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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게 기부 장려하는 법 

 

지난해 미국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6조8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기부했다. 여기에 신원 미상의 신탁이 개입했다. 꼭 이와 같은 건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개인 자선기관을 활용한 절세 전략이 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회원국들의 만장일치로 한국을 아시아·아프리카 국가군인 List A에서 선진국 그룹인 List B로 변경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인 한국의 지위 변경이 1964년 UNCTAD 창설 이래 처음이라 하니, 우리 국민의 자부심도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어른이 되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따르듯 선진국 반열에 선 한국도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역할과 책임을 맡게 된다. 6.25 전쟁 당시 전 세계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던 한국이 이제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 실제 서울 소재 모 대학 의료진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현장 지원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린다.

직접적인 봉사도 좋지만, 기부도 선행의 한 축이다. 미국에서는 여느 때보다 큰 규모의 기부가 화제가 됐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지난해 11월 테슬라 주식 약 6조8000억원어치를 기부했다고 한다. 블룸버그는 이를 “기부 역사상 가장 큰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머스크가 지난해 11월 19일부터 29일까지 테슬라 주식 500만 주를 기부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 해당 주식의 가치는 매각 당일 주가 기준으로 57억 달러(약 6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나다. 블룸버그는 “해당 기부에는 신원 미상의 신탁이 개입돼 있었고, 주식을 받은 자선단체의 이름은 문서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우리 모두가 머스크일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도 기부 총량이 늘었다. 경제규모와 소득증가에 따라 2005년 7조원대에서 2019년 기준 14조50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00년 이후에는 법인기부보다 개인기부의 비중이 늘어 약 65%를 차지했다. 2021년 통계청의 사회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 1년간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이 21.6%, 향후에도 기부 의사가 있는 사람이 37.2%로 나타났다. 남을 돕는 것이 행복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기부를 하지만, 기부경험비율은 2011년 36.4%에서 2015년 29.9%로 되레 낮아졌다.

다시 말해 기부 총량은 늘었지만 기부 경험은 줄어든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패턴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요인 중 하나가 고령화다. 인구에서 시니어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수록 다양한 기부플랜이 출현하게 된다. 특히 유산기부 플랜이 그 예다. 유산기부는 상속증여플랜, 노후에 대한 안전한 대비, 세제혜택 등이 함께해야 활발하게 이어질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이 그랬다. 한국자선단체협의회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영국도 20년 전에는 죽음을 떠올린다는 이유로 유산기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대부분 자녀에게 재산을 이전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유언장 작성 비중도 낮았다.

그런데 2000년부터 영국의 자선단체가 연합하여 유산기부 인식개선 캠페인을 시작해 유산기부의 날을 지정하고 본인의 뜻을 남기는 유언장을 쓰자는 운동도 펼쳤다. 이후 2011년 ‘레거시10(Legacy10)’ 운동으로 이어졌고, 영국인의 10%가 자발적으로 유산 10%를 자산단체에 기부, 서약하는 유산기부 캠페인이 진행됐다. 영국에서는 32만5000파운드 이상을 상속할 경우 40% 세율을 적용하지만, 유산 중 10% 이상을 기부하면 상속세를 36%로 낮춰주는 등 세제혜택을 준다.

기부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마련한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는데 대표적으로 신탁과 결합된 ‘ CRT(Charitable Remainder Trust)’ 제도가 있다. 이를 활용하면 연방세와 주세를 동시에 절감하며 기부를 실현할 수 있다. 또 기부자 사후에는 비영리기관으로 이전되지만 기부자와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어 은퇴·상속 플랜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CRT 제도는 자선단체·사회복지기관 기부 확산을 목적으로 연방의회에서 특별법으로 제정했다. 트러스트를 설정하고 트러스트로 이전된 돈은 생전에는 기부자가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위해 사용할 수 있으며 사후에 기부기관으로 소유권이 이전된다.

신탁은 재산 소유권이 신탁으로 이전되지만, CRT의 경우 재산 소유권을 넘겼어도 기부자가 자선 목적의 트러스트에서 나오는 수익을 소득으로 사용할 수 있다. CRT에 기부한 재산은 투자를 통해 가치가 불어나게 되며 불어난 재산은 당연히 비과세된다. 현금 외에도 부동산이나 주식으로도 기부플랜을 설정할 수 있고, 사망할 때까지 충분한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CRT에 편입한 자산은 상속세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우리도 노후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기부의 목적 달성과 함께 기부자와 가족의 생계를 일정 부분 보장해주는 플랜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전에 수익을 받는 방식은 고정액을 받거나 수익에 따라 분배받는 형태 중에서 고를 수 있어야 각자의 상황에 맞춰 또는 인플레이션 이슈 같은 경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신탁을 설정하고 신탁으로 이전하는 재산의 10%만 자선기관에 할당하면 된다는 CRT 제도는 없다. 하지만 분명 한국에서 고령화 대비와 노후생활 보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재산 소유권 넘겨도 수익은 내가 갖는 미국 CRT

최근 국내에서도 기부 문의가 늘고 있다. 대부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살다가 사후에 교육기관이나 사회복지기관에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유산기부 업무도 법률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특히 기부자 사후 가족들의 유류분 청구에 대한 분쟁에 대처할 수 있는 자산 컨설팅 기능이 필요해진 것이다. 상속과 관련된 가족의 분쟁 현황과 유류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기부는 상속과 맞닿아 있다고 봐야 한다. 가족 간 재산분배의 문제와 기부 철학은 언제나 상충할 수 있고, 복잡한 조세제도도 기부의 뜻을 온전히 선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국과 같이 유언장 작성 캠페인, Legacy10 철학과 맞물린 세제 개선 등에 대한 논의도 참고해야 한다. 미국은 CRT와 더불어 신탁 활용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머스크의 기부 사례처럼 ‘신원 미상의 신탁’이 개입했듯 개인 자선기관(Private Foundation)을 활용한 절세 전략이 유행하고 있다.

-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고문

202204호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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