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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문화재로 상속세 대납 

 

2023년부터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해 납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물납이 가능한 대상은 역사적·학술적·예술적인 가치가 있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요청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을까?’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2만3000여 점에 달하는 개인소장 미술품을 기증하면서 이런 문의가 폭증했다. 실제 2020년 11월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하자, 국내 최고 자산가이자 주식 소유자인 그에게 어느 정도의 상속세가 부과될지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유족들은 12조원대에 이르는 상속세를 국세청에 신고했고, 고인의 유산으로 감염병 전문병원 건립과 소아암·희귀질환 지원에 1조원을 기부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이 소장하고 있었던 미술품들을 국립기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이라 불리는 이 미술품들 수준이 또 가히 세계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각각 2만1693점, 1488점이 기증됐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로써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 제216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보물 제1393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등을 소장하게 됐고,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평론가들이 100년 뒤 보물로 지정될 작품으로 지목한 박수근의 대작 ‘절구질하는 여인’뿐만 아니라,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비롯해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 피카소, 샤갈, 르누아르, 고갱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가들의 명작이 포함돼 있다.

유족도 이 기회에 일부 소장 미술품을 기증했다. 대구미술관에 21점,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는 서양화가 박수근의 작품 18점을 기증했다. 전남 광양에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에도 전남 출신 한국미술 거장들의 작품 21점을 기증했다. 그 덕분에 해당 미술관들은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화가의 명작을 소장, 전시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이 고가의 미술품이 기증되자 자연스럽게 미술품이나 문화재로 상속세를 대신 납부하는 물납을 허용해야 하는지가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실 이러한 논쟁은 기존에도 거듭돼왔다. 가까운 사례로는 전성우 전 간송미술관 이사장 별세 당시의 사건이 있다.

상속 이후 재단 운영 등에 따른 재정 압박으로 유족들이 2020년 5월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부쳤기 때문이다. 당시 이와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고,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자체 예산으로 이 불상들을 구매하여 논쟁은 사그라들었으나, 이번에 이건희 회장 소유 미술품과 관련하여 다시 물납 허용 여부를 따져보게 됐다.

법에서 정한 요건 모두 충족해야 ‘허가’

증여세와 달리 상속세는 납세자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납세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우발적인 납세로 인하여 상속인이 곤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세법에는 현금으로 상속세 납부가 어려운 상황이 인정되면 예외적으로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으로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물납’제도를 두고 있다.

기존 상증세법에서는 상속세와 증여세 모두 물납이 가능했다. 하지만 2015년 12월 세법 개정에 따라 증여세는 아예 물납 대상 세목에서 제외됐고, 상속세의 경우 2016년 1월 1일 이후 물납신청분부터는 상속재산 중 금융재산이 상속세 납부세액보다 적은 경우에만 물납이 가능하도록 요건이 강화됐다.

물납의 요건을 살펴보면, 먼저 상속재산 중 부동산과 유가증권의 가액이 상속재산가액의 1/2을 초과해야 한다. 여기서 상속재산이란 상속인에게 상속개시일 전 10년 이내에 증여(상속인이 아닌 경우 5년 이내 증여)해 상속재산가액에 가산되는 증여재산이 포함되는데, 2018년 1월 1일 이후 물납신청분부터는 사전증여재산 중 상속인, 수유자 외의 자에게 증여한 사전증여재산은 제외하고 상속인 및 수유자가 받은 사전증여재산만 포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부동산과 유가증권은 국내 소재 부동산 등으로서 물납에 충당할 수 있는 재산으로 한정되며, 상장주식의 경우 현금으로 전환하기가 용이하므로 금전납부가 가능하다고 보아 물납대상에서 제외되나, 비상장주식은 다른 상속재산으로 상속세 물납에 충당하더라도 부족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물납대상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해야 하며, 상속세 납부세액이 상속재산가액 중 금융재산의 가액을 초과해야 한다.

이와 같이 물납제도는 납세대상자에게 부과된 세금을 현금으로 납부하기가 불가능한 경우 현금 외의 재산을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것으로, 납세의무자에게 납세 편의를 제공하고 과세 관청은 조세징수권을 확보하는 등 상호이익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을 통한 미술품 물납의 입법화

그런데 미술품 등으로 물납이 가능하도록 한 법안의 경우 이런 물납제의 원칙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적인 이유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납을 통한 상속세의 징수로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주된 취지이나, 미술품 등의 물납을 통하여 문화재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향수할 수 있게 세상에 나올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문화재 물납 입법 과정에서 미술품 물납의 순기능으로 제시되어왔다.

다만, 미술품 등은 감정평가와 위작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물납대상 자산에 포함하기 어려우며, 물납 재산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매각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이 반론으로 꾸준히 제시되어왔다. 다사다난했던 미술품 등의 물납 입법 논의는 결국 2021년 12월 국회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 의결을 통해 정리됐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에 따라 상속세를 미술품이나 문화재로 대신 납부하는 물납제도가 2023년부터 도입된다.

정부 관계자는 세법개정안 사전 브리핑에서 “미술품 물납을 옛날엔 반대했는데 변경한 이유는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인 문화재를 국가적으로 관리·보존하고 일반 국민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술품과 문화재의 보존·활용 방안은 관계 부처 간 지속적으로 협의해왔고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통해 민간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숱한 논의 끝에 미술품 등 물납제도가 시작됐다. 당초 구상했던 입법취지에 따라, 미술품 등 물납제도가 투명하고 원활하게 운영되어 더 많은 국민에게 문화적인 혜택이 돌아가기를 바란다.

- 민경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02202호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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