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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심층진단] 문재인 정부의 ‘하산 길' 

위기 경고음 무시한 MB·박근혜 정권 전철 밟는가 

과거 두 대통령, 집권 3년 차 측근 스캔들 덮는 데 치중… 결국 쇠락의 길로
‘하명수사 의혹’은 MB 민간인 사찰, ‘유재수 의혹’은 朴 정윤회 문건 떠올려


▎2019년 11월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에 잠겨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졌습니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되어야 합니다.”

2017년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 단절을 힘주어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출발은 순탄했다. 집권 2년 내내 지지율은 70%를 넘나들었다.

3년 차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경제성과 미흡, 일본의 경제 보복, 북한 도발, 패스트트랙 법안 지정을 둘러싼 여야 충돌 등이 악재였다. 결정타는 ‘조국 사태’였다.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논란이 확산되던 2019년 8월 리얼미터(3주차)와 한국갤럽(8월 4주차) 조사에서 모두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이른바 ‘데드 크로스’가 나타났다. 이후 거의 모든 조사에서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어김없이 등장한 말이 ‘집권 3년 차 증후군’. 1987년 민주화 이후 들어선 모든 정권이 겪었던 ‘성장통’이었다. 임기 반환점(2019년 11월 9일) 전후 언론의 평가는 야박할 정도다. ‘과거에 매몰된 2년 반’, ‘(경제 성적) 4개 정권 중 문재인 정권이 최악’ 등. 그동안 우호적 입장을 보여왔던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의 평가 역시 박했다. 각각 사설을 통해 ‘깊은 성찰’과 ‘집권 후반기는 확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서였을까. 청와대는 2019년 11월 10일 여야 대표를 만찬에 초청했다. 그 며칠 전 문 대통령의 모친상에 조문 온 것에 대한 답례라고 했다. 어쨌든 ‘협치를 위한 새로운 시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11월 19일엔 사전 각본 없이 시민 300명으로부터 즉석 질문을 받는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다. ‘새로운 소통’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가에선 임기 반환점이라는 ‘정상’을 찍고 하산 길에 들어선 정권이 나름 ‘몸조심’을 하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2019년 11월 25일 검찰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금융위 고위간부로 재직 중 관련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정작 언론 시선은 진작 유재수 비위 의혹을 파악해 감찰을 벌였던 청와대의 조사 중단 이유로 향했다. 보도에 따르면, 2017년 8~10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은 유재수를 대상으로 2차례 직접 조사 끝에 비위 첩보가 사실이라는 점을 밝혀냈으나 이를 덮고 말았다. 당시 조사를 맡은 특감반원은 검찰 조사에서 당초 진술과 달리 “윗선의 지시로 감찰이 무마됐다”고 진술했다. 그의 직속 상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도 감찰 무마 의혹을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산 길 초입에 떨어진 ‘핵폭탄’


▎금융위원회 재직 당시 업체들로부터 뇌물 등을 받고 편의를 봐준 혐의를 받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2019년 11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검찰은 감찰을 중단시킨 ‘윗선’으로 현 정권 핵심인사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감찰에서 벗어난 유재수가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을 거쳐 부산시 부시장으로 영전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막강한 힘 때문에 가능했다고 봤던 것. 유재수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파견돼 노무현 대통령 수행비서를 지냈다. 이때 자연스레 ‘친노’ 핵심 인사들과 친해졌고, 현 정권 출범 이후 ‘친문’ 핵심으로 갈아탄 인사들이 그의 ‘정치적 뒷배’가 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유재수가 문 대통령을 ‘재인이 형’으로 부른다는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대통령 이름이 거명되는 순간 일개 금융위 간부 감찰 무마 사건은 졸지에 메가톤급 ‘권력형 부정사건’으로 비화해버렸다.

