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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3.0시대 (5)호텔업계] 성장에 목마른 경영자들 호텔을 탐하다 

제조업·내수 부진 타개 돌파구… 시설 업그레이드·서비스 차별화가 관건 

국내 호텔업계의 화두는 단연 비즈니스호텔이다. 특급호텔들의 속도감 있는 시장 진입과 함께 자사 고유 업종과의 시너지효과를 노리고 중견기업이 속속 뛰어들고 있다.

#1. 지난 5월 1일 호텔신라는 ‘신라스테이 서대문’을 개장했다. 2013년 경기도 동탄을 시작으로 서울 역삼동, 제주도에 이어 네 번째 출점이다. 신라스테이 서대문은 총 27층 규모로 서울메트로 5호선 서대문역 바로 앞에 위치했다. 같은 날 신세계조선호텔도 서울역 앞 트윈시티타워에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서울 남산’을 오픈했다. 트윈시티 남산타워는 호주계 투자회사 매쿼리가 소유한 곳으로 신세계조선호텔이 19~30층을 임대했다.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져 있는 두 호텔은 모두 비즈니스호텔이다. 경영을 맡고 있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삼성가의 사촌지간이다.

#2. 며칠 뒤 찾은 명동거리. 이곳은 요즘 한 건물 건너 호텔 공사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호텔을 개·보수하는 곳도 있고, 새로 호텔 건물을 짓거나 다른 용도로 쓰던 건물을 호텔로 탈바꿈하는 곳도 있다. 명동은 신규 호텔들의 ‘쇼룸’이기도 하다. 비즈니스호텔 경쟁의 포문을 연 ‘이비스 앰배서더’에 이어 ‘데이즈 호텔’ ‘르와지르 호텔’ ‘이비스 스타일’ 등이 명동에서 첫 선을 보인 호텔 브랜드다.

대기업, 여행사, 건설회사, 해외 호텔기업, 리츠펀드 등이 비즈니스호텔 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지역엔 올해만 55개, 내년 20개 이상의 비즈니스호텔이 건립된다. 비즈니스호텔은 도심 속 특 2급 또는 1급 호텔로, 부대시설과 서비스를 최소화해 특급호텔의 반값 정도의 예산으로 묵을 수 있다.

‘비즈니스호텔 전쟁’은 호텔신라가 지난해 10월 신라스테이 역삼을 열면서 본격화됐다. 2013년 11월 경기도 화성에 신라스테이 동탄을 열면서 비즈니스호텔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이부진 사장은 지난해 6월 지분 100%를 출자해 자회사인 신라스테이를 설립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올해 제주도, 서대문에 오픈했다. 9월엔 마포, 내년엔 광화문, 구로, 천안에 신라 스테이를 추가로 열 계획이다. 면세점 사업에 비해 매출이 떨어지는 호텔사업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 비즈니스’에 빠진 특급호텔들


롯데호텔은 2009년 서울 마포 공덕동에 ‘롯데시티호텔 마포’를 오픈한 이후 국내에 총 5개 호텔을 운영 중이다. 연말까지 8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올 연말에는 20~30대 젊은 해외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부띠끄형 호텔 ‘L7’도 선보인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중저가 호텔 수요가 증가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비즈니스호텔은 많지 않았다. 기존 비즈니스 호텔과 차별화된 시설을 통해 관광객 수요를 끌어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가에서는 신동빈 그룹 회장뿐 아니라 온 가족이 호텔 경영에 나선 모양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녀 신영자 사장은 호텔사업을 이끌고 있는 재벌가 딸들 중 원로 격이다. 이복 여동생이자 신격호 총괄회장의 막내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은 2010년부터 호텔롯데 도쿄사무소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롯데시티호텔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엔 신영자 사장의 장녀인 장선윤 상무가 호텔 업무에 복귀했다. 롯데호텔과 면세점 등에서 근무했던 그는 명품관 애비뉴엘 개점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 롯데호텔의 해외사업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뒤늦게 비즈니스호텔에 뛰어든 신세계에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그는 1996년 신세계조선호텔에 입사해 마케팅 담당과 프로젝트 실장을 맡으면서 호텔경영을 익혔다. 2009년 신세계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현재 백화점 및 패션사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그가 신세계의 비즈니스 호텔 확장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2017년 말 신세계백화점 본점 옆 메사빌딩 인근 부지에도 비즈니스호텔을 추가로 짓는다는 계획이다.

