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음료 연관 없어도 속속 진출3층으로 올라가 지난 연말 오픈한 멕시칸 패스트푸드전문점 타코벨에 들어섰다. 아워홈의 구지은 부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미리 조리된 음식을 데워 내오는 여느 패스트푸드 매장과 달리 주문을 받아 그 자리에서 바로 조리하는 게 특징이다. 종업원은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 첫 번째의 오픈 키친(부엌을 개방하는 형태) 매장”이라고 말했다. 구 부사장은 5년 안에 국내 50곳에 타코벨 매장을 연다는 계획이다.업계에서는 구 부사장이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제외된 패스트푸드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2004년 아워홈에 구매물류사업부장으로 입사한 그는 외식사업 분야를 맡아 레스토랑 이끼이끼와 싱카이, 사보텐, 고품격 웨딩·컨벤션공간 아모리스 론칭을 주도했다. 그는 올 2월 2일 부사장으로 승진했다.2010년 이후 재벌가 자녀들의 외식업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애경그룹, 대상그룹, 삼천리, LG패션, 귀뚜라미 등의 2·3세들이 속속 음식 매장을 오픈했다. 신세계, 롯데, CJ 등 유통 대기업들도 트렌드에 뒤처진 매장은 접고, 고객의 기호를 반영한 새로운 브랜드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대기업 자녀들 치고 레스토랑 대표라고 박힌 명함 안 가진 이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다.재계 2·3세들이 외식업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린 건 1990년대 초부터다. 1992년 패밀리레스토랑인 TGI프라이데이를 처음 들여온 이선용 전 아시안스타 대표와 이지용 JRW 사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금성사 사장, LG신용카드 부회장 등을 지낸 이재연 전 LG그룹 고문의 아들이다. 이 고문의 부인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자 차녀인 구자혜씨이며, 이 고문은 고(故) 이재준 대림산업 회장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이선용, 이지용 두 형제는 2002년 TGI프라이데이를 롯데에 매각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국내 패밀리레스토랑 시장을 석권했다.동양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차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도 국내 외식 시장을 연 주역이다. 1995년 베니건스 브랜드를 국내 들여와 TGI프라이데이에 이어 국내 2위의 패밀리레스토랑으로 만들었다. 베니건스를 바른손에 매각한 이후 현재는 레스토랑 마켓오를 운영하고 있다. 남수정 썬앳푸드 대표와 김성완 스무디킹 대표도 1세대 대표주자로 꼽힌다. [상자기사 참조]미식가로 알려진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도 외식업계에서 주목하는 재계 2세다. 창업자 고(故) 김복용 회장의 장남인 그는 2007년 인도정통레스토랑 달을 시작으로 부첼라, 크리스탈제이드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유업계 라이벌인 홍원식 남양유업 대표와 동생 홍명식 사장도 이에 질세라 각각 이탈리아레스토랑 일치프리아니와 회전초밥전문점 사까나야를 운영하고 있다. [176쪽 기사참조]외식업 진출을 주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식품·식자재 관련 대기업들이다. 아워홈, 매일유업, 남양유업, 한국야쿠르트, 대상 등이다. 윤호중 한국야쿠르트 전무는 디저트카페 코코브루니를 의욕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인 임세령 대상 상무도 두 번의 외식업 실패를 발판 삼아 지난 2013년 프랑스요리 전문점 메종드라카테고리를 오픈했다. 간장·된장 등 장류를 생산하는 신송식품의 조승현 대표는 몇 해 전 치킨브랜드 오꼬꼬로 프랜차이즈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박수남 삼원가든 회장의 아들인 박영식 SG다인힐 대표도 일식레스토랑 퓨어에서의 실패를 딛고 투뿔등심, 블루밍가든, 붓처스컷, 꼬또 등의 브랜드를 성공시키며 외식업계 스타로 떠올랐다. [172쪽 기사 참조]유화·패션·보일러·리조트 업체 등 식음료 사업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기업 2·3세들의 진출도 눈에 띈다. 귀뚜라미보일러는 미국 카페프랜차이즈 닥터로빈을 국내로 들여와 현재 11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다이어트푸드전문점으로, 최진민 귀뚜라미보일러그룹 명예회장의 딸 최문경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도시가스업체 삼천리도 중국요리퓨전레스토랑 차이797 3개점과 브런치전문매장 게스트로펍 2개점을 운영 중이다. 이만득 회장의 딸인 이은선씨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의 손자인 구본걸 LG패션 회장도 2008년 일본라면점 하꼬야, 이듬해에 시푸드뷔페 하꼬야시푸드를 열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차남 채동석 부회장은 일본라면집 잇푸도, 카레 전문점 도쿄하야시라이스클럽을 국내에 들여왔다.
현금 돌고 실패 리스크 작아 선호
유행 짧고 골목상권 시비 어려움그러나 외식업 진출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대기업 외식 브랜드들이 줄줄이 간판을 내렸다. 신세계는 보노보노, 자니로켓 등 대표 외식 브랜드 매장 몇 곳을 폐점했다. CJ 역시 2013년 씨푸드오션 매장을 모두 폐점한데 이어 지난해 3월엔 피셔스마켓도 문을 닫았다. 모두 해산물전문점으로, 해산물 시장 수익이 높지 않은 데다 일본 방사능 수산물 우려 등으로 실적이 악화된 때문이다. 한때 ‘외식 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통했던 오리온그룹도 패밀리레스토랑 마켓오 매장 수를 줄이고 있다.외식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급변하는 유행 패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고급화에만 치중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그동안 외식업의 방향은 음식의 유행 패턴에 따라 달라졌다. 1990년대 말에는 퓨전음식, 2000년대 이후엔 각국의 정통요리나 웰빙요리가 유행했다. 최근엔 한식뷔페가 대세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회사 차원에서 성장가능성이 높지 않은 일부 브랜드를 정리한 것”이라며 “계절밥상이나 비비고 등 잘 되고 있는 브랜드에 힘을 실을 계획”이라고 밝혔다.오너들의 전문성 부족도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급변하는 변수에 대응할 만한 철저한 품질관리와 마케팅 전략이 전제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민교 맥세스컨설팅 대표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외식업체 대부분이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매장 하나의 인테리어에 수십억원, 마케팅에만 일 년에 몇 억원을 투자하는 사례가 많다”라며 “실상 매출에 있어서는 그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한 채 대기업 자본을 바탕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데만 그치는 곳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골목상권과의 충돌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 2013년 5월 발표한 음식업점의 출점 제한 규제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외식업 진출에 발목을 잡았다.박영식 SG다인힐 대표는 “대기업이 다양한 외식업종에 진출하면서 전문 인력을 투입하고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순기능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중소기업의 영역이 아닌 대기업의 덩치에 맞는 혁신적이고 과감한 외식사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