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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미·중 전쟁의 함정과 한국경제의 출구] 포위하려는 독수리 vs 그물망 뚫으려는 용 

반도체 이후 활로는 중국에 있다 

트럼프 ‘4가지 그물’에 바이든은 탄소세까지 검토
중국은 자본시장 문 열어 대응, 한국은 지분 투자 가능해져


▎2013년 4월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조 바이든(오른쪽) 당시 미국 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2등 죽이기’에 이골이 난 나라다. 1970년대에 소련이 부상하자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유도해 무너뜨렸고, 1980년대에 일본이 부상하자 엔고를 요구해 좌초시켰다.

2000년대에 떠오른 도전자는 중국이다. 미국이 전쟁과 경제위기 뒷수습으로 한눈판 사이 미국 GDP의 60%까지 쫓아왔다. 공기(工期) 단축에 목숨 걸었던 부동산업자 트럼프 대통령, 대(對)중국 공략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였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우주전쟁·관세전쟁으로 소련을 무너뜨리는 데 18년, 환율전쟁·무역전쟁으로 일본을 좌초시키는 데 10년 걸렸다.

2021년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다. 10전 10승 선거불패 신화를 자랑하는 바이든, 운 좋은 사나이다. 40여 년간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하면서 정치·외교에 일가견도 가졌다. 8년간 중국을 관리한 정치꾼 시진핑과 부통령으로 8년간 미국을 관리한 바이든, 미·중 정치꾼의 한판 대결이 벌어질 판이다.

정치꾼의 패싸움은 장사꾼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이든의 공약을 보면 장사꾼 트럼프와 정반대다. 바이든의 전략은 ‘AIB’(미국이 돌아왔다: America Is Back)다. 비정상으로 간 미국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말 대포 쏘면서 협박하지만 실행력은 떨어지는 장사꾼 스타일이 아니다. 말은 점잖게 하지만, 말 안 들으면 바로 돌주먹을 날리는 미국의 전통 스타일로 회귀한다.

트럼프 4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미국이 기다리고 있다. 바이든의 정책 우선순위를 보면 첫째가 코로나 방역이고, 둘째가 경제 살리기, 셋째가 인프라 투자, 넷째가 중국 견제다. 이런 변화를 보면 기대감도 들지만, 불안감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바이든의 정책에 3가지 함정이 보이기 때문이다. 동맹의 함정,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의 함정, 녹색경제의 함정이다.

정치꾼의 패싸움


▎1985년 9월 22일 플라자합의를 마친 G5 국가 재무장관들이 카메라 앞에 서 있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을 지렛대로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한다. 동맹의 다른 이름은 합종연횡, 다시 말해 이해관계에 따른 계산이다. 합종연횡은 세가 약할 때 쓰거나 패권자가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을 때 쓰는 전략이다. 미국의 동맹 전략은 후자다.

미국이 중국을 잡으려고 던진 그물은 네 개다. 첫째가 클린 네트워크(5G 통신망에서 중국 배제), 둘째가 쿼드 블록(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 협의체), 셋째가 경제번영 네트워크(우방국 경제 블록), 넷째가 중거리미사일망이다. 미국은 이 네 가지 그물을 칠 때 맞잡아줄 동맹을 구한다고 하지만, 말이 요청이지 실제로는 명령이다. 미국이 그물을 치는데 한국이 빠져나갈 길은 묘연하다.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의 외교는 웃으면서 돌주먹으로 내리치는 것이다. 바이든이 말하는 “동맹 강화”는 확실하게 편을 가르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미국의 그물망 구멍 내기에 전력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 등과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맺고 러시아·카자흐스탄 등 유라시아 국가들과 함께하는 안전보장 기구인 상하이협력기구를 활성화했다. B급 패권국과 B급 강국이 부딪치는 상황이 오면 고약한 것은 ‘약한 나라 줄 세우기’다. 중국엔 ‘원숭이 앞에서 닭 죽인다’는 속담이 있다. 중국인들이 원숭이를 길들이려고 실제로 즐겨 쓴 방법이다. 자칫 줄 잘못 서면 우리가 원숭이 앞에 놓인 닭이 될 수 있다.

