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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 MONEY - 예향 도시답게 소비에도 멋이 있다 

GWANGJU 

조득진 포브스 차장 사진 오종찬 객원기자
드맹은 광주 부자들이 찾는 고급 부티크이자 문화 살롱이다. 창업자인 문광자 디자이너와 그의 딸 이에스더 대표는 예와 멋이 흐르는 광주 부자들의 패션을 리드하고 있다.

▎어머니 문광자 디자이너(왼쪽)는 무명같은 독특한 소재와 디자인을 추구한다. 딸 이에스더 드맹 대표는 이 가치를 지키려 노력한다.



광주 남구 사직공원을 등에 지고 광주천을 바라보는 5층짜리 부티크 ‘드맹’엔 광주 멋쟁이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대부분 의사, 교수, 기업인 등 상류층이다. 부티크 위층엔 드맹 아트홀과 카페도 마련했다. 콘서트와 세미나, 시낭송회 등 문화행사가 수시로 열려 살롱문화를 즐기려는 이들이 찾는다. 광주 상류층에선 ‘광주지역 부유층 결혼식이나 음악회에서 만난 열 명 중 대여섯은 드맹 옷을 입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드맹은 1994년 서울 청담동에도 진출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47년 전 드맹을 오픈한 문광자(68) 씨는 광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다. 조선대 의상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한민국 패션 디자이너 1세대로 불린다(본인은 ‘1세대 말석’이라며 부담스러워했다). 독특한 소재를 개발하고 미술 작품을 결합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드맹에서 인기 있는 제품의 가격은 블라우스가 70만~80만원, 원피스는 150만~190만원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디자이너 문광자가 만드는 옷은 품질이 뛰어나다’는 입소문을 타고 상류층 여성의 사랑을 받아왔다.

자신이 디자인한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문 디자이너는 “광주에 큰 부자는 없어도 부동산 부자와 현금 부자가 꽤 있다”며 “하지만 돈 있다고 유세하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현명한 소비를 한다”고 말했다.

“40여년 지켜보니 광주 부자는 유행을 좇기다는 좋은 것, 오래갈 수 있는 것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요. 드맹을 시작할 당시 범표 데리칼이 최고급 원단으로 꼽혔는데 서울 다음으로 많이 팔렸던 곳이 바로 광주입니다. 광주의 패션 리더들은 적당한 것, 평범한 것보다는 고급스럽고 독특한 것을 원해요. 우리 드맹을 찾는 고객 또한 마찬가지죠.”

마침 리폼을 위해 드맹을 찾은 한 고객은 “20년 전 드맹에서 맞춘 옷을 아직도 손보면서 입는다”며 “해외 명품 브랜드보다 가격도 착하고 오래 입으니 훨씬 경제적”이라고 했다.

2012년 드맹 경영권을 물려받은 딸 이에스더(43) 대표는 “서울 청담동 매장을 운영하다보니 서울 고객과 광주 고객의 차이가 보인다”고 말했다.

“혁신적인 디자인이나 소재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달라요. 광주 고객은 두려움이 없는편이죠. 남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저항이 적어요. 서울 고객이 남들이 입어 좋아보이는 것을 따라간다면 여기 광주 고객은 오히려 남들이 입지 않아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죠. 예부터 곡창지대라 돈이 돌았고 예술인이 많았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소비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멋을 찾는다고 할까요.”

해외명품 브랜드 소비에서도 광주 부자의 취향을 읽을 수 있다. 광주는 백화점 중심의 소비문화가 다른 대도시에 비해 약한 편이다. 지난여름 현대백화점이 광주에서 철수한 것이 상징적이다. 1998년 영업을 시작한 현대백화점은 1층 매장에 명품 브랜드를 다수 입점시켜 광주 부자의 지갑을 노렸다. 하지만 브랜드화와 명품 전략은 실패했다. 이 대표는 “광주 부자들 사이에선 백화점을 돌며 쇼핑하는 문화가 없다”며 “해외 명품 브랜드도 똑같은 기성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소비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명 재료로 하이엔드 가치 만든다

드맹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이 같은 광주 부자의 기호를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문 디자이너는 처음부터 소재의 다양함을 추구했다. 부서지는 가랑잎 빼고 다 자신의 소재였다고 할 정도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무명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전통 염색을 하는 장인을 만나 그 쪽빛에 반하면서 1992년 패션쇼에 처음 무명옷을 올렸다. “무명은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의 무게감이 있어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안감만 대면 모직보다 따뜻하죠. 우리는 무명을 재료로 해 간결한 캐주얼에서 우아한 드레스까지 만들어냅니다.”

2003년엔 뉴욕 앤섬갤러리에서 무명드레스 30여 점을 발표해 미국 현대미술의 대가인 실비아 왈드에게 ‘천으로 만든 조각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2004년에는 하와이 비숍뮤지엄 초청으로 서양화가인 아들 이성수 씨와 공동 전시 형태로 두 번째 무명드레스 전시회를 열기도했다. 이후 뉴욕의 아트웨어 전문 갤러리가 ‘매우 독창적이고 새로워 미국에서 판매하고 싶다’고 요청해 지금까지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옷을 사는 사람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가격과 낯선 질감은 넘어야 할 과제다. 이 대표는 “무명을 대중화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무명을 하이엔드 문화로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고급문화로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무명의 가치를 알아보는 소수의 사람이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입는 최고급 문화, 이것이 우리가 만들고 싶은 무명의 미래입니다.” 문 디자이너도 거든다. “드맹의 콘셉트는 품위, 유니크, 편안함입니다. 무명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춘 훌륭한 소재입니다.”

드맹의 앞날은 딸 이에스더 대표가 맡았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디자인학교 FIDM에서 패션 마케팅을 전공했다. “1990년대 초중반에 해외 명품 브랜드가 한창 쏟아져 들어왔죠.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고급 패션 시장은 해외 브랜드에 잠식당했어요. 그때부터 우리 브랜드의 부활을 꿈꿨던 것 같아요. 우리가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무명이 한류를 타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봐요.” 마침 경기도 양주시가 목화 재배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좁은 시장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때 드맹을 전국 백화점에 넣고 싶은 욕구가 컸지만 지금은 달라요. 작은 규모라도 독특함을 추구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추구할 것이고, 그 가치를 아는 고객을 위해 옷감을 자르고 바느질할 것입니다.” ‘드맹(Demain)’은 ‘내일’을 뜻하는 불어다.

201402호 (201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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