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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루이샹 중국공상은행 한국대표 

글로벌화 성공비결은 “포용과 수용” 

김영문 포브스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한루이샹 중국공상은행 한국대표는 외국계 은행 영업 허가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호주에서 진출 8년 만에 현지 은행 영업 허가를 받아낼 정도로 글로벌화의 귀재로 꼽힌다. 서울을 ‘위안화 허브’로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그를 만나 은행들의 글로벌화 전략에 도움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류이샹 대표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금융업계에 도움이 되고자 『이기는 전략』이라는 책을 펴냈다.
세계적인 경제잡지 포브스·더 뱅커가 공통으로 1위로 꼽는 글로벌 기업이 있다. 중국 최대 국유은행 중국공상은행(ICBC·이하 공상은행)이다. 포브스가 선정한 ‘글로벌 최대 기업 2000’에서 3년째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중국건설은행·중국농업은행·중국은행이 2위부터 4위까지 휩쓸었다. 미국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을 중심으로 미국 기업 일색의 상위권 판도를 3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중국계 은행이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것이다. 게다가 중국공상은행은 지난해 순익 2763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51조원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여 395억 달러(약 44조원)를 기록한 애플까지 넘어섰다. 단순히 중국 본토 시장이 크기 때문은 아닐 터.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과 미국의 은행을 짧은 시간에 따라잡고 3년째 선두를 지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992년 공상은행에 입사한 청년은 자신이 몸담은 은행이 겪게 될 가공할만한 ‘변화’를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평범한 청년은 90년대 초부터 중국은행업계에 불어 닥친 글로벌화에 몸을 실었다. 금융 지식이 없었던 청년은 비상한 각오로 주경야독하면서 금융에 점차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후 홍콩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이수하고 호주 시드니로 향한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하며 은행원으로 살아온 지 23년. 공상은행은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 내 1만7000개 지점, 해외 41개국에 338개 영업점을 보유한 중국 최대 은행으로 부상했다. 2014년 12월말 기준으로 총자산 약 3800조원을 넘어섰다.

공상은행의 세계화 전략 최전선에서 활동한 한루이샹(韓瑞祥) 공상은행 한국대표(이하 대표) 이야기다. 세계 1위 공상은행의 규모에 놀라는 기자에게 한루이샹 대표는 “중국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결과”라며 겸손함을 내비쳤다. 그의 말대로 공상은행이 해외로 뻗어 가는 중국 기업들과 발맞춰 영역을 넓힌 것은 분명해 보였다. “설립 당시 인민은행의 상업 관련 네트워크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시장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해외로 뻗어가는 기업 고객들과 함께 가려고 했던 게 성공의 원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루이샹 대표의 말은 글로벌한 시각에서 사업 확장을 추진하려는 공상은행의 철학과도 맞물려 있다. 서울로 부임하기 전, 한루이샹 대표는 초대 호주 대표로 부임하면서 공상은행의 해외 진출 철학과 전략을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90년대 초부터 공상은행은 글로벌화 전략을 짜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 은행으로서 해외에 진출하는 고객보다 먼저 해외로 진출해 터를 잡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공상은행의 글로벌화 전략은 2000년대 들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한루이샹 대표가 초대 호주대표로 재직하던 2008년 9월, 공상은행은 호주에서 현지 은행 영업 허가를 받았다. 호주가 외국계 은행 영업 허가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탓에 전 세계 투자자의 이목이 집중됐다. 공상은행은 이처럼 수년간 선진 금융 플랫폼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당시 호주대표를 맡았던 그는 “은행은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업종으로 수년 내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업종으로 갈아 탈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면서 “호주 지점을 개설할 때 ‘100년 은행’을 세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남다른 준비와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호주에서 글로벌화 성공후 탄력 붙어


공상은행의 글로벌화는 호주에서의 성공 이후 탄력이 붙었다. 현재 공상은행은 해외 40개국에 331개 지점(2014년 6월 기준)을 운영하는 등 해외 시장에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 베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주요 유럽 도시에도 지점을 개설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탠더드뱅크그룹의 아르헨티나 법인 지분 80%를 인수해 아프리카 시장 진출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미국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13개 지점을 거느리고 있는 홍콩동아은행의 미국 은행 자회사 지분도 대거 인수하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본점의 성과가 큰 만큼 그도 내친김에 『이기는 전략』이라는 책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금융업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 쓴 책이라고 했다. “호주 지점에서 겪었던 경험에다 현지화 과정에서 겪은 고군분투기에 이르기까지 가감없이 담았다. 국적과 상관없이 해외 진출을 고민하는 은행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었다”며 출간 취지를 설명했다.