신라·롯데·신세계조신라·롯데·신세계조선·파르나스 등이 호텔 경영 노하우와 브랜드 인지도를 앞세우며 비즈니스호텔을 빠르게 확장하는 이유는 ‘수익성’ 때문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줄면서 불황에 빠진 특급호텔 입장에선 해마다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비즈니스호텔 시장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최근 5년 동안 특급호텔 시장이 연 0.9% 성장률을 보이며 사실상 정체됐다”며 “특급호텔은 인건비와 식재료비 같은 고정 비용이 많이 드는데 비즈니스호텔은 서비스를 최소화했기 때문에 유지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호텔 시장이 특급호텔과 저가호텔로 양극화해 ‘합리적인 가격의 깨끗한 호텔’이 드물다는 점도 비즈니스호텔이 붐을 이루고 있는 이유다. 엔화 약세 현상이 계속되면서 비싼 특급호텔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줄고 중저가의 숙박시설을 선호하는 중국인관광객이 늘면서 수요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비즈니스 방문자 입장에서도 30만~40만원 하는 특급호텔은 부담스러웠던게 사실이다.

비즈니스호텔은 기존 특급호텔보다 건설비용이 적게 들고 공사기간이 짧아 운영 효율성이 높다. 게다가 정부에서 용적률을 1200%까지 상향해주었다. 이 때문에 리츠펀드의 투자도 늘고 있다. 리츠펀드가 호텔을 건설하고 운영은 호텔전문기업에게 맡기는 식이다. 한 리츠펀드 관계자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차에 안정적인 임대료가 보장된 비즈니스호텔은 좋은 투자 대상”이라며 “특히 특급호텔을 사업 파트너로 삼으면 임대수입이 좀 낮아지더라도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특급호텔들이 죄다 비즈니스호텔 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유독 조용한 호텔 대기업이 있다. 바로 한진의 칼호텔네트워크다. 칼호텔네트워크는 제주와 인천 그리고 미국 하와이와 LA 등지에 모두 6개의 호텔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호텔경영을 진두지휘하던 조현아 대표가 항공기 회황 사건으로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한진그룹의 호텔사업이 주춤하고 있다. 조 전 대표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경복궁 옆 7성급 호텔 건설도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그룹의 신 성장 동력을 호텔업에서 찾는 기업도 많다. 그룹의 본업과 호텔업을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애경그룹과 대림건설이 대표적이다. 제주도에 그랜드호텔과 항공우주호텔, 강원도에 메이힐스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대림산업은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에 비즈니스호텔 ‘글래드호텔’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인 호텔업 확장을 선포했다. 애경은 지난해 호텔 아벤트리 부산,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을 개장하며 호텔업에 뛰어들었다. 그룹이 보유한 유통(쇼핑몰), 항공(제주항공), 숙박(노보텔) 등이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136쪽 기사참조>

미래에셋, 호텔업계 다크호스 부상


GS그룹과 한국무역협회의 공동출자로 설립된 파르나스호텔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코엑스 나인트리호텔 명동, 나인트리 컨벤션 광화문을 운영 중이다.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이 책임을 맡고 있다. 나인트리는 파르나스호텔의 자체 비즈니스호텔 브랜드다. 2012년 서울 명동역 인근에 오픈한 나인트리호텔 명동은 뛰어난 입지 탓에 평일에도 객실 점유율이 80~90%에 달할 정도다. 허 부회장 역시 비즈니스호텔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 호텔업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인물은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3녀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와 미래에셋금융지주 박현주 회장의 장녀 박하민 미래에셋자산운용 컨설턴트다. 우선 정윤이 전무는 최근 정 회장이 경기도 화성시 소재 현대차 소유의 롤링힐스호텔 토지와 건물 등을 해비치호텔앤드 리조트에 현물출자하기로 결정하면서 힘을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현대차 3세 승계와 맞물려 정윤이 전무에게 호텔사업을 맡기는 과정이라고 풀이한다. 현대차는 건립 예정인 삼성동 한전부지 신사옥에 호텔을 입점 시킬 계획이다.

