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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특집 | 특별기고 - 88 한·중·일 동북아 무역전쟁 삼국지 

“ 중국·인도를 제2 내수시장으로 삼아야” 

안현호 한국무역협회 상근 부회장
아베노믹스로 한·중·일 무역전쟁 진검승부 본격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저출산, 고령화 대책 수립도 절실

▎2014년 7월 국빈 방한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국을 확고한 제2내수시장으로 삼는 것이 한중일 경쟁의 승리 전략이다.
2014년 한해 중국 휴대폰 기업 샤오미(小米)의 눈부신 도약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샤오미는 2014년 3분기에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인도 및 인도네시아 등 거대 신흥국 시장에서도 흥행에 성공, 세계 시장 점유율 3위를 기록했다. 샤오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주력 사업인 스마트폰 외에도 웨어러블 기술, 스마트홈 시스템, 전기자동차 산업까지 넘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누구나 삼성전자를 첫 손에 꼽는다. 최근 몇 년 동안 삼성전자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노키아, 애플 등을 제치고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그런 삼성전자의 아성이 우리에겐 이름조차 생소했던 중국 기업 샤오미의 거센 도전에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장기 경제침체에 빠졌던 일본은 2012년 12월 아베 총리의 재집권 이후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엔저 공습으로 대응해 우리의 수출 업계를 어려움에 빠트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환율변동과 한·일 수출기업 경영지표 비교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우리 수출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2조5천억원으로 매출 증가율은 마이너스 2.2%를 기록했다. 반면 일본은 매출 증가율이 2012년 마이너스 0.8%였으나 2013년 6.2%로 뛰어 올랐고, 2014년 10월말 기준 2.3%를 유지해 아직까지는 엔저에 따른 공격력이 여전한 모습이다.

삼성전자와 샤오미의 한·중 휴대폰 경쟁, 한국과 일본의 사활을 건 수출전쟁은 한·중·일의 경제 삼국지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2월 5일 코엑스에서 열린 제 51회 무역의 날 기념사에서 “중국의 기술 추격이 거세지고, 일본은 엔저를 바탕으로 제조업을 재무장하고 있으며,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은 스마트생산 시스템을 통해 제조업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제조업 혁신을 주문한 것도 이런 절박한 경제 현실 인식에 바탕한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3국을 둘러싼 경제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그중 가장 특기할 일은 2014년 11월10일 한·중 정상이 선언한 ‘한·중 FTA의 실질적 타결’이다. 이로서 우리는 가장 큰 교역국인 중국과 관세 울타리가 없어진 경제 전쟁에서 계급장을 떼고 진검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일본의 엔저 정책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2014년 12월 14일 치러진 일본 조기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가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엔저 정책의 지속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제 한·중·일 경제 신삼국지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철강·조선에서 3국간 전면전 개시


▎새로 출시한 전략 스마트폰을 소개하고 있는 레이쥔 샤오미 CEO. IT는 중국의 거센 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산업분야다.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중 약 40%가 한·중·일 3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3국의 전 세계에서 조강(粗鋼, 가공되거나 정제 되지 않은 강철) 생산량은 약 60%를, 선박 수주량은 90%를 차지한다.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IT제품인 DRAM반도체 생산량은 60% 이상, 디스플레이의 3국 생산비중은 70%를 넘는다. 여기서 보듯 한·중·일 3국은 현재 세계 경제에서 주요한 제조업 생산기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중·일의 이 같은 성취는 과거 세 나라의 상호보완적 분업구조를 통해 가능했다. 일본은 하이엔드(high-end) 기술과 부품·소재·장비산업, 한국은 미드엔드(mid-end)기술, 중국은 로우엔드(low-end) 기술 제품에 각각 특화하면서 협력적 분업구조를 유지해왔다. 이런 3국간 분업구조는 지난 30년간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과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로 협력보다는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3국의 주력 산업이 철강, 석유화학 등 일관공정산업, IT·조선·자동차 등 가공·조립산업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특징도 공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5~10년 이내에 한·중·일은 세계시장을 놓고 생존을 건 경제 전면전을 벌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3국간 경쟁에서 승리하면 세계시장을 제패하게 될 것이고, 패배하면 세계 시장에서 철수하게 됨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에 있어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이 경쟁에서 패배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계경제 지형과 상황에서 3국간 경쟁은 어느 나라에 가장 유리할까?

