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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칠환 빈센 대표 

“전 세계 친환경 선박 시장은 우리가 잡는다” 

친환경 시대가 도래하며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전기·수소 추진선이 차세대 선박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 가장 기술력이 앞선 회사로 꼽히는 곳은 ‘빈센(VINSSEN)’이다. 2018년 전기배를 개발했고 올해는 수소배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5년 차 스타트업 빈센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칠환 빈센 대표가 수소 추진선에 수소연료탱크를 넣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수소 들어갑니다.”

천장에서 거대한 갈고리 하나가 내려와 인형 뽑기 하듯 바닥에 놓인 170㎏짜리 쇳덩이 두개를 집어 든다. 쇳덩이의 정체는 극저온(-253도)으로 보관 중인 수소가 가득 담긴 수소탱크다. 갈고리가 수소탱크를 높이 들어 올려 길이가 14m가량 되는 선박의 몸체까지 옮긴 다음 천천히 하강시킨다. 거대한 건전지를 끼우는 것 같은 광경이다. 그 옆엔 8M급 선박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남 영암군 테크노폴리스(대불국가산업단지)에 자리한 이 공장은 국내 친환경 선박 시장을 이끌고 있는 빈센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여기서 선체를 건조하고 내부에 연료전지, 수소탱크를 넣어 배를 완성합니다.” 2017년 빈센을 창업한 이칠환(49) 대표가 말했다. 빈센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배를 개발·제조하는 스타트업이다. 빈센에서 처음 제조한 건 100kWh 대용량 리튬배터리를 장착한 8M급 순수 전기 추진배(V-100D)다. 이 배를 2019년 부산국제보트쇼에 출품해 ‘올해의 보트상’을 받았다. 덕분에 빈센은 창업 2년 만에 업계에서 누구나 아는 유명 기업이 됐다. “지금은 수소배라고 할 수 있는 수소연료전지 추진 선박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사회 분위기는 빈센의 편이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탄소중립’이란 과제가 자동차 산업을 넘어 선박 산업에도 주어졌다. 국제연합(UN)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선박 연료에 사용하는 연료유 내 황 함유량(황산화물, SOx)의 허용치를 기존의 3.5%에서 0.5%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황산화물은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물질이다. IMO는 선박의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도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40%, 2050년까지 50%를 감축하기로 했다. 지속된 해양환경규제 강화로 국내외 유수 선사들은 친환경·고효율 선박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지난해부터 ‘친환경선박법’을 시행해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친환경 선박의 발주를 늘리고 있다.

친환경 선박을 만들게 된 계기가 뭔가.

조선업에 몸담은 건 2008년부터다. 10년간 대우조선해양 여객선 파트에서 기술영업,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그리스 선박, 튀니지 국영 선사인 코투나브의 크루즈 페리, 잠수함 등을 만들다가 조선산업에 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2017년 희망퇴직했다. 퇴직을 기회 삼아 평소 머릿속에만 그려왔던 전기 추진 보트나 한번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조선업계에 몸담고 있던 지인 둘과 의기투합해 빈센을 창업했는데, 당시 5000만원 정도면 전기배를 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예상과 많이 달랐나.

생각보다 복잡했다. 처음에 중고로 배터리, 모터를 구매해서 조합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열을 발생시키는 전기에너지 특성상 모터와 인버터, 배터리의 열관리도 해줘야 했다. 이처럼 부수적인 것들을 개발하고 추가하다 보니 예상보다 돈도 더 들었다. 5억원가량 든 것 같다. 그래도 1년여 만에 전기배를 만들어냈는데 그게 부산국제보트쇼에서 수상한 ‘V-100D’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배터리 수명이 짧아 멀리 가지 못한다(.웃음) 그래서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수소연료전지를 생각했다.

수소배 개발은 어디까지 왔나.

우리가 만드는 수소배는 수소연료전지를 전기로 변환해 추진동력으로 쓴다. 메탄올이나 LNG 등 다른 추진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100% 친환경 선박이다. 지금 제작 중인 건 10M급, 14~15M급 수소연료전지 레저보트다. 10M급엔 수소연료전지 2개가 들어가는데 다음달 실증이 계획돼 있다. 14~15M급은 수소연료전지 4개를 병렬로 연결하고 옆에 모터를 붙이는 방식으로 설계 중이다. 병렬로 연결함으로써 잉여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해 추진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대차의 수소차 ‘넥쏘’에 들어가는 수소연료전지를 공급받는다고 들었다.

넥쏘의 수소연료전지엔 바퀴를 돌리는 모터가 달려 있다. 그런데 그 모터는 선박에 적용하기엔 너무 작다. 그래서 수소트럭에 들어갈 수소연료전지를 공급받기로 했다. 현재 개발된 건 라이프타임이 5000시간인 2세대 모델인데, 이 또한 트럭이나 배에 적용하긴 너무 약하다. 라이프타임 3만 시간짜리 2.5세대 모델이 올해 하반기에 개발될 예정인데, 그 수소연료전지를 빈센의 선박에 공급받기로 했다. 지금 현대차 연구진과 함께 선박용으로 활용하기 위한 설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수소배의 출력은 어느 정도인가.

수소연료전지 네 개가 들어가면 출력이 500㎾다. 순간 마력으로 800~900마력 정도 파워가 난다. 속도는 15노트(27.78㎞/h) 가량 된다. 처음 개발한 전기배 ‘V-100D’는 500마력이었다.