호텔업계에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박현주 회장과 장녀 박하민 컨설턴트에 대한 관심도 높다. 국내 펀드 불황에 부동산 투자 등 해외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박 회장은 특히 호텔사업에 관심이 많다. 2013년 호주의 포시즌스 시드니호텔을 인수한 그는 서울 광화문에 포시즌스 서울 오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5월 19일엔 하와이 빅 아일랜드에 위치한 5성급 리조트 호텔 페어몬트 오키드를 약 2400억 원에 인수 완료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박하민씨를 주목한다.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맥킨지 컨설팅과 세계적 부동산컨설팅회사인 CBRE컨설팅에서 근무한 그는 2013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입사했다. 재벌가 딸들이 보통 호텔사업을 물려받는 것처럼 박 회장이 호텔사업을 통해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는 분석도 나온다.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과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도 비즈니스호텔을 운영 중이다. 2000년 하얏트리젠시제주호텔을 인수한데 이어 아주호텔서교 재건축 사업도 진행하고 있는 문 회장은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홀리데이인 산호세 호텔을 약 580억 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교육문화, 생활문화, 호텔·레저 등 3개 사업 부문을 갖춘 교원그룹은 제주, 낙산, 경주, 남원에 더 스위트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호텔경영은 장 회장의 장녀인 장선하 호텔 사업 부문 팀장이 맡고 있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나온 그는 노보텔 앰배서더에서 호텔리어로 근무한 바 있다.

대기업들이 비즈니스호텔 시장에 속속 뛰어들지만 시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최근 몇 년 새 호텔 객실 공급이 늘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서울 호텔시장 동향 및 수급전망’ 보고서를 보면 올해 서울 호텔 객실 수요는 3만8288실로 추산되지만 공급은 4만1843실에 달해 3000실 가량이 남아돈다. 비즈니스호텔업계 역시 이미 ‘레드오션’이 시작됐다는 진단이다.

글로벌 호텔체인 브랜드의 공세도 매섭다. 메리어트는 비즈니스호텔 브랜드인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를 서울 영등포와 성남 판교에 이어 2016년 남대문에 380실 규모로 열 예정이다. 오는 10월 일본 서일본철도그룹이 운영하는 솔라리아 니시테쓰 호텔 서울도 315실 규모로 명동에 자리를 잡는다. 일본계 특1급 호텔이 국내에 문을 여는 것은 처음이다. 한 호텔 총지배인은 “외국인관광객의 호텔 선택 기준은 아무래도 낯익은 글로벌 브랜드가 될 것”이라며 “낮은 브랜드 인지도는 한국 호텔들이 장기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신라호텔은 해외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고, 롯데호텔도 아시아지역에서만 알려져 있는 실정이다.

비즈니스호텔 대부분이 중국인관광객을 겨냥했지만 숙박료는 10만~20만원 수준으로 그들의 기대보다 높은 것도 문제다. 지난 2월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 기간 중 하루 평균 숙박료가 12만원을 넘는 명동 일대 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손익분기점인 70%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좀 더 다양한 가격과 서비스를 갖춘 비즈니스호텔의 등장도 요구된다. 이훈 한양대 교수(관광학)는 “일본인·중국인 의존에서 벗어나 병원과 연계한 의료 관광을 활성화하고 동남아·중동 등의 고객을 적극 유치하는 노력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비즈니스호텔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가격적인 혜택만으로는 차별점을 갖기 어려워 졌다”며 “정확한 타깃과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개성 있는 포지션을 갖는 것이 호텔업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06호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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