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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북·러 협정으로 냉전시대 부활 노리는 푸틴의 야망 

“北 핵보유국 인정 통해 한·미·일 안보 체제 흔든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푸틴, ‘유사시 자동군사개입’ 조항 넣어 소련의 영광 복원… 김정은은 군사기술 제공 받아
러시아, 벨라루스·이란·쿠바 등과 反美 전선 구축 도모… 유엔 제재 무시하고 北 경제 지원


▎2024년 6월 19일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양 금수산영빈관에서 회담을 진행했다. 그 결과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북·러의 군사 밀착이 나왔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해방탑은 북한의 평양 모란봉 구역에 있는 기념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을 해방시킨 소련 군대를 기념하기 위해 1947년 건설됐다. 이 탑의 높이는 30m이며 꼭대기에 붉은 오각 별이 장식돼 있다. 붉은 오각 별은 소련군 엠블럼이다. 탑 아래에는 “위대한 쏘련 인민은 일본 제국주의를 쳐부수고 조선 인민을 해방하였다. 조선 해방을 위하여 흘린 피로 조선 인민과 쏘련 인민의 친선은 더욱 굳게 맺어졌나니 여기에 탑을 세워 전체 인민의 감사를 표하노라. 1945년 8월 15일”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19일 평양을 방문했다. 당일치기로 방문한 바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4년 만에 해방탑을 다시 찾아 헌화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푸틴 대통령의 해방탑 방문에 동행했다.

소련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직후인 1945년 8월,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중국 동북지방으로 진격했다. 소련군은 파죽지세로 일본군을 밀어붙였고 같은 해 8월 말 평양에 진주했다. 이후 소련군은 한반도의 38도선 이북 지역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소련은 김성주(김일성)를 앞세워 1948년 9월 9일 북한이라는 국가를 만들어줬다. 심지어 소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까지 정해줬다. 푸틴 대통령이 해방탑을 방문한 것은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가 북한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역대 소련과 러시아 지도자 중에서 유일하게 북한을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해방탑을 찾아간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러시아와 북한 간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서명한 것은 무엇보다 ‘소련의 영화(榮華)를 부활시키겠다’는 야심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6월 19일 평양 금수산영빈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두 시간에 걸친 일대일 회담을 마치고 협정을 체결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무엇보다도 협정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는 1961년 북한과 소련이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조·소 동맹조약)’에 포함됐던 ‘유사시 자동군사개입 조항’과 비슷한 수준이다.

1961년 조·소 동맹조약이 되살아나다

이 협정의 제4조에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4조 조항은 조·소 동맹조약의 제1조와 거의 동일하다. 조·소 동맹조약은 소련이 1991년 해체된 후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가 1996년 이 조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며 폐기됐다. 이후 러시아는 2000년 북한과 ‘우호·선린·협조 조약’을 체결했는데, 이 조약에는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제외됐다.

