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이 장악한 워드프로세서 시장에 한국 스타트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자료 수집부터 문서 작성, 유저 공유에 이르는 과정이 하나로 통합된 서비스는 이미 전 세계에서 ‘타입드’ 마니아들을 쏟아내고 있다.
▎ 사진:비즈니스캔버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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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문서 작성 프로그램인 MS 워드(Word)는 이미 그 이름 자체로 전 세계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대표한다.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하는 전 세계 90% 이상의 유저가 MS 워드를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MS 워드가 첫선을 보인 건 무려 40여 년 전인 1980년대 초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온라인 ‘문서 작업’ 하면 으레 MS 워드를 떠올린다. 국내 시장에서 MS 워드와 치열한 점유율 싸움을 벌이는 한컴오피스의 한글도 그 기능이나 쓰임새는 크게 다르지 않다.첫 제품이 출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장악한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사이사이 새로운 기능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이어졌지만 하얀 바탕 위에 타이핑하는 손가락은 X세대나 MZ세대나 별반 다르지 않다. A4 용지를 옮겨 놓은 듯한 타이핑 화면, 각종 기능 툴이 들어찬 상단은 문서 작성에 나선 유저들이 항상 마주하는 전형이다. 변화와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기조차 어렵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지만, 워드프로세서만큼은 기존 강자들이 차지한 지위가 요지부동이다.설립한 지 이제 막 3년 차에 접어든 한국 스타트업이 거대 IT 공룡들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는 문서 작업 소프트웨어 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건 그래서 조금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김우진 대표가 창업한 비즈니스캔버스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지난해 처음 내놓은 서비스에 대한 시장 반응은 뜨겁다 못해 열광적이다. 2021년 2월 첫 비공개시범운영(Closed Beta Service)에 나선 통합 문서 작업 소프트웨어 ‘타입드(Typed)’는 오픈 베타 서비스 개시 한 달 만인 올 1월 현재 150여 개국 이상에서 사용자를 확보하며 타입드 마니아를 뜻하는 ‘타이퍼(Typer)’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현재 타입드는 공개 시범운영으로 전환돼 typed.do에 접속해 무료 체험이 가능하다.
자료 수집, 문서 작성, 업로드까지 하나의 툴에서
▎올 초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22에 부스를 마련해 참가한 김우진 대표와 비즈니스캔버스 동료들. / 비즈니스캔버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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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협업 툴.” 김우진 대표는 비즈니스캔버스와 타입드의 정체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문서 작성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 리소스 관리를 기반으로, 문서 업무 전체를 혁신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가 타입드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40년간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넘사벽’ 워드프로세서의 장벽을 타입드는 어떻게 넘어서고 있을까. 기업이나 학교에서 흔히 작성하는 기획안과 보고서를 떠올려 보자. 웹이나 컴퓨터 내 파일에서 각종 자료를 찾은 유저는 이를 다시 수많은 이름의 폴더에 옮겨 담는다. 웹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즐겨찾기 폴더를 새로 만들고 일일이 해당 웹페이지를 북마크해 저장해야 한다.본격적으로 문서 작성에 돌입하면 워드프로세서 창을 닫았다 줄였다 하는 수고를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필요한 자료를 모아둔 인터넷 창은 문서 작성이 끝날 때까지 잘못 눌러 사라질까 웹브라우저를 닫는 것조차 두렵다.타입드는 이 같은 문서 작업의 번거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툴이다. 기존 워드프로세서와는 화면 구성부터 완전히 다르다. 먼저 화면 중앙에 MS 워드나 한글 같은 타이핑 화면이 나온다. 이어 화면 왼쪽에는 해당 문서별로 내용과 주제에 맞춰 찾아놓은 라이브러리가 저장돼 떠 있다. 문서를 작성하면서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고, 필요하면 이를 폴더로 정리할 수도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스플릿뷰 창이 떠 저장해놓은 라이브러리 내용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 스필릿뷰에는 웹 자료, 유튜브 영상, PDF나 이미지 파일 등 어떤 형태의 자료라도 모두 공유된다. 자료 수집부터 문서 작성, 업로드까지 하나의 툴에서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 타입드에 열광하는 이유다.SaaS, 즉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라는 점도 기존 워드프로세서와 차별화된다. 언제 어디서나 웹상에서 로그인만 하면 저장된 문서를 찾아 작업할 수 있고, 다른 이와 공유하는 공동작업도 가능하다. 현재 타입드는 구글 독스(Docs)와 시트(Sheets) 등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기반으로 한다. 타입드를 사용해본 유저들 사이에선 ‘약 먹은 구글 독스’라는 찬사가 쏟아진다.2020년 IDC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업무 중 자료를 찾는 데 쓰는 시간이 매일 2.5시간에 달한다. 문서 작성 시간보다 자료를 찾는 시간이 더 길다. 타입드에선 하나의 프로그램과 화면에서 자료 수집과 정리, 하이라이트와 복사하기가 한꺼번에 해결된다. 그만큼 문서 작성에 들이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클라우드 기반이니 하드 용량이 꽉 차 외장하드까지 구입해야 하는 불편함도 물론 없다. 김 대표는 “문서작업의 유통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줄인 셈”이라고 설명했다.