2012년 6월 ‘삼성 갤럭시S3 월드 투어 2012’ 미디어데이에서 취재진에 제품 설명을 하고 있다. 갤럭시S3와 후속모델인 갤럭시S4는 누적 판매량 1억대를 넘기며 삼성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로 올라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삼성 특유의 ‘위기 극복 DNA’ 또한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건희 회장이 그룹을 지휘하기 시작한 1987년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10조 원에 약간 못미쳤다. 하지만 2013년 매출액은 무려 약 334조원(공정거래위원회 통계)이다. 2013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3.4%, 자산 총액은 GDP 대비 39.1%에 육박한다.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 합계는 전체 상장회사의 22.5%, 삼성전자 혼자만으로도 15.5%를 차지한다.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닌 확실한 ‘넘버 원(No.1)’이 됐다는 의미다. 해외에서도 삼성은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인터브랜드가 10월 발표한 세계 100대 기업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삼성은 7위를 차지했다. 국내 기업 중에선 단연 1위고 도요타·맥도날드 등이 삼성 뒤에 있다.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넘을 수 없는 산이라 여겼던 소니는 52위다.

이 엄청난 상전벽해는 불과 10~2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1970년대 반도체사업에 뛰어든 삼성은 특유의 위기관리 능력과 전략적 판단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1984년 D램가격 폭락이란 변수 앞에서 도리어 생산라인 증설을 결정한 것, 1987년 4메가 D램 개발 방식을 모두가 고집하던 트렌치(Trench,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형식) 대신 스택(Stack, 회로를 고층으로 쌓는 방식)으로 하기로 결정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휴대전화 시장을 점령한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삼성이 본격적으로 휴대전화 생산에 뛰어든 건 1990년대 초. “모토로라를 잡겠다”며 시작했지만 불량품이 발목을 잡았다. 진노한 이 회장은 수거된 불량 휴대폰 15만 대를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쌓아놓은 뒤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렸다. 널리 알려진 삼성의 ‘휴대폰 화형식’이다. 양으로 승부하던 타성을 버리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리더의 강력한 메시지였다. 삼성은 확실히 변했다. 불량률이 낮아지면서 고객의 불만도 크게 줄었고 삼성전자는 1995년 8월 처음으로 국내 시장에서 모토로라를 앞지르며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스마트폰 시대에 진입할 때도 삼성은 또 한 번 추격자의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첫 작품 ‘옴니아’에 대한 엄청난 혹평이 쏟아질 때만 해도 삼성이 스마트폰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은 또 새 길을 만들었다. 소비자는 원하지만 애플에는 없었던 기능을 빠르게 찾아내 스마트폰에 탑재했고, 아이폰보다 더 쉽게 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안드로이드와 손잡고, 반 애플 전선을 구축한 전략도 주효했다. 갤럭시 시리즈는 단숨에 세계 1위 노키아를 무너뜨렸고, 애플마저 제치고 세계 판매량 1위에 올라섰다.

수년간 쌓아온 수십조 원의 실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8월 6일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을 방문해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정 회장은 “지금까지 10년은 현대·기아차가 일류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부재 중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안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큰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 내부에선 이런 의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삼성그룹 자체가 워낙 잘 설계된 조직인 데다 이 부회장 또한 사실상 승계 준비를 해온 만큼 큰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최근 깔끔한 일처리 능력을 보여줬다. 삼성그룹은 얼마 전 삼성종합화학, 삼성테크윈 등 화학·방산 관련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비주력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IT와 전자, 미래 신수종 사업 등에 전력을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첫 인사도 큰 잡음 없이 마무리했다. 시장에서는 ‘기대 이상의 과감한 판단’이란 좋은 반응이 나왔다. ‘겉으론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결단력 하나만큼은 아버지에 못지 않다’는 내부의 평가도 있다.