바이든의 주요 경제 공약 중 하나가 ‘Buy America’다. 무역적자·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 입장에서 트럼프의 ‘Made in USA’나 바이든의 ‘Buy America’나 구호만 다르지 종착역은 같다.

미국은 반도체와 5G 통신에서 추격을 허용했다. 특히 5G 통신장비 시장에선 중국 화웨이(35.7%, 2020년 1분기 기준)가 가장 앞서나간다. 이유는 미국의 ROI 경영, 스마일커브 경영 때문이다.

미국은 단기이익 극대화에 목숨을 건 월가의 논리에 함몰돼 자기자본이익률(ROI)을 기업 실력의 척도로 쓰는 바람에 ROI를 올리는 데 급급했다. 이익 추구는 기업의 기본이지만, ROI로 기업을 평가할 때 부작용도 없지 않다. 급여 같은 고정비를 줄일 때 이익이 가장 빨리 늘어나기 때문이다. 단기이익 극대화에 목숨 건 월가의 논리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지난 40년간 고정비를 줄이는 데 주력했다. 설비투자액이 많이 드는 산업은 속속 하청을 줬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는 대만과 한국에, 통신장비는 중국과 한국에 넘겼다. 미국은 서비스 개발만 맡았다.

하버드대 등 명문 경영대학에서 전파한 스마일커브(Smile Curve) 이론도 문제였다. 대만의 컴퓨터 제조업체 에이서(ACER)의 창업자 수탠쉬(施振榮)가 저서 [Growing Global](2001)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이다. 상품 생산과정(Production Chain)의 시작인 연구개발과 끝인 유통에서 가장 높은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이 요지다. 반면 중간 단계인 제조는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 고정비가 많이 들어서다.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하는 제조는 개발도상국에 넘기는 것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수탠쉬는 말했다.

미국 기업들은 연구개발과 유통이라는 입꼬리의 양 끝만 가지고 떼돈을 버는 마법의 비즈 모델에 매료됐다. 애플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업이익은 물론 시가총액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러나 이 이론은 중국을 미국의 하청기지로 부릴 때나 성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다. 이제 스마일커브의 왼쪽 입꼬리인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전투가 벌어진다. 무역전쟁이 기술전쟁으로 확전하는 꼴이다. 비유하자면, 머슴이 파업하면서 대감 집 마당 쓸고 장작 패고 밥할 사람이 없어졌다.

탄소세로 중국 노리는 바이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020년 7월 15일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 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미국 정치권이 탈(脫)중국화·리쇼어링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40년 전에 집 나간 제조업은 돌아올 생각이 없다. 미·중 기술전쟁으로 생산이 다시 중요해졌다. 이제 생산의 내재화가 안 되면 첨단산업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백신이든 5G든 기술개발을 빨리해도 양산공장이 없으면 도루묵이다.

미국이라는 집을 나간 전통 제조업은 무역 전쟁의 시빗거리로 쓸 뿐이다. 장사꾼 트럼프는 40년 전에 집 나간 미국의 기업을 다시 불러들여 미국산을 부활하겠다고 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은 이젠 첨단산업의 기술·생산 내재화로 마음 굳혔다. 첨단산업만큼은 미국에서 만들어 미국이 쓰겠다는 것이다.

정치인 바이든은 미국 소비자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고단수를 쓰고 있다. 정부부터 미국산을 구매할 테니 기업은 미국에서 생산하고, 소비자는 미국산 제품을 쓰라는 이야기를 빙빙 돌려서 한다. 트럼프와 다른 양 말할 뿐이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 내에서 판매할 때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복귀 기업에는 10% 세액공제를 해주겠다는 당근도 내걸었다.

미국산 우선구매는 보호무역주의·자국우선주의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미국산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면 누구든 손보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트럼프 때보다 사정이 좋아진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인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바이든의 정책은 대미 수출기업에 또 다른 경고 사인이다.

