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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북·러 밀월을 바라보는 중국의 복잡한 시선 

“중국은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 원치 않아” 

中, 북·러 조약 관해 “논평 않겠다” 반응… 북·중 수교 75주년 외교성과 없자 소원해져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유엔 대북제재 받아들여, 윤석열·리창 회담 등 한국과 대화 재개


▎2024년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일·중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기시다 후미오(왼쪽부터) 일본 총리, 윤석열 대통령, 리창 중국 총리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 사진:대통령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방문지로 중국을 선택한 데 이어 네 번째로 북한을 방문했다. 24년 만에 이루어진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통해 북·러 양국은 ‘포괄적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특히 조약 4조에는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할 경우, 상대방은 지체 없이 자신이 보유한 수단으로 군사적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비록 1961년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의 자동 군사개입 조항보다는 낮은 단계이지만, 동북아와 한반도에 상당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북·러 정상회담이 가져온 국제질서 변화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북·러 관계 발전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반영한 상황에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향후 러시아의 대북정책에 가변성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북·러 관계 발전이 러시아의 장기적 동방정책 구축 차원에서 다층적 신냉전(New cold wars) 틀이 만들어지는 구조적 변화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북한

실제로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올해 4월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북한 방문, 5월 중·러 정상회담, 6월 북·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개최되면서 동북아 안보 지형에 새로운 국면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반대로 ‘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 구도에 올라타기 어렵다고 판단하자, 대중국 경사정책을 버리고 러시아에 접근하려고 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라 무기 등 각종 병참선을 확보하기 위해서 북한이 전략적으로 중요해졌다. 이런 차원에서 북·러 협력을 강화하려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반면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완화, 최근 중국과 유럽 관계 발전을 고려해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 구도에 최대한 말려들지 않으려 했다.

중국은 최근 북·러 관계 발전에 대해 “양국이 스스로 선택한 정책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마냥 환영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정이 있다. 무엇보다 북·러 관계의 발전이 미·중 관계의 안정이라는 중국 외교의 우선순위를 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6월 20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기자회견에서도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의 양자 협력에 관해 논평하지 않을 것이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 관련 당사자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특히 굳이 “논평하지 않는다”라고 사족을 단 것도 러시아가 전범국가로 비판받고, 북한도 유엔안보리의 엄격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연루의 위험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종합하면, 최근 중국의 입장은 다섯 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북한과 러시아의 과도한 밀착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숨 쉴만한 지원’을 통해 북한이 핵실험과 같은 레드라인을 넘어서지 않도록 관리해 왔다. 실제로 중국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북한의 반발로 영향력 자체가 소진되는 딜레마를 학습했기 때문에 비교적 신중하게 관망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신냉전 양상이 고착화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다. 이것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 진영 대결이 나타나면서 중국의 활동공간을 제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당분간 미·중 관계의 안정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셋째, 중국 외교 지평의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중국은 한·미·일 협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한·미, 미·일 등 양자동맹은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동맹의 지역화를 방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에 중국이 적극적 참여 의지를 밝힌 것도 한·미·일 협력에 대한 상쇄전략의 일환이다.

넷째, 중국 외교의 방향성 정립이다. 중국은 비동맹을 통해 미국의 동맹구조를 돌파하고자 한다. 따라서 중·러 관계를 통한 세계질서 재편, 다극화에 전략적 관심을 두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월 말 베이징에서 열린 ‘평화공존 5원칙 70주년 기념대회’ 연설에서도 이러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다섯째, 한반도 문제에 대한 새로운 위상 정립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대북 제재만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보조를 맞춰왔으나,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위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러시아와 달리 기권하는 등 대북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 “중국은 주머니 두 개 차고 있으니 늘 조심”


▎2024년 4월 평양을 방문한 자오러지(왼쪽)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을 접견했다. 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성과는 미흡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북·중 관계는 애증의 역사가 있다. 중국은 그동안 지정학적 자산과 부담을 동시에 느끼면서 북한을 관리해 왔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 원칙을 제시해 왔다. 그리고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미국 책임론을 강조하는 ‘정치적 해결(political settlement)’을 새롭게 강조해 왔다.

특히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중국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의 제3차 방중 이후에는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견고한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 국가를 선언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고 군사적 도발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자, 중국은 북한을 다시 전략적 부담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반면 북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체제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었다. 즉, 1930년대 민생단 사건, 8월 종파사건, 한국전쟁 당시 철군 과정의 잡음, 문화대혁명 시기 노선 갈등, 한·중 수교를 거치면서 이러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이 ‘두 개의 주머니를 차고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거나 ‘한국과 북한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취하고 있다’라며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북한은 ‘중국이 미국을 핑계로 한반도 문제 해결, 대북 제재 해제 등에서 아무런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때리라고 한 사람보다 매를 든 사람을 더욱 미워한다”는 말이 북한에서 돌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24년 만에 열린 북·러 정상회담과 2018년 한 해 동안만 다섯 차례 정상회담을 했던 북·중 관계를 대비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에 다양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하는 데 비해 중국은 정치적 메시지, 축전을 주고받는 것 이외에는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있다. 실제로 올해 4월 북·중 수교 75주년 당시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구체적 성과로 연결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방문 직후 중국은 국정운영 경험 교류의 강화를 강조한 반면, 북한은 양국의 관심사와 주요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히는 등 온도차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북·러 관계를 통해 활로를 타개하고자 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실제 북·중 관계에는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2017년 9월 중국 상무부와 공상총국이 공동으로 ‘중·조합영합작을 전면 중단할 것에 대하여’를 발표했고, 유엔안보리 2375호의 대북제재를 비교적 엄격하게 집행해 왔다. 나아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중국산 민생용품이 군용으로도 전용될 수 있다고 보고 중국의 지방 세관에서 엄격한 통관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선박이 화물을 제때 하역하고 싣지 못해 항구를 전전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물류비용이 늘었고, 과거 ‘선(先) 물품 인도 후(後) 결제방식’을 현재는 ‘선 지급 후 납품’ 방식으로 변경했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카드 꺼내는 이유