바로 하루 뒤 이번엔 가히 핵폭탄급 소식이 청와대에 날아들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직전 한국당 소속 김기현 울산시장 비위 혐의에 대한 경찰수사가 청와대 하명(下命)에 따른 수사였다는 것. 당시 울산경찰청은 청와대로부터 받은 범죄첩보를 근거로 수사에 나섰고, 이후 압수 수색을 비롯해 수사 진행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비서실 직제규정 등에 따르면 청와대 감찰은 행정부 소속 공무원과 공공기관장에 국한돼 있다. 광역단체장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비위 정보 수집 등은 명백한 위법인 셈이다. 특히 선거를 코앞에 뒀던 시점이라 관권개입 시비마저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이쯤 되자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 되풀이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2019년 12월 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 레임덕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모든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검찰에 가서 사실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들면서 “권력 누수 현상”이라고 말했다. 언론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청와대가 보이고 있는 난맥상이 김영삼 정권 이후 집권 후반기만 되면 되풀이돼온 권력 몰락의 패턴을 닮아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말 그럴까. 바로 앞선 두 정권의 사례와 직접 비교해보자. 먼저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터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정권에 치명타가 됐다. 발단은 2010년 6월 MBC의 ‘이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 편이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8년 당시 민간기업 KB한마음 대표 김종익씨를 사찰했다는 내용이었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김씨뿐 아니라 여야 의원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불법 사찰이 이뤄졌다는 정황을 찾아냈다. 아울러 사찰에 대한 최종 지휘라인이 총리실이 아니라 청와대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것도 감찰을 담당하고 있는 민정수석실이 아닌 당시 사회정책수석실 이용호 고용노동비서관이었다. 이용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정치적 배경에 ‘영포라인’이 있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는 곧 이명박(MB) 대통령의 고향, 경북 영일·포항 출신들의 권력 사유화 논란으로 이어졌다.

文 “내 가장 큰 소원은 송철호의 당선”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앞줄 왼쪽 두 번째)이 한 행사장에서 송철호 울산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파장은 컸다. MB정권 도덕성이 곤두박질치면서 민심은 싸늘해졌다. 보수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까지 “국민 불법 사찰은 반민주적 인권유린”이라고 비난했다. 정권을 좌지우지해왔던 영포라인에겐 몰락의 단초가 됐다. 이용호의 뒷배로 거론되던 ‘왕차관’ 박영준과 영포라인 ‘대부’로 불렸던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이 각각 여러 사건에 휘말려 결국 낙마했다. 이후 여권 내 헤게모니는 ‘미래권력’ 박근혜 의원에게로 급속히 쏠렸다. MB는 쓸쓸한 퇴장을 맞이해야 했다.

현재 ‘관권 개입’ 여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의 발단도 ‘불법 사찰’이었다. 청와대가 경찰청에 이첩한 울산시장 비위 첩보의 ‘출생 비밀’에서 논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 감찰 권한이 없는 청와대가 첩보를 생산했다면 불법사찰에 해당한다. 사안의 심각성 탓에 처음부터 청와대는 적극 손사래를 쳤다. 2019년 11월 29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울산시장이었던) 김기현씨에 대해 감찰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첩보는 외부 제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자발적 제보를 받았다는 청와대 측과 요청에 따라 제공했다는 제보자 송병기의 말이 엇갈린 탓이다. 만약 송병기 주장이 맞는 것으로 판명 난다면, MB정권 불법사찰과 ‘도토리 키재기’ 꼴이다.

오히려 사안의 심각성이 더 클 수도 있다. 박지원 의원은 12월 2일 같은 인터뷰에서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을 MB정권에서 저질러졌던 ‘국정원 댓글 사건’에 비유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특히 청와대 사정기관의 선거 개입”이라는 점에서 “제2의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고 말했다.

제보 이후 사태 전개가 잘 짜인 한 편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한 탓이다. 실제 송병기 제보는 청와대를 거쳐 울산경찰청으로 이첩되고, 이를 근거로 선거 직전 울산시장 압수 수색이 실시된다. 송병기는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에 힘을 보탠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진술 조서엔 그의 이름이 가명으로 등장한다. 비리 혐의에 휘말린 김기현은 낙선하고, 그 뒤 검찰 수사에선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상대 후보 송철호 선거 캠프에 몸담은 송병기는 선거 승리 후 울산 부시장 자리에 오른다.

그래서 한국당은 “송철호 당선을 위한 선거공작”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당은 추가 근거를 내세웠다. 문 대통령과 송 시장이 막역한 관계라는 것. 대표적 사례가 2014년 울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송 시장 지원 유세에서 문 대통령이 한 말이다. “바보 노무현보다 더 바보인 송철호다. 내 가장 큰 소원은 송철호의 당선이다.” 송 시장은 지역주의에 막혀 당시 선거를 포함해 8번 낙선했다. 부산과 이웃한 울산에서 함께 인권변호사 길을 걸으며, 그를 ‘형’으로 불렀던 문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한(恨)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인연에서 과거 MB와 SD(이상득) 관계가 어른거린다”고 꼬집었다. PK 친문(親文) 좌장 격인 송 시장이 청와대 지원으로 당선됐다면, 영포라인의 배경에다 대통령 형님 지위를 활용해 권력을 사유화했던 SD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말이었다.