두둑한 실탄 역시 삼성의 강점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체질변화를 꾀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을 선정했다.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등 5대 사업에 투자해 그룹의 차세대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하나같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돈을 많이 써야 하는 프로젝트다. 수년간 분기마다 수조 원씩 돈을 쌓아둔 삼성이 아니라면 과감히 도전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태양광과 LED 등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지만 바이오나 전기차용 배터리 등은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SDI가 중심인 전기차용 배터리는 최근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가팔라지면서 매출이 빠르게 늘어난다. 바이오· 제약 사업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바이오 의약품 제조)’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데, 얼마 전 다국적제약사 BMS사가 생산을 위탁한 흑색종 치료 바이오항체의약품 ‘예보이(Yervoy)’의 국내 시판허가를 앞두고 있다. 의료기기 사업 역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속도를 붙이고 있다. 삼성그룹 한 임원은 “이제껏 삼성은 가능성만 보고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며 “스마트폰이 그랬듯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게 삼성의 최대 강점이고, 여전히 우린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위기? 글로벌 판매 첫 800만 대 돌파

삼성에 비하면 현대자동차그룹 위기론의 실체는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세계 경기 둔화와 엔저(低)라는 외부 변수에도 나름 선전하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다. 회사의 경쟁력 약화라기보다는 ‘일시적 정체’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실적이 나쁘지 않다. 현대·기아차는 2014년 처음으로 글로벌 판매 800만 대를 달성할 전망이다. 글로벌 톱4로 한 단계 올라선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크다. 2014년 1천만 대를 돌파한 도요타에 이어 950만~1천만 대 수준인 폴크스바겐-아우디, GM(제너럴모터스)에 이어 4위다. 2013년(756만대) 대비 약 44만 대가 증가한 수치로 2013년 4위였던 르노-닛산(올해 790만∼800만 대)을 추월할 것으로 관측된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중 가장 늦은 1967년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현대·기아차의 최단기 800만 대 판매 돌파는 2012년 700만대 돌파 이후 불과 2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물론 엔저가 부담스러운 건 맞다. 불과 3~4년 전 80엔 대로 떨어졌던 엔-달러 환율은 현재(12월 8일) 120엔을 돌파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대중차 시장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일본 제조사는 가격 경쟁에서 현대·기아차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10월 미국 시장의 현대차 점유율은 3%대로 떨어졌다. 현대차의 점유율이 4% 밑으로 하락한 것은 2010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현대·기아차의 점유율 합계도 8월 7%대로 떨어진 이후 계속 하락세다. 판매량은 2013년 동기보다 1.6% 늘었는데 점유율이 낮아진 건 일본 등 다른 차가 더 많이 팔렸다는 의미다.

2015년에도 엔화 약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빅3인 도요타·닛산·혼다가 엔저를 무기로 신차 할인 프로모션과 같은 마케팅에 대거 돈을 투자하면 현대·기아차로서는 고전이 불가피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원화 약세를 발판으로 현대·기아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린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엔저의 영향이 과거와 달리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많다. 과거와 달린 미국 이외의 시장이 커진데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생산비중이 높아져서다. 현대·기아차의 2014년 1~10월 글로벌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한 655만 대였다. 중국·인도·브라질 같은 신흥국에서 특히 선전했다. 중국에서는 1~10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5% 늘어난 142만1650대를 판매했다. 올해 역대 최대치인 17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폴크스바겐-아우디, GM에 이어 3위권이다. 경쟁자인 도요타는 같은 기간 110만 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인도 시장에서의 강세도 이어졌다. 1~10월 현대차(기아차 제외)는 신형 i20 등 신차 효과로 전년 대비 판매가 8% 증가했다. 인도 평균 판매 증가율(인도자동차공업협회) 1.9%의 4배 이상이다. 브라질에서도 판매량이 7.2% 늘었다. 경기 둔화로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8.6% 감소한 틈 사이에서 거둔 호실적이었다. 유가 하락에 따라 소비심리가 위축된 러시아에서도 현대·기아차 브랜드는 외국차 판매 1~2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제조사가 올해 엔저에 힘입어 미국에서 좋은 성과를 냈지만 나머지 시장에선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해외 생산비중이 50%로 높아진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원화 강세에 따른 피해는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자동차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제값 받기’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장기적으로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단기적으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값싼 차’의 이미지를 벗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현대차가 지난 10월 22일 발표한 신형 쏘나타의 미국판매가격은 2.4 모델 기준으로 최저 2만1150달러에서 최고 3만1575달러다. 사양이 비슷한 국내 ‘2.4GDi’ 보다 오히려 152만원(세전 가격) 더 비싸다. 2014년 4월 미국 시장에 출시한 신형 제네시스 3800cc 후륜구동 모델 가격을 구형보다 7.9% 인상한 3만8천 달러로 책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의 추세로 볼 때, 현대차그룹에게 더 걱정스러운 건 해외가 아니라 국내일지 모른다. 내수 부진이 심상치 않아서다. 2013년 9월 68.5%였던 현대·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67.3%로 떨어졌다. 한때 80%에 육박했던 점유율이 4~5년째 계속 하락하고 있다. 반면 수입차의 점유율은 14%에 올라설 전망이다. 2014년에도 수입차의 기세는 놀라울 정도였다. BMW·폴크스바겐 등 주요 수입차 제조사들은 10월 한달 동안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1% 증가한 1만6436대를 팔았다.

