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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강 월트디즈니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괄사장 

디즈니, 한국 콘텐트산업 성장에 지원사격 나선다 

-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지난해 말 월트디즈니컴퍼니(이하 디즈니)는 최근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수장으로 루크 강 전 북아시아 총괄 대표를 선임했다. 그는 디즈니 국제사업부 레베카 캠벨 회장의 직속 라인으로 한국, 범중화권, 일본, 동남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 아태지역을 총괄한다. 포브스코리아는 지난 3월 25일 역삼동 디즈니코리아 사무실에서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빠르면 오는 6월 국내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와 관련해, 루크 강 디즈니 아태지역 총괄사장은 경쟁사 대비 ‘콘텐트 차별화 전략’과 대대적 ‘국내 제작투자’를 예고했다.

디즈니플러스는 넷플릭스와 세계 OTT 시장에서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공격적인 글로벌 전략으로 아시아 시장을 선점했지만, 디즈니플러스는 막강한 종합콘텐트 제작·유통 파괴력을 통해 차별화에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강 총괄 사장은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시장 론칭을 위해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준비했다”며 “경쟁사와 달리 우리는 브랜드 IP(지식재산권)를 통해 특별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전략으로 간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영상 콘텐트를 선택할 때 우리의 제작사 브랜드인 디즈니, 마블, 픽사를 언급합니다. 이 브랜드라면 기대할 수 있는 퀄리티가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특별함은 여기서 나옵니다. 브랜드를 통한 감성 연결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모든 활동은 이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큰 차별점입니다.”

강 총괄사장에 따르면 디즈니는 아시아 시장에서 유럽, 남미 등 다른 지역과 다른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그는 “디즈니의 최고경영진에서 아시아 시장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며 “인구, GDP, 시장성장률 면에서는 북미, 유럽, 남미 시장이 크지만 미래 기여 차원에서 아시아는 디즈니에 매우 중요하다”고 본사의 기대감을 전했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개최한 ‘2019 스타워즈 데이’./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아태지역에 외국계 미디어 기업들이 활발히 진출하는 이유는 아시아에서의 모바일 고성장, 브로드밴드 등 인프라, 콘텐트 소비수준 등 요소가 잘 갖춰져 콘텐트 사업의 주요 시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죠. 또 현지 콘텐트 제작사의 시스템과 역량이 높아 디즈니도 함께 관련 생태계를 구축하며 큰 관심을 가져왔어요.”

다시 말하자면, 기존에는 아시아가 단순히 소비시장으로서의 입지였지만 이제 아시아 미디어 시장에서 콘텐트 제작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아시아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도 많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즈니플러스 산하에는 디즈니, 픽사, 21세기폭스, 마블,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이 있다. 스포츠채널 ESPN플러스, 미국 내 드라마 전문 OTT 훌루(Hulu) 등도 포함된다. 아시아에서는 ‘스타’ 브랜드로 클래식 영화와 전세계 드라마 등이 유통되고 있다. 강 총괄사장은 “한국의 디즈니플러스는 여러 브랜드의 작품이 모여 훨씬 풍부한 콘텐트로 구성될 것”이라며 “특히 스타 브랜드는 각국 현지 콘텐트를 소화하는데, 최근 한국을 포함한 각 국가별 드라마 등은 스타를 통해 전 세계에 유통된다”고 설명했다.

디즈니플러스는 글로벌 유통을 위해 국내 콘텐트 제작 투자에도 나설 방침이다.

“당분간 자체 제작보다는 한국 콘텐트 제작사와 협업해 공동 제작하거나 구매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한국 제작사들과 윈윈 모델을 만들어 한국의 제작 환경과 제작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특히 마블, 픽사 등의 제작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어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의 마블 테마 러닝 행사 ‘마블런 2019’. /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디즈니의 국내 제작 투자는 단순히 제작비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디즈니 계열사의 제작기법까지 공유하며 한국 제작사들과 킬러 콘텐트를 제작하겠다는 큰 그림이다. 실제 디즈니는 중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운영해 현지 인력을 미국에서 교육하거나 미국 전문가가 중국에서 함께 작업하도록 했다. 최근 중국 애니메이션이 눈부신 성장을 이룬 배경이 여기에 있다.

