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으로 한발 앞서는 일본 ‘복지금융’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둘째가 증여받은 재산의 소유자로서 신탁계약의 ‘당사자’가 돼야 하는데 법률행위능력이 없었다. 법률행위를 대신해줄 성년후견인을 선임하는 절차부터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씨는 실망했다. 점점 거세지는 시댁의 금전 요구에 버텨낼 자신도 없었고, 후견 절차를 밟아야 하는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될지 장담할 수도 없었다.그래도 설득했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후견 절차가 끝나는 대로 신탁계약을 체결하자고. 원래 김씨가 원한 바는 자신 명의의 재산을 바로 신탁계약 해 아들을 위한 자산관리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실제 후견 절차만 끝나면 신탁이 보호막이 될 수 있다.사실상 신탁으로 ‘복지금융’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김씨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대비책을 간절히 원한다. 국가도 각종 복지제도 외에 재산 관리와 관련해서 여러 세제 혜택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중 ‘장애인전용신탁’이 대표적이다.장애인이 재산을 증여받고, 장애인을 수익자로 하는 신탁에 가입하는 등 일정 요건을 모두 갖추면 증여받은 재산 중 5억원까지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않는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52조의2 1항). 수익자는 장애인 본인이어야 하고,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인, 국가유공상이자, 항시 치료를 요하는 중증환자(암환자, 만성신부전증환자, 고엽제후유증환자 등)가 해당한다. 증여자의 범위는 직계존비속뿐 아니라 타인도 포함된다.신탁할 수 있는 재산은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이다. 단, 증여세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조건으로 ▶증여받은 재산을 전부 신탁업자에게 신탁할 것 ▶그 장애인이 신탁의 이익 전부를 받는 수익자일 것 ▶신탁 기간이 그 장애인이 사망할 때까지로 되어 있을 것 등이 있다.장애인이 사망하기 전에 신탁기간이 끝날 때는 신탁 기간을 계속 연장해야 한다. 만약 신탁을 해지하거나 신탁기간이 끝났는데 연장하지 않는 경우, 신탁기간 중 수익자를 변경하거나 신탁한 증여재산가액이 감소한 경우, 또는 신탁 이익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해당 장애인이 아닌 사람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확인된 경우에는 증여세가 부과(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52조의2 2항)되기 때문에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이 뒤따른다.일본에선 ‘특정증여신탁’이란 이름으로 장애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6000만 엔(약 6억원) 한도까지 신탁에 편입된 재산은 증여세를 면제해준다. 장애인은 상속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우므로 부모 생전에 증여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실제 부모 사후 다른 상속인들이 장애를 가진 상속인을 배제하는 경우 고향에서 먼 시설에 내몰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75년 일본에서 처음 생긴 ‘특정증여신탁’은 부모 등 증여자가 위탁자로 계약하기 때문에 가입하기 편하고, 정기적인 생활비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 2013년엔 경증 지적장애인·정신장애인까지도 특정증여신탁 가입 대상에 추가했다. 이는 복지금융의 좋은 예다.한국에선 1998년 장애인신탁이 도입됐다. 위탁자를 증여자(부모)로 할 수 있는 구조를 허용하고, 원금 중 일부 금액을 생활지원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변경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렇게 바뀌면 김씨가 하는 고민이 상당수 해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