10월까지 누적된 판매 대수(16만2280대)만으로 이미 2013년 수입차 전체 판매 대수(15만6497대)를 넘어섰다. 2년 내로 수입차 점유율이 20%대에 올라설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수익성이 좋은 중형 및 고급 세단의 점유율 하락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 부담을 키운다. 2013년 11월 현대차의 대형차(그랜저·제네시스·에쿠스) 판매량은 1만4623대였지만 2014년 11월엔 1만1770대로 전년보다 19.5% 줄었다. 2011년(1만7040대), 2012년(1만5673대) 이후 꾸준한 감소세다.

야심 차게 선보인 아슬란 출시 이후 받은 성적표라 더 뼈아프다. 아슬란은 2014년 11월 한달 동안 1320대가 판매됐다. 출고되지 않은 예약물량 2500여 대를 더하면 첫 성적은 4천여 대 수준이다. 2014년 목표(6천 대)는 무난히 달성했다. 하지만 제네시스의 11월 판매량은 10월(3631대)보다 30.4% 줄어든 2527대, 에쿠스는 556대보다 14.7% 줄어든 474대를 기록했다. 그랜저 판매가 7169대(10월)에서 7449대(11월)로 3.9% 소폭 늘었지만 아슬란이 팔린 만큼 나머지 대형차가 덜 팔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신 수요층을 개척하겠다는 목표엔 아직 미흡한 결과물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안방이 흔들린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 마땅한 승부수가 없어 더 곤혹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는 “다양한 브랜드가 들어와 선택의 폭이 넓어진데다 가격도 눈높이 맞게 출시되면서 수입차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갈수록 (현대차의) 신차 효과는 크지 않아 걱정”이라면서 “현대· 기아차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국내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게 시급하지만 쉽지 않은 과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의 앞날이 어둡지 않은 건 비교적 ‘미래 먹거리’에 대한 준비를 잘하고 있어서다. 현대차는 최근 세계적인 기조로 자리 잡은 친환경 자동차로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미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수소전지차 기술력을 확보한 현대차는 차세대 고연비 엔진 개발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경기도 용인 마북 기술연구소에서 친환경자동차 핵심 부품과 지능형 자동차용 전자 장비 개발을 시작했다. 600억원을 투자해 완공된 이 연구소에는 지능형· 친환경 자동차 핵심 부품을 시험, 개발할 수 있는 21개의 첨단 전용 실험실이 있다. 미래 기술의 전초기지인 셈이다.

친환경 자동차로 방향 전환 긍정적


▎1.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자동차 및 부품 사업군에 친환경차용 이차전지사업을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4년 12월 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시에 접어들면서 업체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며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사업 구조와 중장기 성장전략을 더욱 체계화하고, 혁신적인 제품과 선행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자동차와 철강·건설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3대 핵심 미래성장 동력’ 전략을 수립했다. 자동차 품질 강화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철강은 신소재 개발에 힘을 기울일 방침이다. 현대건설은 전기차 인프라 구축사업을 강화해 주력사업 간 시너지 효과를 높여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연간 800만 대 판매를 돌파한 자동차부문 못지 않게 제철과 건설부문 역시 꾸준히 성장 중이다. 현대제철은 고로 3호기 완공을 통해 7년 간에 걸친 일관제철소 건설을 마무리하며 총 2400만t의 조강능력을 갖춘 글로벌 철강회사로 성장했다. 현대건설 역시 해외 수주 누계 1천억 달러를 달성했다. 전반적인 어려움을 맞고 있으면서도 착실한 성장을 통한 돌파구는 넓게 열려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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