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고 부자는 소매유통기업 ‘슈바르츠 그룹’의 소유주다. BMW 상속인, 폭스바겐 소유주 재산을 합한 것보다 많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경영권을 승계하지는 않았다.
▎카우플란트 소매점 전경 / 사진:카우플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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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BMW 상속인 슈테판 크반트(Stefan Quandt)인가? 아니면 포르세와 폭스바겐의 소유주인 볼프강 포르세(Wolfgang Porsche)인가? 모두 아니다. 이들도 물론 독일 10대 부자에 든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압도적인 1위 부자가 있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82세 ‘디터 슈바르츠(Dieter Schwarz)’이다. 그는 독일 소매유통기업 ‘슈바르츠 그룹(Schwarz-Gruppe)’의 소유주이다. 2020년 독일 언론에 보도된 그의 재산은 418억 유로(약 56조원)에 이른다.디터 슈바르츠가 소유한 슈바르츠 그룹은 2020년 그룹 매출액이 1133억 유로(약 152조원)에 이르며, 종업원이 45만8000명이나 되는 유럽 최대 소매유통기업이다. 슈바르츠 그룹에는 크게 두 기업이 있다. 하나는 주로 식료품을 취급하는 할인 슈퍼마켓 체인 ‘리들(Lidl)’이고, 다른 하나는 대형 할인매장 체인 ‘카우플란트(Kaufland)’이다. 리들은 2020년 기준으로 유럽과 미국에 무려 1만1200개가 넘은 매장을 갖고 있으며, 매출액은 890억 유로에 이르는 소매유통 분야 거대 기업이다. 리들은 매장 숫자 기준으로 보면 세계 1위 할인매장 기업이다. 카우플란트의 경우 유럽 8개국에 약 1300개 매장을 두고 있으며, 종업원 13만2000여 명, 매출액은 237억 유로이다. 이 두 기업을 합쳐서 슈바르츠 그룹은 전 세계 33개국에 1만2500여 개 넘는 매장을 갖고 있다. 그룹 매출의 약 80%를 리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카우플란트가 20%를 차지한다.디터 슈바르츠는 어떻게 독일 최대의 부자가 되었을까? 출발은 1930년에 그의 아버지 요제프 슈바르츠(Josef Schwarz, 1903~1977)가 독일 하일브론(Heilbronn)에 있던 ‘리들청과물유통(Lidl & Co. Südfrüchtenhandlung)’이라는 한 유통회사의 무한책임사원, 즉 대표로 취임하면서부터다. 요제프는 이 회사 이름을 ‘리들슈바르츠합자회사(Lidl & SchwarzKG)’로 바꾸고 대형 식료품 도매상으로 키워냈다.요제프의 외아들로 1939년생인 디터 슈바르츠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58년부터 1960년까지 2년 동안 이 회사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고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도와 식품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3년 후인 1963년부터 디터 슈바르츠는 아버지와 함께 회사의 공동대표가 되어 24세에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섰다.
1973년 디터 슈바르츠는 소규모 식료품 할인매장 개념의 리들 1호점을 루드비히스하펜(Ludwigshafen)에 열었다. 이후 계속해서 리들 매장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으로 독일 전역에 식료품 유통망을 구축했다. 리들 1호 점을 개점하고 4년이 지난 1977년에는 이미 독일에 30개 매장을 갖춘 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1977년 부친 요제프가 사망하면서 회사의 모든 소유권도 상속했다.
한편, 1968년에 디터 슈바르츠는 부친과 함께 ‘한델스호프(Handelshof)’라는 브랜드로 대형 슈퍼마켓 유통망을 확대해나갔다. 1984년에는 카우플란트 브랜드로 대형 슈퍼마켓을 개점했는데, 이후 기존 한델스호프 매장을 모두 카우플란트로 변경했다. 카우플란트는 통독 이후 구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매장을 확충해나갔고, 동유럽 국가들에도 강력한 유통망을 구축했다.디터 슈바르츠가 슈바르츠 그룹을 유럽 최대 소매유통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문경영인이 있다. 바로 클라우스 게리히(Klaus Gehrig)이다. 디터 슈바르츠는 1976년에 당시 12개 리들 매장을 총괄 관리할 전문경영인을 찾고 있었다. 디터 슈바르츠는 당시 소매유통 분야 1위 기업이었고 지금도 강력한 경쟁기업인 알디(Aldi)에서 5년간 근무한 28세 게리히를 스카우트하여 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이후 게리히는 2021년 현재까지 72세의 나이로 45년 동안 디터 슈바르츠의 절대적 신임하에 슈바르츠 그룹을 소매유통의 최강자로 키워냈다.1999년 디터 슈바르츠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승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룹의 주력 기업인 ‘리들 재단합자회사(LidlStiftung & Co. GmbH)’ 및 ‘카우플란트 재단합자회사(KauflandStiftung & Co. GmbH)’ 등 두 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는 그룹 지주회사격인 ‘슈바르츠 지분관리회사(Schwarz Beteiligungs GmbH)’의 지분 99.9%를 ‘디터 슈바르츠 재단(Dieter Schwarz Stiftungg GmbH)’을 설립하여 출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룹 지주회사의 나머지 지분 0.1%를 ‘슈바르츠 기업신탁회사(Schwarz Unternehmenstreuhand KG)’를 설립하여 귀속했다.그런데 의결권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갖게 했다. 재단은 그룹 지주회사의 지분 99.9%를 보유하지만, 의결권은 하나도 갖지 않게 했다. 반면 그룹 지주회사의 지분 0.1%를 보유한 신탁회사가 의결권 100%를 보유하게 한 것이다. 즉, 그룹의 경영은 전문경영 신탁회사를 설립하여 맡기고, 그룹 순이익에서 배당되는 금액의 99.9%를 비영리 자선 목적의 슈바르츠 재단에 귀속해 교육 및 과학 분야 다양한 공익사업을 전개하게 한 것이다. 디터 슈바르츠는 2004년에 클라우스 게리히를 이 신탁회사의 회장으로 임명하여 그룹 경영을 총괄하게 했다. 게리히의 신탁회사 회장 임기는 그가 75세가 되는 2023년까지이다. 비록 게리히가 그룹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지금도 디터 슈바르츠의 마지막 한마디가 그룹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