스스로 MB정권 불법사찰의 ‘몸통’을 자처했던 이용호와 유재수 감찰 무마와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전 민정비서관 백원우의 닮은꼴도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자신 소관도 아닌 사안에 월권적으로 관여했다는 점과 알고 보니 숨어 있던 막강 실세였다는 게 복사판이라는 것이다. 백원우는 ‘축소된’ 유재수 비위 사실을 금융위에 통보해 결과적으로 징계를 면하게 해줬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여기다 울산시장 비리 첩보를 접수해 정리한 문모 행정관은 백원우의 부하 직원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건 모두의 관할은 반부패비서관실. 검찰은 백원우가 금융위와 수시로 상의하면서 유재수 징계를 막아주고 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영전하는 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만큼 힘이 셌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백원우의 이런 ‘파워’를 울산시장 선거 개입 근거로 주장한다. 2019년 12월 5일 검찰에 낸 고발장에서 “조국·백원우·박형철은 민정수석실 권한을 벗어나 검찰·경찰·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동향 정보를 수집했고, 백원우는 직제에 없는 사찰팀을 운영했다”고 했다.

우병우에게 밀린 김영한, 백원우에게 밀린 조국?


▎2009년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헌화 순서에 백원우 의원이 “사과하라”며 소리치자 경호원들이 입을 막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언론도 뒤늦게 백원우 조명에 나섰다. [한국일보]는 12월 3일자 ‘허세 조국, 실세 백원우’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지금 보면 조국은 공수처와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 작업을 도맡았을 뿐 사정·정보·여론·민심 등 민정수석실 핵심 업무에서는 사실상 배제됐던 게 아닌가 싶다…하급자인 백원우의 의견에 따라 유재수 감찰 중단을 지시했고, ‘김기현 사건’은 보고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정수석실의 진짜 실세는 조 수석이 아니라 원조 친문들이었던 셈이다.”

정가 안팎에서도 진작 비슷한 얘기가 나돌고 있었다. 소문 밑바닥엔 백원우에 대해 문 대통령이 지고 있는 ‘마음의 빚’이 자리하고 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백원우의 고함과 관련해서 회자되는 에피소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분향에 나서자 백원우는 “어디서 감히, 사과하라”고 소리쳤고, 바로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문 대통령은 이런 소회를 남겼다. “저도 그때 마음은 우리 백원우 의원과 똑같았다. 그렇게 외치는 백원우 의원을 안아주고 싶었다.” 그에 대한 미안함은 집권 후 오히려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백원우를 민정비서관에 앉혔기 때문. 재선의원 출신이 1급 비서관으로 간 것은 그야말로 ‘파격적 하향 취업’이다. 그만큼 두 사람 간 신뢰가 각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소문이 정말 맞다면 또 다른 데자뷔(기시감)를 떠올릴 만하다. 박근혜 정권 집권 3년 차로 접어들던 2015년 1월에 터진 ‘김영한 항명 파동’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김영한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탓에 열린 국회 운영위 회의에 출석을 거부했다. 민정수석의 국회 불출석 관행을 이유로 내세우긴 했으나, 상관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출석 지시를 정면으로 일축했다는 점에서 항명으로 받아들여졌다. 발끈한 김기춘이 해임을 추진하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야인으로 돌아간 김영한은 불과 1년 반 뒤 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김영한은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느닷없이 소환됐다. 증인으로 나온 김기춘을 상대로 질의에 나선 정유섭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김영한 사망에 대한 김기춘과 당시 민정비서관 우병우 책임을 따져 물었다. “(김영한) 모친이 기자들에게 아들 죽음은 김기춘·우병우 탓이라고 했다. 정상적인 청와대 비서실 업무로 보기 힘든 지시로 괴로워했다고 했다. 청와대를 그만둔 뒤 매일 술 마시다 죽었다고 한다.” 김기춘은 “아니다”고 발뺌했다. 박영선 당시 민주당 의원은 또 다른 증인 우병우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고, 그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영한이 남긴 비망록과 언론의 당시 청와대 관련자 취재를 종합하면 ‘진짜 민정수석’은 우병우였다. 김영한의 자진 사퇴 후 자연스레 우병우가 후임자가 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불거진 ‘허세 조국, 실세 백원우’ 논란 구도와 묘하게 일치한다.

朴 문고리 3인방 비견되는 인물들 연이어 입방아에 올라


▎2018년 1월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 둘째부터 당시 백원우 민정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우병우가 검찰의 한참 선배인 김영한을 제치고 권부의 신임을 독차지한 계기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처리에서 보여준 ‘능력’ 때문으로 알려졌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 보도로 세간에 드러난 정윤회 문건의 요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윤회가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청와대 행정관 등 이른바 ‘십상시’들과 정기적으로 어울리며 국정을 주무르고 있다는 것. 조사 결과, 문건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당시 박관천 행정관이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뇌관은 그 내용이었다.

