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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 선정 2030 파워리더 20인] (7) 박수예 바이올리니스트 

유럽을 놀라게 한 천재 연주가 [ART & CULTURE 부문] 

김민수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22)가 발매한 세 번째 음반 [세기의 여정(Journey through a century)]이 2021년 그라모폰의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됐다. 그라모폰은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의 클래식 음악 전문지다. 그녀는 스무 살 남짓한 나이로 안드라스 시프,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이고어 레비트 등 세계적인 거장의 음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 사진:Jino Park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해왔지만 연주를 앞두고는 항상 불안하고 긴장됩니다. 하지만 무대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순간, 불안이 커다란 행복으로 바뀌는 걸 알죠. 많은 경험을 통해 이젠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을 더 잘 알게 됐어요.”

20년 가까이 연주해온 바이올린이 싫을 때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집에선 누워 있는 걸 좋아하지만 학교에 가서 바이올린을 잡으면 그런 생각은 대부분 사라진다”며 밝게 웃었다.

2000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녀는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같이 시작했지만 바이올린에 대한 애착이 유독 강했다. “부모님과 우연히 어느 레스토랑에 갔는데 거기서 스트링 콰르텟(현악 4중주단)의 연주를 보더니 제가 바이올린 연주를 젓가락으로 열심히 따라 했다고 하더라고요. 한 단원이 손에 쥐여준 바이올린을 잡고 놓지 않아서 부모님이 당황하셨다고 해요. 그 후 어머니께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조르고 졸라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녀는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국내 유수의 콩쿠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6~7세 때는 화제의 천재 소녀로 TV 다큐멘터리에도 방영됐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면서 레슨을 받던 그녀는 9세가 되던 해, 인생 궤도를 뒤바꾸는 인연을 만나게 된다. 2009년 코리안심포니와 협연차 한국을 방문한 바이올리니스트 울프 발린을 소개받게 된 것이다.

그는 아무 곡이나 연주해보라고 주문했고 그녀는 당시 배우고 있던 헨델 소나타를 연주했다. 그녀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울프 발린은 그 자리에서 독일 유학을 제안했다.

“평생 한국에만 사시던 분들이 갑자기 베를린으로 터전을 옮기는 건 엄청난 모험이었어요. 제가 잘될 거란 보장도 없고 당시에만 해도 베를린 유학은 생소해서 고민이 많았지만 제가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부모님께서 어려운 결정을 하셨죠.”

어린 그녀를 혼자 보낼 수 없었던 부모는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4개월 만에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그렇게 2009년 5월 말 부모님과 베를린으로 넘어간 그녀는 같은 해 10월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악대학 기악과에 최연소로 입학하며 울프 발린 교수를 사사하게 된다. 그녀의 나이 아홉 살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부터 22살이 된 지금까지 그의 유일한 제자로서 음악적 세계를 확장해오고 있다.

데뷔 앨범으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전곡 발표


▎2020년2월 자카르타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협연에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박수예. / 사진:목프로덕션
그녀의 천재성은 금방 알려졌다. 11살이 된 2011년에는 바이올린의 거장 이다 헨델과 함께 이스라엘 국영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고, 독일 방송은 어린 천재 연주자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내보냈다.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에는 독일어 공부와 바이올린을 병행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던 탓에 초반에는 “오로지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레슨을 받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발린 교수의 조언에 따라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 출전하며 인지도를 쌓아나가는 대신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는 데 집중했다. “발린 선생님은 항상 두 가지를 강조하셨어요. 첫째는 기초 테크닉을 정말 탄탄하게 배워야 한다는 것, 둘째는 음악가는 자신만의 소리가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죠.”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오랜 기간 정진해온 그녀는 17세가 되던 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최고난도 기교를 구사해야 하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전곡을 데뷔 앨범으로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보수적이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인 BIS레이블은 울프 발린 교수가 보낸 그녀의 연주 영상을 보고 곧바로 계약을 맺었다.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손가락 근육이 견디기 힘들 만큼 고난도 기교가 필요한 곡으로 악명이 높다. 이 때문에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녹음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그만큼 어려운 곡이지만 발린 교수와 BIS레이블은 아시아에서 온 어린 연주자가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레퍼토리로 파가니니를 선택했다.

