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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 소비자와 통해야 브랜드다 

 

글 염지현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조수용 JOH 대표가 만든 브랜드마다 화제다. 소비자의 숨겨진 욕구를 기막히게 찾아내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네이버 녹색창을 디자인한 조수용 대표. 이제 자신만의 브랜드로 소비자와 소통한다.



네이버의 녹색 검색창, 칸느 광고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한글 캠페인, 2010년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 중 하나인 ‘레드닷어워드’ 상을 휩쓴 NHN 사옥 그린 팩토리….

조수용(39) JOH 대표의 작품들이다. 2011년 5월 NHN CMD(Creative Marketing·Design) 본부장을 그만두고 자기 이름을 딴 회사를 차렸다. 8월 7일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아주 짧게 민 머리에 동그란 안경이 인상적이다. 그가 꺼낸 첫마디는 “브랜드가 좋다”였다.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서 독립한 그였다. 브랜드에 꽂힌 건 어렸을 때부터다. 그 당시는 패션 브랜드인 언더우드나 롯데리아 같은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전부였다. 그는 햄버거 포장지나 옷에 달린 상표를 모아서 그렸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상하고, 유명 기업의 브랜드 컨설팅을 해준다.

조 대표는 “브랜드는 다름과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소비자의 숨겨진 니즈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해요. 예를 들어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평소 먹던 음식을 얘기하지요. 소비자가 좋아할만한 새로운 콘셉트의 음식을 보여주면 그제야 자신이 찾던 음식이라고 합니다. 소비자 스스로도 몰랐던 니즈를 표현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죠. 브랜드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상당수 기업에선 브랜드 기획부터 제작·디자인·마케팅 영역을 구분해서 일을 해요. 하지만 소비자가 최종 결과물을 인식할 때는 모든 영역이 하나로 섞입니다. 예컨대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면 인테리어·메뉴판·음식·식기·가격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일관성이 필요해요. 명함부터 회사 인테리어·제품·마케팅 콘셉트·운영 방식까지 통일감이 있도록 디자인해야 합니다. 브랜드의 의도를 잘 표현할 줄 아는 게 디자인이에요.”


▎JOH에서 만든 브랜드 월간지 매거진B
그가 좋아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는 일본의 무지와 스위스 프라이탁(Freitag)이다. 무지는 그동안 ‘비싸면 좋다’는 식의 브랜드 편견을 깼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저렴하고 실용적인 콘셉트를 일관성 있게 뽐냈다. 무지 브랜드의 힘은 컸다. 이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람은 마치 스스로가 실용적인 사람임을 표현할 수 있다. 프라이탁은 폐품을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다. 다 쓴 트럭 덮개나 자동차 안전벨트를 있는 그대로 잘라서 만든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재활용품을 감각적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유통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잡지·음식점 잇달아 성공

그렇다면 그가 만든 브랜드는 어떨까. JOH를 설립한 후 먼저 선보인 게 잡지 ‘매거진 B’였다. 평소 잡지 읽는 것을 좋아했다. 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는 점이 그가 꼽은 잡지의 매력이다. 그는 아예 매달 한 브랜드만 파고든다.


▎JOH에서 만든 브랜드 ED백
8월까지 프라이탁을 비롯해 신발 뉴발란스·만년필 라미 등 18개 브랜드를 다뤘다. 매번 생산 현장을 찾아간다. 창업자를 인터뷰 하고 사용자 소감도 담는다. 가장 큰 특징은 광고가 없다.

조 대표는 “잡지의 맛을 살리면서 책장에 꼽아두고 꺼내볼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잡지는 올해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래픽디자인·디자인크래프트 부문 은사자상을 받았다.

그는 잡지를 만드는 에디터를 위한 가방도 만들었다. 브랜드 명칭도 Ed백(Editor Bag)이다. 겉모양은 단순한 직사각형의 주머니다. 수납기능이 탁월하다. 양쪽에 달린 지퍼를 열면 다양한 모양의 수납공간이 숨겨져 있다.

가방을 들고 뛰어도 물건들이 섞일 염려가 없다. 가방은 양면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가방의 박스 포장지에서 조 대표의 디자인 감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소비자가 포장지를 뜯는 부분까지 디자인했다. 정성스럽게 싸인 박스를 열면 포장지 안쪽에 가방 스토리가 담겨 있다. 소재는 물론 버튼 종류까지 자세하게 적혀 있다.

