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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이 만난 아트 인플루언서(11) 크로스오버 그룹 레떼아모르 

우리는 하나? 따로 또 같이! 

유주현 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기자 yjjoo@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1년, 바야흐로 ‘크로스오버 전성시대’가 열렸다. 최근 종영한 [팬텀싱어 올스타전]은 시즌 1, 2, 3의 결승에 올랐던 9팀 36명이 집결한 ‘크로스오버 올림픽’이라 할 만했다. 포르테 디 콰트로·포레스텔라·라포엠·미라클라스·라비던스 등 해외에서 활약하던 정통 성악가부터 뮤지컬 배우, 록커, 국악인까지 사이좋게 어우러져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려줬다. 그중 시즌 3에서 3위를 했던 레떼아모르가 눈길을 끌었다. 뮤지컬 [레베카], [닥터 지바고] 앙상블이 무대 경력의 전부인 배우 김성식(32)과 중앙음악콩쿠르 우승자인 테너 김민석(31), 팝페라 가수로 활동해온 바리톤 박현수(28), 영국 로열오페라단에 사표를 내고 온 것으로 유명한 베이스바리톤 길병민(27)이 그들이다.

▎레떼아모르는 흐르는 강물처럼 편안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왼쪽부터 박현수, 길병민, 김성식, 김민석.
2016년 ‘남성 크로스오버 4중창팀 결성’을 미션으로 JTBC [팬텀싱어]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크로스오버 시장은 척박했다. 일단 성악과 대중가요는 예로부터 사이가 나빴다. 1989년 가수 이동원과 국내 최초의 크로스오버곡 ‘향수’를 부른 테너 박인수는 클래식계의 거센 비난을 받으며 당시 단장으로 내정돼 있던 국립오페라단을 나왔을 정도다. 그러니 크로스오버에 도전장을 내민 젊은 성악도들을 바라보는 클래식계의 시선도 곱지 않았고, 레퍼토리도 ‘일디보’ 등 해외 팀 히트곡 위주라 다채롭지 못했다.

그러니 이전 시즌의 3위 팀들은 경연 후 공식적인 활동을 할 환경이 못 됐다. [팬텀싱어] 3위 팀으로서 소속사를 갖고 활동을 이어가게 된 것은 레떼아모르가 최초다. 3월 말 예술의전당 입성을 시작으로 4월엔 고양, 성남, 수원에서 단독콘서트 투어를 시작했고, 앨범 녹음도 한창 진행 중이다. “오디션이란 게 날것이더군요. 3위에 그치니 보장된 미래가 없었어요. 감사하게도 팬들이 우리 팀을 사랑해주신 덕분에 기획사에서 제안을 받게 됐죠. 결국 우리 선택이었지만, 운명처럼 느껴졌어요.”(병민) “선배들이 발판을 잘 닦아주셔서 저희가 수월하게 방향을 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 활동도 하면서, 어벤저스처럼 모여서 큰 힘을 내보자고 도모하게 된 거죠.”(성식)

올스타전은 경쟁 구도가 약하니 긴장감이 덜했겠어요.

성식: 시청자는 경쟁 구도인 프로에서 응원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결과를 보고 싶어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대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진 않았어요. 아직 신인이고 발전해야 되는 그룹이라 오히려 더 센서티브하게 준비했죠. 개성 뚜렷한 선배, 동료들 사이에서 퀄리티 있는 무대를 보여드리기 위해 정말 사력을 다했습니다.

병민: 한 번, 한 번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한 기회라서 오히려 경연 때보다 더 타이트하게 시간을 보냈어요. 경연 때는 각자도생이었다면, 올스타전은 시작부터 끝까지 팀으로서 정체성과 여러 가지 매력을 보여드려야 했으니까요. 타이틀 자체가 ‘자존심을 건 빅매치’라 압박감도 컸고요.

크로스오버에 대한 성악계의 시선은 어떤가요.

병민: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팬텀싱어]가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초기엔 낯설게 받아들였겠지만, 원래 사랑받을 수 있는 재료들이 수면 위로 나온 거라 생각해요. 크로스오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만들었다기보다는 가치가 좋은 아티스트 덕분에 많이 발굴됐다고 할까요.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 경우 클래식을 포기한 게 아니라 앞길을 무한히 개척해나가려는 것이니, 젊은 시절의 도전을 예쁘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스스로 꼽는 베스트 무대라면.

현수: 케이윌 원곡의 ‘내 생애 아름다운’이요. 저희가 처음 부른 가요였거든요. 다른 곡보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접근한 무대였는데, 방송에서 우리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어요. 우리 팀이지만 너무 따뜻해서 울컥했죠.(웃음)

민석: 그게 저희 색깔인 것 같아요.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 편안함? 그런 색깔로 가고 싶습니다.

병민: 이번에 새삼 느낀 점이 있어요. 색깔이 강한 팀도 있지만 우리는 ‘연애편지’라는 팀명처럼 로맨틱하고 다정한 음악에 강하다는 거죠.

현수: 저희 상징색이 블루거든요. (벽에 걸린 풍경화를 가리키며) 저 그림의 푸른 강처럼, 한강도 늘 가서 보면 기분 좋고 힐링이 되잖아요. 흐르는 강물처럼 편안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성악계가 전쟁터? 자기와의 싸움”

하지만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봐도 아름다운 노래 뒤에는 으레 피 튀기는 싸움이 있다. 전공자들은 입시를 위해, 콩쿠르 입상을 위해 살벌한 경쟁을 벌인다. TV 음악 프로그램도 경쟁 일색이다.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진 싱어들끼리도 승부를 가려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들도 그런 살벌한 과정을 거쳤지만, 어딘지 경쟁을 초월한 사람들 같아 보였다.