소련은 냉전 시절 헝가리·폴란드·체코 등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 및 공산주의 국가와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을 약속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된 이후 러시아는 이런 조약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북한과 조·소 동맹조약과 유사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것은 러시아의 지위를 냉전 시절 소련의 위상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격상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푸틴은 “새 협정을 토대로 러시아와 북한이 군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며, 군사 기술 협력을 발전시키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혀 북한과 러시아가 사실상 군사 동맹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를 포함한 극동지역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북핵 6자회담 참가국이었지만 논의의 중심에는 끼지 못하는 주변적 역할을 하는 데 불과했다. 그랬던 러시아가 북한을 지렛대 삼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들어 북한과 밀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무기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122㎜ 방사포탄과 152㎜ 자주포탄 등 포탄을 비롯해 각종 미사일 등을 지원해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에 122㎜와 152㎜ 포탄 180만 발을 지원했고, 대공용 포탄과 탄도미사일, 지대공미사일 등은 물론 러시아제 차량과 전차 수리를 위한 부품도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에 위성과 핵잠수함 기술 등을 제공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1일 군사용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해 지구 궤도에 안착시켰다고 발표했는데, 당시 러시아가 위성 발사에 도움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신형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형 등 핵 투발 수단을 ‘만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으로, 만리경-1호는 ‘만리를 시야에 둔 조준경’으로 표현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북·러 간 급성장하는 국방 협력에 美 우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 대북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 때마다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고 있다. / 사진:유엔
북한은 핵 추진 잠수함 건조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핵 추진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를 제공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최근 시험 발사한 지대함 미사일 ‘바다수리-6’는 러시아의 대함미사일 우란(kh-35)을 역설계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또 최근 들어 동·서해로 발사하고 있는 장거리 순항미사일 ‘화살 계열(1·2형)’과 신형 전략 순항미사일이라고 밝힌 ‘불화살-3-31형’도 러시아가 기술을 지원했을 수 있다. 이와 관련,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는 첨단 무기 체계와 역량을 진전시키고 개발하려는 김정은의 지속적인 노력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서 “북·러 간 급성장하는 국방 협력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군사협력 이외에도 국제 금융망에서 안보리의 제재 조치로 고립된 북한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러시아가 자국 금융기관에 동결돼 있던 북한 자금 3000만 달러 중 900만 달러의 인출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북한의 위장회사가 최근 친러시아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야에 있는 러시아 은행에 계좌를 개설했다고 전했다. 애런 아널드 영국 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원은 “북한이 러시아를 이용해 러시아와 우호적인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보리는 그동안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발사 등을 이유로 북한의 자산 동결, 국제금융거래 차단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그런가 하면 북·러 간 민간 교류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여객열차가 7월 중 운행 재개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운행을 중단한 지 4년 만이다. 올레그 코제먀코 러시아 극동 연해주 주지사는 6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한 상품 축제 개막식에 참석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탑승한 승객과 관광객들이 북한으로 직접 가서 그곳의 아름다움과 자연, 문화를 즐길 것”이라면서 “올해 북한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는 연해주 어린이들을 포함해 수천 명의 러시아 관광객이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고, 동시에 북한 어린이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의 청소년 캠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은 러시아에 대규모 노동자들을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월 5일 안보리 제재 위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철도를 이용해 노동자 300명을 파견했다. 안보리는 2017년 12월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397호를 통해 해외 파견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전원 송환토록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러시아에 노동자 3만 명을 파견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안보리 제재 위반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노동 비자 대신 관광 비자나 유학 비자를 통한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 러시아는 젊은 층이 대거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극심한 노동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러 양국은 국경을 가로지르는 두만강 위로 자동차용 교량을 건설하기로 합의하면서 인적·물적 교류의 활로를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 우크라이나 공격을 위한 러시아군의 땅굴 건설에 공병부대를 파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알렉세이 쿠쉬 우크라이나 군사전문가는 “북한이 돈바스 지역의 복구 작업과 땅굴 건설을 위해 공병들을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이 파견할 인력은 5개 공병 여단의 병력 1만5000명 규모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연구기관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 연구원도 “북한군이 수십 년 동안 단단한 화강암으로 된 비무장 지대에 땅굴을 건설했다”면서 “북한이 이미 일부 땅굴 기술자를 러시아에 파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아시아판 나토 창설에 푸틴이 대응한 것”


▎우크라이나가 자국에서 북한 무기가 사용된 증거라며 공개한 미사일 파편 사진.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화성 11형 미사일로 추정된다. / 사진:우크라이나 보안국
더욱 중요한 점은 러시아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번 방북했을 때 “북한은 자체 방위력 강화와 국가 안보, 주권 수호를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면서 북한의 핵 보유에 힘을 실어줬다. 푸틴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제2조는 ‘전 지구적 전략적 안정과 새로운 국제 질서 수립 지향 및 전략 전술적 협동 강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략적 안정은 핵보유국 간 핵 균형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또 제10조엔 ‘평화적 원자력’ 분야 협력도 명시됐다. 미국·인도의 원자력 협정에서 보듯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와의 원자력 협력은 해당 국가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푸틴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의도는 동북아와 아·태 지역에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뉴욕 타임스]는 ‘푸틴은 한때 북핵을 억제하려 했지만 이제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푸틴의 방북과 북한과의 협정 체결은 가장 극명하게 냉전으로 돌아가는 순간 중 하나”라면서 “푸틴은 북핵 억제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의심할 여지없이 냉전 시대의 안전보장이 부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속셈은 북한을 지렛대로 냉전 체제를 부활시켜 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은 물론 한·미·일의 안보 협력체제 등에 대응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아·태 지역에서 한·미·일의 안보 협력체제와 쿼드·오커스 출범 등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상당히 우려해왔다. 콘스탄틴 아스몰로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중국·현대아시아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것은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향한 미국·일본·한국에 대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로만 로보프 러시아전략연구소(RISS) 선임연구원도 “북·러 조약은 미국·한국·일본의 협력 강화와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표트르 대제처럼 확장하려는 현대판 ‘차르’


