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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19) 크로아티아, 영원과 소멸 사이에서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로비니의 아름다운 풍광. 낭만과 예술을 호흡하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의 유혹 때문에 당장 달려가고픈 곳이다.
에메랄드빛과 사파이어빛이 섞여 찬란하게 빛나는 아드리아해의 눈부신 바다를 바라본다. 햇볕이 투명한 바닷물에 부딪혀 반사되는 모습이 마치 한낮에 별을 쏟아내는 것 같다.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 연안의 두브로브니크 앞바다의 모습이다.

뉴욕에 주재할 때 맨해튼의 79메디슨 애비뉴 사무실 건물 바로 건너편에 두브로브니크라는 식당이 있었다. 두브로브니크가 무슨 뜻이냐고 식당 주인에게 물었더니 자기 나라의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다. 식당 벽에는 주황색 지붕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성곽 도시가 푸른 바닷물과 어우러진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당시는 1980년대 초중반이었기 때문에 두브로브니크가 있는 지역은 유고슬라비아였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유고슬라비아는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여러나라로 쪼개졌다. 현재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역사·관광도시가 되었다. 그 후 몇십 년이 지나서 아드리아해에 접한, 너무도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를 직접 방문했다.

유고에서 크로아티아로 바뀐 두브로브니크


▎성곽 도시 두브로브니크와 아드리아해 푸른 바다의 조합은 한 장의 예술사진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 색깔이 영롱하게 빛나고 멀리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이 보였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아름답고 푸근한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두브로브니크의 파노라믹 경관을 볼 수 있는 스르지산을 케이블카로 올라갔다.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주황색 지붕 색깔의 성곽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장의 예술사진이었다.

고도(古都)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황홀한 보석같이 느껴졌다.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과 절벽 사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평화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는 카누도 여럿 보였고, 멋진 요트와 바이킹배 같은 유람선들도 눈에 들어왔다. 이 분위기를 더 느끼고 싶어서 스르지산에서 경치가 잘 내려다보이는 카페를 찾았다. 파라솔을 펴놓은 야외 좌석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느긋하게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을 즐긴 후에 거대한 성곽 안에 자리 잡은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로 내려갔다. 성벽을 올라가 구시가를 내려다보니 모든 건물의 지붕이 아름다운 주황색이었다. 아드리아해를 따라 축성된 성곽은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와 연결되어 절경을 만들어냈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니 살아 있는 박물관 같은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는 전체가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서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지(Old City of Dubrovnik)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기준을 살펴보았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적인 도시와 건축 단지는 오늘날까지 요새화한 도시로서 중세 건축 구조의 주요 부분, 즉 성곽, 거리와 광장 배치도, 인상적인 공공건물과 일반 건물, 종교 건물, 개인 주택을 보존하고 있다. 건물들의 독특한 예술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도시적·문화적·역사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두브로브니크는 유고슬라비아 영토 안에서 뛰어난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인정된다.”

유네스코는 등재 기준에 추가해서 역사적 배경도 상세히 기술했다. 구시가를 돌아본 후에 바이킹 유람선을 타고 아드리아해에서 두브로브니크 성곽을 돌아보았다. 성곽 절벽 공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수영하는 모습이 너무나 한가롭게 느껴졌다. 불과 30년 전에 전쟁이 있었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풍광과 전쟁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바이킹 유람선의 마스트에 기대어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인들이 유럽에서 휴양지를 어디로 선택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면 주저 없이 두브로브니크를 권한다.


▎박물관과도 같은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서 악사들이 연주를 하며 이동하는 모습.
언젠가 다시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한다면 푸르른 아드리아해와 눈부신 태양 아래서 수영도 하고 햇볕도 즐기며 충분히 휴양할 것이다. 역사에도 심취하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도 즐길 것이다. 혼자 즐거운 공상을 하며 미소를 지어본다.

두브로브니크로 가기 위해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에 먼저 도착했다. 그곳에서 여기저기 중요한 명소를 방문했는데 그중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지붕이 예쁘게 모자이크로 장식된 성마르코 교회였다. 교회 지붕에는 크로아티아를 상징하는 두 가지 유럽식 문장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었다. 작지만 특이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근처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성마르코 교회가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관광지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자그레브를 떠나서 두브로브니크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지만 강한 바람 때문에 항공기 운항이 계속 지연되었다. 어쩔 수 없이 항공편을 포기하고 버스로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가는 긴 여정에 나섰다. 덕분에 크로아티아를 북에서 남쪽으로 종단하면서 여러 지형을 익히고 이동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크로아티아 전국 일주 여행에서 많은 명소와 아름다운 곳을 보았지만, 앞서 소개한 두브로브니크를 포함해서 평생 꼭 가봐야 할 만한 두 곳을 더 소개한다.

