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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심층분석] 윤석열은 왜 정권과 맞서게 됐나? 

“덮으면 우리가 죽는다” 

울산시장 사건 수사의 배경에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의 딜레마 있어
추미애 등 정권이 ‘윤석열 힘 빼기’에 나서면 ‘다른 큰 사건’ 등장할 수도


▎2019년 11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했다.
검찰총장과 정권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처럼 맞서 있다. 검찰과 집권 세력이 갈등 관계에 놓인 적이 없지는 않았으나 지금처럼 서로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사상 초유의 사태다. 게다가 그 검찰총장이 정권이 파격적 발탁 인사로 그 자리에 앉힌 인물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지난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며 “우리 윤 총장님”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다섯 달도 되지 않아 서로 마주 보기도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무엇이 이런 형국을 불러왔을까? 윤 총장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권에 칼을 겨누게 됐을까? 그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윤 총장의 행보에 찬사를 보내는 쪽이든, 윤 총장에게 ‘배신자’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쪽이든 양편 모두 이런 의문을 품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럴까?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면 크게 두 가지 변수를 봐야 한다. 하나는 대형 사건들을 둘러싼 ‘객관적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윤석열이라는 사람의 특성 내지는 정체성’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보면 ‘왜?’에 대한 의문이 다소 풀린다. 미래가 어느 정도 예측되기도 한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했다면 통치 정당성 흔들


▎김기현 전 울산시장(오른쪽)과 석동현 자유한국당 법률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이 2019년 12월 2일 울산시장 선거무효소송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금 정권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건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건이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책임질 부분은 ‘사람 잘못 골랐다’는 것에 그친다. 증명서 위조, 펀드 비리, 웅동학원 비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가족이 벌인 일탈이다. 정권이 감싸고도는 바람에 파장이 커졌지만, 근본적으로 조 전 장관이 짊어질 문제다.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감찰 중단 사건도 문 대통령에게까지 불길이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가정에 가정을 거듭해 유 전 국장이 문 대통령에게 직접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감찰을 그만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들어줬다고 해도 그 사실이 수사를 통해 확인되기는 어렵다. 유 전 국장이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해 문 대통령과 아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에게 감찰 무마 청탁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도 않다.

이 두 사건과 달리 울산시장 선거 건은 문 대통령에게 정치적 상처를 크게 입힐 수 있다. 그 선거의 당선자가 문 대통령이 ‘형’이라고 부르는 송철호 시장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30년 지기 송 시장이 2014년 국회의원 보궐 선거 때 “나의 가장 큰 소원은 송철호 당선”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서 청와대의 선거 개입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드러날 경우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지는 않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문 대통령은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이 건은 ‘정치 공작’의 문제다. 청와대와 경찰의 조직적 선거 개입이 있었다면 정권의 도덕성이 치명상을 입는다. 민주주의의 기반인 선거에 권력이 개입해 민의를 왜곡시켰다면 통치의 정당성이 흔들린다. 이 건 하나로도 ‘타락한 정권’이라는 오명을 얻을 수 있다.

윤 총장이 그런 상황까지 머릿속에 그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50대 후반의 영민한 검찰 고위 간부가 ‘선거 공작’ ‘정치 공작’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를 리 없다. 그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왜 울산지검에서 수사하던 그 사건을 서울로 가져와 사실상 진두지휘하며 챙기고 있을까? 여권에서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역적 취급을 할 것이 뻔한데, 왜 이런 판을 벌였을까?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윤석열이 울산 사건을 서울로 가져온 이유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정원 댓글수사팀장이던 2013년 10월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장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수사 외압을 폭로해 시련을 겪었다.
윤 총장과 대화를 자주 하는 한 측근은 이렇게 말했다.

