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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업계, 거인의 진격 

 

조득진 기자
자동차업계의 플래그십(기함) 세단 출시 경쟁이 치열하다. 기록적인 저유가와 연비 효율화 기술의 발달로 유지비 부담이 줄자 대형차에 눈을 돌리는 소비자가 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대형 세단 판매 실적이 눈부시다. 지난 1월 현대·기아차, 쌍용차, 한국GM, 르노삼성 등 국산완성차 5개사의 대형 세단 판매는 5100대를 기록했다. 5개사의 1월 전체 차량 판매 대수 8만6000여대의 5.9%다. 국산완성차 업계에서 대형 세단 판매 비중이 5%를 넘어선 건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수입차시장도 뜨거웠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배기량 4000cc 이상 대형 세단은 총 6606대가 팔려 전년 대비 17% 가량 증가했다.

대형차 수요 증가는 기록적인 저유가와 연비 효율화 기술의 발달로 유류비 등 차량유지비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사실 1억~2억 원에 달하는 고급 세단의 고객은 유가 변동에 덜 민감하지만 아무래도 기름값이 내리면 판매가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연말 출시된 ‘제네시스 EQ900’의 뜨거운 인기도 경쟁에 한몫하고 있다. 구매 연령층이 40~50대에서 30대로 낮아진 것도 대형차 판매 증가의 이유로 꼽힌다.

제네시스 질주하자 체어맨 추격나서


대형차 경쟁 불씨를 지핀 것은 제네시스 EQ900이다. 현대차가 지난해 11월 론칭한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작품이다. 지난 1월 국내에서만 2164대가 팔렸는데, 기존 모델 ‘에쿠스’의 지난해 1월 판매량(900여대) 보다 두 배 이상 많다. EQ900은 출시 2달 만에 1만5000대가 계약됐다. 올해 판매 목표 3만대의 절반을 이미 달성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수입차 대비 합리적인 가격과 향상된 승차감, 외부 디자인이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가격도 7300만~1억1700만원으로 책정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서 경쟁력을 갖췄다. 현대차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은 판매 추세에 연간 생산량을 확대키로 했다.


▎EQ900은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 후측방 충돌회피 지원시스템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기술만 14개에 달한다.
하이브리드·자율주행 등 기술력 뽐내

현대차는 여세를 몰아 하반기에 제네시스 ‘G80’을 출시할 계획이다. 제네시스 G80은 현대차의 대형세단 가운데 처음으로 디젤 엔진이 탑재된다. 지난해 말부터 해외에서 주행 테스트를 본격화했다. 가솔린 모델은 3.3ℓ V6 트윈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할 예정으로, 최고 480마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쌍용자동차는 2월 2일 ‘체어맨W 카이저’를 내놓으며 맞불을 놓았다. ‘체어맨W’의 상위 등급으로, 카이저(Kaiser)는 독일어로 ‘황제’를 뜻한다. 쌍용차가 신형 세단을 내놓은 건 2008년 이후 8년 만이다.

체어맨W 카이저는 내·외관 소재와 편의사양을 개선했다. 전동식 세이프티 파워트렁크를 기본 적용했으며 앞차와의 간격을 인식해 주행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ACC 기능도 전 모델에 탑재됐다. 가격도 5600만~1억1200만원으로 책정해 제네시스 EQ900을 겨냥했다. 체어맨W는 한때 현대차 에쿠스의 경쟁 모델이었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업무용 차량으로 체어맨을 선택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모델 노후화로 2010년 8000대였던 연간 판매량은 지난해 1000여대로 떨어졌다. 쌍용차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체어맨에 최첨단 편의사양과 고급 소재를 적용해 고급화 전략에 나선 것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상품성 개선 과정을 거친 만큼 다른 대형 세단들과 비교해 가격 대비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갖췄다”고 말했다.

수입차업체들도 해외에서 경쟁 중인 럭셔리 차량을 속속 국내로 들여오고 있다. 최첨단 기술로 중무장된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BMW는 상반기 중 최상위 모델인 ‘7시리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뉴 740Le’를 선보인다. ‘i’ 모델로부터 기술을 이어받은 카본 코어 차체 구조를 통해 이전 모델 대비 중량을 최대 130㎏ 줄였다.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주행감은 물론 ‘제스처 컨트롤’ 등 다양한 편의 장치가 새로 추가된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이에 맞서 상반기 중 ‘S클래스’의 첫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더 뉴 S500e’를 출시한다. V8 엔진의 파워풀한 성능과 콤팩트카 수준의 연료 효율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 모터로만 약 33㎞를 주행할 수 있으면 휘발유 3.0ℓ로 100㎞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연비는 유럽 기준으로 리터당 약 35.7㎞를 달성했다. 또 메르세데스-벤츠 최초로 운전자가 주행 시작 때 ‘메르세데스 커넥트 미’를 통해 미리 설정한 온도에 맞춰 냉난방과 환기가 가능한 프리-엔트리 공조 장치도 적용했다.

재규어도 5년 만에 고급세단 ‘XJ’의 부분변경 모델을 지난 1월 출시했다. 2010년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부분 변경 모델로, 재규어 브랜드 중 가장 큰 차다. 눈길을 사로잡는 재규어 특유의 외관과 요트에서 영감을 받은 인테리어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가 받는 이안 칼럼 재규어 사장이 직접 차량 디자인을 총지휘했다. 차체 길이, 엔진, 구동방식 등에 따라 총 10가지 라인업으로 구성됐으며 가격은 1억950만~2억2670만원이다.