▎2018년 5월 중국 다롄에서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을 기념해 길에 남긴 족적이 2024년 사라졌다. / 사진:신화연합뉴스
문제는 북한이 북·러 관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교역의 95%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경제위기 타개와 김정은 체제 업적 정당화(performance legitimacy)를 위해선 중국으로 열린 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있다. 2022년 2월 ‘해외동포 권익보호법’도 이러한 배경에서 제정됐다. 이는 그동안 일본 내 조총련 기업의 대북교역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중국 내 조선족 기업의 유치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만 북한은 ‘지린성, 랴오닝성 등 북한 접경지역의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대북 협력사업을 모색하려 하지만, 상무부가 번번이 막아서면서 별다른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중국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두만강 자동차 다리 건설에 관한 협정을 맺었고, 비공개적으로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 규모를 확대하고 조선중앙TV의 해외 송출 위성을 러시아로 변경한 것은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 라진시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하산 지역을 자동차 도로로 연결하면, 양국의 무역량과 인적 교류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 활로를 타개하려는 북한과, 블라디보스토크와 라진항 등을 통해 동방정책을 본격 추진하려는 러시아의 이해가 일치한 부분이다. 특히 이 사업은 중국이 태평양과 동해로 나가는 육로와 뱃길과 맞물려 있는 데, 향후 북한이 중국에 사용할 수 있는 협상 레버리지가 될 수도 있다.

둘째, 형식적으로 대북 제재가 작동하는 상황을 고려해 비공식적으로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 규모를 확대했다. 실제로 연해주 등에서는 청년들이 대도시로 빠져나갔고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투입되면서 러시아의 인력 부족과 북한의 노동자 파견이라는 이해가 일치했다. 이것은 북한 노동자 재입국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중국에 대한 시위효과도 있다. 실제로 최근 중국은 북한의 외화벌이 창구인 노동자 출입국, 특히 북한 노동자의 재입국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이처럼 북한은 북·러 관계 발전을 통해 북한의 최대 후견국을 자처해 온 중국을 견제하면서 북한에 유리한 판을 만들려 하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3기 체제 등장 이후 반도체 등 핵심기술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유럽의 디리스킹, 더딘 경제적 회복, 국내외 안보와 안전 문제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미국의 공세를 최대한 약화시키고 주변 지역과 글로벌 사우스에서 새로운 거점을 구축하는 한편 미·중 디지털 플랫폼 경쟁에서 게임 체인저를 만들기 위한 중장기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미·중 전략경쟁의 파장이 한반도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려 한다. 중국은 북한과 전통적 친선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스냅백(snab back)을 포함한 대북 제재에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데는 매우 소극적이다.

‘한·미·일, 한·중·일’ 투 트랙 외교 지향할 때


▎2024년 6월 1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과 중국 외교부·국방부 요인이 참석한 가운데 ‘외교안보대화’가 열렸다. 푸틴과 김정은의 정상회담 시점과 겹친다. / 사진:중국외교부캡처
이와 달리 새로운 한·중 관계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한·미·일 안보협력을 연성화하기 위해 한·중·일 트랙을 통해 헤징을 시도하려 한다. 이런 점에서 제9차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회의의 공동선언에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강조했지만, 2019년 이후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한반도 비핵화’ 용어를 다시 꺼내 반영했다.

북한이 “오늘날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논하는 것은 공화국 헌법을 전면 부정하는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특히 북한의 비판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집중됐으나, 중국이 북·중·러 밀착에 거리를 두면서 한·일이 주도한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 참여한 것에 대한 불편한 입장도 담고 있었다.

중국은 미국의 글로벌 동맹 구조에 깊숙이 편입된 일본보다 한국과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에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의 회담이 주목받았다. 한·중 정상회담 결과, 양국은 상위정치(high politics)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협력 가능한 분야에서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대화 모멘텀을 찾았다. 그 결과 외교안보 영역의 소통, 경제협력(중국의 투자유치와 공급망 안정화, 한·중 FTA협상)과 경제대화 협의체 신설, 인문교류 강화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은 북·러 관계 발전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지지한다. 북한이 북·러 관계를 통해 중국을 흔드는 현상에 대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러 관계가 가져올 한반도 안보지형과 북·중 관계의 변동성에 관해 예민하게 고려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를 대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고 전략적 차등화를 통해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 관계가 개선의 모멘텀을 찾고 있지만, 북·중·러 균열을 활용하기에는 양국 간 전략적 이해의 차이가 여전히 크다. 결국 한국으로선 중국을 과도하게 북·중·러 구도에서 분리해내기보다 한·중·일 협력과 한·미·일 협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공간을 모색해갈 수밖에 없다.

-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leeok@skku.edu

202408호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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