친환경 선박을 만들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


▎빈센이 제조 중인 14m급 수소배. 전기차의 디자인과 일맥상통한다.
바다 환경이다. 바다는 파도만 쳐도 소금기 가득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소금물이 수소연료전지에 빨려 들어가면 엔진이 망가져버린다. 2박 3일이면 녹아버릴 거다. 전기차나 수소차를 만들 땐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어서 현대차에서도 해수를 필터링하는 기술이 없다. 빈센에는 조선사에서 전자장비 가득 실은 잠수함, 전투함을 만들었던 경력의 멤버들이 있다. 전투함에 적용했던 해수 필터링 기술을 수소연료전지에 접목해서 패키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허를 낼 계획인데, 이제 95% 정도 완성됐다.

현재 제조 중인 다른 모델들은.

8M급 전기추진 보트(스포츠 피싱 보트, 레저 보트), 10M 수소연료전지 선박(하이브리드, 레저 보트), 12M 전기추진 보트, 14~15M 수소연료전지 선박 등이 있다.

선박 디자인이 세련됐다.

디자인에 투자를 많이 했다. 아무리 전기배, 수소배여도 어선같이 생기면 주목도가 떨어질 거라 생각했다. 드림카처럼 ‘갖고 싶은 배’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GM의 전기차 ‘볼트 EV’를 디자인했던 송인호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님을 디자이너로 모셨다. 배 앞머리가 자동차라고 해도 될 만큼 전기차 외관과 닮았다.

전기·수소배는 비싸서 상용화하기 어렵지 않나. 어떻게 사업화할 생각인가.

개인한테 배 한 척씩 팔 생각은 없다. 우리 인력이 18명뿐인데, 한두 척씩 납품하느라 인력 2~3명이 빠져버리면 회사가 힘들어진다. 여러 척을 한 번에 수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결론은 모빌리티 셰어링, 즉 공유 모빌리티였다. 50척 정도를 전국 각지에 두고 모두가 공유해서 쓰는 시스템이다. 쏘카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오늘 강원도 가서 낚시나 해볼까’ 혹은 ‘한강에서 선상 데이트해볼까’ 한다면 앱에서 배를 예약한 다음 자유롭게 쓰면 된다. 2종 선박 운전 라이선스만 있으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다. 이 라이선스를 가진 사람이 전국에 20만 명이나 된다고 들었다.

언제쯤 가능한 일인가.

올해 상용화를 목표로 펀딩을 준비하고 있다. 4월부터 투자자들과 논의할 예정이다. 그 첫걸음으로 부산의 에코델타시티에 빈센의 친환경 전기·수소추진 선박 5척을 공급해 시범 운영한다. 공유 선박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누구나 예약만 하면 직접 운항해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빈센의 전기·수소 선박이 한강의 수상택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논의 중이다.

소형 선박만 만들 계획인가.

빈센 멤버 대부분이 조선사 출신이다. 대형 선박을 만들던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자꾸 대형 선박에 욕심이 생긴다. 결국 친환경 대형 선박 시장에 도전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최근 그 목표가 가시화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

최근 한 글로벌 선사로부터 프로젝트 제의를 받았다. 이 선사는 기름을 가득 실은 배를 운항하며 바다 주유소 역할을 하는데, 최근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규제에 부딪혔다. 친환경 선박에 맞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수소연료전지로 선박을 만드는 국가, 기업을 수소문한 끝에 우리를 알게 됐다고. 우리에게 제안한 건 수소연료전지 150개를 넣을 수 있는 대형 선박을 함께 만들자는 거였다. 180M급에 출력은 총 4.5MW로, 1만 마력의 파워를 지닌 선박이다. 우리의 역할은 수소연료전지 150개를 효율적으로 탑재하는 것이다. 아직 수소연료전지로 대형 선박을 만든 케이스는 없기 때문에, 이 작업이 성공한다면 모든 작업 과정이 국제표준으로 지정될 것 같다.

빈센은 엔진만 담당하는가.

아쉽게도 이미 선박 제조는 중국에 발주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엔진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건 선박 제조를 맡은 것보다 고무적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산업이 매우 발달돼 있긴 하지만 최근 제조 부문에선 중국과 동남아 기업에 조금씩 밀리고 있다. 하지만 조선산업 전체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을 꼽는다면 결국 엔진 시장이다. 메인 엔진 시장은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통 선박의 엔진 시장을 노리자는 건 아니다. 친환경 선박에 들어가는 새로운 엔진 시장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번 프로젝트에 성공하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가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고 보나.

우리는 친환경 선박 시장에 유리한 백그라운드를 모두 갖췄다. 수소연료전지 기술, 배터리 제조 기술, 조선 엔지니어링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엔진을 설계하고, OEM 방식으로 제조하면 된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부도 빈센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정부의 ‘혁신기업 국가대표 1000’에 선정됐고, 올해는 해양수산부의 ‘예비 오션스타 기업’에 선정됐다. 오션스타 기업에 선정되면 해양수산 분야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뿐 아니라 현대·기아차, ABB, KST모빌리티·제이카 등 민간기업과도 제휴해 친환경 선박의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러 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친환경 선박 분야 리더가 되도록 기여하고 싶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104호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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