중소형 차량을 주로 판매하던 볼보도 하반기에 초대형 세단을 처음으로 출시한다. ‘더 뉴 S90’에는 반자율 주행장치인 ‘파일럿 어시스트’를 적용했다. 앞차와의 차간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앞차를 따라가는 기능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기술이다. 시속 130㎞ 이하의 속도, 앞차가 없는 상황에서도 차선 이탈 없이 자동차 스스로 도로를 달리게 해준다. S90에는 볼보가 최근 선보인 친환경 엔진인 T8 트윈 엔진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마련해 고객 선택폭을 넓힐 계획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라스 다니엘손 볼보자동차그룹 수석 부사장은 “올해 프리미엄 브랜드의 격전지인 한국 시장에서 상품성을 인정받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캐딜락과 링컨 등 미국의 럭셔리 브랜드들도 국내에 대형 세단 출시를 준비 중이다. GM의 고급 브랜드인 캐딜락은 CT6을, 포드의 럭셔리 브랜드인 링컨은 콘티넨탈 양산형 모델을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올 뉴 링컨 콘티넨탈’은 무려 14년 만에 부활하는 포드의 플래그십 대형 세단이다. 플래그십 세단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비력 높아진 30대 유입이 시장 좌우

고급 세단 시장의 확대 조짐은 올 1월 개최된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도 감지됐다.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매년 가장 먼저 열리는 자동차전시회로 한 해의 자동차 산업 동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리다. 올해는 크고 럭셔리한 세단들이 전시장을 채웠다. 자동차업체들은 자율주행기술 등 최첨단 기능을 프리미엄 세단에 적용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세계 고급차 수요는 매년 평균 4%씩 증가하고 있다. 대중차의 연평균 성장률(3%)보다 높다. 2019년에는 전세계 고급차 수요가 10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형 세단 시장은 다양한 메리트를 갖고 있다. 우선 비싼 차일수록 브랜드가 남길 수 있는 마진이 높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 그룹 11곳의 2014년 실적을 보면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의 평균영업이익률은 8.8%에 이른다. 반면 대중차 위주인 나머지 9개 완성차업체의 평균영업이익률은 3.9%에 그쳤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체들은 고급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투자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과 품질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가치나 이미지 등 미세한 부분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라며 “특히 시장 내 성장의 주동력인 30대 구매고객이 얼마나 대형 세단 시장에 유입되느냐가 향후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조득진 기자

[박스기사] 기아차 ‘올 뉴 K7’ 시승기 | 높은 연비와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 ... 대형 못지 않은 중형세단의 품격


기아차의 신형 K7이 7년 만에 새 단장을 마쳤다. 그간 소형차와 SUV(스포츠유틸리티차)에 밀려 설 자리가 좁았던 중형 세단의 부활을 이끌기 위해서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알려진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최고디자인책임자(사장)의 작품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독일산 세단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뒷바퀴 굴림에서 벗어나 앞바퀴 굴림 세단을 내놨다. 차의 진정한 매력은 따로 있다. 최근 등장하는 자동차에서 느끼기 힘든 중형 세단의 품격이 돋보인다. 운전자를 위한 디테일을 챙겼고, 곳곳의 장치에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기존에 없던 디자인’. K7의 외형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이렇다. 늘씬하게 빠진 몸매, 곡선이 극대화돼 미래 지향적 느낌을 주는 뒤태가 전반적 느낌을 지배한다. 앞쪽으로 오면 입체감이 넘치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테두리를 둘러싼 Z형 LED라인이 강한 인상을 준다. 변신의 폭이 큰 모든 신차가 그렇듯 첫 느낌은 조금 낯설다. 볼수록 세련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차를 살펴본 주변 사람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호불호가 약간 갈리긴 했지만,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간의 국산 세단과는 차별화 됐다”는 것이다.

K7에 대한 기대는 가솔린 세단에 많이 쏠려 있을 수 있다. 기자가 시승한 모델은 2.2L 엔진을 장착한 디젤(R2.2) 모델이다. 주로 독일차를 중심으로 폭발적 주행을 위해 장착하는 디젤 엔진이 안락함을 강조한 국산 중형 세단에서는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 줄지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90점 이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변속이 부드럽다. 자동 8단 변속기와 촘촘하게 호흡을 맞추며 필요한 만큼 속도를 높이고 그 힘을 유지했다. 최고 202마력, 최대 45㎏·m의 넉넉한 성능이 주행의 매력을 뽐냈다. 조금 거칠게 몰아붙여도 경박하게 소리내지 않는다. 묵묵히 주인의 요구에 순응한다.


무엇보다 크고 시원시원해 좋다. 앞바퀴 굴림의 장점을 챙겨 넉넉한 공간을 확보했다. 휠베이스만 2855㎜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충분히 넓혀도 뒷자리가 불편하지 않다. 천장 전체를 덮고 있는 파노라마 선루프가 사소한 답답함마저 날려 준다. 커다란 덩치를 이끌면서 연비까지 챙겼다. 이 차의 공인연비는 ℓ당 14.3㎞인데, 시속 100㎞ 전후로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는 ℓ당 19㎞까지도 기록했다. 시원하게 두 다리 뻗고 앉아서, 고급스런 소재와 최첨단 편의장치를 누리다 보면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높은 연비와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 시승한 K7 디젤 모델은 3308만원이다.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독일 브랜드 디젤차가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보면, K7이 얼마만큼의 경쟁력을 갖췄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 박성민 기자

201603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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