“총장이 울산 사건을 서울로 가져온 데는 크게 두 가지가 작용했다. 첫째는 울산경찰청이 경찰청을 통해 청와대로부터 받은 ‘첩보’ 문건이다. 통상의 진정서나 제보 문건과는 달랐다. 전문가의 손을 거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경찰 또는 청와대에서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이 만든 문건으로 보였다. 이게 수사의 실마리가 됐으니 ‘하명 수사’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경찰청이 청와대로 보낸 보고서다. 경찰청이 울산시장 선거 직전까지 김기현 후보 측에 대한 수사 상황을 9회에 걸쳐 보고했다. 그 보고서를 경찰청이 그대로 울산지검에 제출했다. 경찰이 그렇게 빈번하게 한 사건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하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다. ‘하명 수사 아닌가’ 하는 의심이 커졌다. 이런 자료들이 입수돼 수사를 안 하려 해도 안 할 수가 없게 됐다. 그런 자료가 넘어왔는데 수사를 안 하면 나중에 검찰이 죽는다는 게 총장의 생각이었다.”

대충 덮으면 훗날 검찰이 그 책임을 다 떠안게 되고, 이 일에 관련된 검사들이 불명예와 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윤 총장이 판단했다는 의미다. 범죄 혐의가 포착됐는데 담당 검사가 수사를 안 하면 직무유기가 되고, 범죄 단서가 나와 수사하겠다는 담당 검사의 뜻을 윗선에서 꺾으면 직권남용이 된다.

그렇다면 경찰은 청와대 보고 문건을 왜 그대로 검찰에 넘겨줬을까?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표적 수사를 했다는 의심을 살 게 뻔한데, 왜 통째로 제출했을까? 미스터리다. 검찰도 의아해한다. 이유는 네 갈래로 추측해볼 수 있다. 첫째, 검찰에 ‘손대지 마’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청와대가 관여한 일이니 검찰은 나서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경찰이 ‘우리는 죄가 없다’며 면책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청와대가 첩보를 내려보내 수사를 했고 수시로 청와대에 보고했으니, 우리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겨냥한 정치 수사를 한 것이 아님을 알아 달라는 뜻으로 자료를 그대로 보냈을 수도 있다. 셋째, 검찰로 자료를 보내는 일을 맡은 경찰청 간부가 ‘별생각 없이’ 있는 대로 자료를 건네줬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청이 울산경찰청으로 청와대 첩보를 넘겨 수사하도록 한 것은 2017년 말이다. 당시 경찰 수장은 이철성 경찰청장이었다. 민갑룡 현 경찰청장이 관여한 일이 아니었다. 경찰청 간부들도 대부분 바뀌었다. 따라서 이 사건에 지금의 경찰청 간부들이 직접 책임질 일은 별로 없다. 괜히 자료를 감추려 들다 그것 때문에 경찰이 화를 입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론 그 보고서를 건네 검찰이 청와대를 수사하게 되면 검찰과 청와대가 싸우게 되고, 그 결과로 정권이 경찰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검찰 견제용 카드’로 이용하려 했다는 가설도 상상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모른다. 어느 하나가 아니라 복합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엄밀히 보면 경찰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검찰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넷 중 무엇이든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게 이 사태의 절묘한 대목이다. 설사 경찰이 던진 미끼라 할지라도 검찰이 물지 않을 수가 없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직무유기 아니면 직권남용이 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윤 총장 주변의 검찰 간부들은 “덮으면 우리가 죽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윤 총장과 그 주변의 검사들일 수도 있고, 검찰 전체가 될 수도 있다.

윤석열 스타일: “법대로, 책임은 내가”

이처럼 검찰이 ‘수사를 안 할 수 없게 된 것’이 울산 선거 사건을 둘러싼 ‘객관적 상황’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사건을 서울로 가져왔을까? 검찰 측은 “수사 대상자가 대부분 수도권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방에서 대형 비리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참고인과 피의자 중 대다수가 서울에 살아도 담당 검찰청을 바꾸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인간 ‘윤석열’을 이해해야 그림이 그려진다.

