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비 제조사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이야기다. 1962년 설립된 두산중공업은 주단조, 발전 기자재, 해수 담수화 설비 등 중장비 건설 분야에서 굵직한 업력을 쌓아왔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 기업이 50여 년 만에 디지털로 무장하고 체질 개선을 시도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두산중공업은 최근 친환경 에너지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디지털 트윈 솔루션 개발에 나섰다. 사진은 해상풍력발전단지에 설치된 두산중공업의 풍력 터빈. / 사진:두산중공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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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이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디지털 솔루션을 개발하는 한편 모든 가치사슬(Value Chain)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하고 있다. 2016년 박지원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이 신년사에서 “근원적 경쟁력 강화 및 디지털 이노베이션을 통한 수익성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선언한 뒤 두산중공업은 신속하게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며 구체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9년에는 ‘IDC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어워드’에서 ‘디지털 전환 리더상’을 수상한 바 있다.최근 여러 국내 대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부르짖고 있지만, 두산중공업처럼 전면적인 시스템 전환 결정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덩치가 큰 기업일수록 유연한 의사 결정과 체질 개선이 어렵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이 대형 조직의 한계를 극복하고 디지털 기반 혁신을 밀어붙이게 된 데는 뚜렷한 전환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친환경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이란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두산중공업은 2010년대 후반부터 국내 신재생 에너지 생산의 강자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해왔다. 2020년에는 포트폴리오를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 사업 전환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특히 중장비 건설 이력과 가스터빈 제작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풍력발전에 무게를 뒀다. 입지 선정 및 풍향 분석, 사업 타당성 검토, O&M(유지보수)을 아우르는 토털 풍력 사업 솔루션을 제공, 2025년 해상풍력사업에서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문제는 선발 주자의 막강한 시장지배력이었다. 지난 20여 년간 유럽 기업들이 국내 풍력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확보한 상황이었다. 선발 주자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점유율을 가져오려면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두산중공업은 강력한 돌파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디지털 솔루션으로 난관 극복기술적 난관도 등장했다.“인력만으로 해상풍력발전 O&M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풍력터빈 등 설비가 먼바다에 설치되기 때문에 정비가 어렵습니다. 날씨 및 풍량 변화에 따른 실시간 최적화 필요성, 정교한 기기 설비 정비의 까다로움 등 문제가 산적해 있었습니다.” 두산중공업에서 디지털 이노베이션을 담당하는 장세영 상무가 말했다.그때 두산중공업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것이 디지털 솔루션이었다. 두산중공업은 2020년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풍력 부문 디지털 트윈 솔루션을 시범 개발했다. 디지털 트윈이란 현실 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가상 세계에 구현한 모델을 일컫는다. 물리적 조작 없이 대상을 검증, 부정적 결과를 예방할 수 있게 해줘 디지털 솔루션의 정점으로 손꼽힌다. 장 상무는 “디지털 트윈을 통해 풍력 단지 유지보수를 효율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두산중공업 디지털 트윈은 해상풍력발전단지 내 모든 풍력터빈을 3D 형태로 구현, 풍력터빈 내 블레이드, 허브, 발전기, 증속기 등 각 장치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정 부품 고장이 예견될 때는 디지털 트윈이 해당 문제를 즉시 가시화한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전문가가 직접 들여다봐야만 가능한 일이다.디지털 트윈은 또한 유지보수 각 단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낭비되는 시간을 줄였다. 고장이 발견되면 수리 방법 및 접근 경로, 전문가 지정 등 최적화된 정비 계획 수립이 동시에 진행된다.그런데 물리적 절차를 효율화하다 보면 소프트웨어로 처리할 영역은 늘어난다. 전체 풍력 단지를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각 풍력터빈과 연동된 수 백만 개 센서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두산중공업이 이 같은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클라우드 덕분이었다. 클라우드를 확보한 두산중공업은 각 센서에서 전달되는 정보를 부담 없이 저장 및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마이크로소프트의 고품질 기반 기술도 완성도 있는 솔루션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줬다.마이크로소프트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두산중공업은 자사 디지털 솔루션만의 가치와 비전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측 진단, 플랜트 최적화, 데이터분석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 빅데이터 등 최신 IT기술과 고유 역량을 접목한 디지털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디지털 솔루션을 통한 전면 혁신으로 두산중공업은 원하던 결과를 얻었을까. 두산중공업은 지난 11월 사업비 규모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경인·서남해·제주 해상풍력 사업 협력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 국내 풍력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탐라·서남해 풍력발전단지와는 장기 유지보수 계약을 맺었다. 현재 웹·모바일 기반 사후관리 노하우를 기반으로 98%에 가까운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환경에 맞는 8㎿ 저풍속 발전설비를 개발 중”이라고 장 상무는 말했다.“이런 추세대로라면 2034년 총 24.9GW가 풍력발전으로 생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회는 많아졌는데,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디지털 솔루션을 적용해야 기업이 풍력 장비 관리 및 유지보수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요. 효율은 곧 서비스 경쟁력과 직결되고요. 앞으로도 설비를 새로 개발하기보다는 AI 및 IoT 적용을 늘리는 전략을 취할 계획이에요.”두산중공업이 계획하고 있는 추가 디지털 전환에 대해 장 상무는 “홀로렌즈(혼합현실 기반 웨어러블 기기) 적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해 적용 여부를 시험적으로 가늠해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설명하는 두산중공업의 포부는 이렇다.“앞으로 에너지 분야에서 여러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환경과 에너지산업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나가겠다는 두산중공업의 약속을 꼭 이행하겠습니다.”- 정하은 인턴기자 jung.hae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