바이든 정부는 녹색경제에 ‘올인’한다. 바이든의 녹색경제는 전략도 명분도 좋다. 좌파든 우파든 환경보호에 시비 걸면 인류의 적이다. 신에너지 산업 육성에 반대하기 어렵다. 바이든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관련 산업에 2조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에 5조 달러를 투자해 2050년까지 100% 청정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원대한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트럼프의 표밭인 전통 산업에 대한 공약은 없다. 화석연료 산업에 들어가던 지원금을 끊고 오염유발 책임자는 처벌하겠다고 경고한다. 천연가스 신규 시추 허가도 중단한다. 또 탄소 배출이 많은 나라에 대해선 탄소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트럼프는 관세로 중국을 잡으려 했지만, 바이든은 탄소세로 잡는다.

농업혁명에서 정보혁명까지, 산업을 뒤바꾼 원동력은 에너지였다. 에너지 패권을 쥔 나라가 산업 패권도 가져갔다. 농업 시대에는 소와 말의 힘이, 공업혁명 시대에는 석탄이, 자동차 시대에는 석유가, 그리고 정보 시대에는 전기가 힘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태양이 힘이다. 하루치 햇빛만 전기로 바꿔도 인류가 1년 쓸 에너지를 얻는다.

원자폭탄 독자 개발했던 중국의 위력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SMIC의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모습. SMIC는 화웨이에 반도체 위탁 생산을 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바이든 정부는 신에너지에 목숨 걸었다. 중국은 전기차에 전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첨단산업에서 미국과 충돌하지 않으려고 신에너지 용어는 피했다. 중국은 2035년까지 자동차 판매량에서 전기차 비중을 50%까지 올려 세계 최대 전기차 제국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두루뭉술하게 그린뉴딜에 젓가락을 얹고 있다.

새로운 미·중 전쟁은 신에너지에서 크게 벌어질 판이다. 그리고 치열한 선두 경쟁이 신에너지 산업의 발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전망이다. 바이든의 녹색경제를 보면서 드는 걱정은 반도체든 통신이든 신에너지든 미국이 마음먹고 덤비면 당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미·중이 목숨 걸고 덤비는 신에너지 시장에서 한국은 어설프게 하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미·중의 박 터질 경쟁 구도하에서 한국의 스탠스를 빨리 잡고 빨리 출발해야 산다.

미국은 1980년대에 일본을 무역이 아닌 기술과 금융으로 좌초시켰다.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 미·일 경제전쟁이 벌어졌지만, 일본의 대미흑자 누계는 같은 기간 462억 달러에서 5766억 달러로 늘어났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를 10년간 69% 절상시켰고,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반도체 기업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 중단, 일본 내 외산 반도체 점유율 20%까지 확대 등)을 맺어 일본 반도체산업의 발목을 잡았다.

미국이 일본 반도체산업을 주저앉히는 데 미국 시장 내 판매를 제한하는 전략(반덤핑 혐의 제소 등)과 가격을 통제하는 전략을 썼지만, 중국에는 대표 전자기업인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율이 15% 선에 그치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2020년 9월부터 미국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를 화웨이에 팔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화웨이에 판매를 중단했다. 미국은 중국 1위 파운드리 업체 SMIC에 대한 제재도 검토하고 있다. 화웨이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고 있어서다. 5G 통신에서 굴기를 꿈꾸던 중국에 이번 제재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그러나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한다고 해서 중국이 통신장비나 스마트폰을 못 만드는 것은 아니다. 화웨이 이외의 통신장비 업체나 스마트폰 업체는 아직 미국의 반도체 공급 제재 대상이 아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중국 전자업계 전반에 대한 반도체 공급 중단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그래서 주목해 봐야 할 것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 중단 위협에 대한 중국의 대응 전략이다.

