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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른 궤적이다. 남편을 대신해 안주인 자리를 버리고 경영에 나선 두 여성 오너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바로 최은영(52) 한진해운홀딩스 회장과 현정은(59) 현대그룹 회장(현대상선 이사회 의장)이다. ‘금녀(禁女)’의 영역이라 불리는 해운업계에 뛰어든 점이 교집합을 만든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1, 2위를 다투며 국내 해운업계의 양대 산맥자리를 지켜왔다.배를 먼저 띄운 것은 현대상선이다. 1976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현정은 회장의 아버지인 고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의 제안으로 아세아상선(현 현대상선)을 설립했다. 1984년 이 회사가 현영원 회장이 세운 신한해운을 통합하면서 현 회장이 현대상선 회장을 맡았다.이듬해 고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의 호를 딴 ‘정석호’가 컨테이너를 싣고 출항함으로써 한진해운도 해운업에 뛰어 들었다. 한진해운은 조중훈 회장의 셋째 아들이자 최 회장의 남편인 고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키를 잡으면서 국내 1위, 세계 7위권의 해운회사로 올라섰다.1985년 상무로 한진해운에 입사해 해운업계를 주름잡던 조수호 회장은 2006년 11월 26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해운업계의 대부라 불리던 현영원 회장이 유명을 달리한 지 불과 이틀 뒤였다.2007년 3월 최 회장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한진해운 부회장에 취임해 남편의 빈자리를 채웠다. 현정은 회장이 경영인으로 나선 것은 그보다 4년 이른 2003년이다. 남편인 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을 떠나 보내고 같은 해 10월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에 취임하며 현대그룹을 이끌었다.명문가에서 태어나 일찍 결혼하고 경영에 참여하기 전까지 가정주부로 살았다는 점도 두 여성 오너를 잇는 연결고리다. 현 회장은 현영원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사이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 결혼식을 올렸다. 현 회장의 할아버지는 고 현준호 호남은행 설립자, 외할아버지는 고 김용주 전남방직(현 전방) 창업자로 양가 모두 소문난 대부호 집안이다. 현 회장 슬하의 3남매 중 두 딸 지이·영이 씨는 각각 현대유엔아이 전무, 현대상선 대리로 근무하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최 회장은 최현열 NK그룹(구 남경그룹) 회장과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 세이신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스물 넷에 결혼했다. 최 회장은 두 딸을 뒀다. 장녀 유경씨는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국내 증권사, 홍콩 물류회사, 독일 선주사 등에서 일했다. 한진해운에는 입사하지 않았다.‘사모님’에서 ‘회장님’으로 변신한 두 오너는 여성 CEO답게 해운업계의 거칠고 딱딱한 이미지를 바꿔놨다. 현 회장은 대북사업 위기 등 굵직한 일을 겪으면서 주로 카리스마, 여장부 같은 수식어를 얻었지만 취임 초기에 직원들에게 줄 선물을 직접 고르는 등 감성경영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최 회장은 직원들이 스스럼없이 농담을 건넬 만큼 평소 소탈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그는 2010년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뛰어난 화술을 선보였다. 어떤 주제든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는 거침이 없었다. 취임 초기에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메일에 일일이 답장해 스킨십경영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서 임원들을 강하게 질책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직접 경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절박함과 관계 없이 해운업 불황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2013년 말 기준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1400%를 넘었다. 최 회장은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해 말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에 2500억원을 지원했다. 그 무렵 한진그룹의 핵심 임원인 석태수 ㈜한진 대표가 한진해운의 새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그리고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실질 경영을 맡게 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최은영 호’ 유동성 위기 끝내 극복 못해결국 지난 4월 29일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최 회장이 사임하고 조양호 회장이 새 대표이사(각자대표)에 선임됐다. 이날 임시주총에서는 한진해운과 한진해운홀딩스의 분할·합병이 결정됐다. 한진해운홀딩스는 해운지주 사업부문과 상표권 관리 사업부문을 떼어낸 ‘신설법인’과 제3자 물류 회사인 HJLK, 정보기술회사인 싸이버로지텍, 선박관리회사인 한진에스엠 등을 보유한 ‘기존법인’으로 분할된다. 그리고 신설법인이 한진해운에 합병된다는 내용이다. 최 회장은 오는 6월 1일부로 한진해운홀딩스 기존법인의 대표이사를 맡을 예정이다.최 회장과 조 회장 사이의 드러난 갈등은 없었지만 최 회장은 취임 후 줄곧 계열분리를 위한 독자경영을 고수해왔다. 