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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을 나온 CEO② 이대영 태영F&B 대표 - “동물원에 가면 사업 아이디어 떠오르죠” 

주위를 보며 걷게 되는 동물원. 바쁘게 쫓기는 일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넘치는 생명력에서 얻어가는 활력은 덤이다. 이대영 태영F&B 대표는 이 모든 묘미를 알고 있다. 

글 최은경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지미연 기자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벌레소리가 들려요. 그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내 몸이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입니다.”


기린 축사는 이대영 대표가 동물원에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동물원에 오면 어떤 기분이 드느냐’고 묻자 이대영(60) 태영F&B 대표가 나지막이 답했다. 9월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그는 편안함 차림으로 서울대공원 입구에서 동물원 매표소까지 운행하는 코끼리 열차를 타고 나타났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등산객들의 행렬을 헤치고 그가 안내인을 자처했다. “여기 화장실이 명물입니다. 안에서 기린을 볼 수 있어요.” 기린 축사 옆 화장실에 들어서자 저 멀리 한가로이 풀밭을 거니는 기린 네 마리가 눈에 들어 왔다. 축사와 맞닿은 낮은 전망대에 오르니 기린의 얼굴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 대표가 들고 온 가방에서 캐논 5D카메라를 꺼냈다. 이때부터 십 수분 동안 렌즈를 사이에 두고 기린과 이 대표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오늘은 그래도 포즈 좀 취해주네요. 하하.”

기린 축사는 이 대표가 동물원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다. “원래 동물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동물을 우리에 가둬두고 학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자주 오면서 마음이 바뀌었죠. 기린 축사는 맹수 우리와 다르게 가로막힌 울타리가 없어 친근함을 느껴요.” 이 대표가 좋아하는 공간이 또 있다. 동물원을 감싸고 있는 산림욕장이다.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는 숲길을 걸어요. 조용하고 쉴 곳이 많아 데이트하기 좋을 거예요.”

주말에 와서 2~3시간씩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4, 5년 전부터다. “등산을 좋아했는데 발목을 다쳐 높은 산은 오르기 힘들더라고요.” 서울대공원은 트레킹 코스로 ‘개발’ 한 곳 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북한산 둘레 길, 서울시내 왕릉길도 좋지만 서울대공원은 동물과 함께할 수 있어 특별하다고 했다.


‘도심 속 동물원’을 콘셉트로 한 주커피 매장.
“기업을 경영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풀 수 있는 방법이 술, 젊으면 축구나 농구를 해서 땀이라도 흘리겠는데 제 나이에는 부담이 되지요. 술 마시는 것보다는 동물,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동물원은 동물과 인간이 친해질 수 있는 공간이에요.” 동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그다.


‘도심 속 동물원’을 콘셉트로 한 주커피 매장.
“동물들 보면 모든 걸 내려놓게 돼”

이 대표는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3년 정도 경기도 파주 시골에 살았다. 그는 동물원에 오면 그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20분 거리인데 늘 한 시간 넘게 걸렸어요. 시내에서 물고기 잡고, 논에서는 개구리를 잡고요. 산에 가면 사슴벌레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자연이 놀이터고 동물이 다 친구였어요.” 각박한 세상이지만 이곳에서는 싸울 일도, 욕심 부릴 일도 없단다. “다 내려놓게 된다니까요.” 그가 다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카메라는 서울대공원에 올 때 늘 동행하는 친구다. “50대가 되니까 나이 먹고 뭘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때 생각난 것이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카메라였다. 골프채 대신 카메라를 잡기 시작했다. SPC서울사진 클럽 CEO 과정에도 등록해 매달 출사를 나간다. 지방 출장 때도 잊지 않고 카메라를 챙긴다. “7월에는 김제하 소 백련지에서 연꽃을 찍었어요. 8월에 양평 세미원에도 갔는데 연꽃을 잘 찍기가 굉장히 어렵네요.”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출력해 사무실에 걸어놓거나 디자인 팀 직원들에게 보낸다.

직원들에게 선물(?)하는 사진은 주로 나무, 돌, 잎의 무늬를 찍은 것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식음료업체인 태 영F&B는 타일제조업체 태영세라믹의 자회사다. 그가 촬영한 사진 속 무늬들은 종종 타일 디자인의 소재로 쓰인다. “타일도 벽지만큼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사업 얘기가 나오자 이 대표의 말이 빨라졌다.

