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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명예회장과 교분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난 것은 굉장히 신비스러운 일이었다. 1980년 중반쯤 <조선일보>의 아침논단에 기고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아침 7시에 칼럼을 읽었다는 정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기고한 글에 공감한다며 대뜸 만나자고 했다. 그 전에 지인에게서 들은 정 회장은 토목공사가 나오는 족족 모두 수주 해버리고, 현장노동자들에게 발길질까지 서슴지 않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내 칼럼을 읽었다며 만나자고 하니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계동 현대사옥으로 달려가 얘기를 나눠봤더니 아산은 의외로 박학다식했다. 기술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 삶에 대한 식견과 지식이 대단했다. 그 뒤부터 아산과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됐다. 어릴 적에 배고프고 추웠던 기억도 서로 애기했고. 땅 한 평을 일구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던 아버지 얘기도 했다. 대화를 하면서 우리 둘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가장 그윽하고 진중하게 생각 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아산은 돈많은 기업가로 알려져있지만 나눔에 관심이 많은 실천가였다는 말도 있던데.아산은 기본적으로 자기 몸으로 움직여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노동관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한 가지 일화가 있다. 한때 기업들마다 상장 붐이 일지 않았나. 기업이 커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되니까 기업공개를 통해 모두가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식시장에 상장하라는 열풍이 불었었다. 그런데 정 회장은 이런 흐름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지금 기업을 공개해 주식을 내놓으면 돈 많은 사람이 다 가져가지 서민들이 이 주식을 살 수 있겠느냐?”며 기업공개를 미뤘다. 이때가 70년대 후반이다. 얼마 뒤에 아산은 자신이 가진 현대건설 주식의 절반을 내놓더니 병원을 짓게 했다. 1977년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출범시켜 시골에 병원을 짓게 한 것이 이때다. 그가 꼭 성취해야겠다는 의지 속에는 언제나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그는 “가난과 병듦을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아산나눔재단이 하는 활동을 보면 아산의 철학을 주로 젊은이들에게 전달하고자 애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내가 기억하는 아산은 주어진 조건 때문에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다. 그 강한 열망 덕분인지 어려운 현실과 직면해서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도전적인 ‘이룸ʼ과 함께하는 ‘나눔ʼ, 그것이 그의 삶을 관통한 일관된 생각이었다. 우리 재단이 최근 청년들이 주로 나서는 스타트업(기술력있는 신생기업) 지원을 시작한 것도 이 같은 아산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아산은 틈만 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저는 이런 아산의 정신과 철학이 우리 청년들에게도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아산의 정신을 따른다고 해서 아산이 허허벌판에서 조선소를 지어낸 업적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웃음) 그에게서 시대를 불문하고 보편적인 가치로 전승될 수 있는 정신을 젊은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실제 아산나눔재단은 ‘청년’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창업에 뜻을 품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를 개최하고, 글로벌 리더를 키울 수 있는 글로벌 인턴 프로그램’ 등을 운영중이다. 창업한 젊은이에게 실질적 사업 추진을 돕기 위한 기금도 마련했다. 약 1000억원 규모로 조성된 ‘정주영 엔젤투자기금’은 젊은이들의 창업 생존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창업생태계 조성과 청년 창업가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구체적으로 청년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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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보육센터로 세운 ‘마루180’은 정부에서도 관심이 많다. 창업자들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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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하는 것보다 창업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같다. 창업을 지원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지금 젊은이들은 배낭여행도 자유롭게 하고 세계를 하나로 보는데 거부감이 없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창조적인 잠재력이 무궁무진다는 얘기다. 저는 젊은이들이 취업이라는 타율적인 의존을 통해서 삶을 개척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되어서 삶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요즘 보면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젊은이들이 많아 고무적이다. 다만 우리 젊은이들을 꽃피우게 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앞으로 젊은이들이 책임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이자 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지방에서 열린 한 취업콘서트에 갔을 때였다. 취업전문가가 문답형식으로 창업자를 대상으로 상담해주는 토크쇼였다. 취업 전문가들이 대학교 2학년을 중퇴한 한 젊은 창업자의 아이템에 대해 듣더니 “이미 시장에 많은 경쟁자들이 있고, 새로울 것이 없는 사업 아이템”이라고 지적하더라. 이를 지켜본 사회자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하고 묻자 이 젊은 창업자는 “나는 경쟁 상대자가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일한다”고 답했다. 경쟁 상대를 이기고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라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라니 이보다 더 명쾌한 창업에 대한 답변이 어디 있나 싶었다. 저는 이런 창의적인 생각이 우리 젊은이들의 창업 풍토에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정 이사장은 이처럼 아산나눔재단을 맡으면서 ‘창업 동기’를 가르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재단이 올해 선보일 ‘아산 안트러프러너십 리뷰’는 기업가 정신 교육을 목표로 정 이사장이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교육자료라고 했다. 정 이사장의 다음과 같은 특별한 깨달음이 반영된 덕분이다.“그래요. 창업은 환상일 수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꿈을 꾸되 눈뜬 꿈을 꿔야 합니다. 현실을 냉혹하게 인식하고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산 정주영도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이를 실패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경쟁에서 졌다고 포기하는 것은 ‘실패ʼ가 아니라 ‘패배ʼ죠. 제가 창업경진대회를 참관해 보면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우리 젊은이들이 그렇게 귀하게 보일 수 없습니다. 우리 미래를 이끌어 나갈 젊은이들을 돕는 것만큼 보람찬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재단 설립때부터 지금까지 재단을 책임지고 계신다. 지난 3년을 평가한다면?한마디로 암중모색(暗中摸索)했다고 할까.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듯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시행착오도 겪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지난 3년간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적 역량을 스스로 발휘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깊이 고민했다. 그것이 젊은이들을 위한 창업지원으로 구체화됐다고 보면 된다.“도와준다는 의미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잠재된 역량을 발굴해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나눔’이다.” 공익재단이 앞으로 어떤 사회적인 역할을 해야할지 묻는 기자의 우문에 그는 이같이 답했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연탄을 나누거나 불우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도 좋지만,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창조적 소용돌이’를 이끌어 내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도 했다. 물질적 지원에 그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우리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우겠다는 말로 들렸다. 인터뷰를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가 말한 ‘창조적 소용돌이ʼ가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 이사장은 이미 기자도 모르는 사이에 ‘나눔ʼ을 주었던 것이다.-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