현재 제조업에서 부품·소재·장비를 제외한 조립완성품 분야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3국 중 한국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분야의 경쟁우위는 그동안 유럽에서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이전됐다. 그러나 앞으로 산업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점차 중국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중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쉬운 산업의 조건은 크게 5가지다. 우선 기술이 장비에 체화(體化)되어 있거나, 둘째로 조립부품수가 적고 표준화된 부품이 많은 산업이다. 셋째, 블랙박스(black box)식의 독자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넷째, 현장의 암묵지(暗默知: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가 크게 필요하지 않아 기술의 도약이 가능한 산업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만의 산업협력을 받을 수 있는 분야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으로부터 가장 거센 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큰 분야는 IT산업이 꼽힌다. 반대로 중국이 가장 추격하기 힘든 대표적인 분야는 자동차산업이라고 판단된다.

중국 IT산업의 거센 도전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IT산업 중에서도 위에 열거한 5가지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분야는 컴퓨터산업이다. 이 산업은 부품수가 적고 거의 모든 부품이 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어 큰 기술 없이도 상대적으로 쉽게 생산, 조립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컴퓨터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고, 현재 세계 전체 생산량의 약 75%를 차지하고 있다.

조립완성품 분야 거세진 중국의 도전


▎충칭에 진출한 한국타이어 중국 현지 생산공장. 충칭에 진출한 한국타이어는 버스·트럭용 타이어를 중심으로 중국 서부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이어 TV, 냉장고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들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냈다. 조심스러운 예측이긴 하지만 이 분야에서 현재 세계 시장을 가장 크게 지배하고 있는 한국을 10년 이내에 밀어내고 세계 최강자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가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IT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은 점점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도 한국과의 격차가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샤오미로 대표되는 중국 스마트폰 기업의 추격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중국 토종기업들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2014년 2분기 기준으로 약 65%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중국 내 스마트 폰 점유율이 12%대로 하락한 것에서 보듯 외국기업 제품을 중국 시장에서 매서운 속도로 쫓아내는 상황이다. 더 우려되는 바는 이러한 추세가 중국 내수시장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 시장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IT분야(전기·전자·통신산업)의 화웨이, 하이얼과 같은 중국 혁신기업의 등장은 한·중·일 분업구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들 기업은 우선 대부분 민영기업이며, 관련 시장 자체가 상당히 경쟁적이다. 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상품기획, 생산, 국내외 마케팅 등 경쟁력의 요소 전반에 걸친 능력이 선진국의 다국적기업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기업들은 단순히 IT 분야를 넘어 중국 기업들을 전반적으로 혁신하는 선두그룹의 역할도 병행해서 담당하고 있다. 다국적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중국 혁신기업은 아직 일부 분야, 일부 기업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혁신기업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것은 또 다른 분야로의 확산을 예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조업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중국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과 실력이 상승하는 것은 한국 기업에는 큰 위기다. 비교 우위를 확보한 중국 기업이 해외까지 진출할 경우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 확보와 시장개척이 쉬운 나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예측이 들어맞을 경우 연쇄적으로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고 해당 품목의 수출 감소와 한국경제의 GDP 축소라는 ‘3중(重) 충격’이 불가피하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되면서 경제가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잠재성장률이 1% 내외이며 1991~2008년 사이 평균 경제성장률이 1%로 일본경제는 사실상 성장이 중단된 상태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세계 경제 제조기지로서의 명성이 지속적으로 퇴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소위 ‘6중고(6重苦)’로 일컬어지는 엔고, 높은 법인세, 높은 인건비 부담, 급격한 환경·노동규제, FTA체결 지연 및 전력수급 불안과 함께 고령화에 따른 내수부진 등을 겪고 있다. 그 사이에 제조업의 경쟁력은 급속히 약화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독일과 함께 여전히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비교우위가 확실한 분야가 많다. 일본 제조업의 대표선수 격이 바로 자동차산업이다. 자동차산업은 일본 기업의 장점과 우수한 요소가 집대성 되어 있는 분야다. 일본 자동차산업의 특징은 첫째, 산업의 패러다임이 잘 변하지 않고, 둘째, 순발력에 의한 단기간 혁신보다는 장기간 끊임없는 개선을 통한 혁신을 해왔고, 셋째, 기업 간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넷째, 장기간에 걸쳐 쌓은 현장의 노하우(暗黙知)가 있다는 점이다.

