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26) 

가상 -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라는 대답을 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행복은 어떻게 생겼으며 만질 수 있는 것인가. 결국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가 아닌가.

▎오귀스트 르누아르 [산책로] 1870
삶의 궁극적 목표라는 원대한 관점으로 접근하면 결국 우리가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은 사랑과 우정을 토대로 형성된 질 높은 관계, 성취와 만족이라는 충만한 감각 등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가상이자 허구의 개념들, 즉 상상을 통한 관념 속 존재들이다. 우리가 이처럼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 관념 안에만 존재하는 개념을 얻기 위해서였던가.

허구적 최종목적론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의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인간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현재가 결정된다’고 주장했던 결정론과는 상반된 개념이다.

아들러는 과거의 경험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기대가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또 그러한 목적의 대부분이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낮은 가공의 생각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우리는 ‘앞으로 잘 살 것 같다’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상을 향해 매일을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Auguste Renoir)는 자신의 허구적 최종목적론에 따라 살아간 대표적인 화가이다. 가난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화가였던 그는 자신의 모든 그림에 행복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담았다. 자신이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고, 행복한 사람을 그림으로써 자신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거짓을 담은 그림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가공의 관념을 믿은 결과 르누아르가 현실 세계에서 부와 명성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산타를 믿었던 시간들


▎조지프 클라크 [크리스마스 아침] 1920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으면 아이들은 제일 먼저 머리맡에 어떤 선물이 있는지 확인한다.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 아이들을 주로 그렸던 클라크(Joseph Clark)가 그린 그림 속 아이들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인형과 과자를 확인하고 들떠 있다. 이 모습을 본 부모는 자신들이 가져다 놓은 선물에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이브 밤은 너무나도 설레는 시간이었다. 그날 밤은 잠든 사이 산타가 몰래 선물을 놓고 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산타가 준비한 구체적인 선물을 받았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산타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믿음이 가능했던 것은 부모가 가상의 세계를 구축해주었기 때문이다.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준다는 조건부 개념을 제공했고, 아이들은 선물을 받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어느 정도 참아가며 착한 아이라는 범주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가상의 개념은 이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상상을 통해 생존한 인류


▎작가 미상 [사자 사람] BC 3000년경
인류가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아 군집을 이루어 다른 동물들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데도 상상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인류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강력한 근육, 빠른 스피드 그 어떤 것 하나 갖지 못했지만 군집을 이루기 시작했다. 원숭이와 오랑우탄을 비롯한 모든 영장류가 군집을 이루지만 서로 알고 지낼 수 있는 무리의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문화인류학자 로빈 던바 교수는 실제로 알고 지낼 수 있는 친구의 한계치는 평균 150명이며, 이 능력은 대뇌 신피질의 크기에 달려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인류는 150명보다 훨씬 큰 군집을 이루며 살아왔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군집체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BC 3000년경 작품으로 보이는 [사자 사람]은 사자 머리에 사람 몸을 가진 조각상이다. 인간은 이러한 모습을 한 동물을 본 적이 없지만 예술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수백만 년 전이지만, 기원전 3000년경부터 작품들이 발견된다.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인류가 200만 년 가까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이야기할 수 있는 힘,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것은 ‘믿음’의 영역으로 발전해왔다.

사자를 믿는 사자 부족, 곰을 믿는 곰 부족이 출현하고, 내가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내가 속한 집단이 나뉘게 된 것이다.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그 자체로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낀다. 부족에서 시작한 이 개념은 종교, 회사, 학교, 국가 등 가상의 체계를 발전시켜 수많은 사람을 하나로 엮게 된다. 인류는 이렇게 가상의 개념을 이용하여 뭉치게 되었고, 지금까지 생존해왔다.

미술작품.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액자에 끼워져 갤러리 벽에 전시된 작품, 혹은 돌을 깎아 만든 조각상이 일반적이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에게 미술작품은 갤러리에 가서 보아야 하는 작품들이다.

가상공간 속 미술, NFT


▎Klay SoulCat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두 고양이] 2022
최근 등장한 NFT 미술은 그 개념을 뒤집었다. 작품은 사이버 공간에서 발행되고, 하나의 작품이 판화처럼 여러 서플라이로 발행될 수도 있다. 작품을 구매하면 디바이스 속 자신의 컬렉션에 작품이 들어오고 거래도 이더리움, 폴리곤, 클레이튼 등 가상화폐로 이루어진다.

전시하거나 벽에 걸 수 없는 작품을 구매하는 이유 역시 관념적이다. 작품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구매할 수도 있지만,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같은 작가의 작품을 구매한 홀더들의 커뮤니티에 속한다는 소속감, 유명한 작품을 소유했다는 우월감, 로드맵에서 보여주는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 등이 그것이다.

오픈씨에서 판매 중인 Klay SoulCat의 경우 이미지마다 치유의 에세이가 작품 설명에 함께 적혀 있다. 작품을 구매하면 작가가 진행하는 집단미술심리상담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는 입장권이 제공되고, 홀더들만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가 지속적으로 제공된다. NFT로 발행된 이미지와 메시지이지만, 여기에는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작품 설명으로 인한 힐링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믿음도 작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을 추구하는, 아들러가 이야기한 허구적 최종목적론과 부합하는 개념이다.

NFT 미술은 오프라인 갤러리에도 전시되지만 메타버스 공간에서 전시되는 경우가 더 많다. 작가는 홀더들을 위해 가상공간에서 땅을 사서 홀더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지만 결국 가장 최종적인 부분에서는 가상의 힘이 압도적이다.

관념 세계의 힘

우울, 분노, 슬픔, 기쁨과 같은 감정들, 그리고 자존감, 열등감과 같은 심리적 척도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부분이다. 구체적인 기준에서 돈이 많고, 비싼 차를 소유하고,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이 긍정적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스로를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자존감 수준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을 객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주관적 잣대로 자신을 판단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자아상의 모습이 달라진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산타의 존재를 알리고 산타의 역할을 이야기해주어 아이들에게 관념 세계를 만들어주었듯, 성인이 된 어른의 관념 세계 역시 만들어지고 이 세계에 따라 인간은 살아가게 된다. 이 세계는 스스로 만들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기도 한다.

가스라이팅을 하며 자존감을 훔치는 자존감 도둑 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스스로를 습관적으로 자책할 수도 있고, 당신이 얼마나 멋지고 빛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견고한 세계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곁에 두며 시간을 보내는지, 나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시간은 상당히 중요하다. 관념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을 규정하고, 그렇게 규정된 자신이 구체적인 현실 세계에서 결국 무언가 행동하는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 김소울은…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204호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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