아무런 직책도 없는 정윤회가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보도에 야당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규정해 맹공을 퍼부었다. 청와대는 검찰을 내세워 즉각 진화에 나섰다. 검찰은 관련자 조사를 통해 문건 내용을 허위라고 결론 내린 뒤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과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대검 중수부 검사 출신 우병우가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았던 것. 그러나 2016년 10월 정윤회 전처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스모킹건으로 등장했다. 이를 통해 문고리 3인방과 결탁해 권력을 맘대로 휘둘렀던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후 정권은 말 그대로 급전직하했다.

야당은 이번 유재수 사건에서도 비선 실세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주장한다. 유재수 감찰 무마와 영전의 정치적 배경이 단순히 백원우 혼자만 아니라는 것이다. 곽상도 한국당 의원은 2019년 11월 28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권 실세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이 유재수의 부산시 부시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제보가 입수됐다”고 말했다. “(강원도 출신인) 유재수 경력에서 부산과의 거의 유일한 접점은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친노 진영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는 것”이라며 제보 신빙성을 주장했다. 문 대통령과 함께 참여정부 청와대에 ‘차출’됐던 ‘부산파’ 이호철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전해철 민주당 의원과 함께 이른바 ‘3철’로 불리는 대통령의 핵심측근이다. 공직을 사양한 채 야인으로 머물러왔다. 연루 의혹 제기에 즈음해 출국한 것으로 알려진 이호철은 언론 확인 요청에 아직 가타부타 말이 없다.

유재수가 정권 실세들과 유착해 금융위 인사를 주물렀을 가능성도 검찰 수사에서 포착됐다.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을 통해 금융위 A 상임위원과 또 다른 고위층의 인사에 대해 논의한 정황을 확보했다는 것. 함께 대화를 나눈 이들은 김경수 경남도지사,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천경득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권력 헤게모니 측면에서 보면 이들은 어쩌면 ‘3철’보다 더 힘 있는 인사들이다. 검찰은 최근 이들을 차례로 불러 인사 개입 여부를 따져 물었고, 하나같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회 문건’ 덮은 朴, ‘김태우 폭로’ 무시한 文은?


▎2014년 12월 당시 국정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었던 정윤회(가운데)씨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유재수 의혹이 정권 실세들과 얽히며 권력형 비리로 비화되는 모양새에 여권 관계자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목은 위기 전조(前兆)가 무시된 점이다. 2019년 총선 민주당 공천을 노리는 한 변호사는 “권력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위기가 닥치는데 반드시 경고등이 켜진다”며 “이를 무시한 게 사태를 키운 꼴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경고등은 2018년 말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의 폭로다. 당시 개인적 일탈을 이유로 검찰에 복귀했던 김태우는 청와대 재직 시 목도했다고 주장하는 권력 핵심의 비리를 잇달아 공개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러시아 대사 비위 첩보 묵살, 환경부 블랙리스트 등 하나같이 폭발성이 강한 사안이었다.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김태우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김태우가 ‘히든카드’로 꺼내 든 게 유재수 건이었다. 2019년 2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재수 비위와 감찰 무마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뒤 조국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청와대는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철저히 무시했다. 이미 법적 조치를 취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따지고 보면, 정윤회 문건 사건도 박근혜 정권에겐 분명한 위기의 전조등이었다. 2016년 11월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국정조사에서 이만희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이창재 법무부 차관에게 “(정윤회 문건을) 검찰이 지금의 반의반 정도의 결심만 있었어도 진실 여부를 밝혀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의 국정농단 사태도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이 차관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최순실에 대해 믿음을 가졌던 것인데,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러한 내 믿음을 경계했어야 했다는 늦은 후회가 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2월 15일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권력형 비리나 정권유착 비리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열 달 뒤 권부 핵심과 관련된 비리 혐의에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아직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한 직접 언급을 삼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다르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럴 리가…’의 당혹감 탓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야당과 일부 언론의 정치공세로 치부해버릴 사안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단호한 진상규명 의지와 향후 대책을 직접 내놓아야 한다. 이번 의혹에 조직 명운을 거는 듯한 검찰 의도가 마음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특별검사라도 자청해야 한다. 전임 정권의 국정농단에 따른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게 ‘정권의 도덕성’이 바로 생명줄 아닌가. 과감한 인적 쇄신도 필요하다. 연줄과 진영의 틀을 벗어난 ‘깜짝 발탁’ 말이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 단절을 위한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단, 문 대통령 마음먹기에 달렸다.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 jwhn20@naver.com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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