부품·소재·장비 분야 일본 경쟁력은 최강


▎중국 심천의 화웨이 본사 전시실. 화웨이는 샤오미와 함께 한국 스마트폰 사업을 위협하는 전략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런 장점을 고루 갖춘 일본의 또 다른 분야로 부품·소재·장비 분야, 특히 높은 정밀도와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소재 및 장비 산업을 꼽을 수 있다. 일본 기업 중 위와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은 무수히 많다. 대부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으로, 일본산업의 핵심역량이다.

일본의 강소기업(히든 챔피언)은 1500개에서 2천 개로 추산된다. 비록 IT 산업 등 조립완성품 분야에서는 일본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부품·소재·장비 분야는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우리나라 성장동력인 대기업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함께 기술과 생산성 혁신에 매진했다. 이 같은 노력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결실을 맺어 현재 일관공정산업과 조립가공산업의 조립완성품 분야(부품·소재·장비 제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 기업들이 확보한 강점과 경쟁력의 원천은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 결정과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 능력이다. 그런데 산업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경쟁력은 점차 약화될 것으로 보이며, 이미 일부 산업에서는 그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력 산업의 영업 이익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철강·조선 부문이 심각하다. 더욱이 국제 경쟁력의 선행지표인 R&D 투자도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산업에서 정체돼 있다.

삼성전자의 D램 반도체와 현대자동차의 중·소형 자동차를 제외하면 사실상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지표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산업 주기에 따라 조립완성품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이 우리는 성숙기에서 쇠퇴기에 접어들고, 대신 중국이 청년기를 지나 서서히 성숙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가 일본과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산업발전의 단계상 우리가 일본에 약 20년 뒤져 있고, 중국보다는 약 20년 앞서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 일본이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정점에 있었던 시기가 1990년대 초반이었다. 그런 일본이 그 정점에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중·후반이었다. 그 시기는 일본의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때와 맞물린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길을 겪게 된다면 우리 주력 산업인 조립완성품 분야의 정점은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2010년대 후반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정점에 머무르는 기간을 더욱 늘리려면 지금보다 입지 경쟁력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다양한 혁신을 통해 발 빠르게 쫓아오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

그런데 조립완성품 분야의 여러 여건을 고려할 때 결국은 중국이 경쟁력을 확보해 우리 지위를 빼앗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불행하게도 중국이 우리를 추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는 데 소요됐던 기간보다 짧을 것으로 전망된다. 왜냐하면 중국은 14억 인구의 소비시장을 배경으로 한 규모의 경제를 향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는 외자기업 등으로부터의 수월한 혁신역량 이전 등 우리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강점인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와 생산기술 능력도 중국은 모방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경쟁력 원천의 발굴이 시급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장동력을 만든 거의 유일한 주체는 소수 대기업에 국한됐다. 이들마저 중국에 정상의 지위를 내준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을 삼을까?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에도 불구하고 부품·소재·장비 분야의 중소·중견기업 혹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것이 없다. 또 우리는 내수시장도 중국과는 비교가 안되고 일본에 비해서도 절반 이하다.