디즈니는 각국과 지역별로 현지화 전략를 수립해 접근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는 다른 지역보다 현지 콘텐트의 소비 비율이 높으므로 현지 팀에 권한과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현지화 전략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한국, 일본, 중국은 현지 콘텐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다국적 콘텐트 기업으로서 이를 존중하고 해당 국가 콘텐트 트렌드에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디즈니의 콘텐트는 글로벌 가치관를 섭렵하고 있어요.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반영하고 여러 국가의 배우를 기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일례로 [어벤져스]에서 세계 최고의 과학센터가 서울로 나옵니다. 토르는 호주 배우가 맡고 마동석이 마블 영웅으로 출연해요. 영어를 주요 언어로 하지만 이미 글로벌화한 콘텐트를 제작합니다.”

한편, 지난 2020년 이래 코로나19 영향으로 침체에 빠져 있는 영화 배급사업과 관련해, 강 총괄사장은 올해 안에 정상화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처럼 영화를 개봉하지는 못하지만, 지난 팬데믹 상황에서도 여러 디즈니 영화를 개봉했고 중국, 호주에서는 이미 많이 정상화됐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내 2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가 있었는데, 제작·배급사뿐만 아니라 영화관 사업에서도 큰 이정표였다”고 말했다.

루크 강 총괄사장, 그는 누구인가


강 총괄사장의 연대기를 역순으로 살펴보면, 그는 최근까지 북아시아 지역(한국, 범 중화권, 일본) 총괄대표로 디즈니의 아시아 전략을 진두지휘해왔다. 그는 주요 전략 수립과 조직개편을 책임지며, 지역 내 모든 사업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견인해왔다. 특히 범중화권 수석부사장 겸 대표 시절에는 2016년부터 3년간 중국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디즈니 영화를 개봉했고, 그중 6편이 10억 위안(약 1711억원)이 넘는 매출을 거뒀다. 같은 기간 디즈니 소비재 사업도 기록적으로 성장시켜 중국이 미국 외 가장 큰 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했다. 그는 디즈니 스토어, 출판, 이커머스 등 소비재 사업과 모바일, 온라인, 게임, 프랜차이즈 마케팅을 포함한 디즈니 인터렉티브 등 주요 사업부를 거쳤다.

그는 디즈니 합류 전 비아콤(Viacom) 그룹의 MTV 네트웍스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활약했고, 디즈니와의 인연은 2011년 디즈니코리아 대표직에 오르면서였다.

디즈니에서의 주요 성과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두 가지”라며 “한국에서 디즈니, 마블의 인지도를 크게 높인 것과 [어벤져스 2], [블랙 팬서] 촬영을 한국에 유치한 일”이라고 꼽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시아 팬이벤트 현장./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10여 전 디즈니에 입사했을 때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디즈니는 알아도 선호도가 높지는 않았고, 마블은 당시 인지도가 거의 없었어요. ‘디즈니’ 하면 어린이 교육 콘텐트, 인형, 왕국 이런 이미지였어요. 물론 디즈니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많은 IP를 갖고 있었죠. 그래서 세운 목표가 ‘디즈니와 마블 브랜드를 마케팅하자’였습니다. 10~20대 여성을 대상으로는 프린세스, 성인 남성 대상으로는 히어로였죠. 그리고 큰 변화는 성인을 타깃팅하는 디자인 작업이었습니다. 내부 디자인팀에 투자해서 에이지업 디자인을 추진했고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쳤어요. 그 결과 성인도 즐길 수 있는 브랜드로서 디즈니와 마블이 지금과 같이 국내에 자리 잡았죠.”