그의 관심 영역은 다양했다. 지난해엔 서울 논현동에 식당 ‘일호식’을 열었다. 붉은 벽돌 인테리어가 이색적인 이곳은 작고 아담하다. 내부는 나무 식탁과 의자가 전부다. 그럼에도 점심·저녁으로 사람들이 줄을 선다.

세련된 건강 밥상을 맛보기 위해서다. 현미로 지은 밥과 매일 아침 새로 우려내는 가쓰오부시 맛 국물, 저염도 김치 등 정성스럽게 차린 식탁은 입소문이 났다.

최근엔 서울 한남동에 두 번째 레스토랑을 열었다. 명칭은 ‘세컨드 키친’이다. 조 대표는 “음식점을 낼때마다 부르기 쉽게 숫자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얘기했다.

세컨드 키친은 한남동 일대에서 뜨는 레스토랑 중 하나다. 소비자가 반한 것은 와인 가격이다. 부담없이 와인을 고를수 있도록 50종의 와인 가격을 5만5000원에 맞췄다.


▎조수용 대표가 설계와 디자인을 맡은 대림산업의 서울 광화문 D타워 조감도.



젊은 CEO들의 컨설팅 의뢰 많아

조 대표는 소비자 뿐 아니라 CEO들에게 인기가 많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트위터를 통해 조 대표를 ‘디자인의 대가’로 평가한 바 있다. 특히 디자인 경영의 중요성을 아는 젊은 CEO들이 그를 찾는다. 이 중엔 재계 3·4세가 상당수다.

2011년 서울 한남동에 뮤지컬 전문 공연장 ‘블루스퀘어’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 ‘삼성전자홀’과 ‘삼성카드홀’ 두 개의 공연장이 있다. 삼성이 네이밍 스폰서(Naming Sponsor·명칭 후원)를 했다. 조 대표가 브랜드 컨설팅 자문을 도왔다. 보다 효율적으로 브랜드를 알리고 공연 관람자들이 삼성의 후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주력했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조 대표는 한 모임에서 우연히 이 부회장을 만났다. 이 부회장은 대림산업 브랜드에 대한 조 대표의 생각에 크게 공감했다.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눴다. 이후 이 부회장은 대림산업이 건설하는 서울 광화문 D타워, 한남동 타운, 여의도 비즈니스 호텔 등의 설계와 디자인을 조 대표에게 맡겼다.

“대림산업의 철학은 ‘기본이 혁신이다’입니다. 그만큼 기본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쓸데없이 화려하기보다 실용성을 중시합니다. 절제된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콘셉트를 잡아가고 있어요. 예를들어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 뒤편 부지에 24층 규모의 빌딩이 들어섭니다. 이 빌딩은 한 가지 제약이 있었어요. 과거 피맛골 자리에 세워지기 때문에 1층엔 반드시 상업 시설을 입점시켜야 합니다. 단점일 수 있는 이 부분을 과감히 부각시키려고요. 1층부터 5층을 아예 몰로 꾸밀 예정입니다. 외부에서 봤을 때 가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겁니다.”

인천 영종도에는 호텔을 설계하고 있다. 김영재 SKY72 골프클럽 사장이 찾아와 컨설팅을 의뢰했다. “호텔 위치가 좋아요. 을왕리 해수욕장이 보이고 주변에 갈대밭이 있어요. 하루 정도 번잡한 도시를 떠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브랜딩할 계획이에요. 기존 호텔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기업들의 브랜드 컨설팅 의뢰가 쏟아진다. 일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매번 정중히 거절한다. 그는 “지금 맡은 일부터 완벽하게 끝내고 싶다”고 했다. “외부 컨설팅도 제 일처럼 생각해요. 주인의식을 갖고 일해야만 제대로 브랜딩 작업을 할 수 있어요. 소비자의 니즈를 중심으로 브랜딩하면서 기업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사들 역시 100% 저를 믿고 결정을 맡기는 편이에요.”

조 대표는 컨설팅을 의뢰하는 CEO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브랜드가 비즈니스의 시작입니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아는만큼 투자가 필요해요. 경영진을 뽑을 때 브랜드와 디자인 감각도 살펴봐야 합니다. 명함 디자인에 1억원을 투자할 수 있습니까. 생각의 차이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고 봅니다.”

201309호 (201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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