물극필반의 교훈을 새길 때


▎깊은 숲속에 수많은 폭포로 연결된 호수와 계곡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고 특이한 풍광을 보여 주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Nacionalni park Plitviča jezera)을 방문했다. 트래킹 코스를 따라 걷다가 공원을 조감도와 같이 조망해볼 수 있는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플리트비체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크고 작은 수많은 폭포가 물을 토해내고 있었고, 층을 둔 아래위 호수들과 짙푸른 녹음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숲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깊은 숲속에 수많은 폭포로 연결되는 16개 호수와 계곡이 조화를 이루어 보기 드물게 아름답고 특이한 풍광을 보여주었다. 숲과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오다가 호숫가에 다다르면 나무로 만든 인도교에서 여러 줄기로 쏟아지는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호수와 푸른 숲, 높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쏟아지는 여러 줄기의 크고 작은 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호숫가를 걸을 때는 물이 너무 투명해서 바닥에 있는 물풀들과 물에 잠겨 쓰러진 나무줄기들, 물고기들이 카메라로 촬영한 듯이 보인다. 운 좋게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반짝거리는 물을 들여다보니 마음도 밝아지는 듯했다. 정말 유쾌하고 즐거운 트래킹 코스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너무 넓어 며칠 동안 보아야 하지만, 반나절 트래킹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여름철 녹음이 우거진 울창한 숲과 잔잔한 호수의 모습을 보며 걸어 내려와 짧은 거리지만 환경 친화적인 전기배로 호수를 이동하며 기분 전환을 했다.

이번 크로아티아 여행에선 진주 같은 도시를 발견했다. 아드리아해 동북쪽, 크로아티아 서북쪽 이스트라반도 해안에 자리한 관광 도시이면서 어항인 로비니이다. 이곳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가깝다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과거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하에서 문화적으로 융성한 곳이라고 한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이스트라반도는 와인과 해산물 요리의 천국이다. 저녁에 바다를 따라 레스토랑이 쭉 늘어선 식당에서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겼다. 해가 진 후 바다에 비친 조명이 너무 아름다웠다. 절벽카페, 해안가 레스토랑, 선셋보트 등 환상적인 석양과 노을을 즐길 수 있는 낭만적인 도시다. 한밤중에 도시 한복판에서는 라이브 밴드와 어우러져 수많은 인파가 댄스를 즐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변을 산책하며 도시를 바라보니 로비니는 아름다운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생일 케이크처럼 생긴 모양이었다. 도시 언덕 위에 있는 성당의 첨탑이 케이크의 촛불처럼 보이는, 정말 특이하고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로비니는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양성해온 도시라서 시가지에 아트숍과 갤러리가 많다. 그중에 재미있는 아트숍을 발견했는데, 각종 오리들이 넥타이를 매고 군인들이 신는 목이 긴 워커를 신고 있는 공예품이 너무 귀엽고 재미있었다. 아름다운 건물과 바다, 하늘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도시 로비니는 최고의 여행지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출발해서 크로아티아의 로비니까지 아드리아해 북쪽 해변을 따라 멋진 드라이브를 해보고 싶다.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수명주기(Product Life Cycle)가 있다. 제품은 신생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를 거친다. 성장기에 불티나게 팔려서 영원히 존재할 것 같던 제품들도 쇠퇴기를 맞아 사라진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며 사무실에서 항상 사용하던 타이프라이터,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던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워크맨, 집집마다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 소장했던 턴테이블, 사진을 빨리 보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해소해주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 겨울철이면 난방을 책임지던 연탄 등 수없이 많은 제품이 새로이 출시되어 각광받다가 수명주기에 따라 어느새 사라졌다.

인간의 삶도 생로병사(生老病死: birth, ageing, sickness, and death-the four phases of life)가 있다. 항상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에는 평생 어리고 젊고 건강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곁에 계시던 부모님, 옛적 회사의 보스였던 회장님, 사장님도 세상을 다 떠나시고 이제 선배님들과 친구들도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나 ‘최연소 아무개’로 불리던 사람도 이제는 어디서도 홀연 최연장자가 되었다.

이렇게 제품과 인생에 주기가 있다면 기업, 산업, 국가에는 흥망성쇠(興亡盛衰: rise and fall)가 있다. 국내 기업 중 국제상사그룹과 신화를 남기며 세계경영을 이끌던 대우그룹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원히 존재하리라고 생각했던 제일은행, 한일은행, 조흥은행 등 국내 은행들도 여럿 사라졌다. 세계 무대에서는 노키아, 코닥, 리먼브라더스 같은 규모가 크고 역사도 장구했던 거대 기업도 파산했다. 국가의 변화를 보면 우리가 학창 시절에 세계지리 시간에 공부한 소련이 있었고 유고슬라비아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소련 연방은 15개 나라로 쪼개졌고, 유고슬라비아도 해체되어 많은 전쟁을 겪으며 8개 나라로 분열되었다. 지금 크로아티아를 방문하고 있지만 세계지리 시간에 배웠던 유고슬라비아는 이곳에 없다. 그중 한 나라인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고 있는데 말이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하며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해체된 모습을 보며, 이 세상 만물이나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사람, 나아가 기업과 국가도 모두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물이 극에 달하면 필경 반대로 돌아간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교훈을 얻는다.

아름다운 크로아티아를 떠나며 마음속으로 물었다. 우리가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품, 우리의 인생, 우리가 경영하는 기업, 우리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주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107호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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