검사들이 말하는 ‘윤석열 스타일’이 있다. 사건에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는다. 총장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사건도 큰 틀에서만 보고를 받는다. 사건의 디테일보다는 법리 적용에 관심을 보인다. 수사가 끝난 사건에 대해 기자들에게 말할 때도 세부 팩트보다는 ‘그게 왜 죄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힘을 많이 쓴다. 통상 이런 스타일의 검찰 간부는 그 사건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세세한 것을 챙기지는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그런데 윤 총장은 그렇지도 않다. “법에 따라 있는 대로 하라. 책임은 내가 진다”고 한다. “검찰총장은 원래 ‘외풍’을 막아주는 자리다”는 말도 자주 한다.

윤 총장이 예민한 사안에 ‘정면 돌파’보다 ‘우회로’를 먼저 떠올리는 검찰총장(역대 검찰총장 중 상당수가 그랬다)이라면 울산시장 선거 사건을 울산지검에 그대로 뒀을 것이다. 지방에서 수사하면 언론의 주목을 덜 받는다. 수사 인력 등을 핑계로 시간을 끌기도 좋다. 하지만 그는 ‘서울행’을 결정했다. 자신이 직접 챙기고, 책임도 자신이 지겠다는 뜻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성격적 특성 외에 검사로서 그의 ‘정체성’도 사태 전개에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의 ‘검찰총장 윤석열’을 만든 것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다. 물론 그는 이 사건 수사 전에도 이름이 제법 알려진 검사였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그의 인생이 롤러코스터에 올라탔다. 그는 국정원 댓글 수사팀 항명 사태를 주도했다. 그 사건 때문에 좌천됐고, 사표를 던질 생각도 했다. 국회 청문회에 나와 윗선의 수사 방해를 증언하며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국정 농단’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으로 발탁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서울중앙지검장이 됐다. 국정원 댓글 수사가 그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혈전이 될 ‘추다르크’와의 전쟁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19년 12월 5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김경록 기자
국정원 댓글 수사 갈등의 본질은 ‘선거법 적용 문제’였다. 윤 총장은 당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려 했다. 이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제동을 걸었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도 선거법 적용에 반대했다. 검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면 국정원의 ‘정치 공작’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한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울산시장 사건은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관련된 것이라 ‘판’이 작기는 하지만, ‘정치 공작’ 의혹이라는 점에서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같은 종류의 일이다. 청와대가 경찰에게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을 수사하도록 하고, 그 수사로 선거 판세를 뒤집으려 했다면 권력의 ‘선거 개입’이 된다. 지금까지 드러난 당시의 여러 정황은 선거를 겨냥한 수사로 의심을 받을 만하다.

윤 총장이 경찰의 울산시장 수사 건을 문제 삼지 않고 그대로 덮으려면 그는 자신의 ‘인생’을 부정해야만 했다. 국정원 사건에 대한 소신을 꺾었어야만 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스스로 합리화해야 했다. ‘사람에게(권력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인간 윤석열의 ‘정체성’의 핵심이다. 문재인 정권은 그를 검찰 수장의 자리에 앉힐 때 그의 칼끝이 자신들을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이제 윤 총장은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이미 조국 사태, 유재수 사건, 울산 사건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뽑은 칼을 거둬들일 수도 없고, 칼을 살살 휘두른다고 해도 정권과의 화해는 이뤄지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 의원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했다. 법무부는 검사 인사 안을 만들고 있다. 인사를 통해 윤 총장의 ‘수족’을 잘라낼 계획이다.

윤석열과 그를 따르는 검사들을 흔히 ‘윤석열 사단’이라고 부른다. 핵심은 대략 20명, 주변까지 포함하면 50명 안팎이 이에 포함된다. 형제애와 비슷한 애정으로 결속된 일종의 ‘패밀리’다. 과거에도 특정인을 중심으로 그와 가까운 검사들이 요직에 포진한 적이 있었으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윤석열 사단 구성원은 상당수가 ‘동지적’ 연대 의식을 갖고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끈’을 잡고 있었던 과거의 느슨한 연대와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우병우 라인’은 ‘라인’이고, ‘윤석열 사단’은 ‘사단’이다. 사단은 전우애가 바탕인 운명 공동체다.