중국 정부는 28㎚ 이하 반도체 공정 기술을 보유한 반도체 기업에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는 5나노 공정 상용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또 2025년까지 미국이 기술을 독점하다시피 한 실리콘(Si) 반도체가 아닌, 3세대 반도체인 실리콘카바이드(SiC)·갈륨나이트라이드(GaN) 반도체에서 설계·제조·장비·소재 모든 방면에 걸친 생태계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2021년부터 시작하는 14차 5개년 계획에 3세대 반도체 국산화 정책을 포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번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제재를 원자폭탄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1959년 소련의 흐루쇼프가 중국에 대한 원자폭탄 개발 지원을 중단하자 중국은 독자적인 핵 개발에 착수한 지 5년 만인 1964년,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핵실험에 성공했다. 중국은 국민당이 키운 미국·소련·프랑스 유학파 인재들을 중용했다. 5년 뒤 중국 핵 개발과 같은 시나리오가 반도체에서도 현실이 되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중국 반도체 제재, 지금까진 한국에 득(得)이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의 각성과 분발, 그리고 차세대 반도체 국산화가 이뤄지면 실(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맨땅에서 원자폭탄을 5년 만에 개발한 중국이다. 중국을 상대로 한 초(超)격차는 말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한국,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다간 중국에 당할 수 있다. 반도체를 원자폭탄 개발 보듯 하는 중국의 태도를 무섭게 봐야 한다.

반도체 생산에만 집착 말아야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 건물 앞을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중국은 2020년 1월부터 자본시장 개방을 시작했다. / 사진:EPA연합뉴스
미국의 강도 높은 대중국 견제는 한국 경제에 단기 호재, 장기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미국의 포위망에 둘러싸인 중국은 한국에 화해의 손짓을 보낼 수밖에 없어 사드 사태 당시 한국의 입지와는 달라졌다. 그러나 미·중 긴장 관계는 코로나로 인한 미국 경제의 침체로 단기적으로는 완화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더 악화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국의 동맹 강화 외교 전략은 한·중 관계를 의도하지 않은 긴장 관계로 다시 몰아갈 위험이 있다. 미·중이 서로 원숭이를 길들이려고 닭을 잡아 피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닭이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드 사태 때 한국이, 미·중 반도체 분쟁 때에는 대만이, 그리고 코로나 원죄론 논쟁에서는 호주가 닭이 됐다. 그러나 한국이 또다시 닭이 되면 안 된다.

우리가 보는 중국은 ‘3000년 역사의 중국’과 ‘70년 혁명의 중국’ 그리고 ‘40년 자본주의 중국’이 혼재돼 있다. 특히 마지막 관점에서 우리는 중국을 우리보다 한 수 아래로 본다. 철강·조선·기계·가전·자동차·LCD·반도체로 이어지지는 제조업의 국제 이전 과정에서 한국보다 20~30년 시차를 가진 산업화 후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자본시장에 등장한 중국에 주목해야 한다. 서방 자본주의 250년 역사에 비하면 짧지만, 중국은 자본시장을 통해 미국의 기술 봉쇄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2020년 1월 1일부터 외국인 소유 선물·보험회사 영업을 허용하는 등 외국인 투자 규제를 풀었다. 앞으론 외국계 투자은행이 독자적으로 영업할 길도 열린다.

한국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28년간 중국 제조업 시장에 뛰어들어 많은 이익을 냈다. 지금도 한국 무역흑자의 79%는 중국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한국이 28년간 중국 제조업에서 번 것보다 더 크게 벌 기회가 생겼다. 한국의 기술에 중국 자본시장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한국은 기술만 넘기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할 수 있지만, 역사를 보면 답이 있다.

제조기술은 영원한 것이 없다. 지금 한국이 세계 최강인 메모리 반도체를 예로 들어보자. 메모리 반도체는 1970년에 미국이 개발했고, 1985년에 일본이 패권을 잡았다. 1992년엔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메모리 기술은 개발지인 미국에 영원히 머물지 않고 일본과 한국, 대만을 거쳐 이제 중국에 도착했다. 첨단 기술은 출발지와 종착지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미국은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일본과 한국으로 이전했다고 그리 애통해하지 않는다. 이유는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율’에 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56%, 이중 절반 이상이 미국이다. 삼성이 10조원을 벌면 5조6000억원은 외국인 몫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미국인 몫이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과 개발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유유히 돈을 챙겨 간다. 기술이 아니라 돈이 일하게 하는 것이다.

그간 우리의 산업화 경험과 자본시장 개방 경험을 중국에서 활용할 기회가 왔다.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미·중 기술전쟁이 더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기술 경쟁력도 지키고 돈도 버는 어부지리를 누릴 것인지, 아니면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동네북 신세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 전병서 경희대 China MBA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bsj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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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호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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