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국내외 500여 개 화장품 기업에 공급하는 제품 하나하나가 모두 자식 같다고 했다. 품질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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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질문을 격하게 던졌다. “남들 다 동남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옮기는데 지난 5월 세종시에 공장을 완공했다. 비싼 땅값, 인건비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질텐데.” 대답은 단호했다. “국내에서 만들어야 ‘메이드 인 코리아’ 아닌가. 한국만큼 노동생산성과 품질생산성이 높은 곳은 없다. 우리 고객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선호한다.”윤동한(67) 한국콜마 회장은 국내 화장품 제조업자개발 생산(ODM) 분야의 개척자이자 선두주자다. 1990년 한국 콜마를 설립한 그는 단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준에 머물러 있던 화장품 제조업에 연구개발 기반의 ODM 시스템을 도입해 새로운 성공모델을 제시했다. 충남 연기군 16㎡(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직원 3명을 두고 시작한 사업은 지난해 화장품 매출만 3754억 원을 기록했다. 제약·건강식품 분야까지 포함하면 총매출이 6300억 원에 달한다. 직원은 그새 760여 명으로 늘었다.
소비트렌드·유통시장 통찰력 중요대학 졸업 후 농협중앙회를 다니던 그는 4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1974년 당시만 해도 중소제조업체였던 대웅제약에 입사했다. 16년 후 창업을 위해 대웅제약 부사장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 나이는 43세였다. 월급쟁이로선 정점의 자리에 올라 주위에선 만류했지만 관리·영업·생산 등 주요 파트를 두루 거친 터라 두려움은 없었다.화장품 시장 확대 가능성을 보았던 윤 회장. 그렇다고 사업 초기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한국 화장품시장 이 성숙하지 않았던 탓에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는 “전기료를 제때 못 내 단전 통보를 받은 적도 있다”며 “사업을 시작하고 2년이 지나서야 단골 고객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중견기업에서 주문을 받아 제조하면서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랐지만 OEM 방식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뚜렷했다. ‘고객사 주문을 받아 제조만 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깨달은 윤 회장은 ODM 사업에 진출했다.그는 “중소기업 특성상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유통하기엔 부담이 컸다. 그래서 ODM 방식의 사업모델을 선택했고 당시 아시아지역에서 ODM 전문기업으로 이름난 일본 콜마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일본콜마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삼고초려의 열정을 보여준 끝에 결국 합작을 성사시켰다.한국콜마의 경쟁력은 품질이다. 회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자 중앙연구소를 설립하고, 직원 30% 이상을 연구원으로 채웠다. 지금도 한국콜마는 연매출의 6% 이상을 신기술 연구에 투자하며 연구개발(R&D)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 결과 한국콜마는 전체 매출의 95% 이상이 ODM 사업에서 발생한다. “OEM이 공장시설을 갖추고 주문자로부터 전달받은 제조 방식 그대로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라면, ODM은 제조자가 원천 기술을 연구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함으로써 역으로 주문자에게 새로운 제품을 제안 할 수 있다. 따라서 ODM 업체가 성공하려면 뛰어난 R&D 기술과 품질관리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한국콜마 제품은 경쟁사에 비해 단가가 높다. 하지만 한 번 거래를 뚫은 고객사는 한국콜마 제품만 찾는다. 역시 품질 때문이다. 그 덕에 한국 콜마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속에서도 연평균 20%의 매출 성장을 꾸준히 달성했다. 윤 회장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의약품과 건강 기능식품까지 확대했다. 일본콜마에는 없는 분야다. 그는 “기초화장품연구소·색조화장품연구소와 발효한방연구소, 생명과학연구소 등에서 화장품과 의약품의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재산권(IP) 을 활용해 한국 콜마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화장품 제형 기술과 의약품 효능 기술을 결합한 퓨전 기술 개발에도 열심이다.한국 콜마의 비즈니스 파트너는 전 세계적으로 500여 개 업체. 국내에선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미샤, 토니모리, 더 페이스 샵, 네이처리퍼블릭 등이 주요 파트너이고 해외엔 록시땅, 암웨이, 유니레버, 화이자 등이 거래처다. 상품의 기획, 개발부터 완제품의 생산, 품질관리, 출하에 이르기까지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콜마의 글로벌 경쟁력은 품질이다. 생명과학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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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챔피언 키워야 경제·사회 안정적“성공 노하우? 