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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용두사미 그친 ‘김명수 사법부’ 6년 여정 

‘대법원장의 거짓말’에 국민의 기대 와르르 무너졌다 

유길용·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탈권위·‘좋은 재판’ 내세웠지만, 좌편향 논란에 재판 적체 심해져
■코드 인사·정치 판결 논란… 승진 사다리 걷어차 법관 유출도 심각
■‘거짓말 의혹’으로 수사 선상… 퇴임 후 사법부 수장 연달아 불명예


▎2018년 9월 1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뒤에서 입장하고 있다.
"'좋은 재판’ 실현으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 임기 마치는 그날까지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2023년 1월 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원 시무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재판’은 김 대법원장이 6년 전 취임할 때부터 줄곧 강조했던 슬로건이었다. 임기 중 마지막 시무식이 열리던 날까지 그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간접 시인한 셈이다.

2017년 8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16대 대법원장 후보로 김명수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을 지명했다. 김 대법원장 지명은 파격이었다. 대법관이 아닌 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한 건 처음이었다. 전임(양승태) 대법원장과는 사법연수원 기수로 13년이나 차이가 났다. 게다가 김 대법원장은 진보적 성향으로 평가받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경력이 있었다.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사법부 코드화 정점에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를 집착해선 안 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9월 21일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국회 표결에서 역대 최저치인 53.7%의 찬성률로 대법원장이 됐다. 당시 상황을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그때 자유한국당은 헌법재판소장 후보인 김이수와 대법원장 후보인 김명수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김이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나 통합진보당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내는 등 정치적으로 강성 면모가 강했다. 상대적으로 유순하고 덜 알려진 김명수가 나아 보였을 거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는 지명된 지 110일이 넘도록 임명이 미뤄지다 2017년 9월 11일 인준 표결에서 과반 찬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보수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대법원장은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취임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라 들어선 문재인 정부를 향해 적폐 청산과 사법제도 개혁 요구가 높았던 시기다. 이 시기 사법부는 ‘사법행정권 남용사태’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법원행정처를 앞세워 진보성향 판사들을 사찰, 그들의 동향을 정리한 ‘사법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취임한 김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시기 ‘적폐 청산’ 광풍이 사법부를 강타하고 있었다. 안으로는 전국의 법관들이 잇따라 법관회의를 열며 사법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규명 압박을 강화하고 있었다.

‘사법개혁 적임자’ 기대 받으며 깜짝 등장


▎2017년 9월 26일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과 개혁을 강조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때 주목받은 단체가 법관들의 연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다. 김 대법원장은 2011년에 발족한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탄압을 받다가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사법부 내 적폐 청산을 주도했다. 사법 블랙리스트 의혹을 재조사한 조사위원장으로 지명된 민중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몸담았던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 대법원장 발탁 배경에 인권법연구회가 관련됐다는 주장도 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초대 법무비서관이 된 김형연 법무비서관은 김 대법원장이 회장으로 있을 때 인권법연구회의 간사였다. 김 비서관은 법관 사퇴 5일 만에 청와대로 향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은 400명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현직 법관들에 따르면 연구회를 주도하는 건 그중에서도 진보적 성향이 뚜렷한 ‘인권보장 제도를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이다. 2015년에 결성된 인사모에는 4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한 전직 판사는 “인사모는 양승태 체제에 도전하는 것을 계기로 모인 정치 조직의 형태를 띠었다”고 전했다.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사법부 핵심 그룹으로 떠올랐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던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장으로 발탁됐다. 민 법원장은, 임기 2년을 채운 법원장은 일선 재판업무로 복귀하는 법원장 순환보직제 관례를 깨고 3년간 유임됐다. 당시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관련 사건이 중앙지법으로 쏟아질 때였다.

민 법원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성지용 중앙지법원장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1차 조사 때 조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를 지낸 고연금 부장판사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1차 조사위원이었다. 이들이 중앙지법 핵심 직책에 있는 동안 정치 편향 논란이 더욱 고조됐다.

