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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조건] 기업 리더 50인의 신년 에세이(1) 

 

변화와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 이병철 KTB금융그룹 회장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 위협, 디지털혁명과 산업 양극화 등 우리가 직면한 세상에는 많은 변화와 위기가 공존한다. 실수를 허용치 않는 경영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을 지속해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변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가 큰 숙제다.

첫째, ESG다. 2020~2021년은 기후변화 위협이 전망에서 현실로 바뀐 시기다. 세계 전 지역이 전례 없는 이상 고온과 저온, 홍수, 산불, 태풍 피해를 경험했다. 기후위기가 전 지구적으로 체감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세계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이 ‘선언’에서 ‘직접적 규제’로 더욱 구체화되는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에 대한 인식이나 해법은 막연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 같은 금융회사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결론은 ‘일단 ESG 경영을 시작하자’였다.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ESG 경영을 먼저 고민하고 나서야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굴뚝산업이 아니어도 직간접적 방법은 존재한다. 거버넌스 체계를 주주 친화적으로 개선하고, 친환경·탄소저감 기업에 투자를 늘릴 수 있다. 회사별로 사회적 책임에 관한 과제를 선정해 실천해야 한다. 이제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둘째, 디지털혁명이다. 최근에는 수십 년 전통의 내로라하는 거대 기업이 신생기업에 주도권을 빼앗겨 초라하게 도태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일례로 국내 대표 인터넷뱅크와 간편결제 플랫폼 업체 두 곳의 시가총액 합이 4대 금융지주 전체의 시가총액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디지털 포기’는 기업의 생존을 포기하는 일과 같다. 변화의 핵심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과 속도다. 몸집이 커 움직임이 더딘 대형사보다 중소형 기업의 순발력이 변화에 더 유리하다고 본다. 디지털전환은 단순한 전산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해외 진출이다. 금융사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먹거리가 줄어들다 보니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으면 기업의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관심 있게 보는 지역은 동남아시아다. 인구와 경제의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동남아는 이제 막 금융산업이 형성되는 단계로, 해당 국가의 금융산업 성장에 따라 동반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단순히 해외 접점을 넓힌다는 개념보다 ‘금융 수출’이라는 패러다임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K-ESG가 만들 행복한 지구공동체 | 손욱 전 농심 회장


1990년대 초 ISO9000 인증제도가 도입됐다. 인증을 받지 못하면 수출길이 막히는 위기 상황에 직면한 기업들이 초비상에 돌입했다.

ISO9000은 품질경영시스템에 대한 국제 규격이다. 기본 정신은 ‘No Spec No Work’로, 표준을 완벽하게 준수하고 불량이 나오면 표준을 고치는 사이클을 반복하면 언젠가는 완전한 품질에 도달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많은 교육기관과 평가인증 단체가 난립했다.

ISO9000을 규제나 부담으로 인식한 기업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인증받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이를 품질경영시스템 혁신과 국제경쟁력 확대의 기회로 인식한 기업은 많지 않았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1백PPM(100만 개에 불량 100개)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추진해 ISO9000이 빠르게 확산되고 품질경영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다. 1996년 삼성과 LG그룹에 GE의 6시그마(100만 개에 불량 3.4개) 기법이 도입되며 통계적 품질관리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방법이 확산되고 전문가들이 양성되어 세계 수준의 품질경영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요즘 ESG 열풍이 뜨겁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에 대한 책임과 기여를 평가, 관리한다는 것이다. UN이 추구해온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자는 캠페인으로, 심각해지는 지구환경문제와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세계인의 열망으로 관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ESG를 ‘왜 하는가(Why)’에 대한 공감대가 미비하고 명확한 비전도 마스터플랜도 없는 현실이다. 기관마다 목소리를 높여 평가, 관리하겠다고 하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ESG 경영은 규제(부담)인가 기회인가? 대부분 기업은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자세로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ESG를 융합·창조·상생의 4차 산업혁명 시대 경쟁력의 기반이 될 조직문화를 만들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기업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긍정적 기회로 인식하면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첫째, 지속가능한 지구에 대한 세계인의 열망으로 요구 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둘째, 우리에겐 고조선 이래 지속가능한 세상을 지향해온 홍익인간 정신이 DNA에 잠재되어 있다. 이를 빠르게 문화화하여 미래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다.

한국인은 사회공동체에 보탬이 되겠다는 홍익인간 정신으로 역사를 이어왔다. 공자의 7대손 공빈이 지은『동이열전』에는 ‘사람과 풍속이 순후하여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먹을 것을 서로 먼저 먹기를 권하니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기록이 있다. 효 문화와 장유유서의 공동체 정신은 솟대 공동체, 향약, 나아가 임진란 의병으로 이어졌다. 홍익인간 정신은 깊고 넓은 이타심으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 가치 창조)를 넘어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는 근본이 될 것이다. 제주 김만덕, 개성 임상옥, 경주 최 부자의 삶이 그 표상이다. 홍익인간 정신에 철저하여 ESG를 K-ESG로 업그레이드하면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K-Pop, K-Food, K-Drama의 시대적 흐름 위에 홍익인간 정신이라는 K-Spirit으로 K-ESG를 가다듬자. 지속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만들고 행복한 일터, 행복한 지구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큰 꿈을 꿀 때이다.