시장 통찰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10여 년 전 우리 매출이 500억 원 수준에서 정체했을 때 ‘이 시장은 한계가 왔다’며 회사를 떠난 사람이 많았다. 이 업종은 절대 크게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국내에서도 화장품 ODM으로 수천 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떠난 사람들은 당시 납품 위주의 시장만 보았지 미샤, 더 페이스샵 등 새로운 형태의 유통시장을 못 본 것이다. 나는 이런 형태의 유통구조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준비했다.”국내 ODM업체 실적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중국 시장 덕분이다. 화장품 시장만 해도 중국은 한국 시장의 4배에 달하는 45조 원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지난 3 년간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한국 콜마도 2007년 중국 시장에 도전했다. 중국 업체의 화장품 제조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진출해 있는 한국 콜마에 각국 화장품 업체들의 러브콜이 들어 오고 있다. 윤 회장은 “북경콜마 공장증축이 올해 11월 완료되면 1·2 공장을 합쳐 연간 1억 4000만 개의 기초·색조화장품을 생산할 수 있다”며 “중국에 진출한 미국 화장품 기업들의 주문량이 늘고 있어 올해 현지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했다. 광저우 공장 설립도 진행 중에 있어 4~5년 뒤에는 중국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한다.지난 5월 완공한 세종공장도 중국 시장의 넘치는 수요를 충당키 위한 것이다. 세종공장은 단일공장으로는 아시아 최대 수준이며 연간 2억 4000만 개 제품 생산능력을 갖췄다. 윤 회장은 “올해 중국시장 성장세를 눈여겨보고 있 다”며 “세종시 공장에서 만들어진 벌크를 북경콜마에서 포장해 중국 시장에 유통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유통기업이 노리는 곳은 결국 중국시장이다. 하지만 중 국 내에 생산공장을 만드는 것에 머뭇거린다. 중국엔 미안 한 이야기지만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위탁생산(CMO) 업종들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글로벌 CMO의 최강자가 돼야 한다.”OEM·ODM 생산이 주로 이뤄지는 분야는 화장품·섬유패션·전자전기 업종이다. 시장 트렌드 변화 주기가 짧고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필수소비재 시장이란 공통점이 있다. 트렌드에 맞춰 재빠르게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보니 대량 생산에 능한 대기업보다는 중소 ODM업체들이 더 경쟁력 있다는 평가다. 윤 회장은 “많은 글로벌기업이 한국에 생산 공장 구축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못 믿겠고, 일본은 엎어졌고 그래서 한국이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한국은 우선 물류 인프라가 잘 돼 있다. 서해안 어디서든 하룻밤이면 중국의 모든 항구에 닿을 수 있다. 대중국 수출기지인 셈이다. 또한 IT 등 관련 산업도 잘 발달돼 있어 시너지 효과가 있다. 인건비가 높다는 것은 노동생산성 이 높고, 특히 품질생산성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중국의 인건비가 우리의 절반 수준이지만 노동생산성, 품질생산성을 따지면 여전히 한국은 매력적인 생산기지다.”그러나 정작 국내에서 ODM 사업을 담당할 회사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는 “대기업만 살아남고 중소기업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한국 경제의 문제”라며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기술개발, 품질관리, 윤리경영 등을 평가하고 일을 맡기는데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기업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가 월드클래스300 기업협회 초대회장을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월드클래스300은 중소기업청이 2020년까지 세계적인 기업 300개를 육성하기 위해 성장의 지와 잠재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사업이다.“우리 협회 회원사 상당수는 강소 기업으로서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이내에 드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R&D 집약도가 5%대에 근접하고 총매출에서 수출 비중이 50%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엔 중국이라는 거인의 추격에 힘겨운 상태다. 국가로부터 제도와 금융에서 집중 지원을 받는 중국과의 경쟁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탄탄한 중견기업, 히든챔피언을 만드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상당히 중요하다고 믿어서 자리를 수락했다.”그렇다고 정부에 손 벌리는 이익단체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취임 일성도 “정부 지원 기대 말자”였다. 대신 그는 “우리끼리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장단점을 벤치마킹 하자”고 강조한다. 이종업종 융합에 의한 시너지 창출, 이 것이 협회의 존재이유라는 것이다. 취임 후 그는 회원사의 공동 홍보사업과 기술 교류에 힘을 쏟고 있다. 작은 회사는 홍보력도 떨어지고, 홍보할 일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공동의 비용을 들여 효율화하는 것이다. 이종업종간 교류를 위해 8월 말부터 기술경영교육을 시작했다. 자동차, 화장품, 화학분야 등 다양한 기업의 연구소 소장들이 모여 12주 동안 머리를 맞댈 것이다.