2008~2009년 기자간담회에서도 “조양호 회장이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던 동생(조수호 회장)을 보면서 ‘한진해운은 그대로 간다’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은 내게 농담으로 항상 ‘내 한진해운 지분을 모두 사가라’고 한다”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이 조수호 가족의 회사임을 인정하고 독자 경영에 동의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2010년 신년사에서 역시 “지주회사로의 공식 출범은 글로벌 선사로 한 단계 도약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며 계열분리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한진그룹과 한진해운 측은 이번 경영권 이양에 대해 “조 회장과 최 회장의 합의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며 더 이상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가족들 간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해운업이 워낙 불황이라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해운업계 원로 경영인은 “후배들이 안 좋은 상황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괜한 말을 해서 기운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경영권 이양에 대한 생각을 밝힐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지난 5월 초, 기존 ‘최은영 체제’에서 일하던 한진해운 임원 3명이 퇴임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팀 별로 알아서 성과를 독촉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 회장은 이사회 후에도 회사에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마 계속 출근할 것 같다”고 말했다.현 회장 역시 경영권을 두고 시댁과 마찰을 빚었다. 경영을 맡은 직후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이 있었고, 2006년 시동생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해 긴장구도를 형성했다. 2010년에는 시숙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현대건설 인수 경쟁을 벌였다. 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의 중추 역할을 하는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현 회장이 최 회장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현대상선 경영권 안심할 수 없어현대상선은 2011년 3574억원, 2012년 5096억원, 2013년 328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연이어 적자를 기록했다. 부채 비율은 2013년 말 기준 1000%를 넘었다. 위기를 느낀 현대그룹은 지난해 말 현대증권을 비롯한 금융 3사 매각, 현대상선 항만터미널 사업 매각, 국내외 부동산과 선박 매각,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반얀트리 호텔 매각 등으로 현금 3조3000억원을 확보하겠다는 자구책을 내놨다.현대상선 측은 “지난 4월 30일 현대상선이 IMM컨소시엄(IMM프라이빗에쿼터, IMM인베스트먼트)과 1조원 규모의 LNG 운송사업부문 매각 계약을 체결해 현재까지 2조원 상당의 유동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올 1분기 실적도 나쁘지 않다. 매출액 2조760억원, 영업손실 61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17% 증가했고 영업손실은 52% 줄었다. 회사 측은 “2분기 성수기를 맞아 계획대로 컨테이너 운임이 인상되면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며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하지만 시장의 생각은 좀 달랐다. 해운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상황이 좋지 않다”며 대부분 익명을 요청했다. 한 중견 애널리스트는 “LNG 운송사업부문 매각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본업인 컨테이너 운송 사업이 적자라 갈 길이 멀다”며 운임 인상에 대해서도 “세계적으로 물동량이 많지 않아 한계가 있다”고 전망했다. 또 “해운 업황이 바닥을 치긴 했지만 회복세를 전망하긴 이르다”고 말했다.또 다른 애널리스트 역시 “단기 재무 부담을 줄여 한숨을 돌린 것뿐 자구책을 이행한 후가 더 문제”라며 “주요 사업 부문을 모두 매각하면 장기적으로 안정적 수익구조를 마련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해운업계 불황은 수장 한 명의 경영 전략이 뛰어나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업황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 이상 한진해운처럼 한번은 큰 매듭을 지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김근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우선 자구책을 잘 이행하고 그 이후에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경영권 교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 구조조정 중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는 이르다”면서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런 시장의 반응에 대해 “현 회장은 10년 동안 수 차례 고비를 넘기며 사업가로서 단련을 했다”며 “이번 한진해운 경영권 교체로 동요하거나 흔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 회장과 현 회장이 경영에 나선 배경은 같지만 지나온 과정이 다른 만큼 한 맥락으로 보기 어렵다”며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