인권법·우리법연구회 출신 법원 요직 장악


▎2018년 4월 9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를 약속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비리 사건을 맡은 중앙지법 형사합의 21-1부 김미리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었다. 조국 일가 사건 1심 재판은 기약 없이 지연되다가 기소 후 3년 2개월 만에 징역 2년 선고로 마침표를 찍었다. 역시 김 부장판사가 맡았던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도 1년 3개월간 본안심리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맡았던 윤종섭 부장판사도 국제인권법연구회 멤버다. 윤 부장판사는 중앙지법에서 6년간 유임되다가 이 사건에서 유일하게 유죄 판결을 내린 뒤 서울서부지법으로 전보됐다. 그가 맡았던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은 2년 8개월째 1심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도 김 대법원장 취임 후 대폭 물갈이가 이뤄졌다. 2021년 2월 정기인사를 기준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97명 중 33명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법원의 인사·예산 등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이 요직에 올랐다. 대법원 산하 사법행정자문위원회 위원 10명 중 4명, 전국 지원장 41명 중 10명도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몸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법원장도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과 제도,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적극 활용했다. 사법행정권 남용사태 이후 상설기구가 된 전국법관대표회의 구성원의 절반가량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로 알려졌다. 이들은 김 대법원장의 든든한 울타리인 동시에 동력이 됐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여했던 판사 출신 법조인의 설명은 이렇다. “김 대법원장의 뜻을 국제인권법연구회 운영진에 전달하면 이들이 전국법관회의에서 목소리를 내고 연구회 멤버들이 동조해 어지간하면 120명 중 90명 정도 찬성으로 안건이 가결된다. 회의 내용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민변 출신 국회의원들이 힘을 실어 여론을 형성한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김 대법원장이 ‘전국 법관들의 의견을 반영해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공표함으로써 자기 뜻을 관철한다.”

얼핏 보기엔 민주적인 상향식 의사전달 구조로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라는 게 이 법조인의 설명이다. 그는 “법관회의 운영진이 제시한 문서에 담긴 데이터와 표현은 판결문의 서술형에 익숙한 법관들의 문법이라고 볼 수 없는 전형적인 관료의 개조식이었다”고 덧붙였다.

법원행정처의 비법관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 법원장 추천제는 이런 구조를 거쳐 제도화한 대표적 안건으로 꼽힌다. 법관의 사법 관료화를 어느 정도 벗어나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있다. 다만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로 사법부의 재판 능률이 급속히 저하됐다는 지적도 있다. ‘고위 법관’을 꿈꾸는 판사들이 자력으로 승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사라지면서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재판 적체 심해지고 법관들 줄줄이 퇴직


▎2021년 7월 16일 김기현 국민의힘 당시 원내대표가 대법원 앞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의욕이 사라지자 법복을 벗는 판사가 크게 늘었다. 지난 5년간 퇴직한 판사는 381명이었다. 올해까지 포함하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6년간 퇴직자 수(384명)를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창 일해야 할 고등법원 판사들이 ‘퇴직 러시’의 중심에 섰다.

재판 지연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법원 행정처가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년 넘게 판결을 내리지 않은 민사 1심 사건은 2017년 3만339건에서 2022년 5만3084건으로 크게 늘었다. 민사 2심의 경우도 2017년 3667건에서 2022년 9225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형사 사건도 마찬가지로, 1년 이상 진행된 1심 형사 사건이 2017년 7836건에서 2022년에는 1만5563건으로 대폭 늘었다.