레떼아모르도 아름다운 음악을 하기 위해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분들이죠.


▎최근 종영한 JTBC [팬텀싱어 올스타전]에서 본조비의 ‘Always’를 부르는 레떼아모르.
민석: 성악과 내에서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있긴 하죠. 그런데 저는 질투 같은 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신경 쓰지 않았어요.

병민: 학창 시절은 자유롭게 보낸 편이에요. 대기만성형이라 예고 다닐 땐 슬럼프의 연속이었죠. 하지만 분명한 건 인생이나 예술이나 경쟁을 피해갈 순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열등감이 강했지만 스스로 재능 발현을 위한 자기와의 싸움으로 승화한 것 같아요. 올스타전에서도 많이 배웠죠. 뛰어난 분들 무대와 비교하며 우울해할 게 아니라, 그걸 다 내 것으로 흡수해버리면 되잖아요.

현수: 고등학교 때도 1, 2등끼리 싸움은 치열하지만 아래 있으면 편하잖아요.(웃음) 어쨌든 음악, 노래를 한다는 건 많은 사람을 위로하는 일인데, 치열한 경쟁심 같은 건 노래에 묻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려서부터 그런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시즌 3 때부터 ‘블렌딩 맛집’으로 통하던 레떼아모르는 한목소리를 내는 팀은 아니었다. 흔히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면 하나로 뭉쳐 들리기 쉽지만, 이들은 달랐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노래 한 소절을 부를 때도 네 가지 보이스가 다 살아서 들리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목소리뿐 아니라 사람도 그랬다. “각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팀”(민석)이라는 말대로, 굳이 ‘우리는 하나’라고 주장하지 않고 ‘따로 또 같이’ 시너지를 내는 이상적인 동반자로 보였다.

“방송 초기에는 어색했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점점 올라가면서 만나게 되고 형제가 되면서 함께 발성을 연구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유일한 성악 비전 공자라 아무래도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죠.”(성식) “가요 발성이나 감정 표현은 오히려 저희가 형한테 배워요. 잘하는 파트를 서로 배워가는 게 저희 장점인 것 같아요.”(현수) “크로스오버라는 장르 안에서 4명의 주특기가 다르니까요. 요리사가 한식도 중식도 다 잘할 수 없잖아요. 자기 개성을 살리면서 서로의 능력치를 공유하니 같이 성장할 수 있죠.”(병민)

네 분의 배경과 사연이 제각각인데요.

성식: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비전공자라고 주눅들지도 않았죠. 제가 대학을 늦게 가고 시작이 늦어서 ‘단역배우’라는 타이틀로 나갔지만, 비운의 사나이는 아니에요. ‘단역배우’도 그냥 과정 중 하나일 뿐이죠.

병민: 영국 로열오페라단에 사표 내고 왔다고 이상하게들 보지만 제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오페라하우스에 소속되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애초에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세계음악이었거든요. 어린 시절 ‘라포엠’의 유채훈 형과 순수한 마음으로 크로스오버에 도전했다가 상처만 받고,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길을 갔던 거죠. 로열오페라단도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제가 갈고닦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늘 열려 있으려고 해요.

현수: 저는 성악과를 나왔지만 오히려 성악곡은 부담스러웠어요. 성악은 늘 그다음을 위한 발판이라 생각했거든요. 원래 꿈이 팝페라 가수였는데, 예술이란 게 일단 클래식을 마스터한 후에 색깔을 찾는 거라 생각해서 성악을 했죠. 그런데 팀 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성악에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병민이가 자꾸 제 발성이 화려하고 좋다고 하거든요.(웃음) 그래서 성악에 대한 욕심이 더 생겼고,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 있게 해보려고요.

민석: 사실 저는 청력이 안 좋은 편이에요. 좀 멀리서는 의사소통이 어렵죠. 고3 때 발견했는데, 다행히 노래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요. 저보다 더 힘든 분들이 계시니까 긍정적으로 이겨내려고 해요. 좋은 환경에서 노래할 수 있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성악은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


▎JTBC [팬텀싱어 올스타전]에서 원디렉션의 ‘Story of My Life’를 부르는 레떼아모르.
레떼아모르를 통해 새삼 알게 된 건 성악 전공자들이 꼭 성악가를 꿈꾸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그저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로열오페라라는 라벨 때문에 애초부터 제가 파바로티를 보며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비와 신화를 보면서 가수를 꿈꿨어요. 엄청난 에너지와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 노래를 시작했고, 그 근본이라 생각해서 성악을 택했죠. 그렇다고 업을 바꾼 것도 아니고, 지금 이렇게 공존할 수 있는 필드가 주어져서 너무 즐거워요.”(병민) “저도 대중음악을 좋아했고, 성악은 고3 때 시작했어요. 노래는 다 좋아해서,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따지지 않고 다 도전해보고 싶어요.”(민석) “제 경우는 비를 좋아하는 병민이나 조시 그로반 노래를 들으며 자란 현수와는 좀 달라요. 아티스트에게 롤 모델이 있다는 게 중요한데 제 롤 모델은 조승우 선배거든요. 롤 모델이 있다는 건 그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건데, 차차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성식) “조시 그로반이 제 롤 모델은 아니에요. 저는 롤 모델이 없고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고 싶어요. 음악뿐 아니라 조향에도 관심이 있거든요. 그래서 가수나 바리톤이라는 틀에도 갇히고 싶지 않아요. 그저 ‘아티스트 박현수’로 열어두고 싶습니다.”(현수)

※ 유주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휩쓸던 영광의 기억을 품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살아왔다. 2010년부터 중앙SUNDAY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을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202105호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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