3국 경제전쟁과 한국의 핸디캡


▎1. 도요타의 고효율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의 정제된 내부 공간. 일본 자동차 산업은 축적된 기술력으로 한국 자동차 업계가 넘기 힘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2. 제조 공정 마지막 단계에서 숫돌에 칼날을 갈고 있는 일본 칼 제조업체 ‘카이’ 공장의 직원. 일본 중소기업의 탄탄한 제품력은 일본 제조업을 세계 일류로 지탱하는 기반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중·일 3국 간 경제전쟁에서 한국이 가장 불리한 편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3국 가운데 가장 소국(小國)이며, 상대적으로 확고한 비교우위 분야가 적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은 14억 명이라는 인구수 자체가 확실한 비교우위이다. 이를 배경으로 한 소비시장과 천문학적 규모의 R&D 증가 속도가 중국경제를 이끌어 갈 힘의 원천이며 경쟁력 그 자체다. 일본의 비교우위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들이다. 특히 부품·소재·장비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은 아직까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세계 제조업 생산기지 역할은 얼마간 약화 되겠지만 비교우위를 축적하고 있는 고기술, 고부가가치 부품·소재·장비 위주의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한국의 비교우위는 대기업의 빠른 의사결정에 의한 선제적인 대규모 투자와 제조기술을 중심으로 한 조립·완성품 분야이다. 이러한 비교우위는 중국 등 경쟁국의 학습에 의해 점차 축소되고 있으며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력이 정점을 지나 점차 약화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력은 삼성전자 등 소수 대기업의 제품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한·중·일 경제 분업구조가 이 같은 구도로 진행될 경우 자칫 잘못하면 조립완성품은 중국이, 부품·소재·장비 분야는 일본이 여전히 경쟁력을 확보해 우리나라는 양국 사이에 낀 새로운 형태의 샌드위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한국이 혁신주도 성장을 완성하고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향후 적어도 10년간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우리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기존의 성장동력을 유지·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일은 장기적 관점에서 막대한 시간과 돈,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면 한국이 위에서 살펴본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역동적인 신흥선진국이 되기 위한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단기적으로는 기존의 성장동력인 조립완성품의 경쟁력을 최대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 일본제품에 이길 수 있도록 기술력 향상에 매진해야 할 뿐 아니라 최고 수준에 도달한 기술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입지경쟁력을 강화하여 일본과 같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걱정하는 단계에 이르지 않도록 예방적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둘째, 중소·중견기업 육성을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중소·중견기업군이 새로운 성장동력 주체가 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소·중견기업군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이 전개되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도록 관련 정책과 제도를 전면 개편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생색내기 식의 몇 가지 새로운 프로그램과 관련 예산 증액만으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인력, 금융시장의 충격을 줄 수 있을 정도의 변화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혁의 기개와 의지가 중요


▎경기도 수원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SIM)’에서 관람객들이 스마트홈 시스템을 체험해보고 있다. 조립완성품의 경쟁력에 IT 서비스 분야의 혁신이 한중일 경제전쟁 승리의 원동력이다.
셋째,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의 1순위는 부품·소재·장비 분야다. 과거 우리의 조립완성품 분야는 일본의 부품·소재·장비를 공급받아 경쟁력을 키워 발전했다. 향후 중국의 조립완성품 분야 발전을 꾀할 때 우리가 일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우리 경제에 희망이 있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향후 약 20년 동안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침 일본의 부품·소재·장비 기업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본국을 떠나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다. 이는 우리에게 부품·소재·장비 분야의 중간영역에서 첨단·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넷째,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이 경제 성장의 보조동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비스산업은 고용문제를 해결하는데에도 반드시 발전되어야 할 분야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규제를 과감히 철폐, 개선하여 내외국인의 대대적인 투자가 적어도 5~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저생산성 분야인 저부가가치 서비스 분야(주로 자영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도 대단히 중요해 보인다.

다섯째, 세계경제는 기존의 10억 명 시장규모에서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인구 30억 명이 추가되면서 40억 명의 규모로 커지게 됐다. 그 중심에 중국, 인도 등 아시아가 우뚝 서있다. 따라서 내수 시장이 좁은 한국은 14억 명의 중국 소비시장과 인도(12억 명), 아세안(6억 명)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한 신흥시장을 우리의 제 2 내수시장으로 인식하여 이를 개척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노력이 전개돼야 한다. 특히 우리에게는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중국시장이 가장 중요하다.

여섯째,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수립과 강도 높은 추진이 절실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모든 면에서 고령화와 관련이 깊다.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저출산·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해결이 가능해 보인다. 세계적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서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로마가 1천 년 이상 계속된 것은 결코 운이 좋아서가 아니고 그들의 자질이 우수해서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개혁하려는 기개와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진정한 선진국에 진입하느냐 아니면 중국의 주변국에 머무를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그 여부는 향후 10년간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새삼스럽지만 우리가 그의 말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안현호 -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약 30년 공직 생활의 대부분을 산업분야에서 근무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 1차관을 역임하고 2011년부터 한국무역협회 상근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중·일 3 국간 산업통상 정책 연구가 전문분야다. 저서로 <한·중·일 경제삼국지 누가 이길까>(2013)가 있다.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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