그에게 해외 진출에 있어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나 비법을 묻는 이도 많아졌다. 한루이샹 대표는 그럴 때 “족쇄와 수갑을 차고 아름답게 춤춰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족쇄와 수갑은 규제, 춤은 경영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현지 기준(규제)에 모든 것을 맞춘 상태에서 경영전략을 짜라는 얘기다. 그는 이에 대해 “각 나라의 시중은행 업무는 예대차익(대출이자와 예금이자 간의 차이)부터 자기자본비율까지 엄격한 규제 하에 이뤄지는데 규제와 환경은 각국의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온 문화와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구 시장 같이 규제가 안정된 경우가 더 그렇다. 이처럼 “공상은행은 현지인들과 포용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꾸준히 견지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해외 경험이 풍부한 그는 한국 금융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홍콩과 호주 두나라의 상황을 거론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홍콩과 호주 모두 영국의 금융 메커니즘을 따르는 나라잖아요. 한국 금융시장은 글로벌화 면에서 홍콩보다 못하고, 규모 면에서 호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호주의 경우 은행·증권·보험 등 시장 참여자가 아직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한국의 금융회사가 공략할 만한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금융규제에 대해서는 “호주만큼이나 시장 규제가 엄격한 곳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한국 온 지 2년 만에 금융관련 규제가 많이 완화되고 있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며 한국 금융시장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그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많은 은행이 기존의 금융 모델을 고수하다 쇠퇴하지 않았나. 이것이 반면교사가 돼 중국 은행업계는 해외 진출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라며 “공상은행이 글로벌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결국 수익처 다변화를 위해 소매금융에 편중된 한국 금융시장도 변해야 하고 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한국도 해외로 진출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유를 묻자 한루이샹 대표는 ‘인재육성’ 얘기를 꺼냈다. 2000년대 들어서 홍콩 근무를 시작한 그는 홍콩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당시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홍콩 근무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각국의 문화 이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규제나 경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우수한 인재가 많아 해외진출에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올해 공상은행이 한국 내 업무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택한 방법도 같은 맥락이다. 공상은행은 올해부터 한국 직원을 중국으로 파견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금융 서비스를 돕기 위해서다.

공상은행 한국대표로 부임한 이후 한루이샹 대표는 새로운 계획을 짜는 데 여념이 없다. 한국과 중국 간 무역 거래 수요가 점차 확대되는 추세고, 중국 주도로 창설된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의 출범, 외국인 투자자에게 중국 본토의 주식ㆍ채권 등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한도인 ‘위안화 적격외국인투자자(RQFII)’ 지정 등 국제 금융 시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위안화 허브로 성장 기대

한국대표 부임 이후 지난 1년을 돌이켜보던 그는 “서울이 위안화 시장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부터 원화·위안화 직거래 시장을 개설했다. 직거래 업무가 확대되면서 서울 지점의 위상도 날로 커지고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하루 평균 원화와 위안화 직거래 규모(2015년 5월 기준)는 개설 첫 달 54억 위안(약 1조원)에서 199억 위안(약3조6700억원)으로 약 3배 이상 늘었다. 그는 “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 양국 간 무역거래액이 작년 기준으로 3000억 달러(약 340조원)에 달한다”면서도 “아직 위안화로 거래하는 비중은 낮은 편이기 때문에 앞으로 위안화 결제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국에서 위안화 거래가 빠르게 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은행업 종사자로서 서울에 위안화 허브를 설치하고, 양국 간 금융협력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 인터뷰 끝에 한루이샹 중국공상은행 한국대표가 밝힌 포부다. 세계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의 이름이 한국 금융권과 국민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508호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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