판사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형근 특허법원 판사는 [법률신문] 기고에서 ‘재판의 실패’라고 못 박았다. 이 판사에 따르면 1심 합의 사건처리 기간이 2017년 294일에서 2021년에는 369일로 약 25% 늘었지만, 항소율은 오히려 2017년 40.5%에서 2021년 44.1%로 소폭 올랐다. 사건에 투자한 시간은 늘었지만, 당사자들의 만족도는 더 낮아졌다고 이 판사는 설명했다. 이 판사는 또 접수된 지 2년이 넘는 악성 미제 사건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사법행정권자들이 이같이 악화하는 재판 관련 통계에 대한 원인과 대책을 수립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장의 권력 남용을 막겠다며 도입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 잡음이 많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일선 판사들이 법원장 후보를 직접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하는 방식이다. 대법원장 인사권에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견에 따라 2019년 도입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기투표’식 제도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법원장 물망에 오르는 부장판사들이 평판을 의식해 후배 판사들을 지도하기를 꺼려 재판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대법원장의 ‘코드 인사’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통상 업무상 판사들과 수시로 소통해야 하는 수석부장판사는 어느 법원에서나 법원장 후보 1순위로 꼽힌다. 대법원장이 자신의 측근을 각급 법원 수석부장으로 임명해 법원장 승진 코스를 밟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대법원장이 임명한 수석부장들이 12개 지방법원 중 10곳에서 법원장 최종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 전직 판사는 “대법원장의 코드 인사에 민주적 정당성의 명분만 더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혁은 용두사미, 잇따른 정치 편향 판결 논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2021년 8월 12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임 부장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정치 상황을 이유로 자신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며 녹취록을 공개해 ‘대법원장 거짓말’ 파문을 일으켰다.
재판의 질이 떨어지고 국민이 기대했던 사법부 개혁 조차 용두사미에 그치면서 사법부의 권위도 손상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애초에 김명수 체제의 동인(動因)이었던 사법행정권 남용사태 의혹은 몇 차례 조사 끝에 흐지부지 끝났다.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재조사(추가조사위)와 3차 조사(특별조사단)가 이뤄졌지만, 최종 결론은 “법원행정처가 일부 법관 동향을 수집한 것은 맞지만, 인사 불이익을 준 것은 아니다”였다. 판사 40여 명이 조사를 받아 재판 업무가 마비되고 숱한 논란을 부른 사건치고는 허무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김 대법원장이 보여준 태도는 법관들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김 대법원장은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해 “수사가 진행될 경우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면서 법원 안으로 검찰을 불러들였다. 서울중앙지검은 특수 1~4부를 동원했다. 그해 9월 사법부 70주년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정권의 사법농단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며 불만을 드러내자 김 대법원장은 “적극 협조하겠다”고 호응했다. 당시 문 대통령 뒤에서 김 대법원장이 따라 들어오는 장면을 법원 사무실에서 TV로 지켜봤다는 한 전직 판사는 “사법부의 ‘부(府)’가 정부의 한 부처에 불과한 부(部)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 저하는 재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판결이 나올 때마다 정치 편향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정치 생명 위기에서 벗어나게 한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죄) 사건 상고심 판결이 대표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무죄 의견에 섰던 권순일 전 대법관은 이후 대장동 개발 의혹 중심인물인 김만배씨를 통해 이 대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수사 선상에 올랐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월 15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웅동학원 채용 비리 혐의를 받았던 조국 전 장관 동생의 경우 주범인데도 공범들보다 형량을 낮게 선고해 ‘봐주기 판결’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1심 사건은 조국 일가 비리 의혹 사건을 맡았던 김미리 부장판사였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형량이 3배 늘었다. 1심이 무죄로 판단했던 여러 혐의도 유죄로 판단이 뒤집혔다.

조국 전 장관 아들의 허위 인턴증명서 발급 혐의로 1, 2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징역형(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최강욱 민주당 의원 사건의 경우도 형평성 논란에 빠져 있다. 최 의원 사건은 2021년 1월 1심 선고 후 2022년 5월 항소심이 선고됐다. 이후 4개월 뒤에야 소부에 배당돼 주심 대법관이 정해졌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올해 6월에 대법관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반면 김선교 전 국민의힘 의원의 선거사무소 회계 담당자가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사건은 2023년 2월 항소심 선고가 나온 지 3개월 만에 대법원이 벌금 1000만원을 확정해 김 전 의원이 의원직을 잃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한 혐의로 기소됐던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국민의힘 소속)의 경우도 2021년 8월 항소심 이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치권 눈치 보며 스스로 사법부 권위 깎아내려

무엇보다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김 대법원장 6년 임기의 오점을 넘어 사법부 신뢰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으로 국회에서 탄핵이 추진됐던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건강상 이유를 들어 사표를 내자 김 대법원장이 국회의 탄핵 추진을 언급하며 수리하지 않았다는 폭로로 시작됐다. 김 대법원장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했지만, 임 부장판사가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거짓말이 들통났다.

김 대법원장은 결국 사과해야 했지만, 국민의힘이 그를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위계 공무집행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해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지난 7월 말 검찰은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김인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는 퇴임 후 이뤄질 전망이다.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던 김 대법원장의 취임 일성을 그 자신이 스스로 깨버린 셈이 돼버렸다. 9월 24일에 김 대법원장은 한남동 공관을 떠나 자연인 신분이 된다. 이후에는 검찰 조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법관 독립에 대한 소신을 갖고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할 적임자”(2017년 8월 21일 청와대 발표에서)의 초라한 퇴장이다.

- 유길용·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09호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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