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쉐론의 보석은 시대를 반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르누보 ·아르데코 ·큐비즘 ·심지어 아프리카 미술까지. 이 때문에 부쉐론은 세계 보석 디자인의 트렌드를 이끌어 왔다. 부쉐론이 지난 146년 동안 최고의 보석상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유연함과 함께 ‘세상에서 단 하나’라는 자부심을 고객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제2 제정시대를 맞은 19세기 말 프랑스 문화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는 세계 각 나라에 프랑스의 부와 권력을 알리기 위해 문화 사업을 크게 장려했다. 그 결과 세계 곳곳의 부유한 귀족들과 예술인들이 자연스럽게 프랑스 파리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파리의 문화에 매료된 나머지 오후에는 파리 근교에서 승마와 스케이팅을 즐기고 저녁에는 프랑스 오페라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선율에 춤을 추며 하루 일과를 보냈다. 이런 사치스럽고 화려한 사교계 중심 인물들의 발걸음이 가장 잦았던 곳이 파리 방돔(Vendome) 26번가에 있는 부쉐론(Boucheron)이라 불리던 고급 보석상이었다.
뛰어난 보석 세공사로 이름을 날리던 프레데릭 부쉐론(Frederic Boucheron)은 185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보석상을 열었다. 그는 1867년 파리 보석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해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프랑스 정부는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 보석 전시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그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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