한편 마블 영화에서 종종 한국이 배경으로 그려지고, 코믹스에서 최근 한국인 캐릭터가 속속 등장한 데는 강 총괄사장의 숨은 공헌이 있었다. 국내에서 마블 브랜드의 선호도를 높여 이를 근거로 본사를 설득해 한국 촬영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던 것.

“[어벤져스]의 국내 마케팅에 예산보다 더 공격적으로 투자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어요. 이러한 한국 내 마블 사랑을 본사에 적극적으로 알려 [어벤져스 2] 촬영을 한국에 유치했죠. 이런 선순환 덕분에 한국은 마블의 인지도, 선호도가 세계적으로 높은 국가가 됐습니다.”


▎90년 만에 첫 내한한 미키마우스와 국내 팬들이 함께한 팬미팅./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그는 그 외에도 성인도 즐기는 디즈니 영화를 추구해 원어 버전, 야간 개봉 등을 시도해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카], [토이스토리 3] 등)은 500만 관객 수준이라는 관념을 깨고 1000만 관객 애니메이션([겨울왕국]) 신화를 만들었다. 강 총괄사장은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인식이 국내에 확산되면서 영화관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도워줬고, 윈윈시스템을 구축해 산업적으로도 성장을 일굴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 총괄사장은 미국 교포 1.5세로 미국으로 이민 가서 자란 미국 국적자다.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던 그는 막연하지만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기로 결심했다. 당시 컬럼비아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고 1995년 무작정 한국으로 와서 공공기관의 영문 에디터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미디어산업을 접하며 미래 성장 산업이라고 판단해 커리어를 키워나갔다.

“주위 미국 친구들은 당시 한국으로 가겠다는 나의 행보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들 글로벌 컨설팅사나 금융사를 주목했죠. 그러나 나는 아시아와 실리콘밸리를 오가면서 미디어 산업 최고의 기업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디즈니라는 거대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에서 한국계로서 한국 지사에서 시작해 현재 아태 총괄사장으로 성장했어요. 저와 비슷한 경우는 별로 없어요. 그래서 한국 젊은이들에게 제 스토리가 많은 용기를 주기를 바랍니다.”


강 총괄사장은 특별히 한국 젊은이들에게 “‘리스크테이킹(위험 감수)’이 중요하고 성장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란 점을 전하고 싶어 했다.

“20년 전에는 젊은 층 대다수가 전자, 통신, 무역, 자동차 산업으로 가고자 했어요. 그 산업이 대세였기 때문이었죠. 나는 많은 인재가 몰리는 분야에서는 평범한 한 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20대였던 나는 40~50대까지 내다보고 아시아에서 어떤 산업이 크게 성장할까를 고민했고, 국민소득이 올라갈수록 문화·서비스 산업에 승부수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안정되고 보장된 길은 아니지만 리스크테이킹을 하더라도 이 분야를 선점하고 산업과 함께 성장하기로 한 게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그는 비단 젊은이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사업도 글로벌 진출에 대한 두려움과 리스크를 더욱 적극적으로 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 콘텐트가 큰 사랑을 받으면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며 “하지만 한국 콘텐트 히트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산업적 성장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콘텐트 하나하나 히트를 넘어 전반적인 관련 산업을 확고히 구축할 때 지속가능합니다. 우리는 과거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홍콩 영화가 산업 기반이 받쳐주질 못해 오래가지 못했던 사례를 지켜봤어요. 지금이 바로 한국 콘텐트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시킬 바람직한 그림을 그릴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 루크 강 총괄사장은… 미시간대 졸업,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1995년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영문 에디터로 커리어를 시작해 asiacontent.com 코리아 사업개발팀장, MTV 네트웍스 코리아 대표, 라이브 365 최고운영책임자,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대표, 월트디즈니 컴퍼니 범중화권 대표, 월트디즈니 컴퍼니 북아시아 지역 총괄대표를 역임했다.

202105호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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