내 실력보다 한 걸음 늦게 가자 |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


사업을 시작한 지 7년이 지난 해 부도가 났다. 1년 넘게 어음을 막느라고 밤늦게 은행을 찾아다니는 피 말리는 나날이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자금 부족이었지만 결국 적자가 누적된 결과였다.

부족한 실력을 생각하지 않고, 회사의 매출만 키워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1978년 2차 오일쇼크가 터졌고, 그 영향으로 원부자재 값이 크게 오르면서 눈덩이처럼 적자가 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이미 문을 닫았거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뉴스를 접할 때면, 그때의 뼈아픈 실패의 기억이 떠오른다. 덩달아 그들의 아픔과 절망에 감정이입도 된다.

패기만만하던 청년 시절, 부도라는 큰 값을 치르고 얻은 교훈은 이후 한세실업이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됐다. 외형적으로 규모가 큰 회사가 아니라 내실 있게 이익을 내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스스로에 대한 과신과 빨리 결과를 얻고 싶어 하는 조급증을 경계했다. 조급해질 때마다 ‘내 실력보다 한 걸음 늦게 가자. 늦게 가는 것이 결국은 빨리 가는 것이다’라고 되새겼다. 이는 크고 작은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또 사업은 망했지만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올바른 길을 가겠노라 각오를 다졌다. 한 번의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다짐으로 재기를 도모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살아온 지 2년. 모든 사람의 일상을 바꿔버린 긴 시간이었다. 많은 자영업자와 기업인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둠 속 터널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듯하다. 이번 한 번의 고난이 끝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다시 재건에 굳건하게 나아갔으면 한다. 부디 재기해서 더 단단하고 보람 있는 기업을 일으키길 기원한다.

실패가 준 선물 | 고창호 휴먼셀바이오 대표


지금의 휴먼셀바이오를 일궈내기까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었다. 지극히 평범했던 은행원에서 시작해 보험회사를 거쳐 30대 초반 나이에 대한민국 1세대 GA(법인보험대리점)인 TFC라는 회사의 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다. 보험상품 판로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TFC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빨리 컸다. 그때만 해도 마치 내가 한국 보험업계를 주름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 화려했던 시절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몇몇 욕심을 냈던 다른 GA 회사가 먹튀를 하고, 불완전판매의 표적이 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그 와중에 인터넷을 통한 다이렉트보험 상품도 시장 곳곳을 파고들었다.

10여 년간 암흑기를 보냈던 것 같다. 더 내려갈 바닥이 없을 것 같았는데 끝없이 추락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예 새로 시작하면 모를까. 한때 잘나갔던 사업가가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재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래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결혼한 지 13년 만에 태어난 나의 소중한 첼리나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될 수 없었다. 다시 일어서야 했다. 그때 운명처럼 만난 것이 면역세포 치료제다. 하지만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가. 경제학과 출신이, 보험업계 출신이 바이오 사업을 펼친다고 하니 사기 치지 말라며 비웃었고, 대다수 주위 반응도 싸늘했다. 그래도 암흑기만큼 10여 년간 한 우물만 팠다.

나름의 신념이 있었다. 대한민국 사망원인 1위인 암(癌), 최근 의학 기술로 생존 확률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한국인이 두려워하는 이 병을 치료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여기에는 보험업계에서 접했던 수많은 암 환자와 그 가족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이 자리한다. 항암 치료는 생각보다 고통스럽고,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내가 그들이 짊어진 고된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겠다는 자부심이 면역세포 치료제 개발에 매달리는 힘이 됐다. 오늘도 휴먼셀바이오 연구개발진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암 환자가 건강을 되찾을 방법을 찾으려 밤에도 사무실 불을 밝히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난 이들을 믿고 더 뛰어다녔다. 한국 최고 연구개발 인력을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고, 면역세포 치료제에 이어 미토콘드리아 치료제 개발도 시작했다. 더불어 전 세계 최초로 세포배양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병원 의사 책임하에 간단한 조작으로 체내 면역력을 높여주는 시술 ‘피엠큐어(PMCURE)’를 개발해 국내 병원과 임상을 진행 중이다.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수출에도 발 벗고 나섰다. 올해 글로벌 기업 SISFZLtd.와 손잡고 건강보조식품 ‘엔케이진(NK JIN)’을 쿠웨이트에 대규모로 수출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피엠큐어, 면역세포 치료 기술을 중동 지역에 이전할 교두보도 마련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휴먼셀바이오는 혁신적인 세포치료제와 미토콘드리아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끝없이 도전해나갈 것이며, 코스닥 상장을 발판 삼아 글로벌 바이오 헬스케어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누군가 내게 ‘생존법’을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수없이 겪었던 실패’를 말하겠다. 다시 시작하기를 주저하지 마시라는 말과 함께….

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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