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김미진 홍익대미대교수·김복기 아트앤컬처│김신 대림미술관 부관장│김홍희 시립미술관 관장│전은경 월간 디자인 편집장
▎김기현 디자인메소즈 대표의 처녀작이 ‘1.3체어’다. 의자가 워낙 가벼워 한 손으로 들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으로 ‘런던디자인뮤지엄’에서 가구 디자인 부문 최우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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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 강남구 삼성로에 위치한 백운갤러리를 찾았다. 포브스코리아가 매년 실시하는 ‘코리아 2030 파워리더’에 선정된 6명의 사진촬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중 한 남자가 무겁지도 않은지 의자를 한 손에 들고 나타났다. 굳이 소개를 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김기현(35)디자인 메소즈 대표였다. 블랙 수트로 멋을 내고 온 그와 두 번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김 대표는 2007년 경원대(현 가천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2008년 국내 소형 가전회사 루펜을 거쳐 2009년 영국왕립예술학교(RCA) 제품 디자인과로 유학을 갔다. 피어슨 로이드 디자인 회사에서 인턴을 했고 독일 가구회사 짜이트라움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개발에 참여했다. 귀국해서 2012년 말에 친구 3명과 함께 디자인 메소즈를 세웠다. ‘방법을 디자인하다’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어린 시절 건축가를 꿈꿨던 김 대표는 부산에서 건설 시공업체를 운영하던 아버지 곁에서 건물 짓는 걸 보고 집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러다 미술을 하게 됐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산업 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그를 디자인 업계가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소재와 방법을 디자인에 접목시키는 탁월한 능력 때문이다.2011년 영국에서 열린 ‘100%디자인런던’ 공모전에서 무게 1.28㎏의 세계 최소경량 의자 ‘1.3체어’로 최우수 소재상, 2012년에는 ‘런던디자인뮤지엄’에서 가구 디자인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두 공모전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다. 당시 후보에 오른 사람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 콘스탄틴 그리치치가 있다.“100%디자인런던 시상식에서 사회자가 ‘1.3chair, I love this chair’라고 호평하는데 꿈만 같았다”고 김 대표는 수상 당시를 떠올렸다. 1.3체어의 소재는 발사나무다. 가벼워 의자 소재로 더할 나위 없었지만 재질이 물러 천대를 받았다. 나무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그는 수천 번 실험했고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심사위원들은 “젊은 디자이너가 나무에 대한 생각을 바꿔 놓았다”고 호평했다. 1.3체어는 독일의 짜이트라움에서 곧 양산에 들어간다.지난해 4월에는 온라인 기반의 STN 영어교육 콘텐트 전문 회사로부터 영어 학원 강의실에 필요한 의자와 책상, 강의실 등을 디자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회사 이름처럼 ‘방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학원을 돌고,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관찰하고, 50분 수업하고 10분 쉬는 수업 시간 등을 세심하게 조사했다.김 대표는 장시간 앉아 있어도 인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의자와 책상을 디자인하고 싶었다. 성별·체형별(소·중·대)로 한 명씩 총 6명을 뽑아 의자처럼 생긴 틀에 앉힌 뒤 하나하나 석고 모형을 떴다. 하중에 따른 신체 자극을 분석하고 데이터화해 평균값을 냈다.실험을 통해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앉았을 때 척추에 무리가 덜 가게 하기 위해선 엉덩이에 가해지는 체중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등판과 좌판이 만나는 부분이 완만한 곡선을 이뤄야한다. 일반적으로 45~50㎝인 좌판 길이를 33㎝로 짧게 만들었다. 이 의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2013 코리아디자인어워드’에서 리빙디자인부분 대상을 받았다.김 대표는 “디자인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 조사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과 금전 제약 때문에 생략하는 디자이너가 있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단계를 구축하고 실행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김 대표의 유학시절 에피소드를 들어보자.“테이크아웃 커피잔 뚜껑 때문에 커피향을 맡을 수 없는 게 안타까웠어요. 게다가 모양은 왜 다 똑같은 건지...” 그는 근처 커피숍을 돌며 뚜껑을 다 모아 연구를 시작했다. 뚜껑에 구멍을 뚫어보고 냄새가 올라오게 망으로 만들어봤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포기했다. 하지만 실패는 아니다. 조사 과정을 통해 호기심을 키우고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김 대표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제품의 유용성’이다. 그는 가구, 전자 제품 등 분야에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한국 산업에 기여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김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코리아 2030 파워리더’에 뽑힌 소감을 물었다.“한국에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선정돼 감사하다”며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사물을 디자인할 때 실험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높은 점수를 준 거 같아요.”김 대표는 내년 3월 완공하는 서울 명동의 호텔 스몰 하우스 빅 도어를 동업자들과 디자인하고 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결과물만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메소즈’라는 스튜디오 이름처럼 디자인 과정 자체를 디자인하는 스튜디오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