충청남도 당진에 본사를 둔 태영세라믹은 국내 타일제조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싱글 파이어링(single firing)’ 공법을 사용한다. 보통 타일을 만들 때 초벌로 굽고 그림을 그려 유약을 바른 뒤 다시 재벌구이를 한다. 싱글 파이어링은 말 그대로 한 번만 굽는 기술이다. 원재료 반죽을 압축기계로 성형한 뒤 유약을 바르고 디자인해 고온으로 한 번만 굽는다. 이 대표는 “싱글 파이어링공법을 사용하면 원가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안정적으 로 성장했지만 타일제조 시장은 규모가 크지 않다. 이 대표는 제조업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사업을 찾았다.

동행하는 친구는 카메라

그렇게 2012년 커피 가맹업체 ‘주커피(Zoo Coffee)’를 인수하며 식음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커피는 2009년 커피 브랜드를 내놓고 가맹점을 90개까지 확장했지만 수익성 악화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이 대표는 몇 달을 고민한 끝에 인수 결정을 내렸다. 주변에서 커피 전문점이 포화상태라고 우려했지만 ‘도심 속 동물원’이라는 독특한 콘셉트가 이 대표의 마음을 끌었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 했어요. 평소 커피를 즐기기도 하고요.” 그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공인된 커피 애호가다.

“고급 원두를 숙련된 추출 기술로 내린 스페셜티 커피는 한 번 마시면 매료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윽한 향에 마음이 순화되고 맛을 보면 황홀해져요. 저도 모르게 ‘음~’ 하고 소리를 냅니다.”

이 대표는 주커피를 인수한 후 가맹점 확대보다 내실 다지기에 주력했다. “인수 직후 가맹점주들의 불신은, 말로 못해요. 일일이 매장을 찾아다니며 본사의 정책을 설명하고 신뢰를 회복하는데 2년이 걸렸어요.” 그의 노력 때문인지 기존 가맹점주들은 대부분 재계약을 했다. 그는 도심 속 동물원이란 콘셉트는 그대로 두고 품질 개선에 나섰다. 커피 감정사와 외부 커피 전문가를 영입해 커피 배합 비율을 표준화했다. “주커피의 커피는 저렴한 로브스타종을 섞지 않고 100% 아라비카종 생두만 사용합니다. 1세대 바리스타라 불리는 임종명 바리스타는 시음회에서 국내 커피 브랜드 중 최상급이라고 평하더군요.”

인수한 ‘주 커피’, 산책하듯한 발씩 성장

아이스석류티, 홍삼꿀차 같은 신 메뉴도 개발했다. 무엇보다 위생에 신경을 썼다. “아무리 맛있어도 먹고 탈이 나면 안 되잖아요. 얼마 전 우유빙수를 만들 때 빙수기에 남은 우유 찌꺼기가 상온에서 부패돼 문제라는 보도가 나 왔지요? 주커피는 이미 지난해 우유빙수를 도입했다 문제를 알아차리고 빙수기 위생을 개선했습니다. 신규 매장에서는 우유빙수를 아예 메뉴에서 제외했고요.”

현재 가맹점은 100여 개. 이 대표는 본사, 가맹점, 고객은 상생관계여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당분간 양적 팽창보다 질적 팽창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안 될 자리에 매장을 내면 결국 오래 못 가 문을 닫습니다.” 그는 주커피를 경영하면서 동물원과 더 가까워졌다. 지난 7월에는 서울대공원과 서울동물원 복지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멸종 위기 동물의 상황을 알리고 동물종 보존과 환경 개선을 후원한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동물원을 친구 집처럼 드나들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웃었다. 주커피 매장에 가면 나무 조경과 코끼리, 기린, 사자, 아나콘다 같은 동물 인형이 눈에 띈다. 그는 “동물원이 제게 활력을 주는 곳이듯 주커피 역시 고객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걸음을 옮겼다.

태영세라믹·태영F&B의 성장 전략


태영세라믹 당진공장
이대영 대표는 인하대학교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내화, 동국내화(현 동국알앤에스)에서 일하며 세라믹 분야의 경험을 쌓았다. 1996년 설비제조업체인 태영 산업을, 2005년 태영세라믹을 설립했다.

태영세라믹은 최근 당진공장 증설에 200억 원을 투자했다. 내년 초 새 공장이 완공되면 생산 능력이 80% 증가할 전망이다. 최근 이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중국 시장이다. 태영세 라믹은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제품을 직접 디자인해 저가품은 중국에 맡기고 고가품은 한국에서 생산하는 방식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뒤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비책이라고 한다.

태영F&B는 지난해 3월 중국지사를 설립해 중국 8개 성과 마스터 프랜차이즈계약(가맹점 모집·운영권을 주는 것)을 했다. 올해 20개 성과 계약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태국 등과도 매장 진출 협의 중이다.

201410호 (201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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