그녀는 “아시아에서 온 어린 학생의 앨범을 내준다는 게 레이블에도 큰 도전이었을 테니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는 단 6일 만에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녹음했다. 이동 시간과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나흘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그녀는 “녹음은 금방 끝났지만 준비 과정에 1년을 쏟아부었다”며 “손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가장 효율적인 연주 방법부터 녹음 순서까지 연구하면서 부모님보다 발린 선생님을 더 많이 봤을 정도로 몰입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는 최단 기간에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녹음한 최연소 연주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서


▎2021년 그라모폰 2월호 디지털 특별호 표지를 장식한 박수예의 음반 (우측 최하단). / 사진:목프로덕션
그녀가 카프리스 녹음에 사용한 바이올린은 과르네리델 제수(Guarneri del Gesu)로, 경매에서 수백억원에 낙찰되는 명품 고(古)악기다. 독일의 대표적인 음악 가문 출신인 볼프강 함베르거(Wolfgang Hamberger)가 그녀의 연주를 듣고 앨범 녹음에 사용하도록 무료로 대여해줬다. 그녀는 “과르네리 델 제수의 깊고 따듯한 소리가 내 연주 성향과 너무 잘 맞아서 연주 내내 황홀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현재 사용하는 바이올린은 1758년에 만들어진 페르디난도 갈리아노다. 지난해 서울시향과 함께한 첫 협연에서는 172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용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과르네리 델 제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급 명품 바이올린으로,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밝고 화려한 소리가 특징이다. 다만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어려워서 최상의 소리를 이끌어내는 것은 온전히 연주자의 몫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과거 인터뷰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무리 슬퍼도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이라면 과르네리는 땅바닥에 앉아서 통곡할 수 있는 솔직한 농부와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박수예는 데뷔 앨범의 성공 여세를 몰아 1년 만에 두 번째 앨범 [사랑의 인사]를 선보였다. 사라사테 서주와 타란텔라, 엘가-사랑의 인사 등 그녀가 어릴 적부터 즐겨 듣던 곡들로 구성했다. 그녀는 “어릴 때 정경화의 바이올린 소품집을 들으면서 나중에 커서 꼭 녹음해보고 싶었던 애착 있는 곡들만 준비했다”고 말했다.

두 앨범으로 섬세한 감정과 완성도 높은 테크닉을 인정받은 그녀는 지난해 3년 만에 세 번째 바이올린 독주 앨범 [세기의 여정]을 내놓았다. 앞선 앨범들과 달리 20세기에 탄생한 현대음악으로만 구성한 이번 앨범은 영국 그라모폰 매거진이 ‘이달의 음반’ 및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라모폰은 2021년 디지털 특별호에서 “만약 이 음반이 유망한 그라모폰 어워드 수장작이 아니면, 도대체 다른 어떤 음반이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현대음악에 관심이 많은 발린 선생님의 조언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앨범이었다”며 “코로나 시기에 많은 활동이 제한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정말 선물 같은 소식이었다”고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9세부터 22세까지 오로지 한 스승 밑에서 수학해온 그녀에게 울프 발린 교수는 어떤 존재일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왜 바이올린을 하고, 왜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 그 이유를 스스로 찾을 수 있게 해주신 분”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어린 학생으로 대하지 않고 같은 음악가로서 존중해주셨고, 바이올린을 가르칠 때는 엄격하지만 친구처럼 대화도 잘 통하고 토론도 할 수 있는 상대”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녀는 올해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기악과 석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콩쿠르 출전에 반대해왔던 발린 교수도 “이제는 때가 됐다”며 다양한 방면에서 그녀의 활약을 응원하고 있다.

그녀는 올해 11월 한국에서 첫 리사이틀을 연다. 협연과 달리 독주회는 연주자가 온전히 공연을 이끌어가야 하는 만큼 부담이 더 크다. 그녀에게 독주회를 앞둔 소감을 묻자 “제 자신을 더 깊게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 같아 어느 때보다 기대된다”며 “더 다양한 곡을 저만의 해석으로 보여드릴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나가는 젊은 음악가의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됐다.

※ 파워리더 이렇게 선정했습니다

아트 & 컬처 부문 2030 유망주는 2021년 12월 27일부터 올해 1월 7일까지 심사위원 5명의 도움을 받아 선정했다. 미술과 음악 분야 심사위원은 각 분야에서 명망이 있거나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인물로 구성했다. 각 심사위원이 최대 5명의 유망주를 추천했고, 이 과정을 거쳐 총 23명이 후보자로 올랐다. 이 중 중복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순으로 올해의 유망주를 선정했다.

심사위원 금난새 지휘자,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김정현 스톰프뮤직 대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샘 목프로덕션 대표(가나다순)

-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

202202호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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