기초 ·색조화장품연구소, 발효한방연구소 등 매출의 6%를 R&D에 투자한다. 또 직원의 30% 이상을 연구원으로 뽑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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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으면 누구보다 빠르다 다양한 기업에 ODM을 하다 보면 자기 브랜드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 그는 “우리가 브랜드를 만드는 순간 우리는 고객들과 경쟁해야 한다. ‘카니발리제이션 (Cannibalization·자기잠식)’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선 상당한 규모를 이룰 수는 있겠지만 글로벌 경쟁은 힘들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의 경제는 마케팅의 경제가 아니라 제조경제이자 R&D경제다. 우리는 잘 개발하고 잘 만드는 나라이지 잘 파는 나라는 아직 아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중공업의 제조 능력과 마케팅능력을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온다. 마케팅은 국력·언어·역사·문화 등이 보태져야 그 힘이 강해진다. 우리가 브랜드를 갖고 뛰어드는 순간 시세이도, 로레알, 에 스티로더, 피앤지 등과 경쟁해야 하지만 ODM 업계에 남으면 글로벌 강자다.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것보다 그들에게 우리 제품을 파는 것이 더 현명하다. 이것이 히든챔피언이 되는 길이다.”제조업과 유통업은 소비 트렌드에 따라 각각의 역할을 달리 해왔다. 그렇다면 OEM, ODM 이후 어떤 형태의 제조·유통 분담 구조가 나타날까? 윤 회장은 “브랜드까지 연구하고 개발하는 자체상표생산(OBM·Original Brand Manufacturing)”이라고 답했다. “앞으로는 브랜드까지 책임지는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OBM의 동력은 크리에이티브이고, 성공의 관건은 시장 통찰력이다.”인터뷰 내내 사무실 한 켠에 걸린 이중섭의 작품 ‘황소’의 영인본(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것)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의 경영철학인 ‘우보(牛步)’가 떠올랐다. 우보는 ‘천천히 가더라도 다 같이 가자’는 한국콜마의 기업문화이기도 하다. 윤 회장은 “소처럼 뚜벅뚜벅 가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우직하게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처음엔 말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멈추지 않고 가기 때문에 결국 소가 더 빠르다.” 25 년간 한 해도 퇴보 없이 꾸준히 성장한 동력이라는 설명이다.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 : 한 기업에서 새로 출시하는 상품으로 인해 그 기업에서 기존에 판매하던 다른 상품의 판매량이나 수익, 시장점유율이 감소하는 현상. 동족살인을 뜻하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에서 비롯된 용어로, 자기잠식 또는 자기시장잠식이라고 부른다. 콜라회사가 오리지널 콜라만 판매하다가 다이어트콜라나 레몬콜라를 출시하자 기존 오리지널 콜라 매출이 떨어지는 식이다. 온라인게임 개발회사가 인기가 높은 기존게임의 후속편으로 새로운 게임을 출시했는데 이용자가 새로운 게임으로 이동해 기존게임의 이용자수가 줄어드는 상황도 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