윤석열 사단은 “우리가 검찰의 핵심이고, 우리가 진짜 검사다”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이는 때때로 오만으로 비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에 실시된 검찰 인사에서 이들은 검찰의 주요 길목을 거의 다 차지했다. 국정 농단 관련 수사를 통해 공도 세웠고, 대부분 능력도 갖췄다. 실력은 없는데 정치력은 뛰어난 정치 검사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 예전의 인사와는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약진은 필연적으로 내부의 불만을 키웠다. 윤 사단을 달갑지 않게 보며 “자기들끼리 다 해 먹는다”고 말하는 검사도 있다. 형사부에서 폼 안 나는 일에 파묻혀 지내는 검사들이 윤 사단을 보는 눈빛은 곱지 않다.

이런 내부 불만에는 윤 총장의 성격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결코 두루두루 잘 지내는 무골호인이 아니다. 호불호가 비교적 분명하다. 현재 윤 총장과 갈등 관계에 놓여 있는 한 검찰 간부는 10년 전 윤 총장 때문에 입은 마음의 상처가 있다고 한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의 말이다.

“윤석열이 신정아 사건 때 대검 연구관이었는데 서울서부 지검으로 파견을 갔다. 정상명 총장이 직접 골라 보냈다. 그때 윤석열보다 연수원 기수가 위인 서부지검의 한 부장이 서류를 들고 와 윤석열에게 사건 처리 방향을 얘기했다. 윤석열이 알았다며 서류 뭉치를 툭 던져 내려놨다고 한다. 별 뜻 없이 한 행동이기는 했을 텐데, 그 일이 그 부장에겐 잊기 힘든 일이 됐을 거다”고 말했다. 그 부장은 현재 법무부 고위 간부다. 조국 사태 때 윤 총장을 수사 지휘 선상에서 배제하려 했던 사람 중 하나다.

‘인사권’에 ‘초강공 맞수’로 배수진


정권은 ‘인사’라는 칼을 들이대 윤 사단의 힘을 빼려 들 것이다. 윤 총장 측근들이 주요 수사를 좌지우지하는 지금의 검찰 구조를 허물어버리려 할 것이다. 그럴 때 윤 총장에게 반감 내지는 서운한 감정을 가진 이들이 요긴하게 쓰인다. 이에 따라 검찰이 친윤(親尹)과 반윤(反尹)의 이중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정권 입장에서 보면 ‘균형과 견제’의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나, 윤 총장은 매우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윤 사단의 일부는 변방으로 보내지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 생긴다.

정권이 노골적으로 ‘윤석열 힘 빼기’에 나서면 윤 총장은 어떻게 대응할까? 사표를 던지는 초강수를 둘 수도 있다. 그 순간 그는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이들은 그가 사퇴로 응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한다. 윤 총장이 무너지면 조선 시대의 ‘사화(士禍)’처럼 자신을 믿고 따른 검사들이 줄줄이 화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윤 총장 측에서 계속 일을 벌일 것이다. 조만간 다른 큰 사건 하나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인사권을 동원한 정권의 공격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은 ‘센 수사’라는 것이다. 지금의 검찰은 자전거처럼 멈추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는 검찰 내부에서도 나온다. 큰 수사가 여러 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인사로 수사팀을 흔들면 정권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수사가 보호막이 된다.

윤 사단은 지난 3년간 주요 수사를 도맡았다. 대통령 둘, 국정원장 넷을 구속했고, 대법원장도 법정에 세웠다. 수사력은 절정에 달해 있다. 최근의 수사를 통해 현 정부의 깊은 곳도 들여다봤다. 수사 정보도 쌓일 대로 쌓였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지닌 추미애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돼 윤 사단에 칼을 들이댈 경우 피 튀기는 일전이 예상된다. 과연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정권의 선택에 달렸다.

- 이상언 중앙일보 논설위원 lee.sangeon@joongang.co.kr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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