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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 막걸리 시장 벌써 취했나 

 

전통주 업계가 내수와 수출 동반 부진에 빠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프리미엄 전략과 젊은 층 공략, 그리고 해외 시장 다변화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지난해 가을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생막걸리 시음 행사장. 현지 업체들이 만드는 일본산 막걸리와 한국산 막걸리가 한 상에 올랐다. 최근 일본 수출이 급격히 줄면서 막걸리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의 시골 막걸리 ‘복순도가’는 애주가들 사이에서 꽤 알려진 브랜드다.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선정된데 이어 지난 5월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초청 재외공관장 만찬에서도 건배주로 쓰였다. 복순도가 막걸리는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천연 탄산가스 때문에 샴페인 같은 상쾌한 느낌이 나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복순도가 막걸리는 일반 매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전통주 시장 침체 속에서 마땅한 유통망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병(1ℓ)당 8800원의 출하가격도 부담스럽다. 복순도가 관계자는 “복잡한 유통 단계를 거치면 제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어 소비자가 부담스러워 한다”며 “이 때문에 방문이나 전화 주문으로만 출하가격에 판매한다”고 말했다. 막걸리 소비가 꺾이면서 애써 높인 인지도를 제대로 활용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전통주 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2011년 국내외의 인기로 출하량 최고점에 올랐던 막걸리는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에 빠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출하량은 41만4550㎘로, 2011년 44만3778㎘보다 6.6% 줄었다. 막걸리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연 출하량 상승세가 꺾였다. 감소율이 크지는 않지만 지난해 4월 출하량이 전년 동 대비 5.1% 줄어든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올 상반기 막걸리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0% 이상 줄었다.


수출은 더 심각하다. 2011년 3만5530㎘(5273만 달러)이던 수출물량은 지난해 2만1196㎘(3689만 달러)로 무려 40%나 줄었다. 올 들어 상황은 더 악화됐다. 올해 상반기 막걸리 수출액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58%나 급감했다. 복분자·청주 등 다른 전통주도 위축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주류산업협회·시장조사업체 닐슨의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청주·복분자주·매실주·약주 시장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와 비슷한 63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시장 규모(1146억원)가 2010년(1620억원)에 비해 30%나 감소한데 이어 전통주 시장의 약세가 올해도 지속되는 셈이다.

막걸리의 침체는 와인·사케 등 수입 주류의 상승세와 대비된다. 수입맥주를 선호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인해 와인의 수입 원가가 낮아지면서 저도주 시장을 빼앗긴 것이다.

수출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 시장에서 막걸리 인기가 시들해졌고, 엔저 영향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업계에서는 전통주 업계가 새로운 소비층인 20~30대를 끌어들이려는 마케팅에 소홀했다고 지적한다. 한국유통물류정책학회장인 오세조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전통주 업계가 인기에 취해 근시안적인 저가 경쟁에만 몰두하면서 20~30대를 겨냥한 신제품 개발 노력을 게을리했다. 디자인 개선이나 맛에 대한 고민 없이 유행에 편승하다 장기적인 시장 성장에 악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수출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발효법 개발 등 생막걸리의 톡 쏘는 맛을 유지시키려는 연구개발 없이 단지 인공 감미료를 넣어서 억지로 유통기한을 늘렸다. 그 결과 일본인이 생막걸리와 멸균막걸리 맛의 차이를 알고 수출용 막걸리를 기피하게 됐다.”

막걸리 업체들의 영세성도 문제다. 장수막걸리로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서울탁주제조협회와 국순당·부산탁약주제조협회·우리술 등 일부 대형 업체를 제외하곤 규모가 영세한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800여 개전통주 업체 중 연간 10억원 이상 매출액을 올리는 업체는 6.7%에 불과하다. 1억원 미만이 66.2%나 된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이나 시설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는 수입 위스키 같은 고급스런 술을 원하는데 전통주 업계는 한 병에 1000∼3000원대의 비슷비슷한 술만 내놓았다”며 “막걸리가 일본 사케에 시장을 내주고 있는 것도 고급화·다양화에 실패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와인처럼 생산지 스토리 접목해야

전문가들은 막걸리가 쇠락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다양한 신제품과 마케팅을 선보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업계는 프리미엄 전략과 젊은 층 공략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지난해 6월 2000원대의 ‘국순당 옛 막걸리’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은 국순당은 올해 5000원대의 스파클링 막걸리 ‘오름’을 선보였다. 배혜정주가의 ‘탁테일’ ‘송산포도 생막걸리’, 천삼주가의 ‘천삼막걸리’ 등도 프리미엄급 신제품이다.

20~30대를 겨냥한 이른바 ‘LTE’형 신제품 출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원래 최첨단 4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을 뜻하는 LTE는 막걸리로는 Little(양은 적게)·Tasty(더 맛있게)·Easy(먹기 편하게)로 요약된다. 서울탁주는 지난해 11월 알코올 도수를 일반 막걸리보다 3도 낮추고 달콤한 향과 맛에 청량감을 더한 ‘이프’를 캔에 담아 내놓았다. 같은 컨셉트의 국순당 ‘아이싱’은 출시 3개월 만에 300만 개 판매됐다. 국순당의 ‘대박 막걸리’는 3단 발효법과 냉장숙성공법을 도입한 깔끔한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4~6월에 500만병 판매를 기록했다.

일본에 편중된 막걸리 수출 시장을 중국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다행히 중국으로의 수출 여건은 최근 크게 개선됐다. 그동안 중국은 ‘1㎖당 세균 50마리 이하’라는 위생조건을 내걸어 생막걸리의 수입을 사실상 막아왔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으로 지난해 8월 이 조건이 삭제돼 올 2월부터는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독한 술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다.

막걸리 등 전통주에 지역 특유의 스토리를 입히는 등 와인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막걸리의 기능과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한식과 함께 문화 상품으로 해외에 소개하는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2011년 막걸리에 항암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적이 있다.

201310호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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