▎2024년 7월 4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 사진:A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유럽에서도 벨라루스와 군사동맹을 맺고 나토 확대와 미국의 영향력 강화에 대응해왔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2023년 3월 ‘유럽 최후의 독재자’라고 불리는 알렉산데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같은 해 5월 일부 전술핵무기를 벨라루스로 이전했는데, 이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국외에 핵무기를 배치한 첫 사례였다. 벨라루스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나토 3개 회원국들은 물론 우크라이나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과거 소련의 공화국 시절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과 함께 소련 핵무기 중 상당수가 배치됐던 국가다. 소련 붕괴 이후 벨라루스는 1996년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에 반환했고, 핵무기 없는 국가로 지내왔다. 게다가 러시아군과 벨라루스군은 지난 6월 전술핵무기 훈련까지 공동으로 실시했다. 당시 훈련에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M 단거리탄도미사일과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미그-31 전투기, 전략 폭격기 투폴레프(Tu)-22 등이 참여했다.

벨라루시가 러시아의 지원으로 핵보유국이 되자 루카셴코 대통령은 “전술핵무기는 ‘잠재적인 침략자’에 대한 억지력을 발휘할 것”이라면서 “필요하다면 사용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 등 나토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와 벨라루스 간 ‘연합국가’ 협정에 동참하는 모든 국가에 핵무기가 제공될 것”이라며 “이 협정은 단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1999년 연합국가 설립에 관한 협정에 따라 경제·정보·기술·농업·국경 안보 등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긴밀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혈맹이다. 1994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루카셴코 대통령은 옛 소련 국가 중 푸틴 대통령의 가장 굳건한 군사 동맹 파트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자국 영토에 러시아군 주둔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푸틴 대통령은 ‘소련 부활’을 위해 냉전시대처럼 핵무기 제공도 서슴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의 붕괴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인 재앙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러시아를 소련 수준의 강력한 국가로 만들려는 야심을 보여 왔다. 푸틴 대통령은 소련의 붕괴로 미국이 지정학적 영향력과 지배력을 넓혀가면서 세계를 전략적 불균형 상태에 빠뜨렸다고 비판해왔다. 실제로 미국은 ‘민주주의 확대’라는 전략을 앞세워 바로 러시아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까지 밀고 들어왔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굴욕적인 국제 질서의 재편이었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름반도를 강제 병합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침공했다.

푸틴 대통령은 국영방송 로시야1의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러시아, 새로운 역사’(2021년 12월 12일 방송)에서 “소련 붕괴로 40%의 영토를 잃었고, 러시아인 2500만 명이 하루아침에 독립한 옛 소련 공화국들에 남겨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로마노프 왕조 4대 차르인 표트르 대제(1672~1725)처럼 영토를 확장하고 러시아를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추진해왔다.

‘힘의 외교’로 ‘새로운 냉전’ 시대 유도

우크라이나 침공 3년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으로선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 맞서기 위해 ‘확실한 우군 만들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때문에 북한과 벨라루스처럼 냉전시대의 동맹 관계를 부활시키고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거나 아예 핵무기까지 배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월 집권 5기 시작 이후 중국을 시작으로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 북한, 베트남에 이어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개최한 카자흐스탄을 방문하는 등 광폭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벨라루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시아에 치중됐다.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이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인 만큼 미국 등 서방의 관심과 자원을 우크라이나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속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7월 4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유라시아 협력·안보 체제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하는 기존의 안보 틀에서 벗어나 유라시아에 새로운 안보 체제를 창설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특히 푸틴은 “다극 세계가 현실이 됐다”면서 “SCO 회원국들의 안보 보장이 최우선 과제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SCO 회원국들의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대표적 반미 국가인 이란, 쿠바와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수 있는 드론과 미사일 등 무기를 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협력도 맺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EU)에 브레이크를 걸어왔다. 러시아는 이란이 후원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도 지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지난 6월 미국 본토까지의 거리가 140여㎞에 불과한 쿠바 아바나 항에 핵 공격이 가능한 군함과 잠수함을 파견해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미국을 겨냥한 일종의 무력시위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푸틴 대통령은 미국에 맞서 ‘힘의 외교(Muscle Diplomacy)’를 구사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새로운 냉전(New Cold War)’ 시대를 유도하고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408호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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