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er

Home>포브스>Adviser

이상인의 Digital Thinking(19) 

내가 NFT를 오해했다 

NFT가 새로운 형태의 자산 증식 및 전달 수단이라고만 여겼던 생각을 수정해야겠다. 메타버스 세계가 열리면서 다양한 형태의 에셋은 생각하지 못했던 형태의 세계관과 결과물을 탄생시키는 초석이 될 것이다.

▎비플(Beeple) 작가의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크리스티에서 거래된 첫 NFT 작품으로, 생존 작가 중 3번째로 높은 가격(42329이더리움, 2021년 당시 약 780억원)을 기록했다.
NFT(Non Fungible Token)는 사기라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사기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존하는 많은 NFT가 실용성이 전혀 없는 공허한 외침과 움직임에 불과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NFT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인증 시스템이며, 내가 보유한 디지털 자산(Asset)의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 개념이다.

직접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디지털 증명서인 NFT가 천문학적인 금액에 거래되는 것이 더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모션 디자이너이자 밈(meme: 약간의 조롱과 유머가 들어간 인터넷 이미지) 아티스트였던 비플(Beeple)의 NFT 작품 세트가 지난해 경매에서 690만 달러에 낙찰되는 것을 보고 양적완화로 인해 시중에 많은 돈이 풀리다 보니 별일이 다 벌어진다 생각했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그의 사회풍자 밈 작품이 피카소나 모네 같은 거장의 웬만한 작품보다 비싸다는 것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이다. 붓에 묻은 물감을 과감하게 털어내며 거대한 캔버스를 메운 그의 전위적 작품은 여전히 추상미술을 대표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와 엄청난 작품 가격이 냉전시대 산물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 미국 CIA는 미국의 문화 수준이 사회주의 국가를 압도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잭슨 폴록, 윌리엄 데 쿠닝(William de Kooning) 같은 유망한 미국 현대미술 작가에게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들의 작품 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 당시 러시아가 추구한 소셜리스트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은 그들의 정치적 아젠다를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는데, 미국은 이러한 정밀 묘사와 반대되는 추상적 현대미술을 냉전시대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무기로 활용한 것이다.

최근의 NFT 거품이 신구 금융 시스템의 헤게모니 대결에서 비롯된 경쟁이라는 주장도 있다. 마치 잭슨 폴록으로 대변되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미국을 대변했듯, 새로운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세력을 비플 같은 유명 NFT 작가들이 대변하는 것일지 모른다. 기존에 부를 거머쥐고 있는 세력이 거장들의 작품을 거래함으로써 자산가치를 높이고 전달하는 수단으로 오랜 기간 활용해온 만큼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자산 증식 및 전달 수단이 NFT의 전부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리서치를 하면 할수록 NFT에 대한 고정관념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메타버스(Metaverse) 생태계는 현재 태동기를 지나고 있다. 탈중앙화된 세계인 메타버스는 아직 기존 온오프라인 세상의 발전에 비하면 신생아 수준이다. 현재 메타버스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콘텐트 및 활동 영역은 꽤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과 땅이 최초에 열리고 만물이 소생하듯 공간을 채우기 위한 여러 노력과 시도가 필요하다.

현재의 NFT는 진화의 첫 단계일 뿐


▎2021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NFT 미술 팬들이 ‘거리의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의 판화 ‘멍청이’를 사들여 NFT로 전환하고, 원본 그림은 불태워버리는 이벤트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멍청이’ NFT는 경매에서 실물보다 4배나 비싸게 팔렸다.
지구가 현재 모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태계가 번영과 몰락을 반복했듯이 메타버스에서도 적자생존으로 살아남은 개체가 나타날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고 퇴보하는 개체도 줄을 이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개체들의 끊임없는 탄생과 시도가 메타버스 생태계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전 세계 최고 기업과 자본이 메타버스 세상을 정의하고 선점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경험의 관점에서 메타버스가 가져올 혼합현실형 경험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모두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나다.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비즈니스 활용 측면에서도 메타버스 세상이 우리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가치는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NFT는 바로 이러한 메타버스 생태계의 시작과 발전을 견인할 기초 블록이 될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내재적 물성이 존재하고 그것의 활용과 희소성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메타버스 안에서는 빛과 같은 자연적인 것부터 벽돌 같은 기초적 건설 재료와 건물, 사람들의 아바타까지 다양한 종류의 블록이 필요하다. 이는 이용자가 직접 창작할 수도 있고 누군가 만든 것을 구매해 활용할 수도 있는데, 이때 필요한 개념이 바로 NFT다.

창작물에 절대불변의 고유번호를 부여해 가치를 보존하고 거래까지 가능하도록 돕는다. 디지털의 특성은 누구나 쉽게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작위 복제가 무한대로 이루어진다면 희소성이라는 개념은 사라질 것이다. NFT의 희소성 보존 기능을 통해 가치에 대한 상호 동의가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창작자 중심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이런 형태의 디지털 자산이 많아질수록 가치의 저장 수단을 넘어 자산의 활용과 발전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현재 오픈시(OpenSea) 같은 여러 온라인 마켓플레이스가 다양한 창작자의 작품 거래를 돕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다양한 음악과 예술, 다양한 형태의 에셋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형태의 세계관과 결과물을 탄생시키는 초석이 될 것이다.

현재 NFT가 많은 부분 기초적이고 실제 활용도가 전혀 없는 거품 같아 보여도, 이 거대한 거품이 걷히고 발전을 거듭할수록 옥석이 가려지게 될 것으로 본다. 마치 1·2차 닷컴 붐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기업이 탄생하고 사라졌지만, 구글과 아마존 같은 기라성 같은 기업들이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현재의 NFT는 완성형이 아니다. 진화의 첫 단계일 뿐, 이를 완성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NFT의 5년 후 혹은 10년 후 모습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게 바뀌어 있을 것이다.

※ 이상인 MS 디렉터는… 구글 본사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재직 중이며 현재 유튜브 광고 비즈니스의 디자인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loud+AI 부서에서 Principal Design Manager로 일했다. Deloitte Digital과 R/GA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을 상대로 디자인&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했으며, Cannes Lions(Silver, 2013)와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대상, 2017) 등 최고 권위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베스트셀러 연작 『디자이너의 접근법; 새로고침』,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 호라이즌』을 출간했다.

202202호 (2022.0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