“온라인 문서 작업이라고 하면 하얗게 빈 배경에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거라 생각해왔어요. 타입드는 문서 작성과 자료 수집·관리 같은 리서치가 한 번에 이어지는 콘셉트예요. 인공지능(AI)·빅데이터 시대라면서도 문서 작업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죠. 프로세스상의 편리함을 넘어 나와 동료가 만든 문서를 공유하며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기능도 타입드의 강점입니다.”생각만 해도 복잡할 것만 같은 문서 작업 툴 개발에 나선 스타트업 대표의 이력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IT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 대표는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후, 2017년 귀국해 딜로이트 컨설턴트로 한국에서의 첫 이력을 쌓았다.“컨설팅펌에서 2년 정도 일하는 동안 대형 통신사와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자연스럽게 IT와 기술에 관심을 갖고 경험을 쌓는 기회가 됐죠. 창업 직전에는 작은 AI 업체에서 CSO로 일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무작정 ‘창업하겠다’며 사표를 냈습니다.”경영학도 출신인 컨설턴트가 SaaS 개발에 나선다고 하자, 주위에선 기다렸다는 듯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컨설팅 업계 경력이 대부분인 초짜 사업가가 IT, 그것도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스스로를 “사업가 기질이 충만했던 생산성 협업 툴 덕후”라고 소개했다.“2010년 해외에서 아이폰을 처음 접하면서 에버노트에 푹 빠졌어요. 그 후로 전 세계의 생산성 협업 툴을 섭렵했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구글 등 글로벌 IT 공룡들의 러브콜 이어져2020년 7월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한 비즈니스캔버스는 창업 후 반년이 지난 2021년 1월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김 대표는 “제품 기획과 콘셉트를 단단히 다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꼼꼼한 기획은 개발 직후부터 결실을 맺었다. 비공개시범운영임에도 불구하고 혁신적인 기능에 수많은 해외 유저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빌보드차트라고 불리는 프로덕트 헌트(Product Hunt)에서 ‘Product of the day’에 선정된 것도 이즈음이다. 베타 테스트를 위해 프로토타입을 처음 선보인 지 불과 한 달 만에 거둔 성과였다.“조금 부족하더라도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보완해나가자는 전략이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토타입을 내놓고 평가받는 것 자체가 제품 기획과 개발에 마일스톤이 됐어요. 가설검증을 통해 2억5000만원 규모 프리시드 투자도 이끌어냈죠.”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서비스를 목표로 한 전략도 주효했다. 김 대표는 “아직 완성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50개가 넘는 나라에서 타입드 유저를 확보한 것 자체가 B2C Saas의 매력과 폭발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클라우드 기반의 SaaS는 국경과 언어의 장벽이 낮은 편이에요. 한국 유니콘들이 주로 국내 시장과 이커머스 같은 생활밀착형 서비스에 집중하는 것과는 다르죠. 지금까지 국내에서 B2C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사례는 거의 없었어요. 타입드는 이미 글로벌 커뮤니티가 따로 생길 정도로 ‘타이퍼’들의 호응이 대단합니다.”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문서 작업 툴의 가능성을 알아본 건 유저들뿐만이 아니다. 구글과 네이버 클라우드 같은 글로벌 IT 공룡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구글이다. 현재 구글은 SaaS 시장에서 슬랙을 인수한 세일즈포스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 열세라는 평가다. ‘약 먹은 구글독스’라는 타입드의 등장은 워크스페이스의 점유율 확대를 꾀하는 구글에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를 선물한 셈이다. 구글코리아와는 이미 세일즈프로모션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을 강화하려는 네이버클라우드도 타입드에 주목하고 있다. 비즈니스캔버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네이버클라우드와 동남아 진출을 함께했다. 김 대표는 “현지 유명 인플루언서 섭외 등 마케팅 과정에서 네이버의 지원이 컸다”고 말했다. 클라우드 사업자 입장에선 시장 장악력이 뛰어난 SaaS 사업자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일 수밖에 없다.2022년은 비즈니스캔버스의 본격적인 도약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비스 고도화를 거쳐 정식 버전 출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시드부터 출발해 지난해 말 받은 시드 투자를 합쳐 누적 투자금 73억원의 실탄도 마련했다. 김 대표는 “북미 시장 안착을 목표로 삼은 2023년에는 글로벌 투자사들의 시리즈A를 통해 최소 100억원 이상의 투자 유치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한국은 여전히 SaaS 시장의 태동기예요. 북미 시장에선 전체 유니콘 중 80% 이상이 이미 B2B SaaS 기업입니다. 국내에서도 넥스트 빅싱(Big thing)은 소프트웨어, 즉 SaaS에서 나올 거라 확신해요. 타입드가 한국 최초의 글로벌 SaaS 유니콘이 되겠습니다.”
※ 파워리더 이렇게 선정했습니다IT-컨슈머 부문 2030 유망주는 2021년 12월 27일부터 올해 1월 7일까지 심사위원 10명의 도움을 받아 선정했다. 심사위원은 IT업계 CEO와 관계자, 벤처캐피털(VC) 심사역 등으로 구성했다. 각 심사위원이 최대 5명의 유망주를 추천했고, 이 과정을 거쳐 총 44명이 후보자로 올랐다. 이 중 중복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순으로 올해의 유망주를 최종 선정했다.심사위원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김경범 프루브 대표, 배양숙 글로벌인사이트포럼 대표, 신재식 네스트컴퍼니 대표, 오종욱 웨이브릿지 대표, 장동욱 카카오벤처스 이사, 정인영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 대표, 정인혜 알토스벤처스 팀장, 천세희 더자람컴퍼니 대표, 